2011년 5월 22일 일요일

평양의 화폐 개혁



     

-- 2009년 11월 30일의 평양의 화폐 개혁은 경제적 목적인 인플레션의 억제와 그간의 시장 운용과 개인의 경제 활동의 여파로 형성된 신흥 중산층 세력을 핍박하려는 정치적 조처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악이 체제 붕괴와 직결된다는 인식에서, 북한 지역에 싹트고 있는 중산층은 체제 내부의 적과 다름없는 제거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수년 전부터 일고 있는 신 보수주의 성향의 흐름으로 정통 사회주의로 복원되고 있는 작금의 형국에서, 기술적으로는 경제의 통제력을 재 장악하여 공고히 다지려는 의도도 뚜렷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신 화폐 2000원 권 발행과 함께, 김 정일의 정통성을 새로 조명하려는 의도이다.  김 정일은 부자 인연으로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승계했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내세울만한  버젓한 점이 없는 위인이다.

 
그는 지난 30년 넘게,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 온갖 만행을 자행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국가 형 범죄를 일삼고 있는 불량집단의 괴수이며, 어리 숙한 북한 주민들에게 “통이 큰” 지도자연하며 과대망상에 빠져있는 흉악한 독재자일 뿐이다.

신 화폐 2000원 권은 김 정일만의 상징성의 생가인 양강도 삼지연군의 백두산 밀영의 통나무집과 장수봉 (1,791m)을 김 정일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정일봉 을 앞면에, 그리고 고향이라 일컫는 백두산 전경 도안을 뒷면에 담고 있다.

 
북한 지역의 어떤 곳에도 김일성과는 달리, 지금껏 김 정일의 이름을 붙인 곳은 없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 화폐를 통해 김 정일을 상징적으로 내세우는 정치적 의도는 다가오는 권력의 승계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정치 행위에 도구적 유용성을 강화하려는 타이밍의 표출로 해석할 수 있다.

루디거 프랭크  빈 대학교 동아시아경제 및 사회교수는 이 화폐 개혁으로 단기적인 정권의 목적 달성은 가능하겠지만, 동독 정권의 몰락을 연상케 하는 정권 붕괴의 위해 요인도 함께 잉태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


 


2009년 11월 30일, 평양 정권은 신구 화폐를 100:1로 교환하는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상점들은 확실한 신 화폐의 유통을 기다리며 문을 닫고 있다.

들리는 말로는, 이 교환 비율로 바꿀 수 있는 1인당 금액은 최고 10만원 내지 30만원이다.  이것은 큰 돈이 아니며, 비공식 환율로 50~150 유로 정도이다.

이와 같은 주요 금융 거래는 큰 비용이 든다.  신 화폐를 도안하고, 인쇄하여 유통시켜야하며, 구 화폐는 수집하여 파기해야 한다.

특수 용지, 잉크와 같은 값비싼 소재와 수많은 트럭과 수송용 유류 그리고 고도의 보안 조처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화폐 개혁은 기대 이득이 없이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 2009년의 개혁은 어떤 경우일까 ?

가능성 있는 한 동기는 몇 개의 영 (零)을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을 포함하여 많은 나라에서 여러 해 동안 논의된 바 있다.  개인이 다량의 지폐를 갖고 다는 것은 불편하다.

전체적으로, 간소한 식사 한 끼에 10,000 단위 화폐를 쓴다는 것은 욕된 일이며, 보통 저성장과 관련되어 있거나 인플레이션일 때는 더욱 나쁘다.

그러나 이런 고려가 화폐 개혁의 경제적, 행정적인 호된 시련에도 강행해야 할 만큼 평양 정권의 긴급 안건이 될 수 있을까 ?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이 조처를 2004년~2005년경에 시작된 평양 정권의 신보수주의 경향의 한 부분으로 해석해야 한다.

평양은 2002년 7월1일 경제관리개선조치이후의 예상치 못한 경제적 자유화의 부작용에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한국과의 새로운 경제 협력과 중국과의 공식적, 비공식적 거래가 늘어나면서 촉진되었다.  

또한 일본과의 협상 실패 (피랍자 교환 조건으로 관계 정상화 및 보상)에 실망했으며, 미국의 9.11후기 정책의 영향 하에 있었다.  미국은 “악의 축”의 행실이 나쁜 무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분명히 밝혔다.

2003년 봄, 복권 형 인민생활 공채의 발행과 시장 거래 상품을 식료품으로부터 소모품 따위 산업용 제품 생산재로 확대한 이후에는 더 이상의 개혁은 없었다.

 
나중에, 시장의 거래는 착착 박탈당했으며, 국가 통제의 생산과 배급의 경제 제도로 돌아오
도록 주민들을 꾀어냈다.

부 (富)의 차이가 전면적으로 눈에 띄게 뚜렷해지면서, 불만이 높아졌고, 번창하는 장사는 죄악시되었다.

2008년 말, 김 정일은 1950년대와 제2 천리마 운동을 시작하던 1960년대의 정통 경제 정책을 부활시켰다.  그 후 곧, 150일 전투가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그 뒤를 이어 100일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조처에 기대되는 경제적 실리는 개인들이 쉽게 알아차리고 실행을 꺼리기 때문에 그 결과는 의심스럽다.  “속도전”의 진정한 가치는 이데올로기이다.

화폐 개혁은 평양 정권판 정통 사회주의에의 회귀 운동의 일환이다.  그리고 서방 세계가 예사롭지 않게 이해하고, 너그럽게 보아주거나 솔직히 무시했던 지난 몇 년의 개혁의 위태로운 결과를 뿌리 뽑는 것이다.

이 개혁들의 가장 위험한 결과는 개인의 야망을 개발하고, 정권이 부과한 집단주의를 일탈하기에 충분한 부를 갖춘 사람들의 새로운 집단의 출현이다.

이집트의 국제적 원거리통신회사인 Orascom network의 휴대전화 가입자의 경우, 평양에서만 거의 3만 명이나 되며, 급증하고 있는 개인 요식업 등은 교훈적이다.

많은 학술연구는 정치 개혁을 위해 새로 생겨난 중산층이 얼마나 필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한번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노력으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이것은 오직 정치적으로 국가 조직의 순위를 통하여 발전적 대안을 창출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새로운 옵션은 매력적이며, 이것은 부 (富)뿐만 아니라, 세력을 산출하는데 사용되었다.

이 새로운 중산층은 부러움의 대상의 된 사례가 되었지만, 침묵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대답하지 못한 많은 문제도 안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현 체제의 붕괴를 당장 유발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위험하다.

김 정일의 동구권 사례 분석은 사회주의의 붕괴가 이데올로기의 붕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데올로기의 주장이 현실과는 점점 동떨어지면서 국내 질서는 혼란하고 어수선하여 선전은 다만 주민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주민들은 아직 정부를 두려워하고 순
종하지만,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는다.

이 상황은 평양 정권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막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개인의 경제 활동 바이러스와 이로부터 파생된 패러다임의 변화에 사회가 한번 감염되면 그 현상은 없애기 어렵다.

 
평양의 지도부는 지난 몇 년 동안 나타나고 있는 위험한 개인주의의 흔적을 뿌리 뽑기 위해 기술적 조처로부터 이데올로기운동으로 나섰다.

예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성공의 가능성은 한정되어 있다.  경제적 자유를 억누르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잠시나마 허용되어 사람들이 맛들인 것을 없애기는 매우 어렵다.

이 화폐 개혁은 근본적으로 새로 등장한 북한 지역의 중산층을 없애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거래도 없다는 논리로 보인다.  그러나 이 조처는 효과가 있을까 ?  이 회답은 영향을 받는 개인들의 사정에 달려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돈을 안전한 외화인 유로와 달러 그리고 중국 위안이나 일본 엔으로 바꿀 만큼 아주 영리하다.  이들은 규모 있는 경제적 거래에 종사하는 전문 장사치다.

하지만, 거래는 국내은행시스템을 쓰는 대신, 사전도매 거래금융에 대한 거액의 준비금 적립이 요구된다.  국내 화폐로 받는 수익은 보통 즉각적인 환전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 지역의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들의 재산의 일부의 손해는 면치 못할 것이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사람은 신 중산층의 말단들이다.

이 사람들은 중간 상인들과 거래하며, 거래는 국내 화폐로만 이루어진다.  그들의 정보망은 좀 엉성하기 때문에 돈을 경화로 바꾸는 기회는 한정되어 있다.

1kg의 쌀 가격이 대략 1,500원이기 때문에, 소규모 상인이 1톤의 쌀을 팔면 매상고는 150만원이 된다.  여기서 겨우 30만원밖에 신 화폐 교환을 못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분명히 창해일속 (滄海一粟)이다.

평양 정권은 많은 돈을 갖고 있는 것을 수상쩍다고 보는 체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부 (富)는 착취와 사기의 부산물로 간주하므로 불평불만은 심각하다.

화폐 개혁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  경제적 성공에서 따돌림 받은 사람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들의 새로운 부자이웃이 현실로 돌아오게 되어 필시 기뻐할 것이다.

상류층은 십중팔구 대비하고 있다.  신 중산층의 말단들은 이전의 규모로 경제 활동을 계속하는데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많은 북한 주민들은 그들의 저축을 잃을 것이다.

자신의 예금 보유고를 경화와 금이나 귀중품으로 바꿔, 몰수를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앞으로 더 조심할 것이다.

확실히, 이 조처로 인해 전체적으로 억눌려질 것 같지는 않더라도, 비 국가 경제활동은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정권은 지난 수년 동안 상실했던 경제적 통제의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결과는 평양에게 덜 유망하다.  다른 전 사회주의국가들의 경험은 레닌의 말처럼 “혁명적 상황”의 수준까지 좌절감과 욕구불만이 조용히 쌓이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보다 큰 반발은, 지도자의 사망이나 굶주림, 외부적 요인이나 소규모의 국내 싸움과 같은 원인 사건으로 잠시 사이에 충분히 널리 퍼져나갈 수 있다. 

 
1989년 10월7일, 수많은 충성스러운 시민들은 그들의 늙은 지도자 앞에서 동독정권수립 40주년 기념 행진을 했다.

이틀 뒤, 20만 명의 사람들은 라이프치히에서 자유여행과 고르바초프 스타일의 개혁을 요구하면서 대정부 항의 데모를 벌였다. 그 후 1년도 못되어, 동독의 존재는 없어졌다.

보안이 탄탄하고 당장의 반란은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2009년 12월의 화폐 개혁은 평양 정권의 단기적 승리일 수 있겠으나, 결코 개인의 경제 활동을 근절할 수 없고, 장기적으로는 체제의 정통성에 큰 위해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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