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7일 월요일

北정권 처리 (Dealing North Korea)


Dealing North Korea
Abstract
 
The situation today, with U.S. President Trump facing off against North Korean dictator, describes a similar conflict in the late1960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t's not that the Pyongyang regime is entirely irrational, but it is certainly differently rational in a way that is nearly impossible for consent of the people democracies to comprehend.
 
That confrontation ended not in war but in detente and a close economic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It's an important reminder that diplomacy can work even in seemingly intractable situation.
 
In the early 1960s, the United States was terrified that Communist China would acquire a nuclear weapon.
 
By 1964, China tested its first nuclear bomb. Two years later, the Cultural Revolution began, and China descended into political chaos.
 
The United States made a strategic decision at the beginning of the 1970s to engage the leadership in Beijing.
 
This detente started out with highly secret negotiations conducted by national security adviser Henry Kissinger.
 
Today, the United States faces a leadership in Pyongyang that is rhetorically aggressive, and a terrible abuser of human rights at home, but a good deal less ideological than Beijing was in the late 1960s.
 
North Korea wants a nuclear weapon for quite rational reasons.
 
To deter any possible attacks from outside and to balance the overwhelming conventional military edge maintained by the United States and ROK.
 
North Korea is different from China. It's a much smaller country, with a consumer market that doesn't much interest U.S. business.
 
Nor does it represent a major geopolitical counterforce, as China once did against the Soviet Union.
 
Still, Donald Trump might be persuaded to engage Pyongyang.
 
Trump wants to prove that he's a winning dealmaker. And Trump loves to break new ground with his real estate deals.
 
A deal that opened North Korea to U.S. foreign investment, and that included an option for a Trump Hotel Pyongyang, would be geopolitical and corporate twofer.
 
Trump administration has been casting around for ways to reduce Chinese influence in the world.
 
Driving a wedge between Beijing and Pyongyang could satisfy Trump's desire to wrangle some leverage over China.
 
Of course, the most important reason to support negotiations with North Korea is to avoid a catastrophic war.
 
In the 1970s, when it was still knee-deep in the Vietnam War, the United States wisely decided not to denuclearize China by force and possibly spark World War III.
 
In the 2010s, still knee-deep in the Afghanistan War, the Trump administration would be wise to learn from that example.
 
 
北정권 처리
 
미국이 1970년대 마오쩌둥 (毛澤東)중국과의 거래를 텄으니 오늘날 北정권의 문제도 확실히 처리할 수 있다.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 대해 세계는 미국의 트럼프가 선제 핵공격을 시작 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北정권의 김 정은과 대치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의 상황 스토리이다.
 
北정권은 완전히 비합리적이지는 않지만, 민주주의의 국민들의 동의가 거의 불가능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1960년 대 미국과 중국 간의 비슷한 갈등을 묘사한 설명이기도하다.
 
당시의 대결은 전쟁이 아닌 데탕트 (긴장 완화)로 끝나, 두 나라는 긴밀한 경제 관계를 이뤘다.
 
이것은 외교가 겉으로는 다루기 힘든 상황을 잘 처리해나간다는 중요성을 상기시켜주는 본보기이다.
 
1960 년대 초반, 미국은 공산주의 중국이 핵무기를 갖는 것을 두려워했다.
 
1964 년까지, 중국은 첫 핵폭탄 시험을 했다. 2년 후, 문화 혁명이 시작되었고, 중국은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미국은 1970년대 문화 혁명이 10년간 더 지속되더라도, 마오쩌둥이 이 시기에 점점 더 노쇠해도, 베이징 지도부와의 접촉을 추진한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 데탕트는 국가 안보 보좌관 헨리 키신저의 비밀스런 협상 행각으로 시작됐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깊숙이 빠져있었으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공산주의에 약하다는 인상을 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확실히, 닉슨 대통령은 월맹 (越盟, 北베트남)이 핵 공격에 직면할 것을 두려워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것이라는 “미치광이” 이론의 이미지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는 강경파로서의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닉슨은 궁극적으로 의회와 미국 국민으로부터 중국과의 거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오늘날, 미국은 수사적 (修辭的)으로 공격적이고, 국내에서는 끔찍한 인권 학대자인 평양 지도부와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은 1960년대 후반의 중국보다 덜 이념적이어서 거래하기엔 좋은 대상이다.
 
北정권은 꽤 합리적인 이유로 핵무기를 원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공격 가능성을 억제하고, 미국과 한국의 압도적인 재래식 군사력과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실용적이라는 것도 증명했다. 그것이 윈-윈 하는 거래라면 다국적 기업 등 누구와도 통할 것이다.
 
北정권은 핵 문제에 관해 심지어 미국과도 성공적인 협상을 한 사례가 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와 그리고 2005년 부시 행정부와의 협상이 그 예이다.
 
현재의 핵 문제를 협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미국은 평양의 핵 능력 동결과 유도탄 발사의 일시 정지를 향해 여전히 노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1970년대 중국과 마찬가지로, 北정권이 원하는 일부분인 주권의 인정과 세계 경제의 일부 지분 등을 주는 것이 될 수 있다.
 
물론, 北정권은 중국과는 다르다. 작은 나라인 北정권의 소비자 시장은 미국 기업들에겐 별 관심의 대상도 안 된다.
 
한 때 중국은 옛 소련에 반대했지만, 北정권은 중요한 지정학적 대응 세력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트럼프는 아직도, 그의 “불과 격노”의 수사 (修辭)에도 불구하고, 평양과의 접촉을 바라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다.
 
첫째, 트럼프 자신은 이기는 거래의 해결사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오바마를 회피했던 평양과의 관계에서 보다 나은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다.
 
둘째, 트럼프는 부동산 거래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것을 좋아한다.
 
北정권을 미국의 해외 투자에 개방하고, 평양의 트럼프 호텔에 대한 옵션을 포함하는 협상은 지정학적 및 기업 차원의 협상이 될 수 있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베이징과 평양 사이에 쐬기를 박는 것은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물론, 北정권과의 협상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치명적인 전쟁을 피하기 위함이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 휘말려있을 때, 미국은 강제로 중국을 비핵화 하지 않아, 제3차 세계 대전 유발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현명한 결정을 내린바 있다.
 
2010년대, 미국은 아직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휘말려있어 트럼프 행정부는 그 예를 통해 배우는 현명한 처신이 필요할 때이다.
 
MUSIC
Brahms - Hungarian Dance No.1
 
 

 

2017년 11월 20일 월요일

냉전 중독성 (The Cold War Addiction)


The Cold War Addiction
Abstract
 
The theory of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is often used to explain why the Cold War remained cold and did not result in a nuclear holocaust.
 
Despite possessing a nuclear arsenal,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engaged in a costly arms race.
 
This happened not because they wanted to engage in actual nuclear warfare, but because of the threat that the other could escape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fight back, and win.
 
This justified pursuing weaponry that could, in theory, take out the other side before it could retaliate.
 
The Soviet Union was so terrified of this prospect that it spent enormous resources to retain at least the power to deliver a second strike, ultimately at the cost to its own ailing economy.
 
This is precisely what North Korea is doing now, but from a much weaker position, which only increases the risk of war.
 
In a military confrontation with the United States, North Korea faces a terrible choice between using its weapons first or losing them in a conventional war against a far superior power.
 
The Soviet Union is long gone, but increasing conflicts with Russia and China prompted Barack Obama, to renege on his promise and commit a projected $1 trillion over three decades toward revitalizing America's nuclear weapons.
 
The Cold War never ended, nor did it maintain peace. 
 
Peace activists during the Cold War were lumped together with the Soviet peace offensive, replicated today against those who seek engagement and peace with North Korea.
 
The American threat has been used to justify draconian measures since the Korean War in North Korea today.
 
North Korea began developing its own nuclear weapons in earnest only in the 1990s when it could no longer rely on the Soviet nuclear umbrella.
 
Aware of this history, policy analysts have presented possible solutions to the current impasse toward a comprehensive peace settlement that includes a nuclear-free Korea in exchange for security guarantees and normalization of relations.
 
The current conflict is one of the many unintended consequences of the continuing Cold War and the arbitrary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at has lasted to this day.
 
Before the latest clash erupts into a real nuclear war, we must commit to truly ending the Cold War by demanding immediate and unconditional talks.
 
 
냉전 중독성
 
냉전 시기에 핵 대학살이 일어나지 않고, 냉전이 말 그대로 냉전으로 남게 된 까닭을 설명 하려면 이른바 “상호 확증 파괴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이론의 정체를 살피는 것이 요체 (要諦)이다.
 
미국과 소련은 “상호 확증 파괴”로 보장된 핵무기를 보유하였음에도, 값 비싼 군비 경쟁을 하느라 영일이 없었다.
 
그 이유는 서로가 실제 핵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상호 확증 파괴를 모면하여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위협 때문이었다.
 
이것이 이론상으로는 보복하기 전에 상대방을 제거할 수 있어 무기의 추구를 정당화했다.
 
소련은 이 가능성을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에, 적어도 최초의 반격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침내 부진한 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엄청난 자원을 썼다.
 
이 현상이 바로 北정권이 지금 펼치고 있는 짓이다. 그러나 전쟁 위험만 높이지 그 입장은 훨씬 허약하다.
 
미국과의 군사 대치에서, 北정권은 끔찍한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먼저 무기를 쓰거나 초강대국과 맞서는 재래식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세계는 냉전의 종식으로 핵무기 없는 세계의 성취를 기대했으나, 최근의 분쟁은 핵전쟁의 위험을 더 높이기 만한다.
 
오늘날, 그 위험은 또 다른 냉전으로 재연되는 역사라기보다 오히려 냉전에서 이긴 미국의 자기도취 현상이다.
 
소련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미국의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점증하는 갈등으로 핵 군축을 약속한 미국의 첫 번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그의 약속을 어기고 향후 30년에 걸친 1조 달러 예상의 핵무기 재활성화를 공약했다.
 
이것은 단순히 냉전 시기의 군비 경쟁의 회귀가 아니다. 냉전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평화를 유지지하지도 못했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6.25전쟁, 베트남 전쟁, 그리고 세계의 많은 다른 분쟁을 경험한 사람들에겐 냉전은 결코 차가운 것이 아니었다.
 
제3세계에서 냉전은 대다수 민간인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실제 전투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좋은 선택의 부족을 중언부언 (重言復言)한다. 냉전 시대 분열에 걸린 시민들이 평화와 군축을 외치는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석학들은 냉전이 누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냉전 시대를 넘어 평화와 자유를 공동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세계를 우리에게 묻는다.
 
냉전 시기 평화 운동가들은 소비에트 평화 공세와 함께 일했다.
 
그리고 가장 순진한 브랜드이거나 최악의 경우 속임수를 사용하는 브랜드였으며, 北정권과의 관여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오늘날도 이를 되풀이하고 있다.
 
 
히틀러와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유화 (宥和), 그리고 외교의 실패를 비난하는 반면, 군국주의 증대와 외교의 부재에 따른 제1차 세계대전은 잊고, 평화의 목표를 유화와 동일시하였으며, 자유와 “우리의 삶의 방식“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모든 것이 버려졌다.
 
냉전은 각 진영의 매우 강력한 물질적 이해관계에 있는 군산 (軍産)복합체로부터 정보 및 국가 안보 기관과 그들이 봉사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지지를 받은 관습의 중독이었다.
 
이것은 정말로 진실이다. 오늘날 6.25전쟁 이후 미국의 위협을 엄격한 독재 통치의 정당화로 활용하고 있는 北정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수사적 (修辭的)으로 적의 (敵意)를 일으키고 있는 비생산적인 北정권의 위협은 6.25전쟁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6.25전쟁 중, 미국은 문자 그대로 모든 표적을 고갈시키는 소이탄 (燒夷彈)에 의한 지구 초토화 캠페인을 전개했다.
 
1953년 휴전 협정을 위반하면서, 미국이 1958년 한국에 전술 핵무기를 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핵우산을 더 이상 의존할 수 없게 된 北정권은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자체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
 
이 역사를 알고 있는 모든 전문가들은 포괄적인 평화 정착을 위한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안전 보장과 관계 정상화 대가로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지난 해 10월, 세계적으로 123개국이 유엔 군축위원회의 핵무기 금지를 위한 협상 시작을 투표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조치를 취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투표 결과였다.
 
핵무기 보유국 9개국 가운데 北정권만이 금지 협상을 찬성했다.
 
이것은 역사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행 분쟁은 계속되는 냉전의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결과 가운데 하나이다. 한반도의 임의 분단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최근의 충돌이 실제 핵전쟁으로 분출하기 전에, 우리는 긴급히 무조건적인 회담을 요구함으로써 진정으로 냉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헌신적 노력을 해야 한다. 
 
Johann Strauss - Emperor Waltz  OP 437
 
 

 

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北정권 비핵화의 포기인가? (Abandonment of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bandonment of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bstract
 
Strategic milestone don't come along everyday. Today is one of those days.
 

Now, the United States has a massive but surmountable challenge on its hands.
 

Deterring a nuclear-armed North Korea and preserving and strengthening America's alliances with ROK and Japan.
 

In recent years, America's North Korea debate has focused on whether Washington should talk to Pyongyang and seek a freeze on its program.
 

Today, the main challenge is preventing North Korea from hurting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now that the Kim regime has long-range nuclear missiles.
 

This debate is the one that Washington should have been having for years, may as well have it now.
 

The first question for U.S. policymakers. What are America's deterrence objectives for North Korea?
 

Kim Jong-un must be made to understand that, under no uncertain terms, can be ever use his nuclear weapons. Doing so would mean the end of North Korea.
 

Deterrence is by no means a perfect solution.
 
 
But for it to have a chance of success, the Trump administration must communicate directly with its North Korean counterparts to ensure they have a clear understanding of what actions would provoke a direct U.S. response.
 

If America cannot prevent North Korea from possessing nuclear weapons, it has to make clear that any decision to use them would be the last one any North Korean leader would ever make.
 

The United States could eventually start to negotiate an agreement where North Korea caps its nuclear program and stops producing materials that can be used to build nuclear weapons.
 

As important as deterrence is now, reassuring ROK and Japan may be even tougher in the face of a growing North Korean threat.
 

The U.S. worked for decades to convince European states that it would defend them even in the face of global nuclear war with the Soviet Union.
 

The process of making sure extended deterrence is credible continues to this day. It's time to extend the principle to America's friends in Asia.
 

Reassurance is hard-even harder these days because official U.S. statements and policies are difficult to discern and less consistent.
 

But this is one challenge the country must get right, both through political statements and with increased military and security cooperation in the region.
 

These actions must, first and foremost, defend U.S. alliances, but may also make clear to China that it, too, has a price to pay.
 

Having gone soft on North Korea for decades, China has much to answer for in North Korea's new nuclear status.
 

The world is long since past the point of deciding whether or not to not accept a nuclear-armed North Korea.
 

The question is how the United States can convince the world that these new weapons are unusable.
 

America has lost valuable time and now has to play catch up.
 

The Trump administration has its work cut out for it.
 
 
北정권 비핵화의 포기인가?
 

전략적이고 획기적인 사건은 매일 생기지 않는다. 北정권은 유도탄 시험에서 정권 차원의 주요 성과를 올렸다.
 

北정권은 미국의 다섯 역대 대통령들이 그 나름대로 제재 조처를 취했으나 모든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경제적 장애를 그럭저럭 피할 수 있었다.
 

지금, 엄청나게 큰 도전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의 손에 달려있다.
 

핵 무장한 北정권을 저지하고,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한, 일 두 나라는 현재 김 정은의 새로운 능력으로 인해 미국이 한, 일 두 나라의 방어에 나설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의 北정권 문제 논의는 주로 평양과의 대화 추진과 北정권의 핵 프로그램 동결에 집중해왔다.
 

이제 이런 논의는 지쳐버린 것 같다. 오늘날 주요 과제는 김 정은 정권의 장거리 핵 유도탄으로부터 미국과 동맹국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 논의는 미국이 수년간 그래왔어야 했던 것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 대한 첫째 질문은 北정권에 대한 미국의 억제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바꾸어 말하면, 北정권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중간한 조건하에서, 김 정은은 그의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北정권의 종말을 의미하며, 김 정은은 이 사실을 알아야한다.
 

결국, 미국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北정권은 지금 명백한 전략적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北정권을 그런 측면에서 취급해야 한다.
 

억지력은 결코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억지력이 성공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北정권과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조치가 미국의 즉각적인 대응을 유발시킬 것인지 그들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北정권은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미국이 北정권 관리들과 직접 논의하는 만큼 믿을만하고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더는 없다.
 

군사 대 군사 접촉의 형태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은 무엇이든, 미국 외교관들이 뉴욕의 유엔에서 사용하는 전통적인 채널보다 훨씬 좋아야할 것이다.
 

과거 미국이 중국을 통했던 의사소통 방식은 北정권이 이런 메시지의 완전한 영향을 느끼도록 하기엔 충분치 않다.
 

메시지는 핵무기의 사용과 타국에 대한 핵무기와 ICBM 및 생산 능력의 이전 (移轉)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미국이 北정권의 핵무기 보유를 막지 못하면, 北정권 지도부의 핵무기 사용 결정은 그의 “최후의 결정”이 된다는 점도 명백히 밝혀야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관리들은 北정권이 ICBM의 추구를 계속할 것을 예상하고 이런 문제들을 털어놓았다.
 

그것이 지금 트럼프가 맡아 北정권의 장차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할 몫이 되었다.
 

세계는 北정권이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종료하기를 바라지만, 위협과 관여, 협상, 그리고 제재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기껏 해야, 北정권과의 협상은 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조처를 피하는 데 합의하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은 北정권이 핵 프로그램을 끝내고 핵 물질 생산을 중단할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北정권의 이런 모든 생산 현장이 어디에 있는지 미국은 모른다. 北정권 역시 그 소재를 밝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北정권이 그런 제약에 대한 보답으로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알 수 없으며, 미국과 한국은 자진해서 하는 조치의 제안을 고려해야한다.
 

이 모든 것은 전혀 관심이 없는 군사 대치나 단계적 확대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억지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점증하는 北정권의 위협에 직면한 한국과 일본은 보다 강력한 태세를 갖춰야할 것이다.
 

한, 일 두 나라는 서울과 도쿄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뉴욕을 희생할 것인지 의아해 한다.

 
지금 北정권이 미국의 도시를 타격할 수 있게 되어, 그 걱정이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


미국은 소련과의 세계 핵전쟁에 직면해도 유럽 국가들을 지킬 것이라고 수십 년간 확신시켜왔다.
 

확실히 억제할 수 있는 확장 억지력의 억제 과정은 특히 점증하는 러시아의 위협 행위에 비추어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그 원칙을 아시아의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확장할 때이다.
 

확신은 어렵고, 심지어 요즘엔 더욱 힘들다. 이유는 미국의 공식 성명과 정책이 분간 (分揀)하기 어렵고 일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중국은 치러야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다.
 

세계는 지난 수십 년간 北정권을 부드럽게 상대해 왔다. 중국은 北정권의 새로운 핵 보유 상태에 대하여 대답할 것이 많다.
 

지역 내 미군과 동맹국들을 방어할 때는 언제든지 중국의 안보를 해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행동 장애가 되지 않아야한다.
 

중국은 北정권이 그들의 프로그램의 특정 한도를 지킬 것을 영향력을 발휘하여 설득할 수 있다.
 

北정권은 1950년대부터 그들의 핵 추구 노력을 시작해 왔다.
 

그러나 핵무장한 北정권의 수용 여부를 결정할 시점부터 시간은 너무 오래 경과했다.
 

문제는 “새로운 무기”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은 어떻게 전 세계에 알리고 납득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MUSIC
Mozart - Eine Kleine Nachtmusik, Allegro
 https://www.youtube.com/watch?v=Qb_jQBgzU-I
















 


2017년 11월 6일 월요일

북한 지역 내 한류의 의미 (Korean Wave)


Korean Wave
Abstract:
 
The Korean Wave is a neologism referring to the increase in the popularity of Korean culture since the late 1990s.
 
The term was originally coined in mid-1999 by Beijing journalist, who were surprised by China's growing appetite for Korean cultural exports.
 
They subsequently referred to this new phenomenon as "Hanliu,韓流“, which literally means "flow of Korea". The Korean Wave is absolutely one of the greatest things Korea has going.
 
First driven by the spread of K-dramas televised across East and Southeast Asia during its initial stages, the Korean Wave evolved from a regional development into a global phenomenon due to the proliferation of Korean pop (K-pop)music videos on You Tube.
 
Currently, the spread of the Korean Wave to other regions of the world is most visibly seen among teenagers and young adults in Latin America, Northeast India, the Middle East, North Africa, and immigrant enclaves of the Western world.
 
The growing acceptance of Korean pop culture as a valid form of entertainment in many parts of the world has prompted the government of Korea to use the Korean Wave as a tool for soft power.
 
Ultimately, the government hopes that the acceptance of Korean culture in foreign countries would be reciprocated by an embracement of foreign cultures among Koreans, thus realizing the ideas of a bidirectional flow of culture, goods and ideas in order to achieve the following goals: prevention of anti-Korean sentiment, reunification of Korea and advancements in world peace and prosperity.
 
Then President Park Geun-hye states that in the 21st century, culture is power, together with the Korean people we will foster a new cultural renaissance that contributes to the peaceful development of humanity, and is connected by the ability to share happiness.
 
 
북한 지역 내 한류의 의미
 
소련과 동구 공산권에 널리 스며들었던 단파 방송으로 공산권 시민들은 자유를 동경 하게 되고, 서독 TV를 시청하면서 마음을 움직인 동독 시민들의 자유의 항쟁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벽을 무너뜨리는 폭발적 에너지가 되었다.
 
북한 지역 땅에도 엄격한 정보 차단의 통제를 뚫고, 비디오 열풍이 번지면서, 한류의 물결이 동토의 오지에 차츰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다. 평양 정권의 말로가 어떤 궤도를 따를 것인지 주의 깊게 관찰할 만하다.
최근 평양에서 꾀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한 서양인을 만나, 요즘 북한 지역의 변화 이야기를 들었다.
 
한때, 사람들은 해외여행에서 北에 귀국하려면 트럭 1대분 정도의 많은 담배를 갖고 왔어야 했지만, 지금 北의 동료들은 오직 한국의 TV 드라마 테이프만을 갖고 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북한 지역은 그들의 앞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비디오 변혁이 한창이다.
 
무엇이 소비에트 형태의 사회주의를 죽였을까 ? 
 
 
최종적인 분석 결과는 타고난 그들의 경제적 무능이 그 원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는 나쁜 기업가이고, 20세기의 전체 역사는 이것을 증언하고 있다.
 
자본주의 서방 국들은 생활수준을 포함하여 많은 면에서 뒤져있는 동구 공산주의 국가들보다 생산력에서 뛰어났고, 보다 기량이 우수하였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정권들은 해외에서 유입되는 정보를 엄격히 통제했어야했다. 
 
그렇게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크게는 통치자들은 대중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는” 비슷한 사회적 입장의 서방 사람들이 굉장히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이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사회주의 국가의 운명은 끝장났다.
 
소련과 다른 동구 공산권 국가에서는 검문을 받지 않은 정보가 단파 방송으로 광범위하게 제공되었다. BBC와 미국의 소리 (VOA) 그리고 자유의 소리 방송은 특히 인기가 있었다.
 
소련은 北정권보다 더 자유로웠으며, 소련 시민들은 상점에서 쉽게 라디오를 구입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는 평시 단파 방송을 금지하지 않았다. 아마도 소련같이 광대한 국가에서의 이와 같은 조처는 대부분의 인구가 뉴스 청취를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따금 전파 방해를 하였지만, 그것은 주요 도시에서나 효과를 볼 수 있었을 뿐이며, 항상 효과적일 수 없었다.
 
北정권에서는 라디오의 다이얼을 고정시켜놓고 팔고 있기 때문에 외국 방송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北의 주민들은 다른 방법으로 외국 매스컴에 접하는 방법을 찾았다. 소련이 단파 방송으로 무너졌다면 北정권에서는 그와 비슷한 역할을 비디오테이프가 할 것 같다.
 
많은 다른 큰 사회의 변화처럼, 이 한 가지는 사소한 기술적 변혁으로 시작되었다. DVD 플레이어는 꽤 오랫동안 여기저기 있었다.
 
그러나 2001년 쯤 그 가격이 극적으로 크게 떨어졌다. 중국 북동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방의 중국 가정은 DVD 플레이어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의 낡은 VCR는 쓸모없게 되었다.
 
중국 시장에는 10달러~20달러로 구입할 수 있는 아주 값싼 중고 VCR (카세트 녹화기)가 갑자기 넘쳐났다.
 
밀수업자들은 이 많은 기기들을 구입하여 중. 북 국경의 구멍 난 통로로 북한 지역에 반입하였다. 이 기기들은 큰 프리미엄을 붙여 다시 팔렸다. 아직도 30달러~40달러 정도로 매매되고 있다.
 
이리하여 북한 지역의 많은 가정에서는 VCR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에는 VCR 한 대 값이 월 평균 5달러의 월급으로는 엄청나게 비싼 금액인 약 200달러였다.
 
35달러의 VCR는 아마 대부분의 北의 가정이 돈을 모아 장만할 수 있는 가격이다.
 
공식 예술의 따분함에 반해, VCR는 훌륭한 오락에 접할 수 있는 전달 수단이다. 
 
말할 필요 없이, 사람들은 “조선의 별”과 같은 김 정일의 장황한 전기 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비싼 기기를 구입하지 않는다.
 
한국말로 된 볼만한 것은 오직 한국 제작물이기 때문에, 자연히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서울에서 중국을 경유하여 들어온다. 한국의 멜로드라마는 최고 히트 작품이다.
 
어떤 뜻에서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한국의 모든 것에 열광하는 “한류” 또는 “한국의 물결”은 또한 北의 주민들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北의 젊은이들은 한국 영화에서 본 유행을 열광적으로 모방하며, 말투를 앵무새처럼 되 뇌이고 있다. 이것은 평양 정권의 장래에 대한 좋은 징조는 아니다.
 
물론, 영화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고, 줄거리는 통상적인 사랑과 가족 관계 그리고 현실도피주의의 모험의 멜로드라마 식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한국의 생활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모습은 평양 정권의 공식적 매스컴이 말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北의 주민들이 영화에서 본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보지 않는다. 
 
北의주민들도 자신들의 영화가 그들의 생활수준을 기막히게 과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외국의 영화 제작진들도 똑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北의 주민들은 한국에서는 누구나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서울은 집집마다 모두 승용차를 갖고 있다고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참말 같지 않은 풍요는 그들의 터무니없는 꿈을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속일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고층 건물과 감동을 주는 수많은 한강의 다리들로 점재하고 있는 서울의 초고층 건물의 도시 풍경이다.
 
중요한 것은 北의 주민들이 남쪽은 그들의 선전처럼 굶주림과 빈곤의 땅이 아니라는 진실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사람을 근사하게 보게 만들었고,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앞으로 있음직한 변화의 조짐이다.
 
북한 지역에서의 한류는 한국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北의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는 향후 통일 과정에서 남북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으로 마음의 장벽을 허물 수 있다.
 
한국 영상물 시청과 관련된 영상 매체는 北의 장마당의 인기 품목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유, 인권, 복지 등 한국 사회의 가치를 北의 주민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하는 기재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저가 디지털 제품 역시 영상물 시청을 확산하고 있으며, 북한 지역 내륙 지역으로 이어지는 밀수의 연계망은 국경경비대와 당 간부들과 조직적으로 연계돼있다.
 
北정권은 한류를 엄격히 통제하려하지만,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한국 문화로 접근한다.
 
따라서 北의 주민들의 사회적 일탈과 외래문화 수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통일 논의는 통일의 제도와 경제적 편익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엇보다 통일의 당사자인 남북의 사람들의 마음의 통일을 위한 준비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의 확산 노력이 이루어져야한다.
 
독일 통일 25여 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동.서독 출신 주민들의 정서적 통합이 여전히 진행 중이란 점은 통합 과정에서 우리의 통일 논의가 사람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MUSIC
Fritz Kreisler-Liebesleid & Liebesfreud
Ji Won Kim, vio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