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1일 일요일

노 무현의 작전통제권 요구 (Roh's Request for OPCON)


Roh's Request for OPCON
Abstract:
 
Mr. Roh, during the 2002 Korean presidential campaign, capitalized on prevalent anti-American public sentiment due, in part, to the tragic deaths of two schoolgirls by a U. S. military vehicle.
 
As a candidate, Roh declared, "What's wrong with being anti-American?"
 
As president, Roh told Secretary of Defense Donald Rumsfeld that the U. S. and Japan, not North Korea, were the largest security threats to Asia.
 
Roh requested in 2007, that the United States return war time OPCON. The U. S. accepted Roh's appeal, and both nations agreed on a transition plan.
 
The plan would dissolve the CFC and replace it with two separate, parallel commands.
 
Dissolving the Combined Forces Command (CFC)is dangerously ill-advised because it violates the key military precept of unity of command in preparation for and during hostilities.
 
Replacing a single integrated command with two parallel independent commands risks seriously degrading U. S. and Korean deterrent and warfighting capabilities.
 
After transition of wartime OPCON, the Chairman of ROK JCS would command all ROK forces and be responsible for the country's defense during both peace and war.
 
The United States would replace the USFK with the Korea Command (KORCOM), which would become the supporting command to the KORCOM.
 
The UNC's role and responsibilities would not change greatly after the OPCON transition.
 
Following the 1950 invasion by North Korean forces, ROK President Syungman Rhee handed operational control of the ROK military to the United Nations Command.
 
Although the 1953 armistice ended the Korean War, the UNC retained OPCON until 1978, when it was transferred to the newly established Combined Forces Command (CFC).
 
The CFC returned peacetime OPCON of ROK forces to Seoul in 1994.
 
Roh's decision triggered widespread and harsh criticism by all former ministers of national defense and hundreds of retired generals who accused the president of sacrificing the country's security.
 
Korean critics of the original decision assert that it was driven by Roh's ideological agenda to fundamentally alter Korea's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and was not based on security considerations.
 
The Lee Myung-bak government characterized Roh's demand as a naive, ideologically driven political decision that ignored military realities.
 
The transition plan exacerbated Korean fears of abandonment, particularly in light of the increasing North Korean threat and the U. S. policy of strategic flexibility in which USFK units could be redeployed off-peninsula.
 
The transition plan included an integrated assessment and certification process to ensure Korean security was not jeopardized.
 
Washington pledged that its military capabilities, including air combat and strategic intelligence assets, would remain after the OPCON transition.
 

노 무현의 작전통제권 요구
 
2002년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노 무현은 당시 널리 퍼진 반미 감정을 이용했다.
 
이 반미 감정은 당시 얼마간 미군 트럭에 의한 두 여중생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이었다.
 
노 무현은 “반미가 뭐가 어때서?”라고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노 무현은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에게 “北 정권이 아닌, 미국과 일본이 아시아의 가장 큰 안보 위협”이라고 말했다.
 
2007년, 노 무현은 미국에 대한 심리적 의존을 극복함으로써 한국의 국가주권과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노의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한, 미 양국은 한미연합군사령부 (CFC)를 해체 하고 두 별도의 사령부 설치로 이를 대체하는 전환계획에 합의했다.
 
그런데 단일통합사령부를 해체하고 유사한 두 사령부로 이를 대체하게 되면 한, 미 양국의 억지력과 전시 전투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자초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은 한, 미 양국의 군사교리인 군사작전원칙 (Military precept, 종전의 전쟁원칙)의 “지휘통일 (Unity of Command)"을 위배하는 무모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후에는, 한국의 합동참모본부의장이 한국군을 지휘하며, 전시와 평시의 국가방위를 책임진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한국사령부 (KORCOM)로 교체하며, 지원부대가 된다.
 
KORCOM은 한, 미 양국이 합의한 전쟁계획과 작전을 통하여 한국을 지원하는 미군의 작전통제를 행사한다.
 
유엔사령부의 역할은 작전통제권 전환 후에도 큰 변동은 없을 것이다.
 
한국군의 작전통제는 1950년 北 정권의 남침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 군사령부 (UNC)에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이양했다.
 
1953년 휴전 후에도 UNC는 계속 작전통제권을 행사했으며,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CFC)의 창립과 함께 UNC는 이를 CFC에 이양했다.
 
그리고 1994년, CFC는 한국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을 한국에 이양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일은 원래 2012년 4월로 계획 됐다.
 
노 무현의 이 결정은 “국가안보를 희생하는 대통령”이라고 한국의 모든 전직 국방장관들과 군 원로 및 예비역 장성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 내 비난은 노 무현이 근본적으로 한, 미 관계를 바꾸려고 이데올로기로 몰고 간 것이지 안보를 고려한 것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 작전통제권 전환의 연기나 번복은 한국의 보수 국회의원과 전 군 관계인사 뿐만 아니라, 이 명박 정부와 박 근혜 정부 모두의 과제가 되었다.
 
이 명박 정부는 노의 이 요구는 순진하고, 군사적 현실을 무시한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정치적 결정이라고 규정했다.
 
대다수의 한국국민은 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미국의 동맹국 방위 공약의 약화와 궁극적인 동맹의 무력화로 이어져, 北 도발을 더 대담하게 만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환계획은 특히 北의 위협 증가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정책에 따른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재배치 가능성으로 한국국민의 “포기의 두려움”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28,500명의 미군의 존재는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한국에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방위 능력과 결의가 줄어드는 현상에 대한 인식은 이런 우려를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향후 10년에 걸쳐서 오바마 행정부의 군사 예산 4,800억 달러 삭감과 추가적인 5,000억 달러 예산 자동삭감조치의 경고는 미국군대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목격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예산 자동삭감조치를 당해도 미국의 안보 공약은 “또 다른 수용 가능한 위험”이지만 여전히 틀림없이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일본은 시리아의 아사드가 1년 전 민간인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미국이 설정한 레드 라인을 넘었을 때 오바마가 군사대응 공약 이행을 거부한 것에 당황했다.
 
한국과 일본 관리들은 사석 (私席)에서 北 정권이나 중국이 자국을 침공한다면 미국이 마찬가지로 방위공약을 포기하지 않겠는가 말한다.
 
전환계획은 통합 평가와 인증 절차를 갖추고 있어 한국의 안보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공중전과 전략정보자산을 포함한 군사능력을 작전통제권 전환 후에도 계속 유지한다고 다짐했다.
 
MUSIC
Sancta Maria from Cavalleria Rusticana
Soprano Sissel Kyrkjebo
 
 
 

2014년 9월 11일 목요일

자주 국방 (The Self-Reliant National Defense)


The Self-Reliant National Defense
Abstract:
 
It has been more than sixty years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Mutual Defense Treaty, and the U. S.-ROK alliance is at a crucial turning point.
 
The U. S. Forces, Korea(USFK) has been the essential element in the United States' commitment to the security of Korea.
 
Since the 1970s the withdrawals of the USFK has had quite an impact on the perception of security in Korea.
 
The recent plans to redeploy the USFK are based on new U.S. military policy spelled out in the 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It does not represent a basic change in the U. S.-ROK relationship, but instead represent U. S. confidence in the ROK capability to defend itself.
 
At the dawn of the 21st century, the United States seeks to transform the U. S.-ROK alliance into a more flexible regional alliance aimed at the containment of North Korea and China, while Korea desires a more symmetric partnership in the alliance, that is limited to the Korean peninsula.
 
The joint ROK-U. S. statement in January 2006 on the strategic flexibility for the USFK caused many people in Seoul to worry about the possibility that it could drag Korea into an unwanted conflict with its neighbors.
 
Consequently, the ROK government coined the term "cooperative self-reliant national defense," which means cooperation with the United States.
 
It is nothing more than a quest for the normalization of the U. S.-ROK alliance: to transform it into a more symmetric, future-oriented one.
 
The "Self-reliant national defense" has been pursued since the 1970s. It aims at more responsibility, autonomy, and sense of security in the asymmetric alliance with the superpower.
 
Particularly, defense reform is now being seen as a compensatory measure to cope with the redeployments of 12,500 U. S. troops.
 
More importantly, the reform requires indigenous strategic planning and a future defense posture possibly without the USFK.
 
Arms build-ups themselves are not an answer to the call for self-reliance.
 
The foundation of self-reliance is the consciousness of autonomy, responsibility, creativity for a long-term vision, and a wider consensus of and support from the people.
 
The ROK defense reform for self-reliant defense, it is important that self-reliance does not mean disengagement, but rather mutually satisfying and productive roles in light of shifting security scenarios as well as growth and development into roles more suited to their economy and policies on the peninsula and in the region.
 
Create a more equal partnership in the alliance, and recognize each other's key interests and symbolic values. The self-reliant defense is a search for national self-respect as well as autonomy.
 

자주국방
 
2004년 6월 8일 발표된 주한미군 1만 2,500명 감축계획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변화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그 변화 배경은 9,11사태이후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의 군사 전술적 고려에서 시작된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작업과 ”한반도 방위의 한국화“라는 명분 제시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 새로운 안보환경에 맞춰 국방체계를 변경, 재정비할 상황에 처해지면서 다시 주창되고 있는 것이 “자주국방”론이다.
 
원래 자주국방의 개념이 일국의 안보를 자국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할 때,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한국에는 여전히 2만 8천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한, 미동맹 또한 계속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주국방”은 6.25전쟁 이후 계속 주장해 온 명제이다. 이는 독립국가라면 스스로 갖추어야 할 당위적 조건이기도하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스스로 자국의 안보를 위한 노력만을 집중한다면 그 결과는 상호간의 군비경쟁을 초래할 뿐 확증 안보의 틀을 구축하기 어렵다.
 
따라서 동맹이 필요하고 불가침 조약과 같은 외교적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한국의 독자적인 완전 자주국방은 지정학적인 조건 때문에 실현이 어려운 목표다.
 
현재 우리의 국력으로 동남아나 아프리카에 존재한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중국과 일본이라는 세계 최강국들의 틈에 끼어 이들과 대등한 전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며 효율적이지 못한 발상이다.
 
우리는 동맹관계나 지역안보와 같은 다자적 안보의 “틀”을 이용하여 일정 수준의 힘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절대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하기보다 최소 수준의 힘의 확보와 함께 강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동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맹안보가 계속 유지되는 가운데 자주국방의 논의가 제기되곤 하지만, 2003년 5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협력적 자주국방으로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자주국방 지향 계획을 밝혔다.
 
이것은 미국과의 군사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써 일단 정부 차원(당시 참여정부)에서 지향하는 자주국방의 개념은 “협력적”자주국방 (Cooperative self-reliant national defense)임을 뜻한다.
 
당시 감축이 예정된 1만 2천여 명의 미군이 담당하던 역할을 우리 군이 떠안는 역할 확장에 국방부는 ’06~’10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정찰, 정밀타격 능력을 확충해 자주적 전쟁능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주한미군 병력이 감축되고 부대 재배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군의 독자적 한반도 방위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자주적 전쟁억제력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총 54조원의 전력투자비가 투입되며, 20여개 신규 사업에만 8천억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어떤 형식으로 한국군이 미군의 역할을 대체하는가 하는데 있다. 감축되는 미군의 역할을 그대로 맡기 위해서는 그 장비와 인력이 똑같이 필요하다.
 
일부의 주장대로라면 이 경우엔 200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의 인식은 주한미군 모두가 한국을 떠날 경우에는 자주국방을 위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필요로 한다.
 
한반도에서 미군의 전략과 역할의 변동은 예정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군이 그동안 미군이 맡아오던 역할을 그대로 담당하기 위해 전력을 보충한다는 것은 올바른 장기적인 안목일 수 없다.
 
한국군의 전력보강은 주한미군의 변경되는 전략, 전술과 맞물려 이루어져야하며, 미군감축에 따른 전력보강은 다른 관점에서 산정 (算定)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군사력은 남북관계라는 특수조건으로 인해 비효율적으로 이미 확대되어 버렸다.
 
따라서 자주국방의 문제는 우리가 단독으로 北 정권과의 대치상태를 잘 조정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귀결된다.
 
현재 한국군의 전력은 北에 비해 열세에 있지 않다.
 
 
특히 한국군의 전력증강은 한미연합군의 전술, 전략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한미연합 전력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北에 비해 우위에 있다.
 
물론 미군의 역할 축소나 완전 소멸을 대비하는 면에서는 한국군의 전력은 보충되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그동안 대미 의존하던 것들을 우리 스스로 하기 위해서는 장비의 보충도 필요하고 전술, 전략의 조정도 필수적이다.
 
특히 정보력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미군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국가이고 그러한 시스템을 전 지구적으로 설치하기 위해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했다.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방중기계획에는 한반도 전역과 주변지역에 대한 독자적 감시, 정찰능력 확보를 위해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장거리 정보장비, 고, 중고도 무인정찰기(UAV), 전술정찰정보수집체계 사업을 반영하고 있다.
 
이른바 필수적인 C4ISR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s, Computers, Intelligence, Surveillance, & Reconnaissance)를 확충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의 자주국방계획은 한, 미 상호간의 연합전력상의 역할배분에 따라 정해진 임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면 된다.
 
그리고 문제는 한, 미간의 동맹이 우리 입장과 다르게 변동되고, 전면 철수의 경우를 대비한다면, 전적으로 미군에 의존하던 분야의 독자적인 역할을 점진적으로 강화해야 할 것이다.
 
결국 한, 미 동맹관계의 변동에 따라 한국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계획이 필요하다.
 
특히 오늘날 한, 미 양국의 입장은 “공동의 적”의 “적”에 대한 인식의 괴리를 보이는 형국에 처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주한미군에 대해 해마다 많은 비용을 분담하고 있다.
 
 
현금 분담비율과 토지 무상공여 등을 합산하면 현재 절반 이상의 비용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군 주둔에 돈을 들이면서 중복되는 분야에 필요 이상의 독자성을 가지는 것은 비효율적임을 의미한다.
 
예상 가능한 미군이 빠진 공백을 모두 메우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다.
 
197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우리의 자주국방 론은 강대국과의 비대칭동맹으로부터의 책임과 자주성 및 안보의식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은 30년 넘게 자주국방을 추구하고 있지만, 국가안보에 대한 자주적 정신 상태는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자주의 기반은 자주적 의식과 책임감, 장기비전의 창의성, 그리고 국민의 폭 넓은 합의와 지지이다.
 
자주국방의 시작은 한국안보의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는 개념의 정의에서부터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특히 국방개혁 기본계획 2009~2020은 12,500명의 미군 재배치 및 감축에 대처하는 보정 조처로 간주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개혁이 주한미군이 없는 한국군 고유의 전략계획과 미래 방위태세를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국가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라면 미국에 대해 보다 독자적인 위상(位相)을 가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반면, 당면한 北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동맹관계의 변화 추세 속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방안을 찾는 노력이 우선이다.
 
한, 미 양국은 2006년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한, 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60여 년 전과는 많이 변화된 안보환경 속에서 주한미군의 역할변동이 논의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주국방은 이탈이 아니고, 안보환경의 변화에 상응한 한, 미 상호간의건설적인 역할이며,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의 경제와 정책에 적합한 역할에의 발전적 출발이다.
 
MUSIC
Les Feuilles Mortes (Autumn Leaves)
Yves Montand
 

2014년 9월 5일 금요일

우리사회의 인사말 (Greetings in Korea)



Greetings in Korean
Abstract:
 
As in every other language, in Korean, what you say and do to greet people depends on the time of the day, the occasion and the person you're greeting.
 

Just saying "Anyoung (Hi)"is impolite. “Anyoung haseyo” is the most common greeting for someone you meet face to face.
 

Instead of saying "Anyoung haseyo", you would say "Anyoung".
The difference is almost like saying "Hi" instead of "Hello".
 

It can be used at any time of day and to anyone.
 

How many greetings in Korean do you know? "Anyoung haseyo (Hello)" is a good start.
 

It's important to get the basic right, and the Korean people you meet will really appreciate your efforts. You know you're saying it correctly if they keep talking, expecting you to keep up.
 

Koreans, in general, are friendly and may expect the same approach from you. So be prepared to be greeted and greet them in return.
 

However, in general, because of the Korean honorifics, the composition of a typical greetings, unlike the technical term or noun has difficulty.
 

Now some Koreans from time to time might use the phrase "Jo-un a-chim," that means good morning.
 

However, the predominant method for saying good morning is still "Anyoung haseyo."
 

Bows are generally reserved as greetings of respect to one's seniors or when in the company of one's peers, for formal occasions.
 

You will rarely see close friends bowing to one another, for example, unless they are of a certain age or in a public arena.
 

The bow is he traditional Korean greetings, although it is often accompanied by a handshake among men.
 

Waving hello to friends and colleagues with whom you have a familiar rapport is absolutely fine.
 

Korea is one of the most homogeneous countries in the world, racially and linguistically.
 
 
우리사회의 인사말
 

아파트의 좁은 승강기 안에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서 있는 어색함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골목길 이웃집에서 나오는 사람과도 그렇고, 심지어 같은 직장의 사람들과도 아침 인사로써 말없이 눈인사를 하는 것 밖에 간단히 교환될 인사말이 없다.
 

원래 예절 바르고 인사 차리는 데 있어서는 “동방예의지국”이니 해서 자타가 자랑으로 여겨 왔던 우리 민족이다.
 

그런데 적당한 인사말의 부재로 모르는 사람끼리는 말문을 꽉 닫고 서로를 노려보든지 눈길을 돌려야 하게 된 것은 적당한 인사말이 없기 때문이다.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 “진지 잡수셨습니까” 등 한 동네에 사는 존장 (尊長)에 대한 인사말은 현대사회에서 통용되기에는 부적당하다.
 

오늘날 서로가 알거나 모르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누구도 서로 간단히 교환할 수 있는 인사말의 필요가 현대 개방사회에서는 절실하다.
 

근년에 와서 일부 계층에서는 “안녕”이나 “좋은 아침” 등 간단한 인사말이 보편화된 것 같은데 이것은 누가 제정한 것은 아닐 터이고 저절로 생겨났다고 보여 진다.
 

말은 원래 인위적으로 만들기보다 저절로 형성되어야 할 것이지만 제시될 말의 필요도와 적절성 여하에 따라서는 받아들여져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말의 경어법 (敬語法) 때문에 일반적인 인사말의 조성은 술어 (術語)나 명사 (名詞)와는 달리 어려움이 있다.
 

어떤 유력한 지식층 인사들의 모임에서 연단에 올라선 사람이 “저 아무개 올시다”라고 자기 소개한 “올시다”라는 말투가 거만하다, 아니다로 뒷 말썽이 있었다고도 한다.
 

너무 복잡한 경어법 때문에 서로가 필요 없는 신경을 쓰고 오해를 일으키는 예는 아마도 일본어와 우리말에서 뿐인 것 같다.
 

그래서 이 땅에서 오래 사는 중국인조차도 한국말 할 적에는 서슴지 않고 아무데서나 반말을 마구 쓰기가 일쑤다.
 

중국어에는 경어법이 우리에 비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우리와 중국이 수천 년 동안 긴밀한 민족적 문화적 접촉을 가지면서도 전혀 상이한 언어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은 문화적 독자성을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교적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서로의 호칭도 신분과 연령에 따라 갖가지가 생겨나고 또 서로의 대화에서 존대 (尊待)와 하대 (下待)의 표현 방식이 세밀하고 엄격하게 구분되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의 언어의 세분화된 발달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의 산업 및 민주사회에서는 이전의 경어법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어 사회의 전진을 저해하는 면도 없지 않다.
 

가령 어떤 물음에 대한 이쪽의 대답이 부정 (否定)으로 나와야 할 경우, “아니다”, “아닐세”, “아닙니다”, “아닌데요” 등등 거의 무수한 표현 방식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때 마다 상대편의 나이, 사회적 지위, 친밀도 등을 순간적으로 판단하여 적절한 말을 골라 써야한다.
 

그런데 선택된 그 표현이 쌍방 사이에서 꼭 흡족하게 받아들여지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사실 우리들의 일상 대화에서도 일어나는 시비도 비일비재하거니와, 조직체나 직장의 업무내용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대화상의 존대, 하대의 용어시비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갈등과 충돌 현상도 많다.
 

우리의 경어법이 오히려 우리 전통의 장점이며, 지금도 큰 마찰 없이 사회가 잘 돌아 간다고는 하지만, 우리 모두의 의식상, 무의식상의 갈등으로 인한 신경의 소모는 상상 이상일 것으로 여겨진다.
 

말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형성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고치고, 버리고, 조성 (組成)하고, 조성 (造成)하는 경우도 또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예가 보여 주고 있다.
 

민족문화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우리의 언어 연구는 과거에도 민족정신과 직결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국가 사회의 발전과도 직결되는 것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제대로 갖지 못한 아침저녁 인사말도 그렇고, 너무 복잡한 서로의 호칭도 그렇고, 또 복잡하기만 한 경어법도 그렇다.
 

이런 문제뿐만 아니라, 그 외 많은 국어의 문제와 더불어 외래문화 유입에 따른 무분별한 외래어를 순화 (醇化)하고 정리하여 우리의 생활과 정신에 직결되는 과감하고 꾸준한 어문정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MUSIC
La Paloma
Andre Rieu in Mexico













 






2014년 9월 1일 월요일

동맹 이론 (Alliance Theory)



Alliance Theory
Abstract:
 
An alliance is a pact, coalition or friendship between two or more parties, made in order to advance common goals and to secure common interest.
 
It is a political agreement between countries to support each other in disputes with other countries.
 
Alliance, in international relations, a union for joint action of various powers or states, such as the alliance of the European powers and the United States against Germany and its allies during World War II, or of the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states against the Soviet Union and its allies.
 
Alliance in modern times require a joint effort far more integrated than was called for by alliance in earlier times.
 
Thus, for example, in the coalitions of World War II, combined agencies for military and economic planning were a common and conspicuous feature.
 
Even in less tightly knit alliance, such as NATO, great importance is attached to close and cooperative action, both military and political,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the 20th century strategy of nuclear deterrence.
 
Allies are people, groups, or states that have joined in an association for mutual benefit or to achieve some common purpose, whether or not explicit agreement has been worked out between them.
 
When the term is used in the context of war or armed struggle, such associations may also be called allied powers, especially when discussing World War I or World War II.
 
A formal military alliance is not required for being perceived as an ally-co-belligerence, fighting alongside someone, is enough.
 
According to this usage, allies become so not when concluding an alliance treaty but when struck by war.
 
In the context of alliance theory, then statesman, premier 3rd Viscount Palmerston Henry John Temple's remark was famous: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agreed to a military alliance in 1953.
 
The Alliance is adapting to changes in the 21st Century security environment.
 
This maintains a robust defense posture, backed by allied capabilities which support both nations' security interests, and will work to achieve Alliance goals through strategic cooperation at every level.
 

동맹 이론
 
사람들이 서로 편을 짜서 자신을 보호하거나 또는 역할을 강화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관계는 국가 간에도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우리는 동맹 (Alliance)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北 정권으로부터의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과 60여년에 걸쳐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 의해 안보를 보장받는 한편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한국에 억지력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단지 이익이 있을 뿐이다”라는 이 말은 매우 유명하다.
 
Quotation: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By Henry John Temple 3rd Viscount Palmerston, Then Premier, Remarks in the House of Commons, March 1,1848.
 
이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관계가 계속적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논리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주장이 존재한다.
 
동맹은 “상황에 따라 쉽게 변동하는 관계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이다.
 
전자의 경우는 세력균형론자들의 주장이고 후자는 세력우위론자들의 논리이다.
 
또한 다른 의미에서는 동맹은 조약을 맺고 있는 국가 간에 안보적으로 상호이해 (Mutual interest)관계를 공유함을 의미한다.
 
이해관계의 공유라는 말은 서로에게 이익이 있어야만 동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맹관계가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라면 그 동맹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더 많은 이익을 쫓아 쉽게 동맹을 바꾸지는 않지만, 해 (害)가 되는 동맹을 유지할 나라는 없다.
 
동맹과 관련된 여러 이론의 중요 논리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 국가가 전쟁에 돌입하려는 두 국가 가운데 한쪽 편을 드는 기준은 전적으로 자신의 이익이다.
 
국가는 자신이 승리하기를 원하는 국가와 동맹을 맺는다. 다시 말하면 동맹은 단지 힘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한 국가의 주관적인 선호와 이익을 고려한 선택의 결과이다.
 
둘째, 동맹은 힘이 대등한 국가 간의 동맹과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동맹으로 나뉜다.
 
전자를 대칭적 (Symmetric)동맹, 후자를 비대칭적 (Asymmetric)동맹이라 한다.
 
대칭적 동맹이 안보적인 역할의 강화를 도모하는 것이라면, 비대칭적 동맹은 안보를 매개로 강대국과 약소국이 일종의 종속적인 관계가 되는 것을 일컫는다.
 
셋째, 동맹은 일반적으로 “최소승자 연합 (Minimum winning coalition)"의 원칙에 따른다.
 
최소승자 연합은 한쪽 동맹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보다는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우위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예를 들어, 힘이 각각 10, 8, 5인 A, B, C의 국가의 경우,  A+B(18)의 동맹이 아니라 B+C (13)의 동맹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즉 18:5의 현저한 차이보다 13:10의 근소한 차이가 나는 동맹이 맺어진다는 것이다.
 
넷째, 강대국이 약소국에 비해 동맹을 더 많이 맺고 따라서 더 많은 전쟁에 참여한다.
 
이것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크기보다 이길 수 있는 확률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작더라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확률이 현저하게 올라감으로써 기대효용 (Expected utility)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여러 학자들의 경험적 분석에 따라 기대효용 이론이 세력균형 (Balance of power)이론이나 세력우위 (Power preponderance)이론보다 전쟁 원인을 설명하는 데 적합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두 이론의 모순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기대효용이론은 전쟁의 원인을 단순히 상대적인 힘의 차이와 개별적인 이해 (Interest)관계의 충돌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지 않고, 힘의 차이에 따른 승리의 가능성과 승패에 따른 득실의 효용까지 함께 고려한 보다 세련된 논리가 강점이다.
 
이상의 논리를 기준으로 한반도에서의 동맹관계와 남북 관계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냉전시기에 경험한 남북 간의 대규모의 전쟁으로 안보동맹의 역할은 양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져왔다.
 
한, 미 동맹관계는 비대칭적이다. 한, 미 동맹은 北 정권에 대해 “최소승자 연합”이 아니라 오히려 압도적으로 우월한 “최대승자 동맹”이라고 부를만하다.
 
현재 남북 간의 국력을 비교해 볼 때 한, 미 동맹은 승패의 차원을 벗어나 억지 (Deterrence)를 위한 의미가 더 크다.
 
따라서 한, 미간의 대북 시각차가 생길 경우 한국의 대북 자율성은 미국에 의해 구속될 경우가 많아진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한, 미관계, 이른바 한, 미 공조와 미, 北 관계의 진로는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약소국과 강대국 간의 동맹은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안보의 보상에 상응한 자치권의 일부의 양보가 이루어진다.
 
한국 내 주한미군에게 땅을 공여하고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 사례는 자치권 침해라는 측면에서 국내 반미감정이 정당성을 갖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억지력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한, 미동맹이 강조된다.
 
이런 상반된 이해관계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에게조차도 한, 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 미동맹은 국내 국가자치의 확대와 안보 확실성의 담보라는 모순된 이해관계의 접점에 존재하며, 본질적으로 갈등 요인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 미동맹의 안보위협의 대상인 주적 (主敵) 北 정권은 현실적인 적이자 또한 화해와 통일의 대상이므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는 이스라엘-아랍의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예가 된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적 아랍국들과는 화해보다는 군사적 우위를 통한 현상유지에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北 정권과의 화해를 도모하고 언젠가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결국 남북 간의 이런 “특수 관계”는 탈냉전과 함께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 미동맹의 구조변화를 요구하는 수준에까지 왔다.
 
이제 한국의 급속한 국력성장과 北의 경제의 쇠락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승패의 개념으로만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전쟁의 승리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인명의 손실과 경제의 파탄일 뿐이다.
 
우리에게 전쟁은 이겨도 손해, 져도 손해이다. 따라서 전쟁은 피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분담금을 절반이나 지출하는 상황에서도, 동맹의 방식이 비대칭적인 것에서 대칭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치권의 훼손은 과거와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얻는 동맹의 크기가 너무 컸고 앞으로도 그 핵심적 역할은 크게 줄어들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 미동맹의 미래상을 심도 있게 재고할 시점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변화를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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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per Fidel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