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1일 목요일

텔레비전 방송 (Television Broadcasting)

Television Broadcasting (Telecast)
Abstract:
We Celebrate Park Geun-hye, The 18th Presidential Inauguration of Republic of Korea."
 
The challenges to be controlled properly for the physical, and moral survival of the mankind of today's global village are nuclear energy and the mass media.
 
This is why, if the mass media is used as a tool of dehumanization rather than in the correct using for the development, its role would be becoming collapsing of the personality of the public.
 
 
Television broadcasting, commercial television from the 1930s; this television programming medium was long-awaited by the general public and rapidly rose to compete with its older radio-broadcasting sibling.
 
Television (TV)is a telecommunication medium for transmitting and receiving moving images that can be monochrome (black-and-white) or colored, with or without accompanying sound.
 
Commercially available since the late 1920s, the television set has become commonplace in homes, business and institutions, particularly as a vehicle for advertising, a source of entertainment, and news.
 
Since the 1950s, television has been the main medium for molding public opinion.
 
Other forms such as closed-circuit television (CCTV)are also in use.
 
A television system may use different technical standards such as digital television (DTV) and high-definition television (HDTV).
 
Television's broad reach makes it a powerful and attractive medium for advertisers.
 
Television has played a pivotal role in the socialization of the 20th and 21st centuries.
 
Media psychology seeks an understanding of how people perceive, interpret, use, and respond to a media-rich world.
 
Psychology is fundamental to understanding the impact on individuals and groups of the integration of media technology in our society.
 
The field encompasses the full range of human experience of media-including affect, cognition, and behavior-in activities, events, theories, and practices.
 
It recognizes the that people are not just passive consumers of media, but active producers an distributors as well.
 
 
오늘날 지구촌에서 사는 인류는 육체적 인격적 생존을 위해 바르게 조종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핵에너지와 매스 미디어일 것이다.
 
핵에너지는 평화적인 사용이 실패하고 전쟁용 무기로 전용되면 인류를 사멸시킬 잠재능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매스 미디어가 올바른 발전에 이용되지 못하고 비인간화의 도구로 쓰이게 되면 대중의 인격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 (Mass media, 대중매체)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등 인간의 의식 내용이 대중에게 소통되도록 사용되는 기계적 보조수단을 말하며, 이 과정을 지칭하는 개념이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스컴, Mass communication)이다.
 
역사적으로 발생했던 혁명들은 인간이 주체세력이었으나. 20세기 후반부터 일어난 혁명은 과학기술에 의해 일어나면서 지구촌 전체에 파급되는 혁명이 되었다.
 
이 혁명의 주체는 특정한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그 어 어떤 제왕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텔레비전을 꼽을 수 있다.
 
텔레비전 (Television)은 동영상을 전송하는 원거리 통신 대중매체이다. 1920년대 후반 (1929년 영국, 1931년 미국 등)에 처음 등장하여 시험방송을 거쳐 1930년대 상업방송으로 뉴스, 광고, 엔터테인먼트 등 정보를 본격적으로 전달하면서 가장 현대적인 미디어로 발전하고 있다.
 
폐쇄회로 텔레비전 (CCTV)과 같은 여러 형태도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것은 텔레비전 방송이다.
 
방송에 사용되는 고출력 방송주파수는 54~890 MHz이다. 신호는 생성방식에 따라 아날로그 (Analog)와 디지털 (Digital)로 구분된다.
 
아직 많은 나라는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을 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에, 우리는 2013년 1월부터 디지털 방송만을 송출하고 있다.
 
텔레비전 수상기의 화상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장치 (Display device)의 종류에는 브라운관 텔레비전, LCD 텔레비전, LED 텔레비전 등으로 나뉜다 (LCD Liquid crystal display, 액정표시장치. LED Light emitting diode, 발광다이오드). 
 
디지털 신호를 처리할 수 있는 텔레비전은 디지털 텔레비전 (Digital Television, DTV), 화면의 해상도를 높인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것은 고선명 텔레비전 (High-Definition Television, HDTV)이라고 한다.
 
텔레비전의 영향 가운데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철저한 일방 통행성 문제라 할 수 있다.
 
시청자와의 직접적 대화는커녕 극장의 영화처럼 시청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제작된 것을 모든 시청자가 그대로 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모든 시청자를 획일화해 버려서 인간의 사고와 비판 기능을 감퇴시켜 지적, 감성적, 그리고 심미적 (審美的)능력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 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파고들어 의지력과 행동양식에까지 변화를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을 오직 디스플레이를 통해 바라보는 입장에서, 왜곡되고 과장된 현실에 접하게 만든다.
 
정치적으로는 과거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의를 조작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대통령을 만들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레이건 당선도 카터와의 텔레비전 대결이 당락을 거의 결정하였고, 그 전의 카터와 포드 때에도 근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여성유권자연맹 (The League of Women Voters)이 주선한 두 후보의 텔레비전 논쟁이 거의 판가름했다.
 
결국 오늘의 정치는 텔레비전에서 누가 이미지 조작 (Image making)을 더 잘 하느냐가 중요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텔레비전 광고로 정보를 제공하여 생산된 물건을 살 수 있게 함으로써 경제발전의 역할을 한다.
 
반면에 소비자의 심리에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가 소비자를 창조적인 영역에서 소비 영역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광고는 소비 욕구를 상승시켜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사들이게 하고, 이런 상승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때, 변칙적이고 범죄적인 방법까지 쓰게 만든다.
 
또한 과장된 광고와 선전은 말의 인플레이션을 만들어서 불신풍조를 조장하기도 한다.
 
텔레비전 방송의 드라마, 쇼, 기타 프로그램은 대중의 기호 (嗜好, Mass taste)를 찾아 거기에 관심을 맞춰 제작된다.
 
그러나 읽는 것보다 듣는 것, 듣는 거보다 보는 것이 더 직접적인 호소력을 갖게 되므로, 프로그램 제작자는 그런 속성에 따라 선정주의 (Sensationalism)에 호소하게 된다.
 
그 결과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공감보다 흥분을 자극하는 원시적인 감정에 쉽게 영합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유적인 것보다 비사유적인 것, 윤리적인 것보다는 퇴폐적인 것, 평화적인 것보다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을 보여 주게 된다.
 
이렇듯 현대판 통치자는 사람들의 육체에 고통을 줄뿐 아니라, 정신마저 병들게 작용한다.
 
그러나 이 책임을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 자체에 돌릴 수는 없다. 이것은 인간을 위한 기술적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누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조종하느냐에 따라 기능적인 역할도 할 수 있고, 역기능적인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 국민의 의식구조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 국민의 생활양식마저 좌우할 한국 텔레비전 문화의 가치규범을 생각하게 된다. 
 
드라마, 쇼, 시사뉴스 등 얼마든지 다양하고 재미있게 보면서도 다 보고 나면 마음 가운데 자리 잡을 수 있는 가치규범이 있으면 좋겠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생명의 경시, 불신사조, 냉소주의, 계층 간 양극화 등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텔레비전 매체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현상을 씻어 내리고 미래 비전을 갖고 함께 사는 사회를 향한 기능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우리를 비인간화에서 인간화로, 그리고 인간 주체성과 연대성을 튼튼하게 하고,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추구해야 할 것이다.
 
MUSIC
Schindler's List Violin Theme
By Ann Fontanella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北핵 대응 통일전략 (Unification Strategy against the North's Nuke)




Unification Strategy against the North's Nuke
Abstract:

North Korea's third nuclear test, after firing of a missile into orbit, brings the regime perilously close to becoming a nuclear-weapons state in fact.
 

UN Security Council has unanimously adopted its resolution 2094, expanding financial sanctions, mandated close checks of cargo entering and exiting North Korea, and warned of future measure if Pyongyang persists in its provocative behavior.
 

Predictably, those who urged for years that Pyongyang could be negotiated out of its nuclear objective now argue that the world must accept reality and rely on deterrence and containment.
 

These remain counsels of defeat, resulting ineluctably in the North's continued progress. A new Northeast Asian nuclear reality is emerging.
 

Military forces isn't an option as long as Seoul remains resolutely opposed.
 

But for now Korean politicians are again demanding that Korea develop nuclear weapons. Similar arguments are being made in Japan.
 

Since Pyongyang verges on possessing deliverable nuclear arms that we cannot safely pry from its grasp, the obvious alternative is to replace the North Korean regime with one that will renounce nuclear weapons, as did post-apartheid South Africa and post-Soviet Ukraine and Belarus.
 

"The best way to achieve that aim is through peacefully reunifying the Korean peninsula." (John R. Bolton's article on the Wall Street Journal, February20,2013).
 

Opponents of such a move will cry that China would never agree. Beijing may be immovable, but the U.S. has barely tried persuasion.
 

Beijing publicly says it opposes a nuclear-armed North Korea because the resultant instability in Asia will impede China's economic development.
 

China's real fear is that pressing the North could cause the regime to collapse, creating two threats; a flood of impovershed Korean refugees into northeastern China and American troops on its Yalu River border.
 

But both fears are exaggerated. Persuading China to support reunification is the best answer. If China disagree, nuclear-capable Korea and Japan, ranking among China's worst fears, could become reality.
 

A reunification strategy should have been pressed decades ago, but better late than never.
 


北정권은 이제 그들의 화려한 수사가 빈 말이 아닌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논의 와중에서도 北의 유엔대표는 한국에 대해 “최후파괴”라는 위협으로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3월 8일 대북제재결의 2094호가 채택된 후에는 한반도 군사긴장 조성을 위한 온갖 도발적 위협성명 발표를 일삼고 있다.
 

北의 이런 발광에 가까운 병적인 언행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의 한반도 핵 상황은 엄중하다.
 

예상된 일이지만, 北핵에 대하여 지난 10년간 외교적인 협상으로 北핵을 제거할 수 있다던 주장이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억지력으로 봉쇄할 수 있다는 궁색한 논리로 타락했다.
 

마찬가지로, 대북제재로 北의 핵무기 사용단계를 막을 수 있다던 주장 또한 지금은 전 세계의 핵무기와 핵 기술 판매를 막을 수 있다고 말장난 같은 말만 무성하다.
 

참으로 한심한 이런 패배주의적인 논리와 조언이 결과적으로 北핵의 진전을 도와준 꼴이 되었다.
 

미국의 군사적 대응 또한 北의 비대칭보복 타격을 불러올 수 있는 한국의 취약성 때문에 실현성이 희박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정치계에서는 핵무장 논리가 강력하게 표출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핵무기 없는 세상 (Nuclear Free World)을 표방해 왔다.
 

오바마의 이 핵-제로 (Nuclear zero)세계의 꿈의 추구는 오랫동안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아 왔던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다른 생각을 하기엔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일방적인 전략핵무기 감축이 감축하는 만큼 핵 확산을 조장하게 된다는 것을 오바마는 간과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한다.
 

北이 투발 가능한 핵무기를 갖게 됨에 따라, 北핵 제거를 위한 대안에는 인종차별정책 (Apartheid policy)이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소련 붕괴 후의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가 예로 거론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대안은 부시 1기 행정부 국무부 부장관 및 유엔대사를 지낸 John R. Bolton의 The Wall Street Journal (2013.2.20) 기고문의 제언이 주목을 끈다.
 

그것은 “현행 北 핵무기 제거 목적 달성의 최선책은 평화적 한반도통일이 그 해답”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역발상적 비전이 제시되자마자 사계의 반대론자들은 중국이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이 여태껏 이 조치 (전략으로서의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관해 중국을 설득한 일은 별로 없다.
 

중국이 北정권을 완충국으로 계속 유지하는 한, 北정권의 독재와 무고한 북한지역 주민들의 굶주림과 고통은 계속된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젊은 지도부는 北정권이 점점 골칫거리라는 진실을 알게 되며, 또한 태도 변화의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중국은 공개적으로 北의 핵무장을 반대하고 있다. 아시아의 불안정이 중국의 경제개발을 방해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히 옳은 분석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중국은 자신들의 이 논리를 따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대북정책은 오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중국은 평양의 핵 프로그램을 비난하면서도 억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北의 90% 이상의 에너지 공급과 상당한 량의 식량 및 인도주의 원조를 계속하고 있다.
 

중국의 실제공포는 대북 압박으로 北정권이 붕괴하는 것이다. 
 

정권이 붕괴되면 탈북난민들이 동북중국지역에 밀려들어 오고, 미군이 압록강 국경까지 진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포는 과장되었다. 첫째, 한, 미, 일 3국은 北정권 붕괴에 따른 난민위기 완화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도 바람직하며, 또한 남북통합을 더 유익하게 진전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군사력의 압록강 국경 진출을 우려한다는 이유는 중국이 내세우는 구실로는 너무 수준 미달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미군전략을 연구하고 있을 중국이 현행 미군사력 동향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3년부터 “럼스펠드 독트린 (Rumsfeld doctrine)”이라고 불리는 육군변혁의 일환으로 중무장 보병사단을 경무장 신속기동여단 (Stryker Brigade Combat Team, SBCT)으로 개편 운용하고 있다 (Stryker는 명예훈장을 받은 병사의 이름).
 

이 신속기동여단은 공군 수송기로 96시간 내에 기동하여,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쟁임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투단위이다.
 

주한 미 2보병사단도 2개 여단으로 개편, 보병 3개 대대, 기갑 1개 대대, 포병 1개 대대, 지원대 1개 대대로 각각 편성되었다.
 

이렇듯, 미군의 전쟁전략이 기동 개념으로 바뀜에 따라 군사전개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게 됨으로써, 중국이 우려하는 압록강 미군 운운은 기우일 뿐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은 한반도 끝자락에서 아시아와 태평양 어떤 지역에도 투입가능하게 기동성을 갖추게 되었다.
 

중국 지도부는 이런 부대전개를 환영하지 않겠지만, 압록강변의 미군을 직접 맞닿는 것 보다 마음에 들 것이다.
 

따라서 평화적인 한반도통일로 北핵을 제거하는 이 통일전략 해법에 중국이 동참하도록 집중해야 한다.
 

北정권은 역사적으로 일본의 항복에 따른 미. 소 양국합의의 산물인 비정상적인 유물일 뿐이다.
 

北정권은 독립국가로서의 합법성을 주장할 역사적 근거가 없는 정권이다.
 

이 이슈 해결에 중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 우선순위인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이 현실화될 수 있다.
 

한반도 北핵 대응 통일전략은 수 십 년 전에 대두됐어야 했다. 그러나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 北핵 대응 통일전략은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동서고금의 최고 고차원의 철학서 동양의 손자병법의 근본개념과도 상통한다.

MUSIC
J.S.Bach  Air on the G String, Aria
Cello, Misha Quint

2013년 3월 1일 금요일

금강산관광 (The Geumgangsan Tour Program)




The Geumgangsan Tour Program
Abstract:
 
“We Celebrate Park Geun-hye, The 18th Presidential Inauguration of Republic of Korea.”

Since 1998, South Korean tourists have been allowed to visit Geumgangsan, initially travelling by cruise ship, but later more commonly by coach.
 

In 2002, the area around the mountain was separated from Kangwon Province and organized as a separately-administered Tourist Region.
 

The land route was opened in 2003. A rail exists on the North Korean side up to the border, but no tracks are laid between Gangneung and the border in South Korea.
 

In June 2005, Hyundai Asan announced the one million South Korean visit to the area.
 

One of the finest tourist attractions in North Korea will be available by bus from February 21, 2003.
 

The Geumgangsan tour has been using ships for transporting from South to North Korea, which is costly and time consuming.
 

It is anticipated that the Geumgangsan land route will attract many more tourists with the advantage of much-shortened hour's travel time and lower cost.
 

On the morning of July 11, 2008, a 53-year-old Korean tourist was shot and killed while qalking on the resort's beach.

 
She entered a military area by crossing over a sand dune and was shot twice by North Korean soldier.
 

North Korea claimed that sentries had no choice but to shoot her because, despite their order to stop, she fled.
 

ROK demanded an on-the-spot survey, but North Korea declined it, claiming all the facts were clear and all responsibilities were the victim's and South Korea.
 

Due to the shooting, South Korea temporarily suspended all trips to Geumgangsan.
 

On Aril 23, 2010, the North Korean regime seized 5 properties owned by South Korea at the resort, saying that damage the North Korean side, making it appear increasingly unlikely that tours will be resumed from the South.

The Geumgangsan Tourist Region is thought to be one way for the North Korean regime to receive hard currency from abroad.
 

The area is develpoed by Hyundai Asan, which plans to expand the site with a proper ski resort to complement the current sleigh course, and complete golg courses.
 

Many plans for expansion, however, are in their earliest stages.
 

 

< 개관 >

금강산관광사업은 1989년 1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최초로 방북하여, 조선아시아무역촉진회 고문 최수길 (조선대성은행 이사장)과 “금강산 관광개발 및 시베리아 공동 진출에 관한 의정서”를 체결함으로써 비롯되었다.
 

1998년 4월30일 정부의 “남북경협 활성화조치” 발표 후, 현대그룹과 北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아태)와의 금강산관광 및 개발사업의 합의로 금강산광광사업이 실현되었다.
 

금강산관광사업은 사업자의 자금난과 해로관광 (海路觀光)으로 인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때문에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 한때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사업 활성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서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었다.
 

또한 남북철도, 도로 연결공사의 진전으로 2003년 2월부터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다.
 

이와 함께 관광 상품 확충으로 관광 시작 6년 만인 2005년 6월 누적 관광객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섰으나 2008년 7월 11일 北의 초병의 우리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으로 현재까지 관광이 중단된 상태이다.

 
< 추진 경과 >
 

금강산관광은 1998년 10월 현대와 아태의“금강산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의 체결로 11월 18일 관광선 금강호가 관광객 826명을 태우고 동해항에서 첫 출발하여 北의 장전항에 입항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사업은 시작 2년여 후 사업자 현대그룹의 자금난과 北의 육로관광, 특구지정 등 관광활성화 조치 이행 지연으로 2002년 초에는 중단위기에 직면하였다.
 

정부는 2002년 3월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경비지원 지침을 제정하여 4월부터 초, 중, 고등학생 등에게 관광경비 일부를 지급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나 국회의 부정적 의견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던 금강산관광은 2002년 9월 당국 간 회담에서 2002년 12월 초 육로관광 시작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2003년 1월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임시도로 통행에 대한 군사보장합의서”를 타결함으로써 육로관광은 2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北의 도로공사 사정으로 일시 중단되었으나, 2003년 9월 재개되어 2008년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매일 실시되었다.
2000년 10월에는 일본 관광객과 해외 교포에게도 금강산관광을 허용했으며, 금강산지역 내 숙박시설을 갖춘 해상의 “호텔 해금강”을 개장했다.
 

2001년 6월, 현대와 北은 사업 활성화를 위한 육로관광, 특구 지정, 관광대가 조정 등을 합의하는 한편, 2002년 11월 北은 금강산 관광지구법을 제정, 금강산을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당초 현대는 독점사업권을 대가로 6년 3개월간 9억 4천 2백만 달러를 北에 지불하기로 했으나 이는 관광이 활성화될 때까지 관광객 수에 따른 대가 지불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때 국민의정부는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영기업인 한국관광공사를 현대와 컨소시엄을 구성케 하여 지원하는 조처를 취했다.
 

한국관광공사 (KTO)는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남북 연계상품 개발 및 홍보 등에 관한 업무협정을 맺고 온천장, 문화회관, 온정각에 투자했으며, 2007년 내금강 관광을 계기로 면세점 사업에도 진출했다.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외금강 지역에서만 이루어지던 금강산관광이 2007년부터 내금강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北의 유도탄 발사와 핵 시험 등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사업 시작 시기가 늦어졌으나 육로관광을 계기로 꾸준히 확대되어왔다.
 

2008년 3월부터 승용차 관광이 시작되었고, 7월 중순에는 비로봉 (毘盧峰)관광이, 7월 말에는 골프장 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또한 금강산 관광 지구에는 약 40여 우리 기업과 현대아산 협력업체들이 특구 개발 사업에서부터 골프장, 면세점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어오던 금강산 관광 사업은 2008년 7월 11일 北 초병에 의한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기간 내 관광객 총인원 1,934,662명 (외국인 관광객 7,500명 포함)으로 중단되는 사태를 맞게 되었다.
 

정부는 北에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및 확고한 신변안전보장조치 등을 요구했으나 北의 태도는 현재까지 소극적이다.
 

< 문제점 >

 
금강산 관광사업의 주체는 北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현대그룹에서 한국관광공사와 현대아산 간의 컨소시엄 형태로 전환되었다.


이렇게 민간인 적자사업에 국영기업을 투입한 것은 당시 강조해 오던 김 대중의 대북정책의 정경분리원칙에 배치된다.
 

또한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이른 부실 민간기업과의 합작은 공기업의 기본경영원칙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정부가 육로관광사업 추진용으로 한국관광공사에 대출 승인한 900억 원은 남북협력기금의 변칙 대출 지원이다.
 

남북협력기금법 (법률 제4240호, 1990.8.1)은 우선 지원 대상으로 중소기업을 지정하고 있으며, 30대 대기업과 자기자본 완전 잠식 기업은 제외하고 있다.
 

남북협력기금은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총 10조5,942억 원을 조성하였으며, 그 사용실적은 9조8,238억 원이다 (2012 통일백서).
 

남북협력기금을 관리하는 한국수출입은행 (Korea Eximbank)은 남북협력기금 대출 심사보고서에서 이 사업에 투입된 900억 원의 상환에 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北은 그 동안 금강산의 제한적 개방으로 외부의 달러를 긁어모으면서 자본주의는 차단한다는 소위 “모기장 이론”을 적용해 왔다.
 

국민의정부 (김 대중의)는 퍼주기 식 대북정책에 따른 김 정일 서울 답방 실현이라는 정치논리의 집념에서 이런 무리와 변칙을 동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금강산관광사업은 남북의 정치적 소통을 이루고 한국의 풍요와 자유를 북한지역에 침투시킨다는 암묵적 구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北은 이 금강산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철수시키고, 대신 군이 지역을 통제하면서 당에서 교육받은 요원들로 안내인 행세를 하게 했다.
 

또 이상한 것은 북한지역 명승지 관광과는 다르게 위험적성지역에 막대한 투자와 비싼 관광 입장료를 내면서, 오직 내국인의 주머니를 털게 할 뿐 엄청난 경화를 일방적으로 北에 송금하는 상거래라는 점이다.
 

현대아산이 1998년11월부터 2006년 8월까지 北에 준 입장료는 4억 5,120만 달러이다 (1인당 평균 입장료 59.5달러). 이 금액은 타 7대 사업 독점권 대가 5억 달러와는 별도이다.
 

여기서 미국의 시각을 상기해 본다.
 

2003년 5월 20일 미국의회 상원의 재무관리, 예산 및 국제안보에 관한 정부업무분과위원회에서 증언한 헤리티지재단 Larry M. Wortzel박사의 금강산 논평이다.
 

北 문제 전문가인 그는 北정권의 마약거래, 미국 화폐위조 그리고 무기밀매를 논하면서, 김 대중이 추진하는 금강산 관광 사업은 “바람직하지 못한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겉치레”를 의미하는 “ Potemkin Village"이라고 폄했다.
 

또한 한국의 중, 소기업들은 김 대중의 이 “Potemkin Village"와 같은 금강산관광사업에 관여하지 않아도 북한지역 근로자들에게 자본주의 시장원리인 생산성과 손익을 잘 가르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Potemkin Village 용어는 현재 정치와 경제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10대 전략가로 일컫는 러시아 Catherine II 여왕의 총신인 군인이며 정치가인 Potemkin G.A (1739~91)가 잘 보이기 위해 가짜 마을을 만들었다는 러시아의 한 고사 (故事)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이제 사업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통한 존폐 결단만을 기다리는 정치현안이다. 박 근혜 정부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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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t. Geumgang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