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1일 금요일

아시아의 와일드 카드 (Asia's Wild Card)


Asia's Wild Card
Abstract:
The Korean Peninsula was home to one of the Cold War's hottest conflict. Combat raged for three years, and the Korean people have lived under a cold peace ever since.
 
Today, the situation in Northeast Asia is as dicey as any time since the 1953 armistice. The United States and Korea are facing new and increasingly dangerous dynamics on the Korean Peninsula.
 
The situation in North Korea underwent an enormous qualitative change over the past three months that heightens the urgency of a potential crisis for the North and even could signal the regime's eventual undoing.
 
Kim Jong-un remains a top concern. Kim recently had his own uncle executed. Rumors that it was a death-by-dog affair attracted all kinds of attention, until that story was traced.
 
The North Korean regime remains as an Asia's wild card. Kim's decision to purge, more significantly, the manner in which he chose to do so have driven dangerous cracks throughout the edifice of North Korean power.
 
This is because Kim has chosen to demonstrate to his own people the shortcomings of his rule and its system, diminishing his and his regime's prestige and authority in the vain pursuit of consolidated power.
 
Though now debunked the story remains troubling for two reasons. 
 
First, a lot of people found it quite plausible-showing how accustomed we are to expecting the worst from North Korea.
 
Second, even Korea experts can't agree over what the killing means. Some think it shows Kim is effectively strengthening his control over the government and the military; others interpret it as an act of desperation, indicating Kim's effort to consolidate power is flailing.
 
Either way, the experts expect more bad news from the world's worst regime. Their predictions range from another nuclear test, to another attack on Seoul, to the regime imploding-dumping the country into civil war and throwing control of its nukes up for grabs.
 
Last year, Korea reacted strongly to remarks and acts by Abe, who backtracked from Japan's previous apology for invading Korea during World War II. Korea apprehension rose again when Tokyo recently announced plans to upgrade its self-defense forces.
 
Many Koreans now rate Japan as a security threat on par with , or exceeding, North Korea or China.
 
For its part, Washington needs to step up its efforts to show it will remain a strong regional and strategic presence, reassuring its regional allies.

아시아의 와일드 카드
 
한반도는 냉전의 가장 격렬한 충돌의 현장이었다. 6‧25전쟁은 3년이나 맹위를 떨쳤고 한국인들은 그 후 오늘날까지 차가운 평화 속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동북아의 상황은 1953년 6‧25전쟁 휴전 이후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더욱 더 위험한 역동성을 맞고 있다.
 
지난 석 달 동안 北 정권 상황은 엄청난 질적 변화로 北의 잠재적인 위기의 절박성을 높였으며, 다가올 수 있는 정권의 궁극적인 종말을 신호하는 양상이다.
 
중요한 것은 김 정은이 위험한 방법으로 北의 권력 조직에 금 가게 한 것이며, 체제의 위험한 상태를 나타냄으로써 김의 통치와 체제의 결함을 주민들에게 노출시킨 것이다.
 
지난 해 김이 그의 고모부 장 성택을 처형함으로써 北 정권은 이제 최고의 세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으며, 北 정권은 아시아의 와일드 카드 (Wild card)가 되었다.
 
우선 北의 내부 위험을 보는데 있어서 장에 관한 의혹과 뜻밖의 사실의 충격적 값어치는 과대평가하기 어렵다.
 
장의 죄목에는 파벌주의와 군사 쿠데타 음모, 치정행각, 그리고 사욕을 위해 국가자산을 중국에 팔아먹는 이른바 “비난과 수치심”과 같은 범죄들이 나열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신뢰받는 최고의 가문으로서의 장과 그의 무리들의 범죄가 어떻게 그 많은 시간 동안 알려지지 않았을까?
 
백두혈통의 덕목을 자랑하는 김 씨 가문의 탁월함과 영명 (英名), 그리고 무류성 (無謬性)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아니면 속았거나 지나치게 관대한 결과인가?
 
이것은 최고통치자가 2012년 인민군 전 총장모장 리 영호를 숙청한 것처럼, 장을 소리 없이 제거함으로써 그의 명령과 욕망을 그의 측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리 영호는 어쩌면 몰래 처형되었을 것이다.
 
김 씨 가문의 법정에서 배신과 비행의 책임을 물어 극적으로 처형하고 매스 미디어에 공개하는 것은 아주 특이한 일이다.
 
김 씨 가문이 주장하는 정통 (正統)과 식견, 그리고 인종 (人種)순수성이라는 에피소드의 약화는 北 정권 내 불만이나 인기에 당장 나타나지 않겠지만, 김의 품격을 확실히 떨어뜨렸다.
 
최소한, 이것은 김의 분명한 충동적인 행동과 불안정의 가능성을 강조했으며, 김의 통치로 인해 北 주민들이 겪어야 할 고통의 값어치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의 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은 여태껏 北의 붕괴를 낙관적으로 점쳐 왔다. 1989년 동구 공산권의 붕괴 도미노 현상이 곧 北 정권에도 닥쳐 온다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20년 넘게 지나면서 오늘날엔 北은 이전 공산권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논리로 北을 재평가하기에 이르렀다. 北 정권이 아시아의 와일드 카드로 부상한 까닭이다.
 
이것은 외부세계가 北의 정보와 철권통치의 기본적 구조 및 정권 내부의 비밀에는 어두웠다는 반증이기도하다.
 
여태껏 온갖 추측을 불러왔던 장의 사건은 그 내막이 추적될 때 까지는 개죽음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정체가 폭로되면서 이 사건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평양의 최악에 익숙해져 있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 사건이 그럴듯하다고 본다.
 
둘째, 한반도 전문가들조차 그 살해의 의미를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김이 정부와 군을 확실하게 장악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한편에서는 권력 강화를 위한 절망적인 행위로도 해석한다.
 
뭐라고 하여도, 이 최악의 정권으로부터 더 나쁜 소식이 예상 된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예상이란 또 다른 핵 시험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새로운 공격과 정권 내부 파열에 따른 북한 지역에서 터질 내란을 포함하여 핵 통제력 상실 등 다양하다.
 
최근 한국은 중국의 계속되는 국제규범의 변경에 휘말리고 있다.
지난 해 말, 중국이 동중국해의 자국 항공식별구역 (ADIZ)을 확대할 때, 여기에는 한국의 영역도 일부 포함되어있어서 우리 정부의 강경대응을 유발했다.
 
더욱 불안한 것은, 일본 아베 (安倍)정권이 출범한 이후 아베의 좌충우돌하는 언행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는 상황이다.
 
한국 내 여론은 일본을 北 정권이나 중국과 동등시하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안보위협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을 규탄하는 한국과 北의 목소리가 한데 어울리면서, 北의 노동신문은 아베를 “군국주의 미치광이”로 매도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일본에 압력을 행사해야 된다는 일부 주장도 나왔다. 미국에게 이런 움직임은 미국 외교정책의 위험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정책과 힘의 지주이며, 나아가서 한‧미‧일 3국의 견고한 관계는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의 버팀목이다.
 
일본으로서는 한‧일 간의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솔직한 자세가 필요하며, 이로 인하여 北 정권이나 중국에게 한‧미‧일 간에 틈이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전략적 큰 실책을 범해서는 안 되다.
 
미국의 재 균형전략 (Rebalancing strategy)은 일본의 공세적 안보전략 수립을 초래했으며,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동아시아 지역 안보 불안정 및 긴장고조의 불씨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내 다자간 대화와 소통은 지역 긴장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숙고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특히, 4월 초 오바마 대통령의 한‧일 양국 방문은 시기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간, 주로 국내문제에 몰입하고 말로만 아시아 정책을 강조해 온 미국으로서는 민감한 입장의 동북아 지역의 두 핵심 동맹들과의 건전한 전략적 입지를 다질 기회가 된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연초 연두교서에서 밝힌 “행동의 해 (A Year of Action)" 선언이 공허한 소리가 아닌 실천궁행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MUSIC
Beethoven's Symphony No.5
 

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좌절된 중-北관계 (Sino-North's Frustrated Relationship)




Sino-North's Frustrated Relationship
Abstract:
 

Though this is not a new story, China remains stymied in relations with its reclusive, defiant North regime.
 
 
China's official reactions to the North's internal power struggle have, thus far, been limited largely to formulaic calls for internal stability.
 

Jang's ouster must be deeply disquieting to senior Chinese policy makers, who yet again find themselves on the outside looking in.
 

Leaders in Beijing, by nearly all indications, were blindsided by the latest events. By contrast, Korean intelligence disclosed Jang's fall from power a full five days before its stunning climax on December 8.
 

The Kim family intends to keep China in the dark as fully as it can.
 
 
Chinese leaders, including President Xi Jinping, voice periodic frustration with North Korea, but none seems able or willing to translate Pyongyang's ever increasing economic dependence on China into meaningful influence.
 

China's policy record on Pyongyang over three decades remains unblemished by success. Jang was China's primary channel into the North. Beijing probably calculated that Jang was prepared to open a limited window into the North.
 

Jang's accumulation of wealth and his economic links with China proved his undoing once Kim Jong-un demanded a redistribution of the spoils.
 

Jang's fall from power is the latest in a long succession of Chinese policy failures in North Korea.
 

Chinese foreign policy currently appears bold and assertive, but on the peninsula China's stance remains exceedingly risk-averse.
 

Some argue that the legacy of the Korean War weighs heavily on the minds of more traditional constituencies within the Chinese Communist Party and army.
 

But deeper, current anxieties also inhibit Beijing. Lacking realistic options to control North Korean behavior, China prefers instead to avoid doing anything that might alienate Pyongyang.
 
Kim Jong-un sees little reason to follow China's advice, and he will continue to zealously guard against Chinese influence on the Nor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should be fully prepared for serious dialogue with China.



좌절된 중‧北관계


北 정권의 2인자격인 장 성택의 처형 이후, 중국은 北의 시비조의 은둔 정권과의 관계가 난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중국 지도부 내에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중국의 대북정책의 실패는 오랫동안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北의 내부권력 다툼에 대해 중국은 이제껏 틀에 박힌 내부의 안정만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장의 제거는 또 다시 외관상으로만 사물을 본다는 중국의 정책 결정자들을 깊은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거의 모든 징후로 보아, 이번 사건에 중국의 지도부는 무방비 상태였다. 반면에, 한국의 정보기관은 12월 8일 정치국 회의장에서의 놀라운 순간 직전까지의 전체 5일간의 北의 사태를 완전히 밝혀냈다.
 

北의 김 씨 왕조는 가능한 한 중국이 모르도록 일을 하려한다.
 

시 진핑을 포함한 중국의 지도부는 가끔 北 정권에 대한 실망을 내 뱉고 있지만, 점점 커가는 평양의 대중 경제의존을 의미 있는 영향력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입장이다.
 

덩 샤오핑 중국의 개혁 초기부터 중국은 北 정권의 점진적인 경제적 변화와 외부세계와의 관계의 정상화 및 중국의 이익 증가의 배려를 설득해 왔다.
 

그런데도 北 정권은 한국에 대한 되풀이되는 위협과 외부세계와 중국이 반대하는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탄의 속도가 붙은 개발을 포함한 “요구와 도전”이라는 그들의 독특한 태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北의 비공식 시장화를 위한 일부 조처 외 지난 30년 간 중국의 대북정책은 흠집 없는 성공을 기록하고 있다.
 

장 성택은 중국에게는 대북 기본 채널이었지만, 중국은 그를 베이징의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다. 장 성택은 평양의 어떤 지도자보다도 더 광범한 국제 경험의 소유자였다.
 

北의 여러 가지 사업이익의 통제와 중국 국경지대의 경제특구 책임자로서 그는 실질적인 경제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중국은 장이 제한적이나마 北의 개방의 문을 열 것으로 계산했으며, 중국이 여태껏 찾아내지 못한 잠재적 안정 옹호자로 인식했을 것이다.
 

장은 틀림없이 지난 수 십 년 동안의 용서 없는 정치전쟁에서 다수의 적을 만들었다.
 

北의 지배층에서는 장이 중국의 혜택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의혹이 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장의 부 (富)의 축적과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에 대한 김 정은의 노다지판의 나눠먹기 요구로 마침내 장이 파멸을 자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장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숙청되거나 처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김 정은의 무조건적인 복종의 강요와 권력의 강화로 친 중국 인사들은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앞으로 北 정권 내에 믿을 만한 동지가 없는 중국은 성급하고 거드름피우며 중국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김 정은을 상대해야 한다.
 

장의 실각은 중국의 대북정책의 긴 연속적 실패의 최신판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北정권이 미국의 압력을 막아주는 중국의 완충국이라고 말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로 중국이 계속 北 정권의 기본 원동력 역할을 하기에 중국이 北의 완충국인 셈이다.
 

현행 중국의 외교정책은 대담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나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지나치게 위험회피로 일관한다.
 

문제는 왜 중국이 北 정권에 대하여 겁이 많은 이와 같은 태도를 이어가는가 하는 점이다.
 

6‧25전쟁의 유산이 중국공산당과 군대에 강력한 전통적인 지지의 정신으로 짓누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재의 깊은 고민이 또한 베이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예측할 수 없고, 외국인 혐오증의 김의 중무장 정권의 극단적인 행동이 한반도에 큰 위기를 촉발하여 중국이 급격히 휘말리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北의 행위를 통제할 현실적인 옵션이 없는 중국으로서는, 대신에 평양을 경원 (敬遠)하는 어떤 일도 회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고 있다.
 

중국은 北 정권과의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주장하고 있지만, 조건의 부과와 대대적인 정책 검토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그 결과, 김 정은은 중국의 충고를 따르려하지 않으며, 중국의 영향력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北에 대한 중국의 소극성의 하나의 예외는 한국과의 긴밀한 유대의 증진이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은 한국이 일본과 미국을 합친 것보다 많은 2,500억 달러를 넘어선다. 중국의 北과의 양국 무역은 약 60억 달러 규모다.
 

박 근혜 대통령은 이미 중국 국빈방문을 마쳤지만, 北의 김 정은에 관해서는 아직 어떤 동등한 행사 소식도 없다.
 

중국은 北의 행동과 목표로 인해 제기되는 큰 위험에 관한 많은 불안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언급한 장 성택의 숙청은 평양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의 부족을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공히 중국에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은 정책의 우유부단으로 마비된 것처럼 보인다.
 

한반도 정책의 실패는 중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위험 회피는 중국 자체의 의지와 창의성의 큰 부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미국 간의 솔직한 대화 없이는 한반도의 심각한 위협의 잠재적 위험성은 유감스럽게도 높아만 갈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중국과의 진지한 대화의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다.
 

중국만이 자국의 이익과 상반되는 심각한 위기 전망을 해결하지 않고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반도 상황이다.
 
MUSIC
Eine kleine Nachtmusik, Allegro
Mozart
 










































2014년 2월 1일 토요일

한국현대사의 왜곡 논쟁 (Debate in Distortion of Korean Modern History)


Debate in Distortion of Korean Modern History
Abstract:
 
Today, the climate of the historical awareness in our society that resulted as a heritage with some people look at the modern history of distorted view has arisen during the period, so-called "the military dictatorship era", around the mid and late 20th century, let's say exactly 1961~1987.
 
 
It was an unprecedented golden time for the internal hostile forces against the Republic of Korea to penetrate deeply into the areas of education and culture through an underground activist organization.
 
In this situation, that education, media and publishing business are dominated by the progressives, it is necessary for the description of the history with trying not to evaluate or make any value of past historical events, but to write factual things.
 
The fact that the attempts to turn the debate on a history textbook into a war of ideology is becoming a reality. Anyone can see that ideology is not at the heart of the history book debate.
 
It was the community's overall development that the left have already secured the absolute majority in ideology-related fields, such as academia, education, media and culture.
 
Unlike our original intention of wanting to provide balanced history lessons, there is now the risk of students suffering from severe division and distrust among students, teachers and parents.
 
The current impasse is just another case of the ideological divide that runs throughout Korean society.
 
Conservatives have raised issues with the current left-leaning textbooks that were introduced under leftist regimes.
 
In particular, it sees a sound history education to be carried out strongly would be an urgent task, in the context of our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world history that to know how to distinguish between nation and state, and the reality of division against an unification desire.
 

한국현대사의 왜곡 논쟁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우리 현대사를 왜곡된 시각으로 보는 역사인식의 풍조는 20세기 중‧후반, 정확히 말 해 1961년부터 1987년까지 흔히 내뱉듯 부르는 “군사독재시대”가 빚어낸 문화유산이다.
 
이 기간 동안 강력한 국가통제에 의한 경제는 안정적, 발전 추세를 이어갔으나 정치는 반체제 세력에 의한 끊임없는 대치 상황 속에서 사회통합은 멀리가고, 대신 사회적 갈등이 내면화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시기는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적대세력이 지하 운동권 조직을 통해 우리의 교육과 문화 영역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가는 황금 같은 시기였다.
 
지하운동이라는 공감대 정서 속에서 4‧19 의거세력에 뿌리를 둔 민주화 후속 세대들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일부 애국세력과 친북, 종북 (從北)세력이 혼재하게 된 것이다.
 
이 기간은 또한 대학가의 일상화된 데모로 대학은 학문을 닦는 전당의 기능을 상실한 학문부재의 사회가 되었으며,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가 심각한 지적 (知的)손실을 감수해야 될 불행한 형국이기도 했다.
 
그 결과 거짓이 진실로 둔갑할 수 있는 위험한 지적‧도덕적 불감증시대가 조성된 것이다.
 
정부의 획일적 반공교육 정책의 역효과는 비판세력들이 일제 (日帝) 때부터 전수해 온 낡은 마르크스 ‧ 레닌주의의 사상적 틀을 운동권 교재를 통해 흡입하는 반사적 작용을 불러왔다.
 
또 반일 (反日)은 반미 (反美)로 연결되었으며, 소련이나 중공이 우리역사에 미친 부정적 역사적 행각에는 침묵하는 습성이 학계나 사회 전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지식인들 사이에 벌어진 틈을 타서 침투된 공산주의 선전물과 1980년 광주 유혈사태의 후유증인 격앙된 분위기를 타고 지식인 사회에 파고 든 것이 공산주의와 北정권의 역사해석의 틀이었다.
 
1956년 스탈린 비판운동 후 소련에서 조차 폐기된 스탈린 시대 간행물이 한국에서는 운동권 교재로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소련 체제가 흔들리면서 고르바초프의 신 사고 (노보에 미셀리니, Ноьое Мышление)도입으로 “페레스트로이카” (Перестро󰑀ка, 재건)”와 “글라스노스트” (Гласность, 개방)”라는 혁명적 체제 개혁이 단행될 때 한국에서는 김일성을 신봉하는 주사파 (主思派)가 운동권의 주류가 되기도 했다.
 
역사를 정치도구로 이용하는 관행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사회를 내부로부터 해체시키는 술책은 공산권에서는 오랜 전통이며 그 기술도 고도로 발달하였다.
 
이런 공작은 1970년대부터는 운동권 교육을 통해 가속화되어 1987년 이후부터는 역사를 대한민국의 입장이 아닌 北정권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 전문가 세대가 교과서 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통일에 대한 건전한 통일관 형성에 이바지 할 학교의 “통일교육”과 “계기교육(수업)”을 빌미로 편향된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본격적으로 주입시키는 일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졌다.
 
계기교육(수업) (契機敎育)은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사회현안에 대해 학생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실시되는 교육을 말 한다.
 
급기야 반공정책 추진 자체가 잘못이며, 김일성의 계산된 남침 6‧25전쟁을 한반도 6‧25 통일전쟁으로 미화 왜곡하고 맥아더가 개입 안 했더라면 한 달 만에 통일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공공연히 펴고도 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까지 조성되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오랜 전부터 진행되어 온 문화전쟁의 한 단면일 뿐이다. 
 
4ㆍ19 통일평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반체제그룹이 만든 불순 선전물인 유튜브 동영상물 “백년전쟁”이라는 역사 다큐가 그 단적인 예가 되겠다.
 
2012년 대선 전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전파를 타고 있는 이 동영상 “백년”은 일제 강제병합의 1910년부터 지금까지를 가리키며 오늘 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 반민족주의 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 내용은 학문적 검증과 가치가 전혀 없는 조악한 제작물이지만, 왜곡된 역사의 정치적 도구화의 함의 (含意)는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국사학계의 상당한 분야는 우리 역사를 대한민국 중심으로 보지 않고 北정권 중심 시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체제 반대세력들은 대한민국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우파 분열주의 세력이 만든 부도덕하고 반민족적 집단이며 친일 세력 척결에 미흡했기 때문에 도덕적 정당성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미군철수는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의 일관된 그들만의 역사관이다.
 
그뿐만 아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우리 역사의 정통성이란 3‧1 운동에서 임시정부→무장 독립투쟁→北공산정권→4‧19 혁명→광주 민주화항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며, 역사 교과서에까지 침투하려는 역사인식이다.
 
이런 상황은 하루 바삐 시정되어야 한다. 이른바 문화권력으로 불리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론 분야는 현재 대부분이 반체제그룹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화 시대의 역사는 각 국가와 민족 사회의 공통분모로 글로벌리즘 (Globalism)의 필수조건이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역사교육의중요성도 더 커진다. 역사에서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역사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이해하며 민족과 국가를 구분할 줄 알고 남북 분단의 현실과 통일 염원을 가릴 줄 아는 건전한 역사교육의 강화는 시급한 과제다.
 
MUSIC
Zigeunerweisen
Itzhak Periman Saras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