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1일 화요일

한반도 문제와 국제기구의 효용성 (Effectiveness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nd the Korean Peninsula Issues)



Effectiveness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nd the Korean Peninsula Issues
 
Abstract
 
An international organization is an organization with an international membership, scope, or presence.
 

There are two main types: International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INGOs), and 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s.
 

Notable organizations include the United Nations (UN), OECD....
 

The relationship between North Korea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 is circumscribed, several UN agencies including UNDP, FAO and WFP have conducted joint projects with the North Korean regime.
 

In 1990s, the Tumen River Area Development Programme (TRADP)initiated by the UNDP drew interest from surrounding countries including two Koreas, China, Russia, and Mongolia, and therefore many expected it could lead politico-economic changes in this region.
 

After the UNDP transferred its initiative to individual countries, however, the program lost its initial impetus due to the conflict of interest among members, and even North Korea drop out of it.
 

The FAO and the WFP have provided food-aid to North Korea, and their programs have continued without break even when the North Korea-US relations worsened.
 

Those programs, however, fall short of producing any changes of North Korea's attitude, because the project was bound by humanitarian assistance and too much relied on America's aid.
 

These cases imply that IOs should hold the initiative throughout the program with North Korea.
 

Also it is required well-prepared long-term plans that forge active participation of individual countries, and upgrade the program level from mere humanitarian support into politico-economic projects influencing North Korea's behavior and attitude.



한반도 문제와 국제기구의 효용성
 

한반도 통일은 남북 간의 당위적인 문제인 동시에 여러 국제 행위자가 함께 나서야할 문제이다.
 

따라서 어렵고 복잡한 통일문제의 해결엔 국제기구를 최대한 활용하며, 유엔기구가 가지는 고유의 긍정적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첫째, 다자외교의 장이기 때문에 개별국가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쉽다.
 

둘째, 유엔기구의 결정은 국제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
 

셋째, 유엔기구는 정치적 편향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넷째, 유엔의 여러 비군사적 전문기구들은 이미 北 정권과의 상당한 정도의 교류사업의 경험이 있으며, 중요한 대북 연결고리 역할도 하고 있다.
 

1948년 제3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받음으로써 北 정권은 유엔을 미국과 동일시하였다.
 

따라서 北 정권은 유엔 중심의 국제기구 활동 자체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北이 1970년대 초부터 국제기구 가입을 본격화한 것은 이 시기 국제정세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제3세계 국가들의 수적 우위가 강대국 중심의 국제기구의 판도를 흔들었고, 1974년 유엔에서 미국 등 선진국을 비판하고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신국제경제질서 (NIEO,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가 채택되었다.
 

이런 국제정세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쳐 남북의 국제기구정책에 일대 변화가 이루어졌다.
 

1973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北은 유엔에 적극적으로 접근해 주로 비동맹 국가들을 상대로 미군 철수와 한반도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주장하는 외교를 펼쳤다.
 

1980년대 말부터의 동서화해의 분위기 고조와 한국의 경제성장으로 국제기구에서의 北의 입지는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北은 유엔가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1991년 제46차 총회에서 남북이 함께 유엔에 가입했다.
 

유엔 회원국이 됨으로써 北은 유엔이 주관하는 각종 기금 (Funds)과 계획 (Programs) 및 비유엔 기구, 협약에 가입하여 전 방위 국제기구 외교를 다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北의 핵개발은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반발을 초래함으로써 유엔과 국제기구의 대북지원은 크게 감소되었다.
 

北의 국제기구 정책 변화를 보면, 유엔 가입 이전에는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가입 후에는 정당성 경쟁보다는 실질적 이익 추구에 집중했다.
 

이런 모습은 北이 여러 국제기구 가운데 UNDP, WFP, UNICEF 등과 같이 원조와 인도적 지원을 담당하는 국제기구들과 비교적 활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서 잘 나타난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선별적으로 일부 국제기구들에 대해서는 평양에 사무소를 개소하도록 하여 대북 원조와 지원 활동을 벌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北의 국제기구와의 관계의 또 다른 특징은 세계은행, IMF 등 국제금융기구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저개발 국가들은 개발원조 획득을 위해 다자적인 금융기구들, 특히 국제부흥개발은행 (IBRD)을 포함한 세계은행그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더 많은 정부 및 민간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며, 저개발 국가들에겐 세계은행 가입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세계은행과 IMF는 다른 기구들보다 더 강하게 수원국의 경제구조 조정과 투명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北은 이것이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특히 北의 핵과 장거리유도탄 개발 등으로 미・北관계에 안보문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北의 이들 국제금융기구 가입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얻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와 같이 北의 국제기구 활동은 아직까지 제한적이고 편향적이다.
 

이것은 北체제의 폐쇄성과 이념적인 정치체제에 따른 현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개발과 사회발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는 통일 여건의 준비를 위한 국제기구의 활용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비정부기구와는 달리 정부간기구의 활동은 일반적으로 회원으로 가입한 국가에 국한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단순히 남북 간 의 문제만이 아닌 국제적 문제라는 점에서 통일과정에서 강대국들의 참여와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분단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자칫 강대국의 잣대로 우리의 역사가 결정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적 규범과 정당성이 강조되는 국제기구를 활용함으로써 우리에게 보다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 예는 北 정권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UNDP와 FAO/WFP의 대북사업 사례에서 알 수 있다.
 

UNDP (유엔개발계획, United Nations Developments Program)는 개발도상국가에서 빈곤완화, 새천년개발계획 (MDGs), 민주적 거버넌스, 위기 예방 및 복구,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환경과 에너지 등을 달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기구와 北 정권 사이에서 北과 바깥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실질적으로 이루었던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대 초에 진행되었던 두만강유역개발사업 (TRADP)이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한국, 北 정권, 중국, 몽골,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업 초기의 기대와 달리 TRADP는 성과가 부진했다. 사업의 지속과 성공을 위해 필요한 재원 확보에 실패한 것이 큰 이유였다.
 

중국과 러시아 지방정부의 한계는 안정적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1990년대 말 아시아 경제위기 상황으로 이 사업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빠르게 식어갔다.
 

TRADP는 UNDP라는 국제기구가 중심이 되어 남북을 포함하여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협력을 모색했던 좋은 사례의 하나이다.
 

한편 저개발 국가에서의 식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잉여 농산물을 지원하는 전문기구인 WFP는 FAO 및 국제농업개발기금 (IFAD)과 연계하여 사업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지역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유엔기구 가운데 FAO/WFP는 가장 활발하게 사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FAO는 北의 식량 및 작물조사를 정기적으로 수행하고, 이모작 사업, 조림사업, 온실사업 등에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FAO/WFP의 대북 식량지원 사례는 인도적 국제기구가 가지는 장단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WFP가 대북식량지원이라는 인도적 사업을 기본 목표로 설정하고 행위 주체를 철저히 국제기구로 제한함으로써 정치적 환경의 악화에도 사업의 완전 중단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인도주의 민간단체들도 사업에 참여시킴으로써 北 정권과 비정부적 차원에서의 접촉 및 상호관계를 발전시킬 수도 있었다.
 

한반도 문제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통일 달성을 위해서는 우리의 의지와 능력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협조 및 인정도 갖춰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제적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국제기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적, 단계별, 포괄적 접근이어야 하며 강대국 중심의 외교와도 병행 및 보완되어야 한다.
 

향후 국제기구를 활용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두만강유역개발사업과 FAO/WFP의 대북식량지원 사례는 유엔기구의 비군사적 다자주의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北 정권을 국제사회에 끌어들이는 효험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을 통해 국제기구와 北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면 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국제기구가 더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특정 강대국의 일방적 개입 가능성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MUSIC
Beethoven, Piano Concerto No.5-1 Allegro
Piano: Zimerman
http://www.youtube.com/watch?v=dXyzpvxagwA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남북문제의 이론과 현실 (Theory and Reality of Inter-Korean Issues)


Theory and Reality of Inter-Korean Issues
Abstract:
 
Theory is a contemplative and rational type of abstract or generalizing thinking, or the results of such thinking.
 
Depending on the context, the results might for example include generalized explanation of how nature works.
 
In modern use it has taken on several different related meanings. A theory is not the same as a hypothesis.
 
A theory provides an explanatory framework for some observation, and from the assumptions of the explanation follows a number of possible hypotheses that can be tested in order to provide support for, or challenge, the theory.
 
The reason that theory and logic are treated as important because of it describes the social change and to be the ground of action for social change, too.
 
Commonly, it is said that there are many stories theory and reality are different. That is because of the following reasons.
 
a. The theory is almost caused by a primary and on the basis of changes in the real.
 
b. Theory and logic evolved and sophisticated it is internally.
 
c. In the area of social science, which is our daily life, the validity of the theory is consistent with reality is not necessarily.
 
Society is a place to live together with the people with different ideas and conditions.
 
 
For this reason, the social contradictions of the conflict between interests and ideas are always present.
 
Let's take a look at the North-South problems based on the recognition of these problems with the theoretical and the real.
 
a. Koreas issue is the real one. The reality is keep changing and theory to explain it can also evolving.
 
Therefore, it would be a very stupid way of thinking to view the North-South relations only with a posture of the past, while not recognizing the reality of change.
 
However, it wouldn't be admitted the truth of all empirical, Korea's former governments, likewise in the past can not be the same as today's Park government.
 
Also, current Kim Jong-un's regime can not be the same as the senior Kim's regime at the time the Korean War.
 
North Korea also has a change of their own.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Cold War, the international historical conditions of the peninsula is not the same as before.
 
b. The efforts to discover new logic is happening.
 
c. It consists of a special relationship between the conflicting North-South relations, and of entangled in the contradictions loaf.
 
From the more fundamental point of view of national security, the North Korean regime's double meaning of existence as a main enemy for ROK, also as a subject of unification would be difficult to solve the equation.
 
An answer to this question is to keep maintaining and developing friendly relations with North Korean regime and to promote cooperative relation with neighboring powers.
 

남북문제의 이론과 현실
 
이론이 적실 (的實)하고 생명력을 가지려면 현실과의 괴리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예외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다.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사회현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론과 논리가 중요시되는 것은 그것이 사회변화를 설명하고 또한 사회변화를 위한 행위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중요행위들은 알고 행동하든 모르고 하든 그것은 이미 이론으로 규명되어지고 있는 것들이다.
 
결국, 논리는 우리 삶의 현실을 설명하고 경험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하지만 흔히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이론은 거의 현실의 변화를 바탕으로 후차적으로 발생한다.
 
자연과학계의 대과학자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발견도 실은 원래 그런 자연적 현상을 최초로 설명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론은 본질적으로 현실에 앞서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습득한 이론과 논리는 매일 변화하는 현실의 세계와 어느 정도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둘째, 이론과 논리도 발전을 거듭하며, 내적으로 정교해진다.
 
같은 현상에도 학자들은 다른 주장을 펼친다. 이들 상호간의 논쟁을 통해 학파가 형성되기도 하고, 이론은 더욱 정교해 진다.
 
셋째,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이론적 정당성이 반드시 현실과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각기 다른 생각과 조건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장이다. 이런 이유로 사회에는 항상 상호간의 이익과 생각이 대립하는 모순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이론은 현실세계에서 상호 모순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론과 현실의 이런 문제의 인식을 바탕으로 남북문제를 살펴본다.
 
첫째, 남북문제는 하나의 현실이다.
 
현실은 계속 변화하고 이를 설명할 이론도 계속 진화한다.
 
따라서 변화하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남북관계를 과거의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매우 우둔한 사고방식이다.
 
경험적 진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과거 역대 정부의 한국이 오늘날 박 근혜 정부와 질적으로 같을 수 없는 것처럼, 北 체제도 6.25전쟁 때의 김일성 정권과 현재 김 정은 정권이 동일한 존재일 수는 없다.
 
이론은 개인에게 시각을 교정하는 역할을 하고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
 
현실이 변하는데 이론은 변화하지 않고 과거의 시각으로만 현실을 보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비록 北은 3대 부자세습의 한계에 놓여 있지만, 일정 부분 그들 나름의 변화를 하였고, 세계는 냉전체제의 해체로 한반도의 국제적 조건도 과거와 같지 않다.
 
현실은 변했는데 과거의 틀로만 세상을 인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둘째, 새로운 논리 발굴의 노력을 추구한다.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틀에서만 현실을 이해하는 논리들이 일부 학자들과 언론을 중심으로 새로운 논리와 갈등을 빚고 있다.
 
상반된 두 개의 논리가 병존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어느 한 쪽이 완벽하게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여전히 北 정권에 대한 다소 호의적인 표현이 큰 물의를 일으키곤 한다.
 
또한 사회적 합의가 어려워 北 정권에 대한 주적 (主敵) 개념도 유보적인 상태이다.
 
“빨갱이”라는 낙인은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한 사람을 정치・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이것은 과거의 이데올로기 논리와 오늘날의 진정한 의미의 진보적 논리가 여전히 혼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셋째, 남북관계는 모순덩어리의 특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하나의 혁신적인 이론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역사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한, 北 정권에 대한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이 모두 똑 같을 수는 없다.
 
6.25전쟁으로 인민군에게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빼앗긴 사람이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과 北에 대한 사고와 행동이 똑 같을 수 없다는 이치가 그것을 말한다.
 
보다 근본적인 국가안보적 관점에서는 가상적인 주적으로서의 北 정권과 통일대상으로서의 北 정권이라는 이중적 존재 의미는 풀기 어려운 난해한 방정식일 수 있다.
 
또한 이 방정식의 조건인 北의 태도와 주변강대국들의 대한반도정책은 상황에 따라 변하여 간다. 한국 단독으로 이 문제를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답을 찾으려면 한국은 北과의 우호관계를 유지・발전시키고 주변강대국들과의 공조관계도 증진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요인과 각 주체들의 생각의 상호 작용과 그 영향 때문이다.
 
특히 우리사회는 21세기의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후진적인 시위의 빈발과 정치적인 갈등과 대립의 현상만을 확대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가 다시 대립을 재생산하는 소모적 논쟁으로 영일이 없다.
 
이런 논쟁의 반복은 이제 안타까움을 넘어 혐오와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시대착오적인 대립과 갈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교양 있는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다양한 의견의 표출은 얼마든지 유통하되, 상반된 논리의 저속한 충돌은 그만 끝내야 한다.
 
각기 주장은 나름의 논리를 갖는다. 근거가 있고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사실 (fact)이 있다.
 
그러므로 상반된 논리는 모두 언뜻 일관성을 가진다. 그러나 문제는 그 근거의 확실성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 속에 왜곡된 근거, 잘못된 사실 등이 인위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외적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일반화하거나 반대로 특수 상황을 핑계로 일반적 진실을 외면하는 따위는 자기이익과 만족을 위한 것일 뿐 사회를 위한 주장이 될 수 없다.
 
개인이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억지를 부리며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거나 자신의 논리만이 진리라고 외치는 돌격대 행위는 잘못이다.
 
사상의 자유는 존중하되 그 표현방식은 사회적 규범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제 각자의 논리를 토론의 장에서 표출하고 그 근거를 명확히 밝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한다.
 
진정한 사회의 발전은 이런 합리적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소란과 구호만을 외쳐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비위에 맞는 것만 믿으면서 남의 주장을 무시하고 자기 목소리만 내는 어리석음은 이제 성숙된 사회적 교양으로 막아야 한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왜곡된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국회의원, 정치인, 관료,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인, 지식인 모두는 더 이상 목소리 높이기 방식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또한 “아니면 말고”식의 선정, 선동주의가 무차별적으로 사회를 어지럽게 해서도 안 된다.
 
어떤 이데올로기 문제라도 제대로 된 근거와 논리 속에서 주장을 하고 반박을 하는 풍토가 필요하다.
 
하나의 사실을 침소봉대하거나 진실을 왜곡하여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사악한 행위다. 알고도 왜곡하는 것은 범죄가 될 수 있다.
 
학자와 전문가들이 논리를 제공하고 우리는 그것을 수용하여 하나의 합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은 다양한 상품을 소비자가 선택하고 시장점유율을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학자들이 만드는 여러 이론과 논리를 우리는 쇼핑하고 소비하면서 보다 나은 민족화합과 궁극적인 통일의 논리를 가꾸는 것이다.
 
단 하나의 논리가 모든 다른 것을 압도할 수는 없다.
 
 
경제에서 독점이 폐해로 이어지듯이 하나의 논리의 편식과 의도적인 강요는 다른 것들과 충돌하게 된다.
 
똑똑한 국민이 똑똑한 통일을 만든다. 이런 저런 논리들을 듣다보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게 된다.
 
관심을 갖고 우리 남북문제와 그 논리들을 바라보면 우리 현실과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MUSIC
Hungarian Dance No.5
Johannes Brahms
Tomomi Nishimoto conducts
 

2014년 10월 5일 일요일

외국어와 회화 (Foreign Language and Conversation)


Foreign Language and Conversation
Abstract:
 
Koreans have never had a traditions to learn a foreign languages.
 
Nevertheless, Korea has long been a cultural and political relations with China, there were few Chinese speaking people among our ancestors.
 
In the past, officials and scholars in Korea, they had, even though, the ability to read and write well chinese character, they didn't intend to speak Chinese.
 
With the independence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Japanese language of the imperialist Japan had disappeared from the Korean peninsula, and English has emerged as an important foreign language becaus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the United States and the world.
 
Precisely speaking, the history of English education in Korea has been over 130 years starting with the purpose of cultivating interpreters for the ancient Korea in the year of 1883.
 
Rev. Appenzeller (1885 at Baejae College Hall), and woman doctor Annie J. Ellers (1887 at Jeongdong girls' school) both had applied a direct teaching methods with their beck, so that they could say that the basic words over one year.
 
Rev. Henry Gerhard Appenzeller(1858~1902) was a Methodist missionary, to Korea from 1885 to 1902.
 
He was known by his three contributions to Korean, the Baejae College Hall, the First Methodist Church of Seoul, and the translated New Testament.
 
The grammar translation method is a method of teaching foreign languages derived from the classical (sometimes called traditional) method of teaching Greek and latin.
 
In grammar translation classes, students learn grammatical rules and then apply those rules by translating sentences between the target language and the native language.
 
Advanced students may be required to translate whole texts word-for-word.
 
The method has two main goals: to enable students to read and translate literature written in the target language, and to further students' general intellectual development.
 
In the past, the Japanese imperialists banned the direct use of English, while implemented to use the grammar-translation method of teaching.
 

외국어와 회화
 
한국말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에게서 한국말 배우기가 무척 어렵다는 푸념을 자주 듣는다.
 
 
일본어나 중국어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들었을 적에 어쩐지 언짢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마치 한국어가 일본어나 중국어 보다 덜 발달된 언어라고나 말한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사실 서양인에게 우리말은 어려운 언어겠지마는 일본어보다 더 어렵다는 데는 납득이 잘 안 간다.
 
발음이 단순한 일본어는 우리말 발음보다 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복잡한 경어법(敬語法)은 우리와 같은데다가 한자(漢字) 하나를 읽는 방법도 수십 가지나 될 수 있어 우리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학교에서 10년 동안 영어를 배우고도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편지 한 장 제대로 못 쓴다고 한다면 영어가 훨씬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원래 외국어를 별로 배워온 전통이 없다.
 
중국과는 역사상 문화적, 정치적인 접촉이 긴밀하고 오래 되었는데도 우리의 조상들 가운데 중국어를 말 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국을 사행(使行)나가는 4,5백 명의 일행 가운데도 정작 중국말을 아는 사람은 통역을 맡은 몇 사람뿐 이었다.
 
 
지난 시대의 한국의 관리, 학자들은 한문을 거의 자유로이 읽고 쓰고 했어도 중국어는 한 마디도 하려고 생각지도 않았다.
 
외국어를 아는 사람은 역관(譯官)이라는 극소수의 전문직뿐이고, 이 역관들은 오히려 차별적인 천대를 받아왔다.
 
근세에 들어와서 일본의 식민 통치하에서 처음 일본어를 외국어로 국민 대다수가 배워야 했다.
 
또한 영어는 원래 조선왕조 말기의 중학교에서 약간씩 가르쳤으나 일제의 학교 교육 확대로 영어 교육도 퍼졌다.
 
결국 한국의 지식층은 두 가지의 외국어를 다 배워야 할 형편이 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일본어는 사라졌지만 영어는 미국과 세계와의 관계 때문에 중요한 외국어로 등장하여 더욱 퍼져나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깊은 듯하다. 그 만큼 한국식 영어교육에 대한 비판, 또는 비난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한국식 교육이 과거 문법-번역 식이어서 회화를 못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의 시작은 “문법-번역 식”이 아니다.
 
문법-번역 방법은 흔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불리는 그리스어 및 라틴어의 고전적인 교육 방법을 말 한다.
 
정확히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의 역사는 1883년 구한말 역관 양성을 시작으로 131년이 된 셈이다.
 
실제로 선교사 Appenzeller(1885년, 배재학당)와 여의사 Annie J. Ellers(1887년, 정동여학교 설립)는 직접적인 교수법을 적용했다.
 
손짓 발짓으로 공부하다 1년이 지나면서 기본적인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과거 영어교육이라면 19세기말의 이런 직접적인 교수법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과거는 일제하의 영어교육이다. 일제는 직접적인 영어 사용을 금지하고 “문법-번역 식 교수법(Grammar-translation)"을 사용하게 했다.
 
현재 우리의 영어교육이 19세기 말의 “진정한 과거 영어교육”방식이 아닌 “일제하의 영어교육”방식을 답습한 것이 잘못이다.
 
그리고 1897년 7월8일,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조선정부의 대신과 형판(刑判), 외국사절, 학부모 등 800명이 참석한 곳에서 선보여 청중들을 사로잡은 약관의 청년 李承晩의 “한국의 독립(Independence of Korea)" 주제의 유창한 영어 실력이 우리나라의 최초의 영어 연설이다.
 
요즘 영어를 어린아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영어교육에 대한 극단적이고 일시적인 착상 (着想)들이 유행처럼 논의되고 있다.
 
외국어는 어릴 때부터 배우면 효과적임에는 틀림없다.
 
어린아이를 미국이나 유럽에 데리고 가면 석 달만 되어도 이웃집 아이들과 마음대로 지껄이고, 싸우고 하여 부모들이 10여년 공부한 영어의 틀림을 고쳐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고국에 데려오면 얼마 안가서 언제 외국에서 살았더 냐는 듯이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그 후 중학교에서의 외국어 성적도 별로 특출할 것 없다는 예들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것은 효용 면을 떠나서도 아동들의 성격 형성과 우리 문화의 전체적 테두리 속에서 신중히 고려되어야 할 문제점이다.
 
외국어를 10년이나 배우고서도 외국인 관광객에게 길 하나 못 가리켜 주거나, 해외여행에 나가서 벙어리 노릇만 한다면 이것도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용도를 위해서는 TV의 외국어 강좌나 기타 시청각 교재로 연습을 해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틀에 박힌 한 두 마디가 아니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하려면 배운 지식의 응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역시 학교의 학과시간에서 배우는 문장과 문장 구조가 기반이 되어야 하고, 그 위에서 회화 연습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독해력과 문법 학습은 덜 중요하고 회화만이 중요한 듯한 의견도 나오고 있다.
 
외국어로 의사를 소통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거래를 하거나 토론을 하려면, 독해력, 작문력, 문법 지식이 바탕이 되지 못한 단순한 회화로서는 의미 있는 대화는 불가능하다.
 
대학 나와서 국제적으로 활동하게 될 많은 청, 장년들이 독해력과 작문력이 불충분해서는 그들의 회화는 극히 한정된 의사 전달 밖에 못하고 말 것이다.
 
MUSIC
Swan Lake
Tchaikovsky
 

2014년 10월 1일 수요일

작전통제 전환의 문제들 (Issues of OPCON Transition)


Issues of OPCON Transition
Abstract:
 
The decision to delay, however, does not address the plan's underlying deficiencies.
 
How the OPCON transition is implemented is far more important than when it occurs.
 
Dissolving the Combined Forces Command is dangerously ill-advised because it violates the key military precept of unity of command in preparation for and during hostilities.
 
Replacing a single integrated command with two parallel independent commands risks seriously degrading U. S. and Korean deterrent and warfighting capabilities.
 
Currently, U. S. and Korean forces are closely integrated in a seamless, effective structure to deter and defeat the North Korean threat.
 
The OPCON transition plan does not so much transfer OPCON as it divides it. Such a command structure is potentially working at cross-purposes.
 
Although both commands would communicate and coordinate through an Alliance Military Coordination Center after the OPCON transition, the loss of unified command risks severely curtailing the ability of the United States and Korea to fight in a coordinated manner.
 
The resulting system has a greater potential for creating confusion and even tragedy in the fog of war.
 
A bifurcated command increases the danger of mission failure and increased casualties, including friendly fire casualties.
 
Such a system also threatens the sense of purpose and justification for U. S. forces in Korea.
 
Eliminating a combined command lead to reduced U. S. congressional and public support for maintaining a U. S military presence on the Korean Peninsula.
 
In the absence of a clearly articulated mission after the transition, questions about the role of U. S. forces in Korea would increase calls for a U. S. drawdown or withdrawal.
 
Former CFC Commander Walter Sharp (2008~2011) recommended that the U. S. and Korea maintain a "combined senior command structure but with a ROK general as the commander.
 
To reassure Seoul of the U. S. commitment, General Sharp urged Washington to reaffirm that it would maintain 28,500 personnel in Korea after the OPCON transition.
 
As the United States and Korea strive to enhance the existing military alliance and, indeed, expand it into a regional and international context, both countries should review the decision to disband the CFC.
 
Washington and Seoul should maintain the CFC, but with the Korean JCS Chairman as the CFC commander and the USFK commander as the deputy CFC commander.
 
Operational control, on the other hand, is a subset of command. It is "given for a specific time frame or mission."
 
 
작전통제 전환의 문제들
 
현안의 전시 작전통제 (OPCON)전환을 연기한다는 것은 전환계획의 근원적인 결함을 다루는 것과는 다른 사안이다.
 
작전통제가 어떻게 전환되는가 하는 것은 언제 전환하는가 하는 시기 그 자체보다 대단히 중요하다.
 
한미연합군사령부 (CFC)의 해체는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다. 전쟁과 전쟁 준비 시 “지휘 통일”이라는 군사작전 원칙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단일통합사령부를 두 유사사령부로 대체한다는 것은 한, 미 양국의 억지력과 전투능력을 약화시키는 위험이 크다.
 
현재 한미군은 北 위협을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저지하고 격파할 구조로 잘 통합되어 있다.
 
두 나라의 정규군을 지휘하는 단일 지휘관의 능력은 임무의 단일성과 목표 달성을 보장하는 요체이다.
 
CFC사령관은 한, 미 대통령의 지시를 받지만, 야전을 지휘하는 수장이다. 작전통제 전환 계획은 분할에 따른 전환 상 미흡으로 서로 엇갈리는 일을 할 공산이 크다.
 
두 사령부는 작전통제 전환 후 동맹군사협조센터를 통해 연락 및 협조를 하겠지만, 지휘통일의 부재는 한, 미 양국의 협조된 방식의 전투 수행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위험이 크다.
 
결국 이런 시스템은 전쟁 수행의 혼동을 야기할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두 갈래의 지휘는 임무 실패의 위험과 아군화력에 의한 사상자를 포함한 인명피해를 증대시킨다.
 
이런 시스템은 또한 주한미군의 목적과 정당성의 의미도 위협하게 된다.
 
CFC의 제거는 한반도 내 미군사력 유지에 대한 미 의회 및 국민의 지지를 줄이게 될 것이다.
 
전환 후 분명하게 표명된 임무의 부재 시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의문은 미군 철수의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전 CFC사령관 월터 샤프 (Walter Sharp, 2008~2011)는 한국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한, 미 양국의 “연합고위사령부구조”의 유지를 추천하고 있다.
 
이 사령부는 휴전과 전시 한국방위를 책임진다. 미국의 공약을 보장하기 위해 작전통제 전환 후에도 28,500명의 주한미군 유지를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전 CFC사령관 비.비. 벨 (B.B. Bell, 2006~2008)은 한 때 작전통제 전환의 강력한 지지자였으나, 그의 입장을 바꿨으며 미국 주도하에 北 정권을 공세적으로 봉쇄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한국정부가 작전통제 전환의 영원한 연기 요청.”을 할 기회를 제공할 것을 주장한다.
 
실제로, 이런 새로운 사실은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의 확실성에 관한 한국의 우려를 악화시킬 수 있으며, 한국의 자체 핵무기의 필요성의 열띤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핵 확산은 지역 핵무기 경쟁과 핵 확산금지조약의 실패를 이끌 수 있으며, 미국의 세계안보를 크게 훼손하게 된다.
 
전 CFC사령관 존 틸러리 (John Tilelli, 1996~1999)도 마찬가지로 CFC의 해체를 반대한다.
 
CFC는 현존하는 최고의 동맹 메커니즘임을 강조하며, 현행 그대로 유지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은 지휘구조 변경의 필요사항이 무엇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한, 미 동맹의 공고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 지역적 환경에 비추어 현안의 CFC해체 결정을 재거토해야 할 것이다.
 
CFC 유지를 위해 한국이 CFC 사령관을, 미국이 부사령관을 맡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예하 지상구성군사령관은 한국군이, 해・공 구성군과 새로이 창설된 상륙전구성군사령관은 미국의 몫이다.
 
CFC사령관은 전과 같이 계속 한국 및 미국 대통령에 보고를 한다.
 
한반도 내 미군 사령관은 UNC사령관 직을 계속 수행한다. 일본 내 UNC 후방기지는 한국방위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CFC처럼, 이 CFC를 유지하면 한국방위에 시너지효과가 있는 합동 및 연합군작전의 단일지휘통제체계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안의 새로운 지휘구조는 UNC의 장차 역할과 CFC와 USFK관계, 책임 분할 등을 고려할 때 보다 신중하고 광범위한 연구가 요구된다.
 
특히 미 국민과 의회엔 외국사령관 밑에 미군을 둔다는 것은 잠재적인 논쟁거리가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정책결정자들은 미군이 외국 작전통제 하에 있는 것이지, 외국지휘 하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 차이는 겉보기엔 사소한 것 같지만, 그 의미는 중요하다.
 
비록 다른 나라의 작전통제 하에 있더라도 양국의 대통령은 변함없이 자국군의 지휘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군은 미군 지휘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작전통제 하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CFC사령관은 미국과 한국 양국의 국가명령권한에 종속돼 있는 것이다.
 
작전통제 (Operational control)는 한편으로는, 지휘의 부분 집합 ( Subset of command)이다. 이것은 특정 기간이나 임무로 부여 된다.
 
미군은 독립전쟁과 제1차 및 2차 세계대전을 포함하여, 사막의 폭풍작전과 NATO작전 이후 외국 지휘관 하의 작전통제를 받아 왔다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MUSIC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Pietro Mascagni
Lim Kek-tjiang condu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