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일 금요일

금강산관광 (The Geumgangsan Tour Program)




The Geumgangsan Tour Program
Abstract:
 
“We Celebrate Park Geun-hye, The 18th Presidential Inauguration of Republic of Korea.”

Since 1998, South Korean tourists have been allowed to visit Geumgangsan, initially travelling by cruise ship, but later more commonly by coach.
 

In 2002, the area around the mountain was separated from Kangwon Province and organized as a separately-administered Tourist Region.
 

The land route was opened in 2003. A rail exists on the North Korean side up to the border, but no tracks are laid between Gangneung and the border in South Korea.
 

In June 2005, Hyundai Asan announced the one million South Korean visit to the area.
 

One of the finest tourist attractions in North Korea will be available by bus from February 21, 2003.
 

The Geumgangsan tour has been using ships for transporting from South to North Korea, which is costly and time consuming.
 

It is anticipated that the Geumgangsan land route will attract many more tourists with the advantage of much-shortened hour's travel time and lower cost.
 

On the morning of July 11, 2008, a 53-year-old Korean tourist was shot and killed while qalking on the resort's beach.

 
She entered a military area by crossing over a sand dune and was shot twice by North Korean soldier.
 

North Korea claimed that sentries had no choice but to shoot her because, despite their order to stop, she fled.
 

ROK demanded an on-the-spot survey, but North Korea declined it, claiming all the facts were clear and all responsibilities were the victim's and South Korea.
 

Due to the shooting, South Korea temporarily suspended all trips to Geumgangsan.
 

On Aril 23, 2010, the North Korean regime seized 5 properties owned by South Korea at the resort, saying that damage the North Korean side, making it appear increasingly unlikely that tours will be resumed from the South.

The Geumgangsan Tourist Region is thought to be one way for the North Korean regime to receive hard currency from abroad.
 

The area is develpoed by Hyundai Asan, which plans to expand the site with a proper ski resort to complement the current sleigh course, and complete golg courses.
 

Many plans for expansion, however, are in their earliest stages.
 

 

< 개관 >

금강산관광사업은 1989년 1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최초로 방북하여, 조선아시아무역촉진회 고문 최수길 (조선대성은행 이사장)과 “금강산 관광개발 및 시베리아 공동 진출에 관한 의정서”를 체결함으로써 비롯되었다.
 

1998년 4월30일 정부의 “남북경협 활성화조치” 발표 후, 현대그룹과 北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아태)와의 금강산관광 및 개발사업의 합의로 금강산광광사업이 실현되었다.
 

금강산관광사업은 사업자의 자금난과 해로관광 (海路觀光)으로 인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때문에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 한때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사업 활성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서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었다.
 

또한 남북철도, 도로 연결공사의 진전으로 2003년 2월부터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다.
 

이와 함께 관광 상품 확충으로 관광 시작 6년 만인 2005년 6월 누적 관광객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섰으나 2008년 7월 11일 北의 초병의 우리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으로 현재까지 관광이 중단된 상태이다.

 
< 추진 경과 >
 

금강산관광은 1998년 10월 현대와 아태의“금강산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의 체결로 11월 18일 관광선 금강호가 관광객 826명을 태우고 동해항에서 첫 출발하여 北의 장전항에 입항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사업은 시작 2년여 후 사업자 현대그룹의 자금난과 北의 육로관광, 특구지정 등 관광활성화 조치 이행 지연으로 2002년 초에는 중단위기에 직면하였다.
 

정부는 2002년 3월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경비지원 지침을 제정하여 4월부터 초, 중, 고등학생 등에게 관광경비 일부를 지급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나 국회의 부정적 의견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던 금강산관광은 2002년 9월 당국 간 회담에서 2002년 12월 초 육로관광 시작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2003년 1월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임시도로 통행에 대한 군사보장합의서”를 타결함으로써 육로관광은 2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北의 도로공사 사정으로 일시 중단되었으나, 2003년 9월 재개되어 2008년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매일 실시되었다.
2000년 10월에는 일본 관광객과 해외 교포에게도 금강산관광을 허용했으며, 금강산지역 내 숙박시설을 갖춘 해상의 “호텔 해금강”을 개장했다.
 

2001년 6월, 현대와 北은 사업 활성화를 위한 육로관광, 특구 지정, 관광대가 조정 등을 합의하는 한편, 2002년 11월 北은 금강산 관광지구법을 제정, 금강산을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당초 현대는 독점사업권을 대가로 6년 3개월간 9억 4천 2백만 달러를 北에 지불하기로 했으나 이는 관광이 활성화될 때까지 관광객 수에 따른 대가 지불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때 국민의정부는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영기업인 한국관광공사를 현대와 컨소시엄을 구성케 하여 지원하는 조처를 취했다.
 

한국관광공사 (KTO)는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남북 연계상품 개발 및 홍보 등에 관한 업무협정을 맺고 온천장, 문화회관, 온정각에 투자했으며, 2007년 내금강 관광을 계기로 면세점 사업에도 진출했다.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외금강 지역에서만 이루어지던 금강산관광이 2007년부터 내금강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北의 유도탄 발사와 핵 시험 등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사업 시작 시기가 늦어졌으나 육로관광을 계기로 꾸준히 확대되어왔다.
 

2008년 3월부터 승용차 관광이 시작되었고, 7월 중순에는 비로봉 (毘盧峰)관광이, 7월 말에는 골프장 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또한 금강산 관광 지구에는 약 40여 우리 기업과 현대아산 협력업체들이 특구 개발 사업에서부터 골프장, 면세점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어오던 금강산 관광 사업은 2008년 7월 11일 北 초병에 의한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기간 내 관광객 총인원 1,934,662명 (외국인 관광객 7,500명 포함)으로 중단되는 사태를 맞게 되었다.
 

정부는 北에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및 확고한 신변안전보장조치 등을 요구했으나 北의 태도는 현재까지 소극적이다.
 

< 문제점 >

 
금강산 관광사업의 주체는 北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현대그룹에서 한국관광공사와 현대아산 간의 컨소시엄 형태로 전환되었다.


이렇게 민간인 적자사업에 국영기업을 투입한 것은 당시 강조해 오던 김 대중의 대북정책의 정경분리원칙에 배치된다.
 

또한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이른 부실 민간기업과의 합작은 공기업의 기본경영원칙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정부가 육로관광사업 추진용으로 한국관광공사에 대출 승인한 900억 원은 남북협력기금의 변칙 대출 지원이다.
 

남북협력기금법 (법률 제4240호, 1990.8.1)은 우선 지원 대상으로 중소기업을 지정하고 있으며, 30대 대기업과 자기자본 완전 잠식 기업은 제외하고 있다.
 

남북협력기금은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총 10조5,942억 원을 조성하였으며, 그 사용실적은 9조8,238억 원이다 (2012 통일백서).
 

남북협력기금을 관리하는 한국수출입은행 (Korea Eximbank)은 남북협력기금 대출 심사보고서에서 이 사업에 투입된 900억 원의 상환에 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北은 그 동안 금강산의 제한적 개방으로 외부의 달러를 긁어모으면서 자본주의는 차단한다는 소위 “모기장 이론”을 적용해 왔다.
 

국민의정부 (김 대중의)는 퍼주기 식 대북정책에 따른 김 정일 서울 답방 실현이라는 정치논리의 집념에서 이런 무리와 변칙을 동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금강산관광사업은 남북의 정치적 소통을 이루고 한국의 풍요와 자유를 북한지역에 침투시킨다는 암묵적 구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北은 이 금강산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철수시키고, 대신 군이 지역을 통제하면서 당에서 교육받은 요원들로 안내인 행세를 하게 했다.
 

또 이상한 것은 북한지역 명승지 관광과는 다르게 위험적성지역에 막대한 투자와 비싼 관광 입장료를 내면서, 오직 내국인의 주머니를 털게 할 뿐 엄청난 경화를 일방적으로 北에 송금하는 상거래라는 점이다.
 

현대아산이 1998년11월부터 2006년 8월까지 北에 준 입장료는 4억 5,120만 달러이다 (1인당 평균 입장료 59.5달러). 이 금액은 타 7대 사업 독점권 대가 5억 달러와는 별도이다.
 

여기서 미국의 시각을 상기해 본다.
 

2003년 5월 20일 미국의회 상원의 재무관리, 예산 및 국제안보에 관한 정부업무분과위원회에서 증언한 헤리티지재단 Larry M. Wortzel박사의 금강산 논평이다.
 

北 문제 전문가인 그는 北정권의 마약거래, 미국 화폐위조 그리고 무기밀매를 논하면서, 김 대중이 추진하는 금강산 관광 사업은 “바람직하지 못한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겉치레”를 의미하는 “ Potemkin Village"이라고 폄했다.
 

또한 한국의 중, 소기업들은 김 대중의 이 “Potemkin Village"와 같은 금강산관광사업에 관여하지 않아도 북한지역 근로자들에게 자본주의 시장원리인 생산성과 손익을 잘 가르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Potemkin Village 용어는 현재 정치와 경제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10대 전략가로 일컫는 러시아 Catherine II 여왕의 총신인 군인이며 정치가인 Potemkin G.A (1739~91)가 잘 보이기 위해 가짜 마을을 만들었다는 러시아의 한 고사 (故事)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이제 사업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통한 존폐 결단만을 기다리는 정치현안이다. 박 근혜 정부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한다.
 

MUSIC

Dear Mt. Geumgang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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