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 월요일

북한 지역 내 한류의 의미 (Korean Wave)


Korean Wave
Abstract:
 
The Korean Wave is a neologism referring to the increase in the popularity of Korean culture since the late 1990s.
 
The term was originally coined in mid-1999 by Beijing journalist, who were surprised by China's growing appetite for Korean cultural exports.
 
They subsequently referred to this new phenomenon as "Hanliu,韓流“, which literally means "flow of Korea". The Korean Wave is absolutely one of the greatest things Korea has going.
 
First driven by the spread of K-dramas televised across East and Southeast Asia during its initial stages, the Korean Wave evolved from a regional development into a global phenomenon due to the proliferation of Korean pop (K-pop)music videos on You Tube.
 
Currently, the spread of the Korean Wave to other regions of the world is most visibly seen among teenagers and young adults in Latin America, Northeast India, the Middle East, North Africa, and immigrant enclaves of the Western world.
 
The growing acceptance of Korean pop culture as a valid form of entertainment in many parts of the world has prompted the government of Korea to use the Korean Wave as a tool for soft power.
 
Ultimately, the government hopes that the acceptance of Korean culture in foreign countries would be reciprocated by an embracement of foreign cultures among Koreans, thus realizing the ideas of a bidirectional flow of culture, goods and ideas in order to achieve the following goals: prevention of anti-Korean sentiment, reunification of Korea and advancements in world peace and prosperity.
 
Then President Park Geun-hye states that in the 21st century, culture is power, together with the Korean people we will foster a new cultural renaissance that contributes to the peaceful development of humanity, and is connected by the ability to share happiness.
 
 
북한 지역 내 한류의 의미
 
소련과 동구 공산권에 널리 스며들었던 단파 방송으로 공산권 시민들은 자유를 동경 하게 되고, 서독 TV를 시청하면서 마음을 움직인 동독 시민들의 자유의 항쟁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벽을 무너뜨리는 폭발적 에너지가 되었다.
 
북한 지역 땅에도 엄격한 정보 차단의 통제를 뚫고, 비디오 열풍이 번지면서, 한류의 물결이 동토의 오지에 차츰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다. 평양 정권의 말로가 어떤 궤도를 따를 것인지 주의 깊게 관찰할 만하다.
최근 평양에서 꾀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한 서양인을 만나, 요즘 북한 지역의 변화 이야기를 들었다.
 
한때, 사람들은 해외여행에서 北에 귀국하려면 트럭 1대분 정도의 많은 담배를 갖고 왔어야 했지만, 지금 北의 동료들은 오직 한국의 TV 드라마 테이프만을 갖고 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북한 지역은 그들의 앞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비디오 변혁이 한창이다.
 
무엇이 소비에트 형태의 사회주의를 죽였을까 ? 
 
 
최종적인 분석 결과는 타고난 그들의 경제적 무능이 그 원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는 나쁜 기업가이고, 20세기의 전체 역사는 이것을 증언하고 있다.
 
자본주의 서방 국들은 생활수준을 포함하여 많은 면에서 뒤져있는 동구 공산주의 국가들보다 생산력에서 뛰어났고, 보다 기량이 우수하였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정권들은 해외에서 유입되는 정보를 엄격히 통제했어야했다. 
 
그렇게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크게는 통치자들은 대중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는” 비슷한 사회적 입장의 서방 사람들이 굉장히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이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사회주의 국가의 운명은 끝장났다.
 
소련과 다른 동구 공산권 국가에서는 검문을 받지 않은 정보가 단파 방송으로 광범위하게 제공되었다. BBC와 미국의 소리 (VOA) 그리고 자유의 소리 방송은 특히 인기가 있었다.
 
소련은 北정권보다 더 자유로웠으며, 소련 시민들은 상점에서 쉽게 라디오를 구입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는 평시 단파 방송을 금지하지 않았다. 아마도 소련같이 광대한 국가에서의 이와 같은 조처는 대부분의 인구가 뉴스 청취를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따금 전파 방해를 하였지만, 그것은 주요 도시에서나 효과를 볼 수 있었을 뿐이며, 항상 효과적일 수 없었다.
 
北정권에서는 라디오의 다이얼을 고정시켜놓고 팔고 있기 때문에 외국 방송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北의 주민들은 다른 방법으로 외국 매스컴에 접하는 방법을 찾았다. 소련이 단파 방송으로 무너졌다면 北정권에서는 그와 비슷한 역할을 비디오테이프가 할 것 같다.
 
많은 다른 큰 사회의 변화처럼, 이 한 가지는 사소한 기술적 변혁으로 시작되었다. DVD 플레이어는 꽤 오랫동안 여기저기 있었다.
 
그러나 2001년 쯤 그 가격이 극적으로 크게 떨어졌다. 중국 북동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방의 중국 가정은 DVD 플레이어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의 낡은 VCR는 쓸모없게 되었다.
 
중국 시장에는 10달러~20달러로 구입할 수 있는 아주 값싼 중고 VCR (카세트 녹화기)가 갑자기 넘쳐났다.
 
밀수업자들은 이 많은 기기들을 구입하여 중. 북 국경의 구멍 난 통로로 북한 지역에 반입하였다. 이 기기들은 큰 프리미엄을 붙여 다시 팔렸다. 아직도 30달러~40달러 정도로 매매되고 있다.
 
이리하여 북한 지역의 많은 가정에서는 VCR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에는 VCR 한 대 값이 월 평균 5달러의 월급으로는 엄청나게 비싼 금액인 약 200달러였다.
 
35달러의 VCR는 아마 대부분의 北의 가정이 돈을 모아 장만할 수 있는 가격이다.
 
공식 예술의 따분함에 반해, VCR는 훌륭한 오락에 접할 수 있는 전달 수단이다. 
 
말할 필요 없이, 사람들은 “조선의 별”과 같은 김 정일의 장황한 전기 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비싼 기기를 구입하지 않는다.
 
한국말로 된 볼만한 것은 오직 한국 제작물이기 때문에, 자연히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서울에서 중국을 경유하여 들어온다. 한국의 멜로드라마는 최고 히트 작품이다.
 
어떤 뜻에서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한국의 모든 것에 열광하는 “한류” 또는 “한국의 물결”은 또한 北의 주민들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北의 젊은이들은 한국 영화에서 본 유행을 열광적으로 모방하며, 말투를 앵무새처럼 되 뇌이고 있다. 이것은 평양 정권의 장래에 대한 좋은 징조는 아니다.
 
물론, 영화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고, 줄거리는 통상적인 사랑과 가족 관계 그리고 현실도피주의의 모험의 멜로드라마 식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한국의 생활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모습은 평양 정권의 공식적 매스컴이 말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北의 주민들이 영화에서 본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보지 않는다. 
 
北의주민들도 자신들의 영화가 그들의 생활수준을 기막히게 과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외국의 영화 제작진들도 똑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北의 주민들은 한국에서는 누구나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서울은 집집마다 모두 승용차를 갖고 있다고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참말 같지 않은 풍요는 그들의 터무니없는 꿈을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속일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고층 건물과 감동을 주는 수많은 한강의 다리들로 점재하고 있는 서울의 초고층 건물의 도시 풍경이다.
 
중요한 것은 北의 주민들이 남쪽은 그들의 선전처럼 굶주림과 빈곤의 땅이 아니라는 진실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사람을 근사하게 보게 만들었고,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앞으로 있음직한 변화의 조짐이다.
 
북한 지역에서의 한류는 한국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北의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는 향후 통일 과정에서 남북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으로 마음의 장벽을 허물 수 있다.
 
한국 영상물 시청과 관련된 영상 매체는 北의 장마당의 인기 품목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유, 인권, 복지 등 한국 사회의 가치를 北의 주민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하는 기재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저가 디지털 제품 역시 영상물 시청을 확산하고 있으며, 북한 지역 내륙 지역으로 이어지는 밀수의 연계망은 국경경비대와 당 간부들과 조직적으로 연계돼있다.
 
北정권은 한류를 엄격히 통제하려하지만,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한국 문화로 접근한다.
 
따라서 北의 주민들의 사회적 일탈과 외래문화 수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통일 논의는 통일의 제도와 경제적 편익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엇보다 통일의 당사자인 남북의 사람들의 마음의 통일을 위한 준비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의 확산 노력이 이루어져야한다.
 
독일 통일 25여 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동.서독 출신 주민들의 정서적 통합이 여전히 진행 중이란 점은 통합 과정에서 우리의 통일 논의가 사람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MUSIC
Fritz Kreisler-Liebesleid & Liebesfreud
Ji Won Kim, vi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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