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2일 일요일

김 정일 얼간이 경제


      

--평양 정권의 화폐교환 실패에 따른 정책의 U턴으로 북한 지역에 시장 (농민시장)이 재등장한 것은 시장경제만이 그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다.

이들의 경제체제의 기본 유형은 중앙 계획적 사회주의 명령체제로 소유제도와 국가자원의 분배구조 , 경제적 조정기구 등은 자본주의 시장체제와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경제체제의 제반 관련 요소는 과거 스탈린적 사회주의 정권의 공통적인 특성이었다.

이젠 체제생존의 전략적 차원에서도, 평양 정권만이 고집하고 있는 이 실패한 경제체제의 기본유형을 시장경제를 향한 개혁과 개방으로 변환해야 할 때이다.

우선 대내 경제개혁과 대외 경제개방으로 가는 것이 필수적이며, 그 모델은 공산주의 이념의 단골들인 중국과 베트남과 같은 실질적인 개혁, 개방의 길로 변화를 찾는 것이다.

망해가는 김 정일 집단은 인간의 순수한 행복의 가치를 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2천만 북한 지역 주민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현실적 경제를 살펴야한다.

에이단 포스터 카터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 및 현대한국 명예선임연구원)는 김 정일이든 누구든 이번의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고, 올바른 정치가 건전한 경제의 대체물이라는 망상에 빠져 불가능한 일을 꾀한다면 이제 평양 정권은 희망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



2월1일자 노동신문은 김 정일이 모든 인민들이 쌀밥과 고깃국을 먹게 하겠다던 김일성의 약속을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한다는 보도를 냈다.

그리고 위대한 인민들에게 쌀을 주어 배불리 먹게 하는 것이 나 (김 정일)의 일이며, 수령에게 맹세한대로, 인민들이 쌀을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악명 높은 식통 (食通)인 김 정일이 내 뱉은 자신의 불운의 고백은 비위가 거슬릴 만큼 아니꼽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변명이라고 할 수 없는 변명은 진실을 그럴싸하게 얼버무렸다.  

정백 (精白)하지 않은 쌀이든 싸라기든, 어떤 쌀이든 북한 주민들에게 쌀 자체는 희귀명품이다.  싸라기도 운이 좋아야 구경한다.

1990년대 말, 수백만 명의 주민들이 굶어죽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은 영양실조에 허덕인다.  중국에 탈출한 한 탈북자는 그녀가 처음 들어간 집에서 몇 해 만에 처음 본 쌀이 개밥그릇의 쌀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북한 지역의 진짜 현실이다.

본질적으로 원인은 김 정일 정권이 내세우는 자연 재해가 아닌, 바보짓인 악의 있는 정책의 결과이며, 이 모든 비극은 피할 수 있었으며, 또한 피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이 원인은 1990년대 이후,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원조 중단에 적절하게 대응 못한데서 찾을 수 있다. 

옛 소련의 단골 국가들에게는 똑 같은 고통이 닥쳐왔던 것이다.  쿠바는 관광 사업에 눈을 돌렸으며, 베트남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개혁을 시도했고, 몽골은 광물 자원을 팔았다.  

유독 평양 정권만은 제도의 붕괴와 성장의 급격한 추락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별스럽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근이 들어 주민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을 때, 1996년 12월,  김 정일은 김일성대학에서 노동당에 폭언을 퍼부으면서 우는 소리로 털어놓았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전체적인 경제와 실용 경제 프로젝트의 책무를 지고 있으나 군부와 당과 같은 중요 분야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경제에만 몰두한다면 혁명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줄 것이다.  

위대한 수령 동지께서는 생전에 경제에 관여하지 말고, 군과 당에만 전념하며, 경제는 당 
관리에게 맡기라고 나에게 말씀했다.  내가 경제에 파고들면 나는 당과 군을 효과적으로 운
영 못한다.“ 

1992년 대통령 당선에 도움이 되었던 빌 클린턴의 유명한 표어도 평양 정권의 장벽과 머리를 깨뜨리지 못했다.  

평양의 경제는 얼간이 경제이다.  아버지 김일성의 충고는 완전히 잘못됐다.  집단 굶주림은 자기분석과  새로운 사고를 촉진한다.  

평양은 2002년 중반부터 조심스러운 시장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최근 판도라를 궤에 쑤셔 넣는 시도를 했다.

최근 이런 아둔한 수고로 나타난 화폐의 리디노미네이션 (Redenomination, 통화 호칭의 변경)은 일부러 대부분의 주민들의 빈약한 저축을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이것은 큰 실패이며, 다룰 수 없는 인플레와 폭동도 유발했다.  수세에 몰린 정권은 선례가 없는 사과까지 했다.   

이것이 지금의 평양 정권이다.  1996년에 있었던 것처럼, 2010년에도 김 정일은 비난을 받게 되었다.

믿을만한 소식통은 2월 5일, 내각총리 김 영일이 전국의 인민반장들을 평양에 소집했다고 전한다.  

인민반은 대체로 20~40세대로 구성되는데, 도시에서는 아파트 동별로 인민반을 구성하며,
인민반장의 지도 하에 학습이나 강연회를 조직하고 생활 총화를 진행하는 말단 조직이다.

이 모임에서 10,000 명을 넘는 전국의 인민반장들은 이전에는 들어본 일이 없는 정권 고위 지도자의 사과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김 영일은 화폐 교환에 관해 충분한 준비 없이 추진하여 인민들에게 큰 고통을 준데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인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인민반장들의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현장 상황은 혼란을 이어가고 있으나 시장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의 NGO 좋은 벗들은 2월1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식료품에 관한 어떤 규제도 없다는 공고를 했다고 전한다.

시장은 당국의 단속 이전 상태로 돌아오면서 중앙의 식량배급이 원활히 이루어질 때까지 식량 매매는 통제를 받지 않게 되었다.

뒷맛이 쓴 일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현상은 정권의 완전한 굴욕적인 정책의 180도 전환이며 단념을 의미한다.  이것은 참으로 중대하며 역사에 기록될만한 놀라운 사건이다.

평양 정권의 지도부가 이 가르침의 소중함을 알고 결국 시장 경제가 지구인력과 같이 불가
항력임을 받아들인다면, 오늘날의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재편성된 경제적 토대와 사회계약위에서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도, 지난 1월25일부터 2월19일까지 최근 네 차례에 걸친 서해 항해금지구역 선포와 해상 포격 등 평양 정권의 부산떨기와 대화를 병행하는 이상한 행태는 이어지고 있으나, 개성 및 금강산의 두 남북합작사업의 현안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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