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2일 일요일

統一論議 (50) 평화 만들기




냉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우리는 변화와 통합을 강조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지난 세기의 전쟁의 공포의 경험에서 인류가 찾으려는 평화는 새로운 세기로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인류의 숙제로 남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국제관계의 새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과 실현은 아직 불확실하다.  세계는 9.11테러의 앙재 (殃災)와 현행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따른 국제질서의 재편과 안보 환경의 변화로 국가 주권의 개념도 변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무력 (武力)이 결코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국제적 상호 협력과 공조를 기반으로 하는 대응만이 세계를 폭력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공감대의 확산 추세이다.

그동안 모색해 온 한반도 평화 정착의 실현 가능성도 이러한 지구 차원의 변화에 대처해 나가는 우리의 지혜와 국민적 역량의 결집을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의 해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냉전 이후 새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민족이나 국가가 선택하는 미래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특히 한반도의 분단을 규정했던 냉전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는 보다 복합적이고 유동성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이 말은 한반도 문제 해결과 관련된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냉전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됨으로써, 우리 한민족의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로 변환되는 공간 자체가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요소는 아니며, 그것은 단지 조건일 뿐, 한반도 문제 해결의 결정은 당사자인 우리의 의지와 역량에 달린 우리 자신의 몫이라는 점이다.

그간의 남북 관계를 살펴보면,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남북이 묵시적으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체제경쟁을 벌였던 기간이었다.

1990년대는 탈냉전과 국제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함으로써 상대방 체제를 존중하면서 화해와 협력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단계였으며, 2000년대 들어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단계로 이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의 남북 관계의 경험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 정착의 핵심은 남북 관계의 상호 신뢰 구축에 있다는 것을 남북 당사자들이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 남북 당국은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바탕으로 남북 당사자 해결원칙에 따라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가고, 화해와 공존공영을 모색하기로 약속하였다. 

아직 남북 간에는 화해협력과 평화정착 문제를 제도화하지는 못했지만, 적대적 대립관계에서 호혜적 관계의 점진적 발전을 모색해 나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상호 신뢰의 증진이 남북 관계의 발전이라는 등식의 인식에서 출발하여, 남북 관계의 이해 증진과 신뢰의 구축을 통해 남북 간의 합의 사항과 원칙에 대한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상생과 공존공영을 모색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올바른 접근 방식이다.

오늘날 남북 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한반도의 한민족공동체를 구성하여 생존해 나가는 것은 우리 한민족의 염원이며, 민족의 당위명제이다.

이것은 또한 궁극적으로 평화와 자유에 기초한 한반도 통일은 역사의 순리인 동시에 국민 모두가 바라는 희망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인간다운 삶과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인간의 삶의 중심인 정신적 가치를 지키는데  필요한 기본조건은 평화이다.  그리고 이 평화는 인간의 삶의 일정한 질을 지칭한고 할 때, 일상적 삶과 밀착되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평화라는 말은 깊은 종교적 의미에서 사용되며, 삶을 포괄하는 비전의 표현으로  신약성서에는 19회나 평화를 말하고 있다.

학술적으로 이 평화 (peace)의 개념은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평온한 세상을 의미한다.  기독교 문명권에서 말하는 Pax Romana도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질서가 유지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평화를 단지 전쟁이나 물리적 폭력이 없는 소극적 평화 (Negative peace)의 개념을 넘어, 전쟁 부재와 사회정의의 실현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정치, 사회적 안녕 (Wellbeing)과 행복을 이루는 국가적인 적극적 평화 (Positive peace)의 개념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 평화는 폭력에 의해 유지될 수 없고, 오직 이해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으며, 주어지는 대상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창조의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평화가 모든 국민이 추구하는 가치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용기와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이 사례는 유럽의 평화 정착이 군사적, 경제적 차원에서 유기적 협력과 통합이라는 토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평화란 점진적으로 생각을 바꾸고, 서서히 낡은 장벽을 허물어, 소리 없이 새로운 체계를 세워가는 오랜 시일을 두고 계속되는 과정 (process)이다.”라고 말 했다.

그리고 평화의 달성에는 굳은 결의와 흔들리지 않는 의지가 필요하며, 평화는 하나의 목표라기보다는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인식을 가져야한다.  

평화가 그러하듯, 자유 역시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구체적인 현실이며,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누구나 자유를 갖지 않으면 평화로울 수 없고, 자유와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그러기에 대한민국 헌법은 인간다운 생활권과 행복권을 헌법 제10조와 제34조에 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과제는 평화의 대전략을 세워, 평양 정권을 상대하는 실천적 대북 접근을 추진하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개입을 뜻하는 포용 정책 (Engagement Policy)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최근 10년 넘게 이 정책의 충실도와 강도는 더 다져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어려운 안보 환경 속에서도 상호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남북 간 당사자 대화를 지속하는 것은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남북 간 접촉에서 평양 정권을 상대하는 것은 그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안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분단 관리의 차원에서 남북 대화의 조건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남북 간의 개념의 차이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전쟁이나 무력 충돌 없이, 한반도 전체가 평온하고, 평양 정권의 적화 통일 의지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를 적극적인 평화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반해, 평양 정권은 한반도에서 군사적인 행동이 중지된 가운데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로 한. 미동맹의 사실상 붕괴를 전제로 한 상태를 말하고 있다.

남과 북의 평화 인식에 대한 이 차이점은 평양 정권이 말하는 평화는 보편적 가치 개념의 순수한 평화가 아닌, 한반도 적화 혁명 달성을 위한 정치 구호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분쟁이 그칠 줄 모르는 지역에서도 평화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려는 대화는 계속되는 법이
다.  평화를 위해 당사자 간 합의를 늘려 가는 방식은 실질적인 현안들을 해결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상호 불신을 해소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까지는 여러 가지 갈등과 긴 과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화를 향한 남북 대화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의 대장정은 평화에 대한 굳은 의지와 열정을 요구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나가야하는 길이다.  “불이 빛의 모체가 되는 것처럼, 사랑과 포용은 항상 평화의 모체가 된다.”는 칼라일의 신념의 불꽃은 평화를 만드는 이 길을 밝게 비쳐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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