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1일 토요일

북한 지역 내 한류와 정치적 변화



         
      -- 소련과 동구 공산권에 널리 스며들었던 단파 방송으로 공산권 시민들은 자유를 동경 하게 되고, 서독 TV를 시청하면서 마음을 움직인 동독 시민들의 자유의 항쟁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벽을 무너뜨리는 폭발적 에너지가 되었다.

북한 땅에도 엄격한 정보 차단의 통제를 뚫고, 비디오 열풍이 번지면서, 한류의 물결이 동토의 오지에 차츰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다.  평양 정권의 말로가 어떤 궤도를 따를 것인지 주의 깊게 관찰할 만하다. --




최근 평양에서 꾀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한 서양인을 만나, 요즘 북한 지역의 변화 이야기를 들었다. 

한때, 사람들은 해외여행에서 북한에 귀국하려면 트럭 1대분 정도의 많은 담배를 갖고 왔어야 했지만, 지금 북한의 동료들은 오직 한국의 TV 드라마 테이프만을 갖고 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북한은 그들의 앞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비디오 변혁이 한창이다.

무엇이 소비에트 형태의 사회주의를 죽였을까 ?  최종적인 분석 결과는 타고난 그들의 경제적 무능이 그 원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는 나쁜 기업가이고, 20세기의 전체 역사는 이것을 증언하고 있다.

자본주의 서방 국들은 생활수준을 포함하여 많은 면에서 뒤져있는 동구 공산주의 국가들보다 생산력에서 뛰어났고, 보다 기량이 우수하였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정권들은 해외에서 유입되는 정보를 엄격히 통제했어야했다.  

그렇게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크게는 통치자들은 대중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는” 비슷한 사회적 입장의 서방 사람들이 굉장히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이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사회주의 국가의 운명은 끝장났다.

소련과 다른 동구 공산권 국가에서는 검문을 받지 않은 정보가 단파 방송으로 광범위하게 제공되었다.  BBC와 미국의 소리 (VOA) 그리고 자유의 소리 방송은 특히 인기가 있었다.

소련은 북한보다 더 자유로웠으며, 소련 시민들은 상점에서 쉽게 라디오를 구입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는 평시 단파 방송을 금지하지 않았다.  아마도 소련같이 광대한 국가에서의 이와 같은 조처는 대부분의 인구가 뉴스 청취를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따금 전파 방해를 하였지만, 그것은 주요 도시에서나 효과를 볼 수 있었을 뿐이며, 항상 효과적일 수없었다.

북한에서는 라디오의 다이얼을 고정시켜놓고 팔고 있기 때문에 외국 방송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다른 방법으로 외국 매스컴에 접하는 방법을 찾았다.  소련이 단파 방송으로 무너졌다면 북한에서는 그와 비슷한 역할을 비디오테이프가 할 것 같다.

많은 다른 큰 사회의 변화처럼, 이 한 가지는 사소한 기술적 변혁으로 시작되었다.  DVD 플레이어는 꽤 오랫동안  여기저기 있었다.

그러나 2001년 쯤 그 가격이 극적으로 크게 떨어졌다.  중국 북동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방의 중국 가정은 DVD 플레이어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의 낡은 VCR는 쓸모없게 되었다.

중국 시장에는 10달러~20달러로 구입할 수 있는 아주 값싼 중고 VCR (카세트 녹화기)가 갑자기 넘쳐났다.

밀수업자들은 이 많은 기기들을 구입하여 중. 북 국경의 구멍 난 통로로 북한에 반입하였다.  이 기기들은 큰 프리미엄을 붙여 다시 팔렸다.  아직도 30달러~40달러 정도로 매매되고 있다.

이리하여 북한의 많은 가정에서는 VCR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에는 VCR 한 대 값이  월 평균 5달러의 월급으로는 엄청나게 비싼 금액인 약 200달러였다.

35달러의 VCR는 아마 대부분의 북한 가정이 돈을 모아 장만할 수 있는 가격이다.

공식 예술의 따분함에 반해, VCR는 훌륭한 오락에 접할 수 있는  전달 수단이다.  

말할 필요 없이, 사람들은 “조선의 별”과 같은 김 정일의 장황한 전기 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비싼 기기를 구입하지 않는다.

한국말로 된 볼만한 것은 오직 한국 제작물이기 때문에, 자연히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서울에서 중국을 경유하여 들어온다.  한국의 멜로드라마는 최고 히트 작품이다.

어떤 뜻에서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한국의 모든 것에 열광하는 “한류” 또는 “한국의 물결”은 또한 북한 주민들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북한 젊은이들은 한국 영화에서 본 유행을 열광적으로 모방하며, 말투를 앵무새처럼 되 뇌이고 있다.  이것은 평양 정권의 장래에 대한 좋은 징조는 아니다.

물론, 영화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고, 줄거리는 통상적인 사랑과 가족 관계 그리고 현실도피주의의 모험의 멜로드라마 식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한국의 생활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모습은 평양 정권의 공식적 매스컴이 말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북한 주민들이 영화에서 본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보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도 자신들의 영화가 그들의 생활수준을 기막히게 과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외국의 영화 제작진들도 똑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들은 한국에서는 누구나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서울은 집집마다 모두 승용차를 갖고 있다고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참말 같지 않은 풍요는 그들의 터무니없는 꿈을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속일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고층 건물과 감동을 주는 수많은 한강의 다리들로 점재하고 있는 서울의 초고층 건물의 도시 풍경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들이 남쪽은 그들의 선전처럼 굶주림과 빈곤의 땅이 아니라는 진실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사람을 근사하게 보게 만들었고,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앞으로 있음직한 변화의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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