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2일 일요일

베를린 장벽


      



-- 미국의 전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 (공화)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소련 붕괴의 상징적 역할뿐만 아니라, 세계의 자유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도전의 표상으로 기억할 필요성을 말 한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의 중추적 행사에서 세계적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는 1979년 6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인 폴란드 방문이 공산주의와 싸우는 독창적인 행사였으며, 수많은 폴란드 사람들에게 종속을 거부하는 용기를 북돋우고, 영적인 힘을 줌으로써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도움을 주었음을 상기시키면서, 베를린 장벽이 기억할 가치가 있음을 강조한다. 

독일 통일의 원동력을 잉태했던 베를린 장벽의 역사적 교훈은 한반도 통일에도 그 활력소의 가치를 재조명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를 거부한 오바마 대통령을 무도 (無道)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기념한다는 것은, 결국, 기억한다는 것이다.  장벽의 붕괴뿐만 아니라, 왜 무너졌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베를린 장벽은 냉전 이상의 바로 유럽 분단 이상의 상징으로 기억해야 한다.  베를린 장벽은 인간의 존엄성과 진리를 거부하고 오직 힘만 생각했던 사악한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다.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20세기에서는 드물게 진리와 인간의 존엄성이 힘을 극복한 것이다.  그러나 이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늘날, 21세기의 인류는 인간의 존엄성과 진리를 멋대로 규정짓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급진적 세속주의 문화의 성장으로 국가는 근거에 입각한 진리를 공공연히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화해할 수 없는 이슬람 당파들이 무구 (無垢)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켜도 좋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왜 장벽이 무너졌는지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들이 기억할 것을 대통령이 촉구
하지 않는 것은 비극적인 현실이다.

1989년 11월9일은 동유럽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진흥이 시작이 아닌, 절정에 달한 때였다.

10년 전 1979년 6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역사적인 폴란드 고향 방문으로 생긴 장벽의 균열이 1989년의 그날의 여울이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는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 방영된 기록 영화 “세상을 바꾼 9일”을 다시 되새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미사에 참예한 1/3 가량의 폴란드 사람들과 함께 나타났다.  교황은 공산주의의 거짓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말했다.

단지 최고의 상태의 주체라고 일컬어 왔던 사람들에게, 교황은 모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책임 있는 하느님의 어린이라고 했다.

비밀경찰과 수많은 밀고자에 의한 그침이 없는 공포 속에 격리된 사람들에게, 그는 “정신적 자유를 잃지 말라.”고 했다.

30년 동안의 사회주의 “은전 (恩典)”의 선전을 들어온 주체들은, 1,000년의 폴란드 기독교의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며, 자유와 진리를 위해 폴란드 사람에 의해 셀 수 없는 희생을 당했다고 했다.

폴란드에서 올린 교황의 첫 미사에서, 신은 없다는 정권하에 살던 백만 명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는 노래 “우리는 하느님을 원한다!”를 화답했다.

교황이 폴란드를 떠나고 14개월 후, 파업 확산은 폴란드의 자유노조연대 (Solidarity)를 공식 승인하게 만들었다.

이로부터, 몰락의 도미노가 시작되었다.  폴란드를 처음으로, 그리고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그리고 최후에는 소련 자체가 무너졌다.

자유를 위한 이 역사적인 투쟁에서 교황은 외롭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가렛 대쳐 수상은 불가결의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 9일부터, 폴란드 사람들의 가슴에 정중하고 강렬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가까이 의식하게 한 것은 바로 요한 바오로 2세였다.

그는 바로 독립선언이 우리들에게 말 하는 것을 넘어, 유럽의 포로국가들의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남성과 여성은 조물주의 모상 (模相)으로 창조되었음으로, 타고난 존엄성과 특정 불가침의 권리를 소유한다고 말 했다.

이런 합법적인 권리를 부정하는 정부는 없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어기는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민주주의든지 또는 독재이든지 사실상 전체주의이다.

20년 전 베를린 장벽을 쓰러뜨리게 한 인간의 존엄성의 메시지는 인간의 영적 (靈的)본성과 자유의 신의 뿌리인 진실한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희망의 수사 (修辭)에 자신을 감싸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베를린 장벽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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