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S BEAUTIFUL FOUR SEASONS

KOREA'S BEAUTIFUL FOUR SEASONS
Korea is geographically situated in a temperate climate zone at medium latitude. As a result, it has four distinct seasons. In general, spring is from March to May, summer from June to August, autumn from September to November, and winter from December to February. The weather in spring and autumn is clear and dry due to the influence of anticyclones; summer is hot and humid due to Korea's location on the North Pacific Edge; and in winter, continental high pressure brings cold and dry weather.

2017년 6월 5일 월요일

6.25 전쟁의 패러독스 (Korean War Paradox)




Korean War Paradox
Abstract
 
 
The Korean War was important in the development of the Cold War, as it gave rise to the idea that the two superpowers, United States and Soviet Union, could fight a "limited war" in a third country.
 
 
The limited war strategy was a feature of conflicts such as the Vietnam War and the Soviet War in Afghanistan.
 
 
The Korean War was the first war in which the United Nations participated.
 
 
The war left the peninsula divided, with a totalitarian communist state in the North and a democratic state in the South.
 
 
Many Korean families were also divided by the war, most of whom have had no opportunity to contact or meet one another.
 
 
The war scarred both North and South Korea heavily. 
 
 
Both nations suffered massive damage to their economies and infrastructure as a result of bombings and artillery strikes.
 
 
However, it also is today's reality that the tragic and brutal nature of the Korean War history has been in the spotlight as a paradox of the division.
 
 
In the aftermath of the war, ROK was able to modernize with the help of the United States.
 
 
Initially, ROK suffered economically in the 1950s and later with
a rapidly growing market economy, becoming one of the East Asia Tigers.
 
 
The U.S. military had been caught ill-prepared for the war.
 
 
Accordingly, after the war, the American defense budget was boosted to $50 billion, the Army was doubled in size, as was the number of Air Groups, and they were deployed outside American territory in Europe, the Middle East and elsewhere in Asia.
 
 
Economically, Japan was able to benefit vastly from the war, and the Korean War greatly helped the rise of Japan's economy and its development into a world power.
 
 
American requirements for supplies were organized through a Special Procurements system, which allowed for local purchases without the complex Pentagon procurement system.
 
 
Japanese manufacturing grew by 50% between March 1950 and 1951, and by 1952, pre-war standards of living were reached and output was twice the level of 1949.



6.25전쟁의 패러독스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제3국에서 제한전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전후 냉전 (Cold War)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유엔이 참전한 최초의 전쟁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6.25전쟁은 3년 동안, 한국 전체인구의 1/10이나 되는 300만 명의 인명 손실과 1천만 명의 가족의 분산, 그리고 500만 명의 난민을 낳은 20세기 중반의 지구촌의 끔직한 비극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비극의 역사가 분단의 역설로 조명 받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전쟁 자체는 잔인하게 파괴적이었지만 전쟁이 남긴 질서는 경쟁적이고 건설적이었다는 배반성 (背反性)의 논리가 출현했다.
 
 
1950~60년대의 정권의 건설과 1960~70년대의 한국의 건설뿐만 아니라, 남과 의 불꽃 튀는 대결과 경쟁, 그리고 냉전이 몰고 온 한반도에의 자력적 (磁力的)집중은 남북분단 질서의 안정화 기능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남과 은 정권 차원의 불안정 속에서도 국가적 안정으로 빠른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중위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 (Bruce Curmings,1943~)교수는 한국의 경제성장은 한국에는 바로 자본가계급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토착 자본가계급들이 성장을 계속 가로막았다는 사례를 들고 있다.
 
 
그리고 6.25전쟁은 혁명이 과거의 유산을 쓸어버리는 것과 같은 한국의 전근대적 계급 관계를 깨끗이 청소함으로써 냉전체제 위에 구축된 20세기 후반 세계자본주의 질서 하에서 자본 축적에 유리한 무대가 되었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전쟁은 당사국인 한국의 경제에 파멸적인 타격을 주었지만, 국제적 관점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전후 자본주의 부흥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쟁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전통적인 사회질서의 변화, 신흥 자본주의의 대두, 국가안보관의 고양 (高揚), 국제 감각의 향상 등 다양한 긍정적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전쟁이 촉진시킨 생존경쟁,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경쟁 심리 등 가치들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심층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6.25전쟁의 역설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미국은 전쟁을 계기로 세계의 초 강대 군사국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힐 수 있게 되었다.
 
 
전쟁 동안 미군병력은 150만 명에서 350만 명으로 늘어났고, 군사 예산은 1950150억 달러에서 1953500억 달러로 팽창하였다.
 
 
미국이 군비 증강이 어려워 고민하던 때, 당시 국무장관 딘 애치슨 (Dean Gooderham Acheson,1893~1971)”6.25전쟁이 미국을 살려 주었다.”고 말했다.
 
 
1954년 한 세미나에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1880~1964)한국이 우리를 구해 주었다.”고 실토했다.
 
 
인간세계의 메커니즘은 참으로 오묘하다
 
 
서로 죽이는 전쟁을 치른 뒤엔 경제부흥이 일어나곤 했으니, 6.25전쟁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 세계에 경제 부흥의 기회를 제공했다.
 
 
뉴딜 (New Deal)이 금세기 미국의 제1차 국가 부흥의 계기였다면 6.25전쟁은 제2차 국가 부흥의 계기였다고 경제학자들은 평가했다.
 
 
그러나 경제 부흥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 일본이었다
 
 
일본 요시다 시게루 (吉田 茂,1878~1967))수상은 6.25전쟁을 신이 신이 내린 선물로 평가했다.
 
 
스탈린이 사망한 195335일 도쿄 증권시장은 폭락하였다. 이른바 스탈린 폭락이었다
 
 
바로 이 스탈린 폭락이 왜 6.25전쟁이 일본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었는지 그 이유를 잘 말해 주었다.
 
 
일본은 6.25비극의 주요 원인 제공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극 덕분에 역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미국은 모든 물자를 일본에서 조달했다.
 
 
당시 주일 미국대사 로버트 머피 (Robert Daniel Murphy,1894~1978)일본인들은 놀라운 속도로 그들의 영토를 거대한 공급기지로 전환하였으며, 그 결과 일본 없이는 6.25전쟁이 치러지지 못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전쟁 시 일본이 벌어들인 특수 (特需)수입은 24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 덕분에 일본의 국제수지는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6.25전쟁이 빚어낸 패러독스의 공개된 비밀이다.
 
MUSIC
Green Green Grass of Home
Tom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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