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일 수요일

역사의식 (Sense of History)


Sense of History
Abstract:

A sense of history that has been said frequently used in today's Korean society as a word or expression used for some particular thing.
 

Because of that information is shown in diverse ways, it is not easy to know the exact meaning of these words.
 

Things will always get better, and need to explore more about a sense of history.
 

In a world where we face exactly that risks, has the potential to be one of the more progressive genres around, representing a playground of ideas on how progress loses momentum and arcs downwards into collapse.
 

The physical environment, that gives us that sense of roots and history, whereas for others it may be found in every corners around us.
 

Thinking that history is very important does certainly not seem to entail knowing all that much of it.
 

Concerning about the exact sense of it, it's better to remind that without knowing what we were, we'll never know who we are.
 

If people have a shaky grasp of what happened, there is also an appetite to know more about it.
 

Animated history of the past and the future in the present life is a sense of history itself.
 

Therefore, the raving fanatical climate that the futurists such as communism used to unfold as a favorites should be purified.
 
 

국내외 상황이 복잡하고 특히 인접 국가 (일본, 중국 등)와의 과거와 현재의 여러 현안들이 사회적으로 빈번하게 부각되면서 자주 쓰이는 낱말 가운데 역사의식(歷史意識, Sense of History)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학생들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며 매스컴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그런데 이 말들을 살펴보면 그 내용은 사안에 대한 역사의식을 문제 삼기도 하고, 비판도 하는가 하면 역사의식의 중요성 강조 등 다양하게 표출되지만 그 말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역사적 사실은 일시적으로 숨겨질 수 있어도 결국은 밝혀진다는 사실인식의 확신으로도 쓰이고, 역사는 장기적 안목에서 사필귀정 (事必歸正)이라고 도덕적 감각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역사는 그 자체에 합목적적 (合目的的)인 운동법칙이 있다는 역사철학적 이해로도 쓰이고 있다.
 

이렇듯 역사의식이라는 말의 개념은 모호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면서 그 의미 자체는 각각 나름대로 나타내고 있다.
 

태초의 인류는 동물과 비슷한 생활을 하였지만, 인류는 사고 (思考)의 기능을 가졌음으로 무언가 해야 할 과제 즉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 문제의식은 역사의식과 통한다.
 

일반적으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보통 사람이나 민족은 진지하게 묻는 사람이나 민족이 있고, 묻지 않는 사람과
민족도 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 (農耕社會)와 같이 사회적 구조에 기본적 변화가 없는 안정된 사회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다.
 

반면에 진지하게 묻는 사회는 안정된 사회 구조가 무너져 가고 주관적으로 불안하고 객관적으로는 불안정한 사회이다.
 

낡은 것과 새 것, 전통과 혁명, 보수와 진보가 혼재하는 시대의 사회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이런 시대의 사람들은 역사적 변화에 대한 인식이 용이하며 앞으로의 역사적 과제에 대한 의식이 강렬하다.
 

이처럼 과거와 미래가 현재의 삶에 살아 움직이는 역사의 감각을 역사의식이라고 한다.
 

과거를 현재 속에 살리고 현재를 과거 속에 살려서 과거와 현재가 하나 되는 역사의식, 미래가 현재 속에 움직이고 현재가 미래로 뚫고 들어가 미래와 현재가 하나 되는 역사의식이 올바른 역사의식이다.
 

인류의 역사사상 (歷史思想)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고, 지금도 미치고 있는 주요 역사관 (歷史觀)들을 살펴보면 이런 역사의식의 산물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신학자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의 신국론 (神國論, 하느님의 都城, De Civitate Dei)을 철학적 기반으로 한 기독교사관은 고대문화의 중추였던 로마제국의 붕괴와 기독교문명의 전환기적 지성 (知性)의 역사의식의 산물이다.
 

진보사관과 유물사관, 실증주의사관 등이 16~17세기의 서구 가톨릭문명의 종교적 내란을 거쳐서 탈기독교적인 과학기술문명으로 전환한 것 또한 19세기 지성의 역사의식의 산물이다.
 

전환기적 고난에 대하여 이 변화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현실의 삶과의 대결을 위해 피눈물 나는 정신적 고투의 결과로 창조된 정신적 산물인 역사관들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전환기적 고난 속에는 두 가지의 반역사적 (反歷史的)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는 복고주의적 유혹이고, 또 하나는 미래주의적 유혹이다. 
 

복고주의 (復古主義)는 과거의 어느 시기를 이상화하여 현재의 고난을 해결하려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안을 엉뚱한 데서 해결하려고 하여 문제의 해결은커녕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미래주의 유혹은 그 어떤 장밋빛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 신기루를 쫓아가려는 생활태도로서 현재의 건전한 삶의 의욕을 마비시킨다.
 

오늘날 우리 세대는 무시무시한 격변기를 살고 있다. 우리 세대가 역사의식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면 이것은 전환기적 지성의 역사관의 증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관심만으로는 올바른 역사의식이 자라지 않는다. 올바른 역사의식은 문화 창조의 지적 정신적 원동력이다.
 

이를 위해 공산주의와 같은 미래주의적인 광신적 풍토를 정화해야 하며, 현재를 죽이고 과거만을 숭상하는 복고적인 역사관을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사는 세계사와 연관에서 자리 잡기 때문에 민족의 역사 못지않게 세계사에 대한 안목과 지식을 길러야 한다.

Tchaikovsky, Swan Lake
American Ballet Theatre

http://www.youtube.com/watch?v=gP132E-xA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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