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일 일요일

3.1운동의 역사 인식 (Historical Perception of the March First Movement)




Historical Perception of the March First Movement
 
Abstract
 
 
The March 1st Movement or Samil Movement, was the end of a Dynasty, and the starting point of the modern national history.
 
 
It was one of the earliest public displays of Korean resistance during the occupation of the Korean Empire by Japan.
 
 
The Samil Movement came as a result of the repressive nature of colonial occupation under the military rule of the Japanese Empire following 1905, and the “Fourteen Points”outlining the right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proclaimed by President Woodrow Wilson at the Paris Peace Conference in January 1919.
 
 
After hearing of news of Wilson’s speech, Korean students studying in Tokyo published a statement demanding freedom from colonial rule.
 
 
Adding to this was the death of former Emperor Kojong on January 21,1919.
 
 
There was widespread suspicion that he had been poisoned, credible since previous attempts were well-known.
 
 
The March 1st Movement provided a catalytic momentum for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 ensuing suppression and hunting down of activists by the Japanese resulted in the expatriation of Korean leaders into Manchuria, Shanghai and other parts of China where they continued their activities.
 
 
The Movement was a catalyst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Shanghai in April 1919 and also influenced nonviolent resistance in India and many other countries.
 
 
The Korean Liberation Army was also subsequently formed and allowed to operate in China by the Nationalist Government of China.
 
 
The movement also saw a rise in mobilization of Catholic and Protestant activists as well as activism mobilized in the U.S., China and Russia.
 
 
The March 1st resistance movement against foreign domination was an Anti-Japanese movement, and at the same time, establishment movement for modern nation-state of republican form as the birth of a new country.
 

   
3·1운동의 역사 인식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의 바른 인식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사건발생의 인과 판단보다 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흔히 결과적인 사실을 불가피했던 것으로 믿지 않는다 해도 그 결과의 사실로부터 역사 해석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물음은 유럽에서 14세기로부터 16세기의 많은 역사 발전의 사건들을 하나의 상 ()으로 파악하는 프랑스 혁명이나 민족주의 개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3·1운동에서 찾을 수 있는 함의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3·1운동은 우리 왕조사 (王朝史)의 종언이었고 근대적 민족사의 시발점이었다.
 
 
그 당시 민중들은 고종 황제의 인산 (因山)인데도 왕정복고 (王政復古)에 관심을 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민족 운동의 주체세력이 이미 왕당파가 아니었고 민주공화국 형태의 대한 (大韓)”조국이 민족의 가슴에 싹터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3·1운동은 항일 독립운동인 동시에 새로운 공화정 형태의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보여준 것이다.
 
 
이미 1907년 이래 꾸준히 성장해 온 신민회 (新民會)운동이 낡은 왕국을 위한 것이 아닌 사실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3·1만세의 절규를 들은 국내외의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새로이 염원하게 된 독립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새 조국임을 인식하고 상하이에서 大韓民國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만주 (滿洲)의 무장 독립운동에서도 왕정복고를 지향하는 복벽파 (復辟派)와 상하이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민국파 (民國派)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 후 독립운동의 목표는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독립, 즉 근대적 민족국가의 민주주의적 정통성이 새로이 터 잡힌 것이다.
 
 
또한 우리는 3·1운동의 이념에서 민족자결주의의 역사적 의의를 그 소극적 측면만 강조하고 적극적 측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원래 19세기 이후 유럽에서의 민족자결권 (Self-determination)은 각 민족이 자기 운명을 자기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였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두고 전후 처리에 관한 민족자결의 원칙 선언은 주로 동유럽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 원칙은 혼돈된 동유럽 문제를 각기 민족들이 그들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 줌으로써 일단 민족국가 단위로 정돈된 바탕위에 전후의 새로운 평화적 세계질서를 형성한다는 구상이었던 것이다.
 
 
이에 우리 민족지도자들은 이 원칙을 한민족과 같은 문화 민족에게도 인정해 주도록 호소하고 그런 세계 대세의 전개를 바라면서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 선언을 항일 투쟁의 측면에서 보면 약하게 비쳐질 수 있으나 민족자결의 기본 이념에서 해석하면 당당한 독립국가의 권리 선언이 될 수 있다.
 
 
이 선언의 독립도 중화사대질서 (中華事大秩序)로부터의 독립에 그치지 않고 새 민족국가 건설의 근원을 왕권에서 탈피하여 국민주권 특히 민족주권에 두고 있다.
 
 
그리고 국왕의 친서를 국제회의에 호소해 온 헤이그 (Hague)밀사의 노력과 다른 점은 국왕권이나 왕가의 참여 없이 민족대표들에 의해 민족의 생존권을 바탕으로 한 점이다.
 
 
민족과 국가는 구별된다. 민족은 공권력을 갖지 않고 자연에 기초한 존재권을 소유하는 데 반해 국가는 공권력에 의해 유지된다.
 
 
1민족 1국가의 원리인 근대 민족국가의 이념인 민족자결권은 한 민족이 한 나라로 통일될 수 있는 권리이다.
 
 
국가의 공권력이 민족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 주체가 되어 존재권을 확보할 수 있는 공권력의 국가를 만들 민족의 권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3·1운동은 이민족 (異民族)지배에 대한 저항의 항일운동인 동시에 공화정 형태의 근대적 민족국가라는 대한 (大韓)과 인식을 건국하겠다는 국가 창건의 운동이었고, 국민의 나라 새 조국의 탄생이었다.
 
MUSIC
Ode to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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