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5일 목요일

지식인과 정치 (Intellectuals and Politics)


Intellectuals and Politics
Abstract
 
 
What is an intellectual? In general, someone seriously devoted to what used to be called the “Life of the mind”: thinking pursued not instrumentally, for the sake of practical goals, but simply for the sake of knowing and understanding.
 
 
Nowadays, universities are the most congenial spots for intellectuals, although even there corporation and careerism are increasing threats.
 
 
 
Intellectuals tell us things we need to know. They also keep us in conversation with the great minds of our past.
 
 
This conversation may not, as some hope, tap into a source of enduring wisdom, but it at least provides a critical standpoint for assessing the limits of our current cultural assumptions.
 
 
Even more important, our theoretical knowledge is often highly limited, so that even the best available experet advice may be of little practical value.
 
 
An experienced and informed non-expert may well have a better sense of these limits than experts strongly invested in their disciplines.
 
 
This analysis supports the traditional American distrust of intellectuals: they are not in general highly suited for political office.
 
 
Good politicians need not be intellectuals, but they should have intellectual lives. Concretely, they should have an ability and interest in reading the sorts of articles that appear in.
 
 
It’s often said that our leaders need is common sense, not fancy theories. But common sense ideas that work in individuals’ everyday lives are often useless for dealing with complex problems of society as a whole.
 
 
Knowing how to talk to economists and other experts is an essential skill of good political leaders.
 
 
This in turn requires a basic understanding of how experts in various fields think and what they might have to offer for resolving a given problem.
 
 
Leaders need to be intelligent consumers of expert opinion.
 
 
지식인과 정치
 
 
지식인의 정치 참여는 이론상으로는 바람직스럽지만, 실질적으로 실패의 확률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비판을 존재 이유로 하는 지식인의 정치 참여는 지식인의 사명감으로 뛰어든 경우보다 정치 세력에 의한 스카우트가 대부분이었다.
 
 
정치권에서의 지식인은 약점 투성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존속을 위한 기반도 약하고, 다른 방법으로 생활을 이어나갈 물질적 바탕도 없다.
 
 
원래 정치의 세계란 설산 (雪山)의 맑고 푸른 대기와 같은 것이 아닌 선악 (善惡)이 혼재하는 마키아벨리적인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의 정치 발전 단계는 지식인의 순진 (純眞)과 정치인의 일탈 (逸脫)에 관용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스페셜리스트 (Specialist, 전문 지식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 (Generalist, 일반 지식인)라는 속성도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건국 초기에는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지식인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정치적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경제개발을 통한 나라 발전의 단계에서는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지만 제너럴리스트의 할 일은 적다.
 
 
5·16 이후 정치 참여 지식인은 많았지만, 대부분은 실패로 끝났다. 사회 일반의 시선도 싸늘한 것이다.
 
 
언론이 말했듯이,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현실에 대한 부단한 비판을 통한 현실 개혁의 추진력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이 크게 기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활기를 잃어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날의 정치 참여 지식인들은 대부분 이 고발에 유구무언일 것이며, 오직 자괴 (自愧)와 반성만이 있을 뿐이다.
 
 
기원전 중국 전국시대의 사군자 (四君子)의 한사람인 정치가 맹상군 (孟嘗君)은 식객 3천을 거느렸다고 한다.
 
 
그 식객 지식인으로부터 단 한번씩 만이라도 옳은 소리를 듣기 위함이었다는 고사 (故事)는 깊이 음미할만하다.
 
 
이렇게 말하면 자칫 도덕론적 불모증에 빠지기 쉽다. 앞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지식인은 가짜가 아닌 진짜일 것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지식인의 인격과 양식의 문제이며 의지와 지조 (志操)의 문제이다.
 
 
근래 지식인의 정치 참여가 대부분 실패였다 해도 앞으로도 지식인은 얼마간은 정치에 참여해야 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지식인의 정치 참여를 운동정치 (Movement politics)를 통해 정당정치 (Party politics)로 가는 것을 주된 코스로 보는 개념이 그것이다.
 
 
미국은 광의 (廣義)의 정치를 음모정치운동정치정당정치의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럴듯한 생각이다.
 
 
음모정치는 비밀 결사를 통해 음모적 수법으로 정권을 노리거나 정치에 영향을 준다.
 
 
독립 운동, 레지스탕스 운동, 민권 운동, 반전 평화 운동, 그리고 환경 보호 운동 등과 같은 운동이 운동정치이고, 정당정치는 누구나 잘 아는 흔히 말하는 협의 (狹義)의 정치이다.
 
 
사실상 지식인의 정치 참여의 본령 (本領)은 어떤 시대의 대의 (大義)를 위한 운동정치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 독립운동과 반공운동, 반독재 민권운동, 그리고 통일운동 등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훌륭한 지식인, 정치인들을 배출하였다.
 
 
프랑스의 안드레 말로 (André Malraux, 1901~1976)의 경우도 레지스탕스 운동을 통한 참여였다. 그리스의 여배우 메리나 메르쿠리 (Melina Mercouri, 1920~1994)도 반군정 민권운동을 통한 것이다.
 
 
지식인의 정치 참여에 관해서는 운동정치 참여의 연장선상의 정당정치 참여일 때 바람직스럽고 보다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그 다음은, 운동정치와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지식인들은 그들 특유의 선거구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선거구란 지식인들의 주장에 관심을 갖고 동조하며, 성원하는 팬과 같은 불특정 독자나 청중들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정치발전 단계나 정치 수준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런 선거구의 개발은 아주 미약한 상태이다.
 
 
특히 저널리즘 (Journalism), 뉴스를 취재하여 대중에게 보도하는 행위의 미숙이 그 가운데 핵심적이라 할 수 있다.
 
 
부수적으로는 일단 정치에 참여한 지식인들에게는 여간해 기회를 주지 않는 풍토가 저널리즘의 관행임을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는 지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단 정치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에게 그 고향이 복귀의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는 문제이다.
 
 
이것은 선진국에서마저도 쉽지 않게 볼 수 있는 예이다.
 
 
미국의 린든 B. 존슨 행정부에서 대통령 국가안보특보를 지낸 로스토우 교수 (W.W. Rostow, 1916~2003)가 백악관 근무에서 학계로 돌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 일단 정치에 참여한 지식인이 그 역할이 끝나거나 불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아가 될 수 없어 생존을 위한 욕된 변심마저 서슴치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국의 정치가 더욱 성숙해지고 지식인들도 진짜가 되어 그런 왕래가 너무 많아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은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MUSIC
Brahams-Hungarian  Dance No.1
Tomomi Nishmoto condu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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