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1일 목요일

6.25에 생각한다 (Think of June 25)





Think of June 25
Abstract:
 
It is natural to condemn North Korea for the fact that it launched a surprise invasion into the South.
 

Before dawn on Sunday, 25 June 1950, the North Korean army moved forcefully into the South, whose outgunned defenders were generally overwhelmed.
 

We knew the greatness of freedom through a terrible war. Perhaps never before in our history has the word freedom been more meaningful.
 

No society with laws and other constraints over our choices could ever be deemed as free.
 

When I think of freedom, I consider the many rights and privileges we enjoy in this country.
 

Our constitution promises to secure the blessing of liberty. Freedom, however, means more than blessings. Freedom also means the honor of responsibility.
 

True freedom means giving as well as receiving and does not come without a price. Sometimes that price is very high. As citizens, we should joyfully embrace our duty to preserve our way of life.
 

The brave Koreans of war and the other victims who gave their lives preserving and defending this country and paid the ultimate price for freedom. We owe them our respect and gratitude.
 

Through them, we more fully appreciate the true meaning and value of freedom. We should give it to others in the loving spirit in which it was given to us. Sharing is caring.
 
 

6.25에 생각 한다
 

우리 정치 사회에서 자주 목격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안보관 시비를 빼 놓을 수 없다. 6.25전쟁도 마찬가지다.
 

기습적인 6.25남침을 자행한 北정권을 규탄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을 폐허와 지옥으로 만들었고, 1백여만의 사상자를 낳았으며,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이 수없이 납북되어 무참히 죽어간 6.25전쟁이었다.
 

남한지역 국토의 90%가 모두 공산당에 짓밟혀 적화되었고, 대구와 부산만이 겨우 남아서 대한민국과 자유의 깃발이 간신히 나부끼던 6.25전쟁이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역사의 위기였다. 공업 시설의 거의 전부를 잿더미로 만들고 여러 도시가 초토화 된 민족적 수난은 한국 5천년 역사상 이러한 민족상잔 (民族相殘)의 엄청난 비극은 일찍이 없었다.
 

이 6.25전쟁의 비극은 60년 전의 일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망각 (忘却)을 가져 온다. 시간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인구의 91%의 모두는 이 6.25전쟁의 비극을 체험하지 못했다. 그저 들어서 관념적으로 피상적 (皮相的)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핏줄기를 같이 한 동포이기 때문에 너그럽게 용서하자. 그러나 6.25전쟁의 비극과 공산당의 만행은 결코 잊어 버려서는 안 된다.
 

공산주의는 이미 역사적 실험이 끝난 죽은 사상이다. 정치에는 허구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사상은 위장 (僞裝)된 옷을 입는다. 우리는 그것을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
 

6.25전쟁에서 우리는 자유의 숭고한 가치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도피할 수는 없다. 슬기로운 국민은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배워야 한다.
 

역사는 자유의 발전사다. 우리는 역사에서 자유의 행진곡을 읽는다. 
 

우리는 자유에 대하여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자유에 대하여 용감하게 수호할 책임이다. 
 

자유를 지키려면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옛 아데네의 민주정치가 페리클레스는 “행복은 자유에서 오고 자유는 용기에서 온다.”고 갈파했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는 것이다. 우리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한 때 일제의 지배를 받았다.
 

힘이 없는 민족은 역사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힘이 없는 국민은 망국민 (亡國民)의 비극을 겪게 된다. 
 

힘이 없는 곳에 자유가 없고 무력 (武力)이 없는 곳에 평화가 없다.
 

우리는 환상 (幻想)속에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관념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에서는 부강 (富强)의 가치관이 현실을 지배한다.
 

힘과 용기가 없는 국민은 자유를 쟁취하지도 못하지만, 자유를 주어도 그것을 늠름하게 수호하지 못한다.
 

우리는 개인의 자아실현과 공동체의 발전 및 번영을 위하여 자유를 창조적, 생산적으로 옳게 써야 한다.
 

자유가 범람하면 무질서로 전락한다. 자유가 방향을 상실하면 방종 (放縱)이 되고 만다. 자유는 위대하다. 그러나 결코 만능은 아니다.
 

자유의 구체적 표현은 선택이다. 선택은 옳은 것과 바람직한 것을 선택할 때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 6.25에 우리는 우리의 성숙한 금도 (襟度)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지 또한 자문할 필요가 있다.
 

北의 침략성을 알면서도 큰 소리만 치고 유비무환의 대비태세를 게을리 한 선대의 책임에는 슬쩍 눈을 흐려놓는 우를 범하지 않았는가 생각할 일이다.
 

지난 4월 北이 보여준 악랄한 핵 선제공격의 도발적 위협이나 요 며칠 전 남북 회동을 위한 실무 접촉 결과를 비난하는 상반된 우리 정치계 시각은 반세기 넘는 시련의 순환적 풍토 속에서도 오직 변하지 않는 고질이 아닐 수 없다.
 

한 건의 사안이나 이벤트의 발생으로 촉발되는 정치계의 상반된 논리를 보노라면 사실에 충실한 시시비비에 앞서 정쟁적(政爭的) 적개심에 영일을 갖지 못하는 투쟁적 인상을 지을 수 없는 한국 정치 풍경이다.
 

요컨대 6.25전쟁을 회상해 보는 사안 (史眼)에 적만 나무라고 이쪽의 허 (虛)에는 투시 (透視)가 미치지 않는 안보 논의라면 두고두고 무의미한 관념의 유희요, 이상야릇한 한국적 상식 풍토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우리나라는 역사의 무대가 큰 굉음을 낼 정도로 억세고 힘차게 회전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회전 무대의 기축은 말할 것도 없이 정치를 움직이는 역학 (力學)이다. 젊어지고 새로워지고 씩씩하고 찬란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역사의 무대가 회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무대 위의 등장인물이 새로워진다고 해서 반드시 역사 자체가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라는 지워 버릴 수 없는 엄연한 과거의 토양 위에서 같이 호흡하고 지켜보는 관객과 대중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인 사안 (史眼)이 달라지게 연출돼야 비로소 역사는 새로워지는 것이다.
 

6.25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신생 산업국가, 당당한 민주국가 그리고 장차 한반도 통일 한국의 민족 국가로서의 정치 철학이 새로운 역사 무대 위의 등장인물의 필수 자격이라 본다.
 

이렇게 될 때, 새로운 사회, 정의로운 사회의 객관적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과거를 나무라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일본에 다시 얕잡아 보이지 않게 과거 일제 식민통치를 되새기는 사안 (史眼), 도발과 남침의 위협이 있다, 없다로 외신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는 탕탕한 국방 체제를 보는 눈, 이런 것들이 정치 인식의 기초가 되어야 하겠다.
 

남을 나무라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잘 잘못을 뉘우치는 자세, 나타난 현상보다도 나타나기까지의 원인을 더 진지하게 규명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젊음의 패기를 자랑하기 전에 흘러간 세대가 젊었을 때 겪었던 갖은 고난의 발자취를 애처롭게 되새겨 보고 그 피와 눈물에 외경 (畏敬)할 줄 아는 겸허한 심지 (心志)를 갖춰야 할 것이다.

MUSIC
Hebrew Slaves Chorus
from Nabucco
Giuseppe Verdi
http://www.youtube.com/watch?v=-3Qx_oMH62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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