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패거리 (Factionalism)



Factionalism
Abstract:
 
 
Primordial affinity has made factionalism an inseparable part of Korean life, and Koreans cannot exist without associating themselves with the groups to which they belong.
 
 
Individuals are considered a social or deviant. Political parties, firms, schools, the military, and most social organizations are composed of factions; factions can be said to be the basic unit of social and political interactions.
 
 
Since the mid-1960s, localism or regionalism has served as the most reliable predictor of electoral outcomes.
 
 
Despite modernization, industrialization, urbanization, and structural differentiation, local or regional identity is still regarded as a significant political parameter.
 
 
Regardless of social status, education, and income, Koreans have shown voting behavior bounded by local or regional ties rather than ideology and policy.
 
 
The regional rivalry between the Gyeongsang and Jeolla provinces presents the epitome of negative regionalism in Korean politics.
 
 
The rise of Iik-jipdan (interest or pressure group)is closely related to modernization, structural differentiation, and political development.
 
 
Iik-jipdan in Korea cannot be regarded as being identical to those in the United States or elsewhere.
 
 
Factionalism in Korea takes several forms. The most rudimentary is the Munbeol (kinship clan), which is formed through blood ties.
 
 
In the past, especially the kinship clan was the most important factor.
 
 
And factionalism involves school ties (hakyon). Old-boy networks formed through school ties are not new-they date back to in the old days.
 
 
In contemporary Korea, school ties have become less important, but still serve as a significant variable.
 
 
Regional and local ties are also deeply rooted in Korean society.
 
 
Hometown networks or localism are prevalent and important in social and political life.
 
 
 
패거리
 
 
무리를 뜻하는 패거리와 패거리주의라는 것이 있다
 
 
이 패거리주의는 연고나 정실, 그 밖의 기준으로 형성된 배타적인 집단이 사회적 공적인 원칙을 초월해 집단이익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말 한다.
 
 
연고주의나 정실주의도 이런 패거리주의와 관련된 개념으로 볼 수 있으며, 연고주의는 연고에 의한 정실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정실주의가 인간관계를 주목한 개념이라면 패거리주의는 이의 보다 적극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 내 지역주의도 지역주의의 본질이 패거리주의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주목할 때 이를 일종의 패거리주의라 불러도 큰 이의는 없을 것이다.
 
 
흔히 마피아주의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패거리주의가 갖고 있는 은밀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패거리주의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패거리주의를 비판하면서 반사적으로 등장되는 것이 실력주의 (Meritocracy)이다.
 
 
그런데 프랑스에는 고등교육의 실력주의 시스템 (Meritocratic system)"이라는 것이 있다.
 
 
형식적인 평등에 대한 광범위한 신념은 지배계급이 그 지위를 공개적으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어렵게 했기 때문에 지위 상속 수단의 새롭고 더욱 신중한 사회적 통제를 위한 것이었다.
 
 
사실상, 프랑스에서는 대부분의 대학 졸업장은 상류계급 출신에게 돌아가고, 농민과 노동계급 자식들에겐 거의 가지 않는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회사 간부 자녀들의 58%가 대학에 진학하는 반면 농민의 자녀는 1.4%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돈뿐만 아니라, 교육도 상속되고 유전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패거리주의는 지나칠 정도라지만 그 나름대로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보수적인 서양의 실력주의에 대한 비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기업 조직에서 능력과 실력만으로 승진할 수 없다는 이유가 제기되고 있다.
 
 
인사권자는 인종, , 사회경제적 배경, 거주 지역, 교육 등을 중심으로 자신과의 동질성을 중시하며, 이 동질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배짱이 맞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해야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배짱 맞는 분위기가 큰 장점인 것이다.
 
 
최근엔 이 배짱이라는 말 대신에 코드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벤처산업의 요람이라는 미국의 실리콘 벨리에서 이들 기업을 서로 연결해 주는 네트워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인종이다.
 
 
유대인 기업은 유대인 기업과, 중국인 기업은 중국인 기업과 협동하며 사업을 한다. 족벌과 과히 다르지 않은 특징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네트워크의 기준은 학연이다.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공부하며 알게 된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사업을 하고 있다.
 
 
재벌의 문제인 혈연과 학연이 이곳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벤처의 조직과 연결방식은 한국적인 인간관계와 사회적 신뢰의 기초가 되는 혈연, 지연, 학연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 다음엔 조직 내부의 권력관계도 무시할 수 없으며, 좋은 뜻을 갖고 실력과 능력을 판별하려고 해도 직책에의 승진은 인간관계에 의해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미국 기업들의 능력 평가 항목엔 조직 충실도, 효과적인 리더십, 동료의 인정도, 상사들과의 관계 등과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이런 것은 인간관계와 관련돼 있는 것이며 엄격한 의미의 실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런 경우 무엇을 아느냐보다는 누구를 아느냐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패거리주의는 인맥 망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 조직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이와 같은 문제는 사회 전 분야에 똑 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시장의 크기와 이와 관련된 독과점의 문제다.
 
 
예를 들면, 한국의 서울대 패거리와 미국의 하버드 패거리는 서로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경우 하버드 패거리와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다른 수많은 명문대 패거리들이 존재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서울대 패거리는 사회 거의 모든 분야의 엘리트층에서 그 어떤 패거리의 대등한 견제도 않고 독과점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 인구가 한국의6배가 넘는 반면, 서울대 신입생의 수는 하버드대 신입생 수의 3배가 넘는다는 점을 비교해 봐도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의 패거리주의는 철저하게 잇속 중심이며 대단히 몰인정하다.
 
 
그러나 만난 지 몇 시간 만에도 출신 학교가 같다는 이유 하나로 형 아우하며 뜨거운 인정을 나누는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지역주의도 마찬가지다. 미국 지역주의가 아무리 심하다 해도 그것은 미국 전체에서 볼 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50개의 주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영호남의 지역주의는 나라 전체를 집어삼킨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의 중앙 집중성이 강한 나라에선 거의 모든 면에서 분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MUSIC
Beethoven-Violin Romance
Violin: Ann Fontan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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