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and Others Logic
Abstract
We may address existence in two ways:
a. The altitude of the “I” towards an “It”, towards an object that is separate in itself, which we either use or experience.
b. The altitude of the “I” towards “Thou”, in a relationship in which the other is not separated by discrete bounds.
Human life finds its meaningfulness in relationships. All of our relationships brings us ultimately into relationship with God, who is the Eternal Thou.
Humans are defined by two word pairs: I-It and I-Thou.
The “It” of I-It refers to the world of experience and sensation.
I-It describes entities as discrete objects drawn from a defined set (e.g., he, she or any other objective entity defined by what makes it measurably different from other entities).
It can be said that “I” have as many distinct and different relationships with each “It” as there are “It” in one’s life.
Fundamentally, “It” refers to the world as we experience it.
By contrast, the word pair I-Thou describes the word of relations. This is the “I” that does not objectify any “It” but rather acknowledges a living relationship.
I-Thou relationships are sustained in the spirit and mind of an “I” for however long the feeling or idea of relationship is the dominant mode of perception.
The essential character of “I-Thou” is the abandonment of the world of sensation, the melting of the between, so that the relationship with another “I” is foremost.
There is no world that disconnects one from God, a world of it alone, when I-Thou guides one’s actions.
“One who truly meets the world goes out also to God.” God is the worldwide relation to all relations.
When we find ourselves living selfishly or giving little regard to others, we should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to continue drawing us close to who He promises we are-the ultimate I-Thou relationship.
As we work to be other centered, we must learn how to love the difference between our spouses and us.
나와 남의 논리
사회의 변혁에 맞춰, 또는 요즘 같이 정권 교체기에는 무언가 새로움을 갈망하듯 국민의식의 개조와 같은 바람이 분다.
민주화 시기, 1980년대에도 정부 주도의 이런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이 현상은 민족역사상 처음으로 이러한 말과 범국민적인 운동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의식개조라고 할 때, 개조되어야 할 현재의 의식이 바람직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이런 국민적인 운동에는 국민 전체가 논리적인 과정의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은 어떤 결론은 잘 내릴 줄 아는데, 그 결론을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납득이 갈 만한 이론으로 차근차근하게 설명하는 데에는 약하다는 점을 말하곤 한다.
우리 민족의 일상생활에서 국민적인 의식 가운데 남이라는 존재는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남이 욕 한다”, “남이 무엇이라 할까 봐”의 경우처럼, 남이 나의 가치관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점은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음미해 보아야 할 대상이다.
이것을 따져 보면 자학적 (自虐的)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남 걱정을 하다가 나란 존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만을 지나치게 여겨 남을 완전히 무시하는 의식도 팽배해 있다. 생각해 보면 흥미 있는 모순이다.
남과 나 사이에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이면 한국사람 만큼 예의 바른 국민도 드물다.
반면에 남과 나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으면 그 “남”은 그저 “남”으로 그쳐 버린다.
“남이야 죽건 말건”이라는 말과 의식이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었고, 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하면 그러한 의식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해명할 만한 가치 있는 사안이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한국 사회생활에서 남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존재가 되어 있다.
“나”란 것을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까 이 “나”가 “남”에게 또 하나의 “남”이 되는 격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말 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니 민주제도니 하는 것보다도 민주의식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민주생활의 정착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민주의식에서는 “나”란 것이 제일 중요하다.
건전한 사상과 의식에서 나오는 “나”라는 개념이 필요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남”의 개념도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와 “남” 사이의 연관성이 생기고, “나”와 “남”이 “나”와 “너”로,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와 당신 (I and Thou)"으로 승화 (昇華)된 사회적, 정치적 연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민적 의식개조와 같은 캠페인은 “남”을 강조하는 의식이 중요하다.
의식개조캠페인 같은 국민적 운동은 개인의 도덕 윤리적인 개조와 향상도 그 목표가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공동체 속의 공중도덕과 윤리를 겨냥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남”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 나라의 도덕과 윤리, 그리고 정치, 사회생활의 바탕이 되는가를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나의 남”, 그리고 “나의 당신”이 되어야 하며, 결국, 우리라는 모든 인간관계는 영원한 “그대”와의 관계로 귀결되는 것이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남”이라는 존재를 알고, 그 “남”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결국 “나는 남이요, 남은 나”라고 할 정도의 의식이 새삼스럽게 한국인의 의식에 자리 잡을 것이다.
MUSIC
Toselli's Serenade (Nightingale Serenade)
Andre R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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