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1일 월요일

北 정권의 변화를 묻다 (Question a Change in the North)




Question a change in the North
Abstract:

Social change is defined as a change of social group or the basic structure of society.
 

Reform and opening-up for North Korea's change usually used to termed as the general core concept.
 

North Korea's change, depending on the dimension, can be divided as a systemic, institutional and non-institutional, socio-cultural and depending on the direction the prospective changes and degenerative changes.
 

The change in outlook can be found at the structural conditions, selection of members and the external intervention regard to change drivers and change restraints.
 

North Korea's structural problems according to the overall impasse caused by international isolation due to contradictions of the socialist system itself and socialist block in the dismantling has been functioning as the structural conditions of the change.
 

The North Korean people has overcome the crisis through the marketization. As a result, external information flows in and thereby increasing floating population, values and state of consciousness of the inhabitants are changing.
 

Structural factors that inhibit change come from the North Korean regime itself of contradictions, and especially, a great concern of unification by absorption in the Republic of Korea.
 

North Korea in time of inter-Korean exchange and cooperation in the past refused prospective systemic, institutional change.
 

Following North Korea's open-door has been utilized as a means of earning foreign currency, rather than to promote true openness.
 

For structural change in North Korea, the situation needs to change. The situation requires structural change in North Korea, and the North Korean people have already started to change.
 
 

北 정권의 변화를 묻다
 

사회변화 (Social change)는 사회적 집단이나 사회의 기본구조의 변경으로 정의된다.
 

사회변화는 상시 발생하며, 근대사회에서는 특히 그 변화 속도가 빨라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민주화도 이에 포함된다.
 

이런 사회변화에 대한 일반적 정의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정의는 관찰 시각에 따라 다르다.
 

北 정권의 변화에 대한 인식도 대체로 개혁 (Reform)과 개방 (Openness)을 핵심개념으로 활용하고 있다.
 

변화를 의미하는 北 정권의 구조적 상황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北 주민은 이미 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체제의 성격상 당장 감지할 수 있는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北 정권이 변화를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北의 변화는 그 차원에 따라 체제적, 제도적 및 비제도적, 사회문화적으로, 그리고 방향에 따라서는 전향적 변화와 퇴행적 변화로 구분할 수 있다.
 

변화에 대한 전망은 변화 촉진요인과 변화 억제요인의 구조적 조건과 구성원의 선택, 그리고 외부의 개입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변화 촉진요인>
 

첫째, 1995년의 총체적 난국 (Overall impasse)의 봉착으로 식량난, 에너지난, 외화난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인센티브가 결여된 경제는 노동의욕의 상실과 생산성 저하를 초래했다.
 

화폐개혁의 실패는 주민생활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어 당국에 대한 불신을 고조시켰으며,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감소와 유엔의 제재는 경제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경제상황의 악화는 사회적 이완과 체제의 정당성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주민생활의 시장화와 외부문화의 유입, 그리고 의식구조와 가치관의 변화뿐 아니라, 배급이 중단된 상황에서 사회통제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北의 이 구조적 문제는 사회주의체제 자체의 모순과 사회주의권의 해체에 따른 국제적 고립이 자초한 총체적 난국으로 변화의 구조적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北 주민들은 시장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동인구가 증가하며 외부정보가 유입되고 주민들의 가치관과 의식도 바뀌고 있다.
 

지금 北의 이 밑으로부터의 변화가 위로부터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체제적 변화의 실현에는 아직 한계를 보이고 있다.
 

셋째, 北에 대한 외부사회의 인식과 정책도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우리정부의 역대 대북정책도 北의 변화를 주요목표로 설정해 왔다.
 

국제사회의 관심도 크며, 미국은 北의 경제난 극복은 물론, 핵문제 해결과 인권상황의 개선 등 현안의 해결을 위해 北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변화 억제요인>
 

첫째, 변화 억제의 구조적 요인은 北 체제 자체의 모순과 특히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의 우려이다.
 

김일성 일가는 주민에 대한 정치교육을 통하여 신적 (神的)존재로 군림해 왔다.
 

개혁과 개방은 외부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외부정보의 유입은 기만을 기반으로 한 최고지도자의 정당성을 훼손하게 된다.
 

北 정권은 김 씨 일가의 세습체제 유지를 위해 사상을 통제해야 하며, 이는 곧 변화를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개혁은 주민들의 자율성 신장과 사회이동의 원활화를 의미한다.
 

피지배층은 개방체제에서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지배층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변화에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의 우려는 北 정권의 변화를 억제하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의 하나이다.
 

지난날의 남북교류ㆍ협력시기에도 北 정권은 전향적, 제도적 변화를 거부했다.
 

이것은 北이 의미하는 남북관계 개선은 과거의 대립적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보다 많은 원조를 받는데 있음을 확인시킨 것이다.
 

둘째, 北 사회의 의식주 문제는 당국의 공급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경제활동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 있다.
 

이 상황은 주민생활의 시장화 (Marketization)이며, 밑으로부터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어 어느 정도 진척된 상태를 말 하는 것이다.
 

또한 주민들의 가치관도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집단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최근에는 물질주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가족주의가 형성되고 있다.
 

셋째, 北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지만, 北은 핵무기 보유에 집착하고 체제유지를 위해 인권 유린도 강행한다.
 

체제의 성격상 항상 “적”을 만들어 그 적대적 관계를 통해 내부체제 결속을 하는 소위 “갈등의 기능 전략 (The strategy of conflict function)"을 구사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北 지도층도 변화의 필요성은 상당부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력동원방식의 계획경제로는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어렵고, 자력갱생 (自力更生, Autarky)방식도 내부자원의 고갈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北의 전체주의적 성격은 자발적 변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망>
 

北의 변화에 대한 실마리는 과거 北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이후 北은 변화의 구조적 조건이 성숙되었다.
 

이른바 총체적 난국에 직면하면서 체제를 지탱하던 중앙공급 시스템도 무너졌다. 이런 구조적 상황에서 변화를 시도한 것은 北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총체적 난국을 시장화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주민생활의 시장화는 유동인구의 증가와 정보의 유통도 증대시켰다.
 

그러나 北 정권은 체제위기와 주민들의 변화에 적대적으로 대응했다.
 

北은 외부자원의 동원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1984년의 합영법 (合營法)제정, 1991년 나선경제무역지구 설치 등 외부자원의 동원노력이 그것이다.
 

특히 2002년에 공식화된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는 우리의 자원을 동원하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北의 개방정책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개방정책은 진정한 개방을 도모하기 보다는 외화벌이의 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따름이다.
 

北의 대남전략은 여전히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변화가 있다면 우리를 이용의 대상으로 활용하는 전술을 가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대화와 개방은 우리의 선의를 악용하려는 전술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北이 제시하는 “민족 공조” 개념은 정치적 공세이며, 우리 내부에 혼란을 조성하는 수단이다.
 

또한 北이 표방하는 선군정치는 명령과 억압, 그리고 통제체제를 대표한다. 이런 의미에서 체제적, 제도적 차원의 전향적 변화 전망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맺음 말>
 

北의 변화를 위한 구조적 상황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北 주민들은 이미 변화를 시작했다.
 

변화 여부와 속도, 그리고 그 폭은 결국 北 자체가 결정하게 될 것이며, 변화 촉진요인과 억제요인 간의 균형 (Trade-off)의 산물이 될 것이다.
 
MUSIC
Eine Kleine Nachtmusik Allegro
Mozart
 









 

2014년 4월 11일 금요일

北의 핵 및 유도탄 위협 평가 (Assessment of North Korea's Nuclear and Missile Threat)




Assessment of North Korea's Nuclear and Missile Threat
Abstract:
 

Experts and media reports assert that North Korea has developed several nuclear devices but not yet mastered the ability to miniaturize the warhead nor deliver it via missile.
 

Based on this benign assertion, policy makers presume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still have several years to diplomatically constrain North Korea's nuclear program, pursue timidly incremental sanctions, and prepare military defenses.
 

However, this analytic construct is flawed since, it gives insufficient weight to North Korea's lengthy collaborative nuclear and missile relationship with Pakistan, a nation that all experts assess already has nuclear weapons deliverable by missile.
 

North Korean scientists provided critical assistance to Pakistan's missile programs in return for reciprocal uranium-based nuclear weapon expertise, technology, and components.
 

Moreover, analysts have frequently underestimated North Korea's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due to ideologically-driven analysis, political expediency, and the belief that a technically backward nation could not have achieved the necessary breakthroughs.
 

The potential for continued regime refinement of its nuclear and missile arsenal was often discounted until confronted with irrefutable evidence.
 

North Korea has likely made greater progress than perceived, if not already achieved, warhead miniaturization, the ability to place nuclear weapons on its short-range missiles, and a preliminary ability to reach the United States.
 

Pyongyang began its plutonium-based nuclear weapons program in the 1960s and now likely has six to ten nuclear weapons. It also began in the late 1980s to develop a second, parallel path to acquiring nuclear weapons using uranium.
 

Pakistan provided a nuclear package deal to Pyongyang including warhead designs, centrifuges, and nuclear fuel.
 

Pakistan assistance increased dramatically in 1997 when Pakistan began paying for North Korean missiles by sharing nuclear weapons secret.
 

Pakistan provided information to North Korea on building and testing uranium-based nuclear weapons and helped Pyongyang conduct a series of "cold test," simulated nuclear explosions, using uranium.
 

As such,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face a greater threat today than is widely construed.
 

A. Q. Khan described how, in return for Pakistani assistance to North Korea's centrifuge program, "North Korea would help Pakistan in fitting the nuclear warhead into the Ghauri missile."
 

Khan's assertion is important since analysts continue to assert that North Korea has not yet developed the ability to mount nuclear warheads on its No Dong missile while unequivocally accepting Pakistan has done so.
 



北의 핵 및 유도탄 위협 평가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들은 北 정권이 몇 개의 핵 폭발장치를 개발했으나 탄두의 소형화 능력이나 유도탄을 통한 투발 능력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평가한다.
 

매스미디어보도는 상습적으로 北의 유도탄은 아직 미국본토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순진한 결론을 근거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과 동맹국들은 아직 몇 년 동안은 외교적으로 北 정권의 핵 프로그램을 억제할 수 있다면서 소심하게 제재만을 추구하고 군사적 방어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분석구조는 北 정권의 파키스탄과의 오랜 핵 및 유도탄 협력 관계의 비중을 불충분하게 반영한 결함을 나타내고 있다.
 

파키스탄의 모든 전문가들은 北 정권이 이미 유도탄 투발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北의 과학자들은 파키스탄의 유도탄 프로그램에 중요한 지원을 제공했으며, 상호 답례로 우라늄기반 핵무기 노하우와 기술, 그리고 부품을 챙겼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이데올로기 중심 분석과 정치적 편의 및 기술적 후진국은 필요한 획기적 발전을 성취할 수 없다는 소견으로 北의 핵 및 유도탄 프로그램을 자주 과소평가해 왔다.
 

北의 핵 및 유도탄 무기의 계속적인 정제 (精製)의 가능성은 반박 할 수 없는 증거에 직면할 때까지 자주 무시되었다.
 

회의론자들은 처음엔 北의 플루토늄기반 핵무기 증거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시리아 원자로 건설 개입, 그리고 장거리 유도탄 개발능력을 일축했다.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은 그것이 의심할 바 없이 검증될 때까지 정치적 동기 때문에 무시되었다.
 

北 정권은 탄두 소형화와 핵무기의 단거리 유도탄 장착, 그리고 미국본토 도달 예비능력 등을 이미 성취하지 않았더라도, 세계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진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오늘날 널리 해석되고 있는 것보다 큰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핵 프로그램>
 

北은 플루토늄기반 핵무기 프로그램을 1960년대에 시작했고, 현재 6~10기의 핵무기 보유의 가능성이 크다.
 

北은 비록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하지 않기로 한 여러 협정에 서명했지만, 1980 년대 후반 우라늄을 사용한 비슷한 경로의 둘째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아버지 A. Q 칸은 탄두 설계, 원심분리기, 그리고 핵연료를 포함한 핵 패키지 거래를 北에 제공했다.
 

이 탄두 설계는 그가 리비아에 제공했던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이며, 北의 노동 유도탄이 투발할 수 있는 중국 디자인 핵탄두 생산을 위한 단계별 세부지침도 포함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원조는 北의 유도탄에 대한 지불 시기인 1997년에 핵무기 비밀공유로 절정에 달했다.
 

CIA국가정보평가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우라늄기반 핵무기 제조와 시험에 관한 정보를 北에 제공했으며, 일련의 우라늄사용 모의핵폭발 “콜드테스트 (Cold test)”의 시행도 도와주었다.
 

그리고 미국 위성으로부터 핵 연구를 숨기는 방법도 조언해 주었다.
 

2010년, 평양은 방북 중이던 미국 과학자에게 2,000기의 원심분리기를 보여줌으로써 우라늄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그때 그 프로그램의 범위와 정교함은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北은 추가적인 비밀 우라늄농축시설의 보유 가능성이 있으며, 최소한 10,000기의 원심분리기용 충분한 부품을 구입한 것 같다.
 

2013년 2월 핵 시험은 우라늄기반 무기인 것으로 의심되나 검증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北은 그들의 핵무기를 증강하는 브레이크 아웃 기능을 갖게 된 것이다.
 

2013년 11월, 김 관진 국방장관은 北이 우라늄기반 핵무기 제조 능력을 갖고 있다고 증언했다.
 

<유도탄>
 

北은 1970 년대 후반 이집트로부터 획득한 소련제 스커드 B 유도탄을 분해공학 방법으로 유도탄 개발을 시작했다.
 

北은 이 기술을 외삽 (外揷)하여 사거리 연장 스커드 B 유도탄과 노동 유도탄 및 대포동 탄도탄을 제조했다.
 

北은 노동 유도탄을 이란과 파키스탄에 수출함으로써 이들 나라의 Shehab 및 Ghauri 유도탄에 기초를 제공했다.
 

이란과 파키스탄의 군사 퍼레이드에 등장한 최초 유도탄은 전적으로 北에서 제조된 것이었다.
 

1992년 北은 이란에 5억 달러를 제공하는 핵무기 및 노동 유도탄 공동개발협정을 체결했다.
 

A. Q. 칸은 北의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에 대한 파키스탄의 원조의 보답으로, “北은 Ghauri 유도탄의 핵탄두 장착을 도와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칸의 이 주장은 중요하다. 北은 아직 노동 유도탄에 핵탄두를 장착할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계속 주장하면서도 파키스탄이 한 것은 명백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北은 현재 대규모의 탄도탄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800기의 단거리 스커드 유도탄과 300기의 노동 중거리 유도탄, 그리고 50기의 무수단 탄도탄을 작전배치하고 있다.
 

스커드는 한국을 위협하고, 노동은 일본 전역을 타격할 수 있고, 무수단은 오키나와 및 괌의 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 그리고 대포동 계열 탄도탄은 계속 개발하고 있다.
 

北 국방위원회는 2012년 10월, 그들의 전략로켓전력은 한국 및 일본, 괌, 그리고 미국본토의 미군 기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사정권에 두고 있다고 경고했다.
 

北은 2013년 2월의 핵 시험은 유도탄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화 및 경량화”핵무기라고 발표했다.
 

北은 미국이 과거에 했던 것과는 달리, 경량화 및 소형화된 다양한 정밀 핵 타격으로 서울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마들겠다고 위협했다.
 

여기서 “다양화”는 北이 플루토늄과 우라늄무기 모두를 개발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제 미국과 동맹국들은 더욱 더 北의 핵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2013년 3월, 미 합참부의장 제임스 Winnefeld는 北의 KN-08이 미국 본토까지의 사거리를 갖고 있다고 증언했으며, 4월 오바마 행정부는 점증하는 北의 유도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알라스카 유도탄 방어체계에 추가할 14대의 요격기 설치 삭감결정을 파기했다.
 

그리고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NAADC)찰스 야곱 사령관은 “北의 명백한 야망”은 미국 본토에 대한 유도탄 위협이 이론으로부터 실제로 다가왔다.“고 증언했다.
 
MUSIC
Liebesleid(사랑의 슬픔) and Liebesfreud(사랑의 기쁨)
Fritz Kreisler
Violin: Joshua Bell
 

2014년 4월 1일 화요일

중국의 대북관계 변화 모색 (China's Exploring to Change Over North Korea)



China's Exploring to Change Over North Korea
Abstract:

China is exploring whether to change tactics in engaging with North Korea. The development comes as the foreign ministry in Beijing sent two delegations to Pyongyang in less than a month.
 

This move is said that aimed at seeing whether North Korea still holds China as its staunchest ally.
 

The motives behind Pyongyang's actions over the past year have mystified many in the region, including China.
 

Contact between Beijing and Pyongyang under Kim is not as high profile as under Kim Jong-il.
 

And the execution of Jang has triggered worries that North Korea no longer highly regards its ties with China, said Cai Jian, deputy director of Fudan University's Centre for Korean Studies.
 

The visit to Pyongyang by the Chinese delegations-one headed by Deputy Foreign Minister Liu Zhenmin-will help Beijing gauge whether Pyongyang is still politically stable in the wake of the purge.
 

They also signal that Beijing may seek changes in how it engages North Korea.
 

The International Department of the Communist Party is the main organization behind cultivating ties between Beijing and Pyongyang, but Cai said the foreign ministry may now become more involved in contact with North Korea.
 

Communications with the International Department usually stresses mor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uling parties, and that usually conveys a sense that the two are brothers or allies.
 

With the involvement of the foreign ministry, it is more like nation-to-nation routine exchanges, stressing less on brotherly ties.
 

And it is said that "nation-to-nation" ties would allow Beijing to deal with North Korea in a more "normal" way, focusing more on China's national interests instead of heavily emphasizing ideology.
 

That would clearly spell out under what conditions Beijing would continue to provide aid to Pyongyang.
 

China is very upset with the Kim. One of the accusations made against Jang was that he sold Pyongyang's valuable resources to another country, widely believed to be China.
 

Before the execution, Pyongyang also put China in an embarrassing spot by launching nuclear tests, raising doubts over whether Beijing still held significant influence over Kim's regime.
 

North Korea will make provocative moves again when it has other strategic aims.
 
 

중국의 대북관계 변화 모색
 

지금 중국은 김 정은의 집권 이후 급하게 허둥지둥 날뛰는 北 정권과의 관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 한다.
 

이 새로운 사실은 중국 외교부가 아직도 北 정권이 중국을 충실한 동맹국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에 두 번 대표단을 평양에 보냄으로써 표면화되었다.
 

지난 해 핵 시험을 비롯하여 주목할 만 한 장 성택의 처형 뒤에 숨은 동기는 중국을 포함하여 동북아지역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많은 중국학자들과 정부의 두뇌집단들은 北의 사태에 관해 캄캄했었다는 사실을 이구동성으로 전하고 있다.
 

김 정은의 평양과 베이징과의 접촉은 김 정일 때만큼 활발하지 않다.
 

복단대학 (復旦大學)한국학센터 부소장 카이 지안 (加州建)은 北의 중국과의 경제참여의 중심인물인 장 성택의 처형으로 北과 중국 간 관계에 금이 생겼다고 말한다.
 

외교 부부장 리우 젠민 (劉振民)이 이끈 대표단의 방북은 숙청에 따른 평양의 정치적 안정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베이징이 대북관계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국제부는 중ㆍ北 관계를 조종하는 핵심기구다. 하지만 이제는 외교부가 대북관계 조율에 더 관여하고 있다.
 

이 달라진 근본의 함의 (含意)는 주목해야한다. 중국공산당 국제부는 통상적으로 北의 노동당과의 관계를 “형제나 동맹”의 의식으로 강조해 왔다.
 

그러나 외교부의 개입은 중ㆍ北 관계를 형제관계보다 “국가 대 국가”의 일반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北京大學의 국제관계 교수는 “국가 대 국가“관계는 중국이 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념을 강조하는 대신 국가이익에 집중하면서 北 정권을 다루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앞으로 중국이 어떠한 조건으로 北 정권을 원조할 것인지를 분명히 말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중국은 김 정은에 무척 분개하고 있다. 중국은 김 정은이 北의 경제를 더욱더 개방하리라 기대하지만 이런 기대를 더 이어갈지 알 수 없다.
 

장 성택에 대한 기소 내용에는 평양의 귀중한 자원을 “중국을 지칭”하는 다른 나라에 팔아먹었다는 죄목도 있다.
 

장의 처형 전에, 北은 핵 시험을 감행하여 중국이 아직도 김 정은 정권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함으로써 중국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최근 평양은 그들의 핵 프로그램 논의를 위해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6자 회담에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복귀할 수 있다고 말 했다.
 

하지만 공산당 중앙당학교의 한 국제전략 연구교수는 평양의 진의는 예측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北 정권은 경제 원조와 그들의 핵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도발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며, 다른 전략적 목적이 있으면 또 다시 도발한다고 부연한다.
 

현재 중국은 北 정권에 대한 내부 사정 파악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北에 관한 정보를 비정부기구와 한국의 정치인에 의존할 정도라고 말한다.
 

北이 중국에 드러내는 상황은 너무 보잘것없어 중국은 평양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대북전략수립의 어려움이 크다는 고충도 나오고 있는 것이 요즘의 베이징 정가의 소식이다.
 
 MUSIC
Beethoven's Piano Concerto No.5 Emperor
Piano: Krystian Zimerman
Wiener Philharmoniker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