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ding a Ritual and Votive Offerings
Abstract:
In Korea society, we have a proverb that has been delivered from the old: say that, a Buddhist monk not interested in performing a memorial rite but only thing of interest is votive offerings.
The spirit of the proverb describes well that "Do not put the cart before the horse."
Anyway, this proverb is mocking a corrupted monk, its implications are not limited to the fallen monk only, but also warning against the inverted attitude of life that becoming root and peripheral backward in general.
The daily life of a Buddhist monk is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a lay person.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 two reflects a symbiosis that revolves around the concept of merit.
All human activities in the field of politics and the economy have to adhere to the duties of its own, especially, the faithful do more in religion and education.
Education in Korea has fallen into a temptation to become a seemingly tawdry causes of a prestigious university and popular courses which makes let the whole process of school education and social climate of symptoms rushing toward this goal.
This suggests it would be the very example of the old proverb of holding a memorial rite and votive offering.
As a general, it is said that a foundation of education to be based on a discipline of sincere personality, and human education as well as holistic education, but this practice does not merely say.
Without sticking to the fundamental and duties, no one could obtain the substantial fruits.
염불과 잿밥
우리 속담에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말이 있다.
염불 (念佛)은 제사이고 잿 (齋)밥은 제물이다. 승려가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제물에만 맘이 있다면 그 승려는 이미 승려가 아니라 시중 잡배나 다름없는 사기꾼이다.
그리고 그 제사는 제사가 아니고 신에 대한 모독이고 신자들에 대한 사기이다.
이 속담이 어느 시대에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생긴 것 같지 않다. 권력에 탄압 받는 종교는 타락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속담은 타락한 승려를 빙자한 것이지만, 그 함의 (含意)는 결코 타락한 승려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근본과 말초 (末梢)가 전도 (顚倒)된 생활 태도 일반을 경고하는 격언이다.
이 격언이 오래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우리 정신 속에는 근본을 정성껏 가꾸지 않고 열매만 따먹으려는 잘못된 기질이 깊이 스며들어 있지 않나 생각 된다.
우리나라 종교계를 살펴보면 불교도 기독교도 그 근본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케 하는 현상이 적지 않다.
개신교 및 천주교 신자가 1천 3백만을 넘고, 불교 신자도 1천만을 넘는 전체 인구의 54%의 통계 숫자인데, 이처럼 많은 종교인구라면 성직자의 수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들이 잿밥에 보다 자기 종교의 근본에만 맘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저절로 밝고 건전한 도덕적인 사회가 되어 있을 터인데,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우니 종교 지도자들과 신자들의 관심이 잿밥 쪽에 더 관심이 크다는 증거가 아닐 런지 모르겠다.
이 염불이니 잿밥이니 하는 불교의 용어 말고도, 예수님은 산상수훈 (山上垂訓)에서 잿밥에 맘을 두지 말고, 염불에만 전념하면 잿밥은 저절로 뒤따르게 마련이라는 말과 다를 것 없는 교훈을 주었다.
1차적 관심을 잿밥에 두지 말고 근본과 본분에 두어야 하는 것이 어찌 종교뿐이겠는가.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인간 활동은 그 자체의 본분에 충실하고 다른데 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종교와 교육이 더 그래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이 명문대학이니 인기 학과니 하는 허울 좋은 명분에 홀려서 학교 교육의 전 과정과 사회 풍토가 이를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는 현상은 염불에는 전혀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쏠린 본보기이다.
교육의 근본은 성실한 인격의 도야 (陶冶)이건만 인간 교육, 전인 (全人)교육은 말뿐이고 맘은 온통 잿밥에만 있다.
대학을 양파에 비유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은 사회라는 토양에 심어진 양파와 같다는 것이다.
양파의 바깥 껍질에 도구적 가치를 갖는 의학, 법학, 공학 등이 있고, 그 안에 사회과학이 있고, 세 번째에 물리학, 생물학이 있고, 제일 중심에 인문과학이 있다.
단기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직업교육이니 기술교육을 바라게 되나, 대학은 한 나라의 문화적 정신적 기반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 인문교육이 경시되는 경향은 위험하다.
이 뜻은 학문의 분과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 큰일 난다는 말이다.
우수한 젊은이들이 도구적 가치 분야에만 몰리고 기초과학이 변두리로 밀려나는 위험한 경향은 염불에 보다 잿밥에만 맘이 있는 오늘의 우리 국민 모두의 정신적 태도의 반영이다.
근본과 본분에 충실치 않고는 충실한 열매를 얻지 못한다. 학술연구의 기초 없는 산업사회의 건설이란 한낱 백일몽이다.
불황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곧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는 근본 이유는 열매 따기에 급급하여 근본과 기초 다지기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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