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1일 목요일

주한미군 문제 (USFK Issue)



United States Forces, Korea (USFK)Issue
 
Abstract:
 
Our nation's history for resistance to foreign forces in modern history, dates back to Heungseon Daewongun days, regent of Joseon during the minority of King Gojong in the 1860s and until his death a key political figure of late Jeoseon Korea, who displayed violent resistance surrounding the opening.
 

Since then, the Republic of Korea, the world's poorest country, achieved economic growth through the United States' direct and indirect supports and the majority of Koreans think the United States they should appreciate as a friendly country.
 

However, since the 1980s, there are individuals and groups, part of the axis of college students that to see the United States as an object of overthrowing and therefore claiming of withdrawal of U. S. forces.
 

For a general analysis of this logic is as follows;
 

a, Caused by the presence of U. S. forces in civil and criminal issues, and the case of its unreasonable process.
 

b, It's the case of nationalist thinking to recognize U. S. forces as the key forces to obstruct the voluntary unification.
 

The next important thing is that the United States' acquiescence of the past military coup and the Kwangju massacre, and the approval to win their power gave frustration and anger to Koreans eager to democracy.
 

Korea society in 1985, with variety of severe social control, it started with outside of the institutional to burn, the discussion of the negative impact that pertaining to the awareness of the United States and its attitude toward two Koreas.
 

At the time, the university has many students reading and discussing illegal books, such as Marx, Lenin, and Kim Il Sung's works, which is the so-called "Radicalization" that become generalized.
 

Radicalization (Radicalisation) is a process by which an individual or group comes to adopt increasingly extreme political, social, or religious ideals and aspirations that reject or undermine the status quo or reject and/or undermine contemporary ideas and expressions of freedom of choice.
 

The 386 Generation is a term that refers to the generation of Koreans born in the 1960s who were very active politically as young adults, and instrumental in the democracy movement of the 1980s, and are more left-leaning politics of the generation.
 

United States Forces, Korea (USFK), is a sub-unified command of United States Pacific Command (USPACOM).
 

USFK is the joint headquarters through which U. S. combat forces would be sent to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s (CFC) fighting components-the combined ground, air, naval, marine and special operations forces component commands.
 
It was established on July 1, 1957.
 
 

주한미군 문제
 

우리 근대사에서 외세에 대한 우리민족의 저항역사는 개항 (開港)을 둘러싸고 심한 거부감을 표시했던 흥선 (興宣,이름 李昰應)대원군 (大院君)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과 함께 신탁통치를 둘러싼 찬탁 (贊託)과 반탁 (反託)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의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각각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세계 최하위빈국인 한국은 미국의 직, 간접적인 지원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함으로써 한국인 대부분은 미국을 고마운 친구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고마운 미국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1980년대 이후 일부 대학생들을 축으로 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존재한다.
 

이 논리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을 살펴본다. 먼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유로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주한미군의 존재로 생기는 민, 형사상의 문제와 그 처리과정의 불합리성의 경우이다.
 

둘째, 주한미군을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가로막는 핵심세력으로 인식하는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의 경우다.
 

더 말할 필요 없이,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은 서로 혼재 (混在)하며, 상황 변동에 따라 대응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미국이 과거 군부쿠데타와 광주학살사건을 묵인하고 권력쟁취를 승인한 것은 민주화를 열망하던 많은 한국인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주었다.
 

이를 계기로 그들에겐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강대국으로 전락하였다.
 

여러 가지로 사회적 통제가 심했던 1985년 한국사회에선 미국에 대한 인식 및 미국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관한 논의가 제도권 밖에서 불붙기 시작했다.
 

이것은 과거 소수 지식인들의 머릿속 에만 있던 생각이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좌파세력과 민주화 운동세력으로 급격히 대중화 한 것이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불법서적인 마르크스, 레닌, 김일성의 저작물을 읽고 토론하는 이른바 “의식화 (Radicalization)”가 일반화되었다.
 

오늘날 386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 시절 이런 사회문화 속에서 대학을 다니고 시위에 가담했던 사람들이다.
 

당시 대학에 교련수업이 있었던 그 시절, 분단현실을 대학생들에게 제도적으로 학습시키려던 정부에 맞서 대학생들은 “미국용병학습”이라며 거부하곤 했다.
 

더욱이 5공화국 시절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자긍심을 높이는 상승효과를 일으켜 민족의 장래에 대한 비전을 찾으려는 조직적인 노력이 경주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서적과 北의 이념서적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제국주의와 수탈국의 관계에서 한국사회의 성격을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 문제는 당시 운동세력 내에선 중요한 의제였다. 한국사회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 전망과 전략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화운동세력은 당시의 한국사회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는 측과 식민지 반봉건자본주의로 보는 쪽으로 나뉘게 된다.
 

이 사회인식 차이로 운동세력은 민중민주주의 (PD)계열과 민족해방 (NL)계열로 분파되었다.
 

이 시기 발족한 전국대학생대표자 협의회 (전대협)의 의장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방향은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당시 운동세력의 주도권은 NL계열이 차지함으로써 통일운동이 강화되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보다는 외세의 부정적 역할에 대한 반발, 쿠데타정부에 대한 저항심, 그리고 통일에 대한 “순진한 접근”으로 많은 부분에서 北의 선동구호와 구분하기 힘든 수준의 주장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극렬하게 유행했던 데모구호의 하나가 “반미반제 양키 고 홈”이었다.
 

이것은 北의 반미구호와 일맥상통하여 운동세력이 北과 같은 입장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어처구니없는 형세가 되었다.
 

1987년 6.10항쟁으로 성취한 민주화와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의 새로운 탈냉전 세상은 운동세력을 와해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반미감정은 2002년 두 여중생의 장갑차사고의 처리과정의 한, 미관계의 불평등과 전쟁위기감을 조성하는 미국의 고압적 北핵 대응, 그리고 한, 미 통상의 피해의식 등과 잠재했던 미족주의 의식의 재현으로 복합적으로 외연화 (外延化)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정세와 주변 상황의 변화에 대처하는데 주한미군의 철수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로 평화와 통일이 오는 것은 아니다.
 

주한미군의 미래는 통일의 과정에서 한, 미 양국과 관련 주변국들과 외교적으로 논의 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현실은 주한미군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의 미래가 낙관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주한미군의 존재가 갖는 순기능을 무시할 수도 없다.
 

한국뿐 아니라, 주변국들은 北 정권을 제외하고 주한미군의 존재에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나라도 없다.
 

이것은 나름대로 주한미군의 역할에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존재에 익숙하고 주한미군이 빠진 공백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설령 지금 미군이 한반도를 떠나더라도 미국의 동북아 영향력엔 그다지 큰 손상은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주국방의 틀 속에서 미군이 한반도에서 물러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주한미군 철수가 모든 문제 해결의 결정적 단초라고 보는 인식은 무리한 생각이다.
 
MUSIC
The Washington Post
John Philip Sousa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통일 논리 (Logic of Unification)


Logic of Unification
Abstract:
 
The most prevailed perception among the Korean people for inter-Korean relations in the past, came from the direct experience of Korean War and affected therefrom the subsequent education, as well as the propagandas accordingly, and a practical experience that is derived from the continued military tensions between North and South led to the overwhelming dominant trend.
 
In our society, throughout the war, and the division there have been in existence the collective obsessions among the people that have to overcome North Korea's desires by force by means of a strong national power.
 
Inter-Korean relations have not progressed sustainably, they have merely undergone repeated advances and setbacks.
 
Relations between two Koreas have experienced a vicious cycle in that they advanced through dialogue-driven resolution of issue and implementation of various agreements only to soon regress again due to North's provocations and threats.
 
Through and substantial preparations for the coming era of unification require efforts by all of society.
 
Unification is, after all, an integration of people. In this regard, uniting people's hearts is a more important and challenging task than consolidating territory and systems.
 
The people's strong interest in unification and unity are the most critical factors for laying a foundation for peaceful unification and realizing a unified Korean Peninsula.
 
This poses a challenge, because the nation has been divided for so long that the people are increasingly indifferent and skeptical about unification.
 
Therefore, stepping up the promotion efforts on unification to build a public consensus on it is important, indeed.
 
Similarly, to achieve an unified Korea on the peninsula, we should have a logic of unification that can be implemented toward in the our desired direction.
 

통일 논리
 
지난날 남북 관계 인식의 대부분은 6.25전쟁의 직접적인 경험과 홍보, 교육 등 간접적인 영향과 계속되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에 따른 경험적 실제가 대세를 지배・압도하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
 
피부로 느끼는 긴장관계 속에서 한반도 통일 주장은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과 같은 특별한 시기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일부 집단의 전유물이었다.
 
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우리사회에는 우리 힘을 키워 北 정권의 무력야욕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집단적 강박관념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 붕괴와 北핵 상황이라는 위기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인식의 틀은 적잖은 변화에 놓이게 되었다.
 
그것은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경험적 인식이 미래에 대한 판단에 혼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실제”가 아닌 “이론” 또는 “전략”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분단 이후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남북 간 접촉을 경험해 왔다.
 
대부분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충돌 형태였지만, 이따금 겉으로는 화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남북관계 변화의 속도에 대한 찬・반 양론도 분분하지만, 의견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객관적으로 이런 주장에 대하여서는 그 논리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뿐이지 어느 의견이 옳고 그른지의 판단은 미래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다.
 
목소리 싸움에서 이겼다고 그것이 미래의 결과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논리의 총화인 이론은 현실 판단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반되는 주장이 사회 이슈가 되는 경우, 이론은 그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 그 자체도 대부분 서로 상반되는 흐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많으며 각 이론은 상호 경쟁을 통해서 새로운 이론이 이전 이론을 논박하고 경험적 수를 늘리면서 확증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천동설 (天動說, Geocentrism) 대 지동설 (地動說, Heliocentrism)과 창조론 (Creationism) 대 진화론 (Evolution theory)으로 얼마나 많은 논쟁의 세월이 소요되었는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체계의 총체적인 변화를 토마스 쿤 (Thomas Kuhn, 1922~1996, 미국의 과학사학자)이후 “패러다임 (Paradigm)"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난날의 경험들이 미래지향적 남북관계를 추진해야 할 현 시점에서도 유효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만을 토대로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은 직감 (直感)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일반인들이 다양한 일상적인 사건들에 대한 스스로의 논리 정립은 쉽지 않다. 이것은 관련 학자들의 몫이고, 그것을 일반과 연결시키는 것이 매스컴이다.
 
그런데 국내 매체의 정치적 종속성은 자신의 이해와 부합하는 논리만을 선별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일방적 사고 (思考)만을 강요해온 것이 사실이다.
 
직접적 경험에만 의존하여 논리를 경시 (輕視)할 때보다 논리를 중심으로 현실을 인식할 경우, 우리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대안은 더 많아지게 된다.
 
자신의 경험 속에 갇혀서 다른 논리와 이론을 보지 못하면 그것은 스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놓치는 것이다. 이 말은 이론과 논리가 경험을 늘리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국민 모두가 여러 이론적 주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결정해 나갈 때, 통일은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국제정세에 대한 냉철한 인식 없이 北 정권의 태도 하나하나에 따라 변하는 개인적 대북인식과 통일관은, 결국 국민의 의지가 아닌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영향을 받는 상황을 초래한다.
 
똑똑한 국민이 똑똑한 정치를 만든다. 우리 모두가 정치에 매달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치를 외면한 채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성취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일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스스로의 논리를 가져야 한다.
 
정책이 원칙적으로 민주주의의 원리상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옳은 방식을 논리적으로 체계화시켜나가면 우리가 원하는 통일정책과 대북정책, 나아가서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여러 통계를 보면, 통일문제엔 별로 관심이 없거나 급격한 통일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통일과 北 정권 문제는 무관심으로 돌려도 될 만큼 우리의 삶에서 이탈되어 회피 가능한 명제 (命題)는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여론이라는 “무서운 조작”보다는 지속적인 스스로의 여러 논리들이 충돌과 절충을 통해 우리 사회 공동의 견해로 승화되어 가는 사회적・국가적 풍토가 중요하다.
 
이것만이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의미의 한반도 통일을 가져다 줄 것이다.
 
MUSIC
Handel Messiah-Hallelujah Chorus
 
 

2014년 8월 5일 화요일

하이테크- 하이터치 (High Tech-High Touch)



High Tech-High Touch
Abstract:
 

High Tech-High Touch decodes our interaction with tech
nology through the human lenses of time, play, religion and art.
 

It raises our awareness of what role technology plays in our daily lives, and encourages a discussion about how biotechnology will alter life in the future.
 

In a High Tech world with an increasing search for balance, High Touch will be the key to differentiate products and services.
 

Focusing on the effects of technology in relentlessly accelerating our lives and stirring profound yearnings for a more emotionally satisfying existence.
 

The great irony of the High Tech age is that we've become enslaved to devices that were supposed to give us freedom.
 

We all know what High Tech is-these are the technologies that "make us available 24 hours a day, like a convenience store."
 

John Naisbitt, futurologist says we live in a "technologically intoxicated zone," the symptoms of which include a continual search for quick fixes and lives that are "distanced and distracted."
 

High Touch, on the other hand, is the stuff we give up when we're tuned in to the technological world; hope and fear and longing, love and forgiveness, nature and spirituality.
 

Will religion and science find ways to understand and appreciate each other or will they continue their bitter battle over the turf of truth?
 

High Tech-High Touch is a fascinating exploration of this significant question of our time. 
 

There's no conclusion, in the traditional sense, only a look at what's happening in our world.
 



하이테크-하이터치

미래학자들은 우리의 삶에 하이테크 (High tech, 첨단기술)를 도입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하이터치 (High touch, 고감성) 균형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팩스를 하이테크-하이터치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그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이-메일은 팩스에 비해 훨씬 우월하지만, 팩스가 더 편리한 점도 있다.
 

팩스 전송을 받으면 그 팩스 용지를 뽑아 복사하거나 필요하면 자기의 생각을 덧붙여 반송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이-메일에는 하이테크는 있지만 하이터치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팩스는 전원에 연결하고 종이를 끼우기만 하면 어디로든지 송신이 가능하다.
 

모든 팩시밀리는 기기 자체의 호환성으로 접속을 위해 데이터를 변형하는 까다로운 절차도 필요 없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익숙하고도 간편한 방법인 것이다.
 

그 동안 하이테크는 빛의 속도로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온 과학기술문명의 총아이다.
 

텔레비전, 컴퓨터, 팩스, 인터넷, 이-메일, 네트워크, 시뮬레이션, 음성인식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하이터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닥불 앞에서 밤새 나누는 대화나 친구와 몸을 부딪치며 땀 흘리는 힘찬 운동,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읽는 좋은 책 등 인간을 참으로 인간답게 하는 영혼의 터치가 바로 하이터치이다.
 

하이테크-하이터치는 첨단과학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지만, 그것을 시간과 종교, 철학 및 예술의 풍성한 감성의 렌즈를 통해 재조명하고 정화시키는 노력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트 (John Naisbitt, 1929~)는 하이터치를 하이테크의 반작용으로만 보지 않고 둘의 결합으로 역설한다.
 

그가 “하이테크-하이터치”라고 부르는 것은 하이테크가 독자적으로 작용할 때보다 하이터치가 가미될 때라야 기술혁신이 훨씬 더 큰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임을 역설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하이테크가 도입될 때마다 그 시점에서의 하이터치에 대한 욕구는 그 도입의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선 기술 중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첨단 기술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하이터치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삶이 기술에 젖어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더 많이 원하게 된다.
 

의학이 하이테크 쪽으로 접어들면 들수록 대체 치료제나 치료 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육체가 아닌 머리로 컴퓨터에 몰두하면 할수록 레저 활동이 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방향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하이테크-하이터치의 코드로 세상을 보면 이외로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수도 있다.
 

하이테크-하이터치의 비유를 정치에 적용하면, 정치 집단의 이념, 명분은 하이테크에 속하는 것이고 국민과의 관계는 하이터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이터치를 무시하는 하이테크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입으로 아무리 개혁과 선정 (善政)을 외쳐도 사람들의 감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제 행태가 구태의연하거나, 국민의 이름을 앞세워 독선과 오만을 범한다면, 그것은 실패를 자초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왜곡된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국회의원, 정치인, 시민단체, 언론인 모두 더 이상 “목소리 높이기”의 낡은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선정주의 (煽情主義)가 무차별적으로 사회를 활보하는 행태를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사실을 침소봉대 (針小棒大)하여, 진실을 왜곡하여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사악한 행위다.
 

모르고 행하는 것은 무지 (無知)의 소치이지만, 알고도 왜곡하는 것은 범죄에 다름 아니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고 말한다. 똑똑한 국민이 똑똑한 나라를 만든다.
 
MUSIC
Beethoven Violin Rommance
Ann Fontanella plays
 













2014년 8월 1일 금요일

국력의 개념 (The Concept of National Power)


The Concept of National Power
Abstract:
 
National power is defined as the sum of all resources available to a nation in the pursuit of national objectives.
 
National power stems from various elements, also called instruments or attributes, these may be put into two groups based on their applicability and origin-"national" and "social".
 
National: geography, resources, and population. Social: economic, political, military, psychological, and informational.
 
Given that power is central to international politics, it is not surprising to find most theorists of international relations advancing some means or another of measuring national capability.
 
Hans Morgenthau is perhaps the most systematic of all modern theorists, and his approach has been followed by numerous other theorists.
 
In describing the "elements of national power," he systematically includes and assesses geography, natural resources, industrial capacity, military preparedness(especially technology, leadership, and quantity and quality of the armed forces), population (especially the distribution and trends), national character, national morale, and the quality of diplomacy and government, while warning against, among other things, efforts to attribute "to a single factor an overriding importance" in the measurement of power.
 
This tradition of attempting to systematically assess the national power of countries continued after Morgenthau.
 
Modern discourse generally speaks in terms of state power, indicating both economic and military power.
 

국력의 개념
 
오늘날 국제행위에서 중요하게 인식되는 주체인 국가의 힘, 또는 국력 (National power)은 여러 가지 다른 관점에서 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국력의 비교는 전쟁이라는 무력충돌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국가의 생존을 위해 국력을 키우는 것은 국가의 기본목적일 수 있다.
 
흔히 사용되는 힘 (Power)이라는 용어를 정치학에서 개념화 하면 아주 까다로운 용어가 된다.
 
국제정치학의 힘의 모든 논리를 종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힘은 일국의 영향력 또는 통제력이다. 힘은 타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경쟁에서 사용하는 수단과 목표를 의미한다.
 
국가의 모든 행위가 힘의 고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국가이익 (National interest)은 권력정치(Power politics)에 항상 깊이 연루된다. 그러므로 정치권력은 정책결정자들 사이의 심리적 관계와도 연관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력은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기 보다 오히려 상대적인 개념이다.
 
국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정의는 복잡하고 어렵게 보이지만 예를 들어 보면 쉽게 유추(類推)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가운데 어느 나라의 국력이 더 강한지 알아보자.
 
단연코 미국의 국력이 한국의 그것보다 월등한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싱가포르에 비해 국력이 강한가? 또 멕시코와 한국의 비교는 어떠한가?
 
미국과 한국의 경우는 아주 간단하게 답할 수 있었던 것이 후자의 경우에는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국력을 비교하는 우리의 기준이 획일적이거나 단순하지 않고, 또한 국력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개념이며 변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과 한국의 경우, 미국 인구는 한국보다 많다. 경제력도 우월하고 군사력도 월등하다.
 
 
국토면적 또한 비교가 안될 만큼 광대하며 지하자원도 많다.
 
이처럼 우열이 확연할 경우 우리는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국력이 우월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전쟁의 위협과 오판이 나타나고 외교적으로도 충돌이 일어난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경제성장이 두드러졌던 “아시아의 용들”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는 싱가포르가 앞서나 나머지의 경우에는 한국이 월등하다.
 
인구, 국민총소득, 군사력, 국토면적 등에서 싱가포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과 멕시코의 경우, 양국의 국민총생산은 거의 비슷하지만 멕시코의 인구는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따라서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이 월등히 높다. 그러나 국토 면적에서는 멕시코가 앞선다.
 
 
다른 경우는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누가 국력이 더 강한지 알 수 없다.
 
두 나라는 싸워본 적도 없고 더욱이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충돌할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양국의 국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진다.
 
이들 예는 국력이 다양한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고정적이고 평면적인 비교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국가 간의 상대적인 우열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국력을 수치화하여 객관적으로 비교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힘을 분석단위로 하는 현실주의의 이론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예를 들면 세력균형이론 (Balance of power theory)에서는 힘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공격하기 때문에 전쟁방지를 위해 국가 간 균형을 주장한다.
 
그래서 힘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으며, 수치적으로 그것을 “과학화” 시키자는 것이 국력을 분석한 이유이다.
 
하지만 현실은 동맹(Alliance)이 힘의 크기에 대한 객관적 수치의 변화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력우위이론(Power preponderance theory)에 따르면 마치 인간사회의 친구관계처럼 어느 한 쪽이 손해를 보아도 계속 유지되기도 한다.
 
따라서 국가관계에도 힘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역사적 유대 등 다른 이해관계의 공간이 생긴다.
 
한반도의 경우, 남과 北은 이미 국력이 비교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그 격차가 확대되어 있다.
 
그런데도 세계 최강국 미국과 한국은 동맹관계에 있고, 北 정권은 기존의 동맹관계가 많이 약화되었다. 세력균형이론이 개입할 소지가 없는 상황이다.
 
국력의 객관적 분석을 위해 세계 여러 학자들(Raymond Aron, Frederick H. Hartmann, Hans J. Morgenthau, U. S. Army War College...)은 경제력, 군사력, 인구, 국토, 천연자원, 정치체제, 외교력, 국민사기, 국민성 등의 지표를 종합하려는 시도도 했었다.
 
국력을 기반으로 한 국가전략을 짜기 위해 필요한 기초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운데 특히, 정치이론의 대가인 Hans Morgenthau의 체계적인 이론을 많은 현대이론가들이 추종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논문에서는 국가의 힘을 일반적으로 군사력과 경제력 둘 다를 가리킨다고 말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여러 가지 실효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수치화(數値化) 하는 데에는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고 가중치 (加重値)에 따라 종합된 국력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력 분석에 있어서 상대성을 강조하고 객관성도 확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경제력과 국가(정부)의 능력을 곱한 것이 국가의 힘이라는 것이다.
 
경제력은 주로 국민총생산 (GNP, GDP, GNI 등)을 기준으로 하며, 국가(정부)의 능력은 국가가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확보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한다.
 
국민총생산을 통한 지표의 활용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인적, 물적 자원을 통한 정부 능력의 평가는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효율성은 그 정부가 국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가에 달린 것이므로 논리적으로는 합당하다.
 
경제력에 근거한 국력비교는 대부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 현재의 경제성장 추세와 인구성장률을 기초로 볼 때, 중국은 2020년 경 미국의 국력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가 중국의 것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중국의 경제성장률과 인구증가율에서 비롯된다.
 
국력은 인적 자원이 중요하지만, 안정된 체제에서는 물적 자원이 국력 증강의 토대가 된다.
 
물적 자원의 추출(Extraction)은 세입(Taxation)능력 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합리적 국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합리적으로 대처하면서 예산을 분배한다.
 
한 국가에서 제도경제(Institutional economy)가 아닌 지하경제(암시장)가 활성화되면 정부의 세입은 떨어진다. 이런 경우 그 국가는 대부분 불안정 상황에 빠진다.
 
종합해 보면 이런 식의 국력 분석을 통해 객관적 기준으로 모든 국가의 국력을 간편하게 비교할 수 있다.
 
MUSIC
E lucevan le stelle
Luciano Pavarotti
 

2014년 7월 21일 월요일

탈냉전 인식 (Awareness of the Post-Cold War)


Awareness of the Post-Cold War
Abstract:
 
The term Cold War, as an another expression, refers to the post-World War II bipolar system that led by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Many shifts in the international system accompanied the end of the Cold War. In fact, 1991 was an extraordinary and defining year.
 
It's the name given to the relationship that developed primarily between the USA and the USSR after World War II.
 
The Cold War was to dominate international affairs for decades and many major crises occurred.
 
The post Cold War era is the period in world history from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in 1991 to the present.
 
Whereas Bipolar system highlights the dualistic structure of the balance of power, the Cold War is to represent the image of its rigid order.
 
It has seen the United States become by far the most powerful country in the world and the rise of China from a relatively weak third world country to a fledgling superpower.
 
However, while the peninsula is tied to the ideology of the past in the continuing military confrontation, two korea's Cold War of military strategy to be continued.
 
By the way, there are tends to be recognized as a negative on the modifications as well as changes in strategy becoming familiar with the risk of chronic in the Cold War.
 
Followings are typical practices of those misleading people due to the changes in the global strategy and some phenomena occurred after the Cold War.
 
1. The post-Cold War world has caused more conflicts and disputes.
 
2. The international community has devoted to the management of failed states.
 
3. Transnational actors will rule the earth.
 
4. China will have its status and role as the Soviet Union were in the past.
 

탈냉전 인식
 
“냉전 (Cold war)”이라는 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과 소련 중심의 양극체제 (Bipolar system)를 일컫는 또 다른 표현이다.
 
양극체제가 세력균형의 이원적 구조 (Dual structure)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냉전은 양극체제의 경직된 질서의 이미지를 말한다.
 
환언하면, 미,소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세력을 중심으로 세계가 줄 서기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한 채 전쟁 (Hot war) 아닌 전쟁 (Cold war)을 벌인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소련의 붕괴와 동구 공산권의 자본주의 편입으로 양극체제는 소멸되면서 냉전 기반도 와해된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묶인 채 여전히 긴장된 군사적 대치 속에 냉전의 틀에 머물러 있으며, 양자 간에 아직 군사 전략상의 냉전은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냉전종식이라는 탈냉전을 불안한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냉전체제에서는 소규모 국가분쟁이 미,소 냉전구조에 의해 통제되었으나 탈냉전시대에 들어 지역분쟁이 증가하여 탈냉전이 더 많은 분쟁을 야기 시켰다는 주장이다.
 
유고, 체첸, 르완다, 그리고 걸프전 등의 예는 탈냉전이 오히려 강대국들 이외의 국가들에게 군사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최근 미국의 한 연구기관은 탈냉전에 대한 여러 부정적 인식은 실제 통계와 다르며, 단순한 수치의 평가로 오해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냉전과 탈냉전의 의미를 다시 음미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의 탈냉전에 대한 명확한 시각을 갖는 계기로 삼는 것이 한반도의 탈냉전의 지향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냉전 구조 속의 수직적 과거의 질서는 냉전의 해체로 수평화 (Horizontalization)됨으로써, 수직적 질서에 대응했던 과거의 전략과 현재의 변화된 수평 구조 간에는 간격이 생겼다.
 
이것은 모든 국가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체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냉전의 낡은 전략은 그 효율이 떨어져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냉전의 만성적 위험에 익숙하여 전략의 수정은커녕 현실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세계적인 전략구조의 변화와 탈냉전 이후의 몇몇 현상들로 인해 오해를 불러온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본다.
 
첫째, “냉전 이후 세계는 더 많은 갈등과 분쟁을 야기 시켰다.” 
 
냉전 이후 각국 또는 테러집단들의 폭력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냉전 시기의 1980년대와 탈냉전의 1990년대를 비교해 볼 때 차이는 없음을 알 수 있다.
 
1980년대에는 국제시스템을 위협할 정도의 분쟁이 한 번 있었고, 이란-이라크전쟁과 그 외 6건의 국가 간 분쟁과 24건의 국내적 분쟁이 있었다.
 
이에 비해 1990년대엔 두 번의 체제위협 분쟁 (걸프전쟁, 콩고전쟁), 그 외 7건 및 28건의 국가 간, 국내적 분쟁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1990년대에 6건의 분쟁이 더 발생했으나 그것은 1년에 한번 꼴도 안 되는 수치이다.
 
이러한 수치를 토대로 탈냉전의 새로운 질서가 더 많은 분쟁을 야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더욱이 국내적 분쟁의 많은 부분이 정치, 군사적 측면보다는 역사적, 경제적 이유에서 일어났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제사회는 실패국가들의 관리에 골몰하고 있다."
 
 
실패국가 (Failed states)는 탈냉전 속에서 구심점을 잃고 분열과 갈등을 일삼는 국가들을 말한다.
 
소련의 영향력 하에서 주권이 안정했던 정권들이 외부의 지원과 투자를 받지 못해 정치,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한 경우이다.
 
1990년대 이런 이유로 국내분쟁에 빠진 국가는 36건이 된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개입한 경우는 4건 (소말리아, 아이티, 보스니아, 코소보)에 불과하다.
 
이는 국제사회가 과거와는 달리 국내적 분쟁은 간과하는 자세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즉, 국제사회의 흐름과 큰 이해관계가 없는 국가의 분쟁은 이제 그들만의 문제가 된 것이다.
 
셋째, "초국가적 행위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세계경제의 단일시장화로 국경을 무시한 다국적 기업, 범죄, 마약단체 또는 국제기구 등의 역할 증대로 결국 국가의 위치를 대신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탈냉전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글로벌 시대가 일상화되면서 논의된 주장이었으나 예측은 빗나갔다.
 
수치상으로도 국제범죄 집단에 의한 사고 (테러)는 1980년대 연간 630건에서 1990년대 382건으로 40% 정도 줄어들었다.
 
그들의 활동이 줄어든 것보다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관심이 정권이 아닌 경제적 이익일 뿐이다.
 
다국적기업의 세계적 영향력 발휘라는 가정도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그들은 여전히 국가의 틀을 벗어나 스스로의 독자적 위치를 확보할 수 없다.
 
넷째, "중국은 과거 소련의 위상과 역할을 갖게 될 것이다." 냉전의 틀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오해할 소지가 많은 부분이다.
 
그러나 소련을 중국으로 대체할 새로운 냉전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과거의 소련과 현재의 중국은 세계질서에 대하여 전혀 다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타이완문제를 제외하고는 서방세계와 마찰을 일으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
 
중국은 국가의 핵심이익인 경제성장을 위해 외부의 자본투자와 미국과 같은 큰 해외시장을 필요로 한다.
 
세계적 자본주의 구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국이 모든 이익을 버리고 사회주의로 회귀할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외에 대량살상무기 (WMD)의 확산과 동시다발적 분쟁 대응,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의 증가 등도 제기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객관적 증가를 뜻하는 경험적 자료는 없다.
 
다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후속 테러가 계속되고 있는 점은 염려되는 부분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탈냉전 시대가 과거 냉전시기 보다 더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은 변화 그 자체보다 냉전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인식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의 탈냉전에 대하여도 이런 평가는 대부분 적용된다.
 
北의 핵문제를 제외하면 한반도 문제는 이제 한반도화 (韓半島化)되어가고 있다.
 
물론 주변국의 이해 (利害)가 적지 않지만, 변화의 주체와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즉, 동북아체제 자체에 부정적 변화가 없는 한, 남북 간 내부갈등은 외부의 조정이 아닌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결국 남북 상호간 군사적 안정과 경제적 이익 공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동북아 냉전을 넘어 탈냉전으로 가는 열쇠가 된다.
 
탈냉전 과정에서 예상되는 적지 않은 불확실성은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해소될 수 있으며 일상화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변화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만이 탈냉전의 과실을 수확하는 길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MUSIC
Una Furtiva Lagrima (남 몰래 흐르는 눈물,  사랑의 묘약 중)
Donizetti
Luciano Pavarotti
 

2014년 7월 11일 금요일

北의 핵 및 유도탄 능력 (North Korea's Nuclear & Missile Capabilities)



North Korea's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Abstract:
 
North Korea's missile and nuclear programs now directly threat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Yet, the majority of experts and policymakers still downplay the possibility that North Korea could have nuclear-tipped missiles or preliminary ability to reach the United States.
 
This is due partly to the difficulty of gathering reliable information on North Korea's secret military programs. Even the U. S. Intelligence Community refers to North Korea as the hardest of the hard targets.
 
However, for several decades, experts have tended to downplay progress in North Korean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They have frequently underestimated North Korea's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due to ideologically driven analysis, political expediency, and the belief that a technologically and economically backward nation could not achieve the necessary breakthroughs.
 
Skeptics initially dismissed evidence of North Korea's plutonium-based nuclear weapons, highly enriched uranium (HEU)program, involvement in constructing a Syrian nuclear reactor, and ability to develop long-range missiles.
 
U.S. intelligence estimates of these programs were dismissed as politically motivated, until they were proven indisputably correct.
 
Enough information is available to conclude that North Korea has the ability to deliver nuclear weapons via No-Dong medium-range ballistic missiles, which can reach Japan, and has achieved greater progress in its uranium-based nuclear weapons program than commonly assumed.
 
Factors for such an assessment include:
 
a. The decade-long duration of North's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b.The technology, expertise, and components acquired from collaborative involvement with Pakistan, the A. Q. Khan network, and Iran.
 
c. Pakistan, which received assistance from North Korea, is unquestioningly assessed by experts as having nuclear-capable short-range missiles.
 
d. The scope and sophistication of the uranium enrichment program revealed to a U. S. scientist.
 
e. Repeated instances of experts underestimating North Korean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f. North Korean declarations of its ability to hit the U.S. with nuclear weapons.
 
g. Recent U. S. and ROK government assessments of North Korean breakthroughs.
 
The visiting U. S. scientist Dr. Siegfried Hecker, former head of the Los Alamos nuclear laboratory, was stunned by the size and sophistication of the facility, and he cautioned, "It was another lesson that one should not underestimate the skill and determination of the North Koreans."
 
In November 2013, Minister of Defense Kim Kwan-jin testified that the North had the ability to build uranium-based nuclear weapons.
 
Pyongyang now asserts that it has full nuclear strike capability, and warned its strategic rocket forces can hit U. S. bases in the South, Japan, and Guam as well as the U. S. mainland.
 
In February 2013, North Korea announced that its nuclear test was a "miniaturized and lighter" nuclear weapon that could fit atop a missile.
 
Kim Jong-un was photographed in front of a map depicting missile launch azimuth from North Korea to three targets in the continental United States.
 
 
北의 핵 및 유도탄 능력
 
이제 北의 유도탄과 핵 프로그램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직접 위협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국내외 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아직도 北의 핵탄두 유도탄이나 미 본토를 타격할 예비능력의 보유 가능성을 경시하고 있다.
 
이것은 北의 비밀 군사프로그램에 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수집의 어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 정보기관들도 北 정권을 가장 어려운 표적이라고 언급할 정도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전문가들은 北의 핵 및 유도탄 프로그램의 진전을 이데올로기 중심의 분석과 정치적 편의, 그리고 기술적, 경제적 후진국이라는 소신 때문에 얕보아 왔다.
 
회의론자 (懷疑論者)들은 처음에는 플루토늄 핵무기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그리고 시리아의 원자로 건립 개입과 장거리 유도탄 개발 능력에 관한 증거도 일축했다.
 
이 모든 프로그램에 관한 미국의 정보판단도 정치적 동기로 그것이 논의의 여지없이 정확함이 입증될 때까지 무시되었다.
 
하지만 이제 北 정권은 노동 중거리 탄도탄으로 일본에 도달 할 수 있는 핵무기 투발능력을 보유하였으며,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우라늄 핵무기 프로그램을 더 진전시켰다.
 
이 평가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도 포함된다.
 
1. 北 정권의 수십 년의 긴 기간의 핵 및 유도탄 프로그램.
 
2. 파키스탄과 A. Q. 칸의 연계 및 이란의 공동참여를 통한 기술, 전 문적 지식 및 부품의 획득.
 
3. 北 정권의 원조를 받은 파키스탄은 의심의 여지없이 北이 핵 단거리 유도탄을 가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4.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규모와 정교함을 미국 과학자에게 공개.
 
5. 北의 핵 및 유도탄 능력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복되는 과소평가.
 
6. 北은 핵무기에 의한 미국 및 한국에 대한 타격능력을 선언.
 
7. 최근 北 능력의 획기적 발전에 대한 한, 미 정부의 평가 등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와는 달리, 파키스탄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아버지 A. Q. 칸이 1999년 방북 시 北은 유도탄에 탑재할 수 있는 3기의 완성된 핵탄두를 그에게 공개했다.
 
2005년, 평양은 “핵무기를 생산했으며, 핵무기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006년, 2009년과 2013년 핵 시험을 강행했다.
 
北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합의에 관계없이 핵무기 능력 강화를 위한 제2 경로인 우라늄 무기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해 왔다.
 
1999년과 2000년 클린턴 행정부는 의회에 더 이상 北 정권이 우라늄 농축 능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2002년 7월, 미국의 부 국무장관 리처드 아미티지가 北의 우라늄 농축이 연구 개발 단계가 아니라는 정보를 공개함에 따라 미국 정보기관은 北이 본격적으로 우라늄 생산에 착수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 후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1980년대 후반에 北은 우라늄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키스탄은 1990년대에 평양에 핵 패키지 거래를 제공했다. 여기에는 원심분리기, 6불화 우라늄 핵연료 (UF6)와 몇 개의 탄두설계도 포함되었다.
 
CIA는 결국 파키스탄과 北의 연계가 생각보다 크다고 평가했으며, 2004년 칸은 北의 핵무기는 “우리 것보다 기술적으로 더 앞선 완전한 핵무기.”라고 발표했다.
 
北의 핵무기 프로그램 규모는 2010년 11월 방북 중인 미국 과학자 시그프리드 헤커박사 (전 로스 알라모스 핵 연구소장)에게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갖춘 시설을 공개함으로써 분명해졌다.
 
이것은 헤커박사와 다른 많은 미국의 전문가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며, 헤커박사도 2008년 전까지는 北 의 우라늄 프로그램은 연구개발 단계이며 산업규모는 아니라고 평가했었다. 
 
헤커박사는 “그것은 北 정권의 기술과 결단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하나의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이 우라늄 프로그램의 규모는 2010년에 공개된 것보다 더 규모가 크며, IAEA는 10,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갖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3년 11월, 김 국방장관도 北이 우라늄핵무기 제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증언했다.
 
北이 서방으로부터 대규모의 원조를 받으며, 미국과 유도탄 협상도 벌이면서도 국제적 비핵화 공약을 위반하는 것은 미래의 비핵화 공약의 진실성에 대한 불길한 징조이다.
 
北은 이제 완전한 핵 타격능력을 갖췄다고 주장한다.
 
2012년 10월, 北의 국방위원회는 그들의 전략 로켓 군이 한국, 일본, 괌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3년 2월, 北은 그들의 핵 시험이 유도탄에 탑재된 “소형화 및 경량화 된” 핵무기라고 발표하면서, 미국 본토의 3개의 표적에 유도탄 발사 방위각을 맞춘 지도와 함께 웃고 있는 김 정은의 모습도 방영했다.
 
김 정은 체제 출범 이후 北은 핵분열 물질 생산 (플루토늄 및 우라늄)과 핵 시험 준비, 유도탄 발사 시설 건설 및 확장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3년 중반부터 영변 핵 단지 내 각종 시설과 풍계리 핵 시험장 (함북 길주군), 서해 유도탄 발사장 (평북 철산군 동찬리) 및 동해 위성 발사장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의 공사 현황이 계속 위성에 잡히고 있다.
 
이런 건설 활동은 北의 핵무기 및 유도탄 투발 능력의 확장을 더 향상시키게 된다.
 
이와 함께, 시리아 원자로 건설이 보여준 北의 고위험도 행위참여 의지는 北과의 협상의 무의미함과 IAEA의 무능력 그리고 소심한 제재의 비효율성 등 불안 요인들을 시사한다.
 
끝으로 北의 핵 및 유도탄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계속되는 경시와 소심한 징벌 제재의 추구는 위험만 초래할 뿐이다.
 
이는 北에게 핵 및 유도탄 투발 능력 향상을 위한 기회와 시간만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해치게 된다.
 
또한 北의 핵 및 유도탄 확산의 전과 (前科)로 미루어 이 위험은 한반도나 동북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MUSIC
Toccata & Fugue
J.S.Bach
Violin: Vanessa M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