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1일 목요일

주한미군 문제 (USFK Issue)



United States Forces, Korea (USFK)Issue
 
Abstract:
 
Our nation's history for resistance to foreign forces in modern history, dates back to Heungseon Daewongun days, regent of Joseon during the minority of King Gojong in the 1860s and until his death a key political figure of late Jeoseon Korea, who displayed violent resistance surrounding the opening.
 

Since then, the Republic of Korea, the world's poorest country, achieved economic growth through the United States' direct and indirect supports and the majority of Koreans think the United States they should appreciate as a friendly country.
 

However, since the 1980s, there are individuals and groups, part of the axis of college students that to see the United States as an object of overthrowing and therefore claiming of withdrawal of U. S. forces.
 

For a general analysis of this logic is as follows;
 

a, Caused by the presence of U. S. forces in civil and criminal issues, and the case of its unreasonable process.
 

b, It's the case of nationalist thinking to recognize U. S. forces as the key forces to obstruct the voluntary unification.
 

The next important thing is that the United States' acquiescence of the past military coup and the Kwangju massacre, and the approval to win their power gave frustration and anger to Koreans eager to democracy.
 

Korea society in 1985, with variety of severe social control, it started with outside of the institutional to burn, the discussion of the negative impact that pertaining to the awareness of the United States and its attitude toward two Koreas.
 

At the time, the university has many students reading and discussing illegal books, such as Marx, Lenin, and Kim Il Sung's works, which is the so-called "Radicalization" that become generalized.
 

Radicalization (Radicalisation) is a process by which an individual or group comes to adopt increasingly extreme political, social, or religious ideals and aspirations that reject or undermine the status quo or reject and/or undermine contemporary ideas and expressions of freedom of choice.
 

The 386 Generation is a term that refers to the generation of Koreans born in the 1960s who were very active politically as young adults, and instrumental in the democracy movement of the 1980s, and are more left-leaning politics of the generation.
 

United States Forces, Korea (USFK), is a sub-unified command of United States Pacific Command (USPACOM).
 

USFK is the joint headquarters through which U. S. combat forces would be sent to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s (CFC) fighting components-the combined ground, air, naval, marine and special operations forces component commands.
 
It was established on July 1, 1957.
 
 

주한미군 문제
 

우리 근대사에서 외세에 대한 우리민족의 저항역사는 개항 (開港)을 둘러싸고 심한 거부감을 표시했던 흥선 (興宣,이름 李昰應)대원군 (大院君)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과 함께 신탁통치를 둘러싼 찬탁 (贊託)과 반탁 (反託)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의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각각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세계 최하위빈국인 한국은 미국의 직, 간접적인 지원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함으로써 한국인 대부분은 미국을 고마운 친구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고마운 미국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1980년대 이후 일부 대학생들을 축으로 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존재한다.
 

이 논리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을 살펴본다. 먼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유로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주한미군의 존재로 생기는 민, 형사상의 문제와 그 처리과정의 불합리성의 경우이다.
 

둘째, 주한미군을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가로막는 핵심세력으로 인식하는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의 경우다.
 

더 말할 필요 없이,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은 서로 혼재 (混在)하며, 상황 변동에 따라 대응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미국이 과거 군부쿠데타와 광주학살사건을 묵인하고 권력쟁취를 승인한 것은 민주화를 열망하던 많은 한국인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주었다.
 

이를 계기로 그들에겐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강대국으로 전락하였다.
 

여러 가지로 사회적 통제가 심했던 1985년 한국사회에선 미국에 대한 인식 및 미국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관한 논의가 제도권 밖에서 불붙기 시작했다.
 

이것은 과거 소수 지식인들의 머릿속 에만 있던 생각이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좌파세력과 민주화 운동세력으로 급격히 대중화 한 것이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불법서적인 마르크스, 레닌, 김일성의 저작물을 읽고 토론하는 이른바 “의식화 (Radicalization)”가 일반화되었다.
 

오늘날 386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 시절 이런 사회문화 속에서 대학을 다니고 시위에 가담했던 사람들이다.
 

당시 대학에 교련수업이 있었던 그 시절, 분단현실을 대학생들에게 제도적으로 학습시키려던 정부에 맞서 대학생들은 “미국용병학습”이라며 거부하곤 했다.
 

더욱이 5공화국 시절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자긍심을 높이는 상승효과를 일으켜 민족의 장래에 대한 비전을 찾으려는 조직적인 노력이 경주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서적과 北의 이념서적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제국주의와 수탈국의 관계에서 한국사회의 성격을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 문제는 당시 운동세력 내에선 중요한 의제였다. 한국사회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 전망과 전략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화운동세력은 당시의 한국사회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는 측과 식민지 반봉건자본주의로 보는 쪽으로 나뉘게 된다.
 

이 사회인식 차이로 운동세력은 민중민주주의 (PD)계열과 민족해방 (NL)계열로 분파되었다.
 

이 시기 발족한 전국대학생대표자 협의회 (전대협)의 의장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방향은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당시 운동세력의 주도권은 NL계열이 차지함으로써 통일운동이 강화되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보다는 외세의 부정적 역할에 대한 반발, 쿠데타정부에 대한 저항심, 그리고 통일에 대한 “순진한 접근”으로 많은 부분에서 北의 선동구호와 구분하기 힘든 수준의 주장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극렬하게 유행했던 데모구호의 하나가 “반미반제 양키 고 홈”이었다.
 

이것은 北의 반미구호와 일맥상통하여 운동세력이 北과 같은 입장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어처구니없는 형세가 되었다.
 

1987년 6.10항쟁으로 성취한 민주화와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의 새로운 탈냉전 세상은 운동세력을 와해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반미감정은 2002년 두 여중생의 장갑차사고의 처리과정의 한, 미관계의 불평등과 전쟁위기감을 조성하는 미국의 고압적 北핵 대응, 그리고 한, 미 통상의 피해의식 등과 잠재했던 미족주의 의식의 재현으로 복합적으로 외연화 (外延化)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정세와 주변 상황의 변화에 대처하는데 주한미군의 철수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로 평화와 통일이 오는 것은 아니다.
 

주한미군의 미래는 통일의 과정에서 한, 미 양국과 관련 주변국들과 외교적으로 논의 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현실은 주한미군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의 미래가 낙관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주한미군의 존재가 갖는 순기능을 무시할 수도 없다.
 

한국뿐 아니라, 주변국들은 北 정권을 제외하고 주한미군의 존재에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나라도 없다.
 

이것은 나름대로 주한미군의 역할에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존재에 익숙하고 주한미군이 빠진 공백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설령 지금 미군이 한반도를 떠나더라도 미국의 동북아 영향력엔 그다지 큰 손상은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주국방의 틀 속에서 미군이 한반도에서 물러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주한미군 철수가 모든 문제 해결의 결정적 단초라고 보는 인식은 무리한 생각이다.
 
MUSIC
The Washington Post
John Philip So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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