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일 금요일

숲 속의 아침 (Forest in the Morning)


                                                   홍천 삼봉 자연휴양림

Forest in the Morning
Abstract
 
 
Ode to the West is an ode, written by Percy Bysshe Shelley in 1819. The poem ends with an optimistic note which is that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if winter days are here then spring is not very far).”
 
 
An early spring morning in the heart of Sambong Natural Recreation Forest carpeted with bluebells, birds singing the dawn chorus in the background and a gentle breeze flowing through the leaves.
 
 
It is so peaceful and beautiful out here. After a long winter, birds also take steps to get ready for spring.
 
 
Changing climate including gradually rising temperatures, changing wind patterns and increasing rains, as well as the retreat of snow and ice due to melting.
 
 
Nature, in the broadest sense, is equivalent to the natural, physical, or material world or universe.
 
 
Nature refers to the phenomena of the physical world, and also to life in general. It ranges in scale from the subatomic to the cosmic.
 
 
The study of nature is a large part of science. Although humans are part of nature, human activity is often understood as a separate category from other natural phenomena.
 
 
This more traditional concept of natural things which can still be found today implies a distinction between the natural and artificial, with the artificial being understood as that which has been brought into being a human consciousness or a human mind.
 
 
Depending on the particular context, the term natural might also be distinguished from the unnatural or the supernatural.
 
 
 
숲 속의 아침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겨울이 오면 봄도 또한 멀지 않다고 하더니, 이제 겨울의 자리에 봄이 다시 찾아 왔다.
 
 
지난밤에도 이곳 홍천 삼봉 자연휴양림에는 바람기 없이 비가 내렸다.
 
 
겨우내 까칠 까칠 메마른 바람만 불다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비 소리를 들으면 나의 속 뜰도 촉촉이 젖어드는 것 같다.
 
 
아침에는 온 산에 안개가 자욱이 서렸다. 안개로 가려진 숲은 살아 있는 진경산수 (眞景山水).
 
 
산에서 우는 작은 새는 산이 좋아 산에서 사는가. 침묵의 숲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한동안 막혔던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아침 일찍부터 숲 속에선 한바탕 큰 잔치가 벌어진다.
 
 
꾀꼬리, 뻐꾸기, 소쩍새, 산비둘기, 방울새 등 온갖 새들이 저마다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면서 새 날의 시작을 기리고 있다.
 
 
이들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넘치는 기쁨을 같은 숲 속의 이웃끼리 서로 주고받으려는 것이다.
 
 
이런 새소리는 종일 들어도 싫지가 않다. 하는 일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 소리 자체가 자연의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나 마음의 양식이 될 고승의 설법이라 할지라도 연거푸 듣거나 장시간 들으면 시끄럽고 지겹고 멀미가 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위적 (人爲的)인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면 아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조용히 있기만 하면 된다.
 
 
어떤 선입관에 사로잡힘이 없이 마음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토록 장엄한 자연의 신비를, 우리들이 발붙여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는 없다.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면 가장 편안한 상태로 그 대상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들의 삶 속에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게 한다.
 
 
자연은 팍팍한 우리 일상에 가장 정결한 기쁨을 안겨 준다.
 
 
운동경기의 관람이나 유희, 오락과는 그 질이 다른, 삶의 신비와 살아가는 기쁨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유가 (儒家)에서는 자연은 곧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원천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능력으로 자연을 충분히 가꾸고 꾸밀 수 있다고 착각한다.
 
 
물론 자연의 그 극히 일부분은 인간과의 조화를 위해 꾸며지고 가꾸어지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문제는 인간의 지배욕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의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자연 혹은 환경은 경외 (敬畏), 상생 (相生)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개발을 통해 충분히 이윤을 창출해내는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인간은 자연의 한 속성으로 자연이 주는 풍요를 누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욕망이 지배로 이어지면서 결국에는 무분별한 파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인간에게는 잠재적인 착함이 있다.
 
 
따라서 인간은 바른 교육과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충분히 자연을 회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없고, 조화를 이루는 존재라는 교육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MUSIC
Sissel Kyrkjebo-Santa Maria (from Cavalleria Rustic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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