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1일 일요일

시 진핑 중국의 대북정책 ( Xi Jinping's North Korea Policy)



Xi Jinping's North Korea Policy
Abstract:

In recent months, China has affected a sterner disposition toward North Korea, reflecting growing frustration with its errant neighbor.
 

But despite Chinese President Xi Jinping's stronger rhetoric on denuclearization during his summit discussions with US President Barack Obama at Sunnylands, Beijing's policy is still based upon the strategic priorities of, in descending order, "no war, no instability, no nukes".
 

As soon as Xi made his statement, Chinese expert began to backpedal. Chinese government insists that Beijing has not changed its priorities with regard to North Korea and are surprised that outsiders believe otherwise.
 

To understand China's policies towards North Korea and their potential for change, it is crucial not to mistake bolder rhetoric and the public debate, for a lasting shift in state policy.
 

Outwardly, Chinese policy towards the North Korea appears to be in a state of deepening uncertainty.
 

Chinese strategists have expressed the need to dilute the ideological and sentimental factors in China-North Korea bilateral relations to achieve "normal state-to-state relations."
 

Many Chinese policy experts agree that China should recalibrate its North Korea policy to better serve its own national interests.
 

Beijing still ultimately holds the view that the US and its allies pose a larger challenge to China's regional strategic interests than North Korea as an excuse to deepen its Asia pivot.
 

So it is hardly surprising that the primary motivator for adjustments in Chinese rhetoric and messaging towards North Korea has been Beijing's concerns about US 'show of force" and missile defense measures.
 

Strategists argue that particularly when China-North Korea relations are so weak, applying pressure too heavily could backfire.
 

The Chinese challenge is that the more it tries to extend influence, the more North Korea is at pains to show its independence.
 
시 진핑 중국의 대북정책

2013년에 새로 들어 선 한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양국의 새로운 모습으로 서로 화답하고 있다.
 

두 지도자들은 지난 선임자들에 의해 소원해졌던 한, 중 관계의 개선을 바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유엔 안보리 결의에 반항적인 北의 김 정은의 조기 도전에도 직면하고 있다.
 

중국의 시 진핑 정부가 北의 3차 핵 시험 이후 北정권에 대한 정책을 개선하고 있다는 논의도 내외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北과 전략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양국 간 전략적 소통이 원만치 않다는 반증이다.
 

중, 北은 김일성과 김 정일 시대에는 전략대화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지도부 사이의 접촉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지만 김 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서로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北의 3차 핵 시험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배제한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올바른 평가다.
 

시 진핑 체제의 대북정책의 변화를 살펴본다.
 

첫째, 중국은 중, 北 관계를 특수 관계가 아닌 일반 국가 간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중, 北 관계가 동맹관계가 아니라 정상적인 국가 간 관계라는 점은 커다란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중국과 北의 집권당과의 당적 관계가 경색되었으며, 양국 관계를 외교부 채널을 통해 다루려 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편, 박 근혜-시 진핑 정상회담 (2013. 6.27)을 통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 대화채널 구축이 합의되었다.
 

이는 중국이 한국을 보다 중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 중국은 종전의 한반도 안정 유지보다 비핵화를 우선시하게 되었다. 
 

중국은 北핵을 자국 국익에 대한 중대 위협으로 인식하고 北의 행동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태도 변화를 했다.
 

셋째,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 조치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중국 교통 운수부는 4월 17일 지방정부와 기업에 대북 제재 조치에 포함된 물자가 北에 운송되지 못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5월 7일에는 중국은행, 공상은행, 건설은행, 농업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北의 의심스러운 계좌를 폐쇄하고 北 은행과의 금융 거래를 중단하는 조치도 취했다.
 

중국의 외교안보정책 진용도 北과의 우호관계 강화보다 한, 미와 협력관계 발전을 중시하는 인사들로 개편되었다.
 

새로 중국의 외교안보의 통제 역할을 맡게 된 양 제츠 (楊 潔篪)국무위원도 김 정은을 비롯한 北 지도부와의 교분이 깊지 않다.
 

새로 구성된 중국 외교안보 정책 실무지도부는 北에 대한 호감도가 낮은 반면, 한국에는 우호적이다.
 

하지만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제약 요인도 여전히 존재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人民日報의 자매지 環球時報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현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기존 정책을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시 진핑의 집권 초기에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단한다는 것은 너무 성급한 생각일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중국이 보는 북한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중국의 전략가들은 방어적 현실주의 사고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北이 여전히 중국의 적대세력화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 지도부는 北을 자국의 안보를 위한 완충지대 (Buffer zone)로 보는 시각에는 변화가 없다.
 

시 진핑 체제에서도 중국은 北의 안정을 위해 협력하고 北이 붕괴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지원은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중국의 대북 영향력 유지가 동북아 전략 추진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지역 국가들과 다오위다오 열서 (釣魚台列嶼, 일본어, 尖閣列島 영어, Pinnacle Islands)영유권 문제, 남사군도 (南沙群島)와 시사군도 (西沙群島)영유권 문제 등으로 갈등을 벌이고 있으며, 이들 문제 해결에서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지역 국가들을 지원하지 않도록 해야만 지역 내 영유권 문제를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역내 갈등을 이용하여 아시아에 대한 재 균형정책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北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미, 중 및 한, 중간에 깊이 있는 정치, 안보적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중국의 대북정책의 근본적 변환은 쉽지 않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셋째, 중국의 신중한 대북정책 접근 태도다.
 

중국은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했을 때 예상되는 부정적 결과를 우려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의 중, 北 간 경험에서도 나타나있다. 
 

중국과 北의 관계를 통해서 볼 때 중국이 北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발동할 경우, 北은 중국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기보다 독자노선을 취하는 경향을 보였다.
 

중국의 강력한 대북 영향력 행사는 순간적으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의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과도한 대북 압박정책은 北을 반 중국세력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北정권이 통제 불가능한 불안정 상태에 빠지거나 붕괴될 경우, 그 부담의 대부분은 중국이 지불해야 할 것으로 중국은 우려하고 있다.
 

중, 北관계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통일의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시 진핑 등장 이후 중, 北관계의 변화 움직임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과 평가 및 이에 대한 대처는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중국의 긍정적인 대북정책의 변환은 고무적이지만 이것을 한국의 희망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접근은 피해야한다.
 

새로 출범한 한국과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의 친근한 관계는 한, 중 수교 이후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우월한 정치적 이점이 아닐 수 없다.
 

박 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신뢰 프로세스 전략은 남북관계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한, 중 관계에도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핵심적 접근 개념이 되어야겠다.

MUSIC
Carl Orff's Camina Burana "O Fortuna"








 







2013년 7월 11일 목요일

6.25에 생각한다 (Think of June 25)





Think of June 25
Abstract:
 
It is natural to condemn North Korea for the fact that it launched a surprise invasion into the South.
 

Before dawn on Sunday, 25 June 1950, the North Korean army moved forcefully into the South, whose outgunned defenders were generally overwhelmed.
 

We knew the greatness of freedom through a terrible war. Perhaps never before in our history has the word freedom been more meaningful.
 

No society with laws and other constraints over our choices could ever be deemed as free.
 

When I think of freedom, I consider the many rights and privileges we enjoy in this country.
 

Our constitution promises to secure the blessing of liberty. Freedom, however, means more than blessings. Freedom also means the honor of responsibility.
 

True freedom means giving as well as receiving and does not come without a price. Sometimes that price is very high. As citizens, we should joyfully embrace our duty to preserve our way of life.
 

The brave Koreans of war and the other victims who gave their lives preserving and defending this country and paid the ultimate price for freedom. We owe them our respect and gratitude.
 

Through them, we more fully appreciate the true meaning and value of freedom. We should give it to others in the loving spirit in which it was given to us. Sharing is caring.
 
 

6.25에 생각 한다
 

우리 정치 사회에서 자주 목격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안보관 시비를 빼 놓을 수 없다. 6.25전쟁도 마찬가지다.
 

기습적인 6.25남침을 자행한 北정권을 규탄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을 폐허와 지옥으로 만들었고, 1백여만의 사상자를 낳았으며,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이 수없이 납북되어 무참히 죽어간 6.25전쟁이었다.
 

남한지역 국토의 90%가 모두 공산당에 짓밟혀 적화되었고, 대구와 부산만이 겨우 남아서 대한민국과 자유의 깃발이 간신히 나부끼던 6.25전쟁이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역사의 위기였다. 공업 시설의 거의 전부를 잿더미로 만들고 여러 도시가 초토화 된 민족적 수난은 한국 5천년 역사상 이러한 민족상잔 (民族相殘)의 엄청난 비극은 일찍이 없었다.
 

이 6.25전쟁의 비극은 60년 전의 일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망각 (忘却)을 가져 온다. 시간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인구의 91%의 모두는 이 6.25전쟁의 비극을 체험하지 못했다. 그저 들어서 관념적으로 피상적 (皮相的)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핏줄기를 같이 한 동포이기 때문에 너그럽게 용서하자. 그러나 6.25전쟁의 비극과 공산당의 만행은 결코 잊어 버려서는 안 된다.
 

공산주의는 이미 역사적 실험이 끝난 죽은 사상이다. 정치에는 허구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사상은 위장 (僞裝)된 옷을 입는다. 우리는 그것을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
 

6.25전쟁에서 우리는 자유의 숭고한 가치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도피할 수는 없다. 슬기로운 국민은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배워야 한다.
 

역사는 자유의 발전사다. 우리는 역사에서 자유의 행진곡을 읽는다. 
 

우리는 자유에 대하여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자유에 대하여 용감하게 수호할 책임이다. 
 

자유를 지키려면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옛 아데네의 민주정치가 페리클레스는 “행복은 자유에서 오고 자유는 용기에서 온다.”고 갈파했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는 것이다. 우리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한 때 일제의 지배를 받았다.
 

힘이 없는 민족은 역사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힘이 없는 국민은 망국민 (亡國民)의 비극을 겪게 된다. 
 

힘이 없는 곳에 자유가 없고 무력 (武力)이 없는 곳에 평화가 없다.
 

우리는 환상 (幻想)속에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관념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에서는 부강 (富强)의 가치관이 현실을 지배한다.
 

힘과 용기가 없는 국민은 자유를 쟁취하지도 못하지만, 자유를 주어도 그것을 늠름하게 수호하지 못한다.
 

우리는 개인의 자아실현과 공동체의 발전 및 번영을 위하여 자유를 창조적, 생산적으로 옳게 써야 한다.
 

자유가 범람하면 무질서로 전락한다. 자유가 방향을 상실하면 방종 (放縱)이 되고 만다. 자유는 위대하다. 그러나 결코 만능은 아니다.
 

자유의 구체적 표현은 선택이다. 선택은 옳은 것과 바람직한 것을 선택할 때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 6.25에 우리는 우리의 성숙한 금도 (襟度)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지 또한 자문할 필요가 있다.
 

北의 침략성을 알면서도 큰 소리만 치고 유비무환의 대비태세를 게을리 한 선대의 책임에는 슬쩍 눈을 흐려놓는 우를 범하지 않았는가 생각할 일이다.
 

지난 4월 北이 보여준 악랄한 핵 선제공격의 도발적 위협이나 요 며칠 전 남북 회동을 위한 실무 접촉 결과를 비난하는 상반된 우리 정치계 시각은 반세기 넘는 시련의 순환적 풍토 속에서도 오직 변하지 않는 고질이 아닐 수 없다.
 

한 건의 사안이나 이벤트의 발생으로 촉발되는 정치계의 상반된 논리를 보노라면 사실에 충실한 시시비비에 앞서 정쟁적(政爭的) 적개심에 영일을 갖지 못하는 투쟁적 인상을 지을 수 없는 한국 정치 풍경이다.
 

요컨대 6.25전쟁을 회상해 보는 사안 (史眼)에 적만 나무라고 이쪽의 허 (虛)에는 투시 (透視)가 미치지 않는 안보 논의라면 두고두고 무의미한 관념의 유희요, 이상야릇한 한국적 상식 풍토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우리나라는 역사의 무대가 큰 굉음을 낼 정도로 억세고 힘차게 회전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회전 무대의 기축은 말할 것도 없이 정치를 움직이는 역학 (力學)이다. 젊어지고 새로워지고 씩씩하고 찬란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역사의 무대가 회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무대 위의 등장인물이 새로워진다고 해서 반드시 역사 자체가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라는 지워 버릴 수 없는 엄연한 과거의 토양 위에서 같이 호흡하고 지켜보는 관객과 대중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인 사안 (史眼)이 달라지게 연출돼야 비로소 역사는 새로워지는 것이다.
 

6.25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신생 산업국가, 당당한 민주국가 그리고 장차 한반도 통일 한국의 민족 국가로서의 정치 철학이 새로운 역사 무대 위의 등장인물의 필수 자격이라 본다.
 

이렇게 될 때, 새로운 사회, 정의로운 사회의 객관적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과거를 나무라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일본에 다시 얕잡아 보이지 않게 과거 일제 식민통치를 되새기는 사안 (史眼), 도발과 남침의 위협이 있다, 없다로 외신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는 탕탕한 국방 체제를 보는 눈, 이런 것들이 정치 인식의 기초가 되어야 하겠다.
 

남을 나무라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잘 잘못을 뉘우치는 자세, 나타난 현상보다도 나타나기까지의 원인을 더 진지하게 규명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젊음의 패기를 자랑하기 전에 흘러간 세대가 젊었을 때 겪었던 갖은 고난의 발자취를 애처롭게 되새겨 보고 그 피와 눈물에 외경 (畏敬)할 줄 아는 겸허한 심지 (心志)를 갖춰야 할 것이다.

MUSIC
Hebrew Slaves Chorus
from Nabucco
Giuseppe Verdi
http://www.youtube.com/watch?v=-3Qx_oMH62U











2013년 7월 1일 월요일

北의 출구전략 (North Korea's Exit Strategy)





North Korea's Exit Strategy
Abstract:

As summer follows spring, so too does North Korea transition from provocative words and deeds to a seemingly moderate desire for diplomacy, so called exit strategy.
 

Before, it threatened to hit Seoul and the United States with nuclear weapons. Now it expresses a willingness to engage in dialogue, even to return to the Six-Party Talks.
 

But this is all part of North's playbook. We have seen these peace offensives before. The crucial question now is the basis on which North Korea might be willing to negotiate.
 

Is it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is the core of the Six-Party Talks? And this is the objective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United States, Japan, and China.
 

Kim might steer away from those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and invest more in economic reform in the country. 
 

But for domestic political reasons he has chosen to side with the military. He is probably, trying to create some political space for the country.
 

If so, there is a reason to engage carefully. Or is it Pyongyang's most recently enunciated point of departure, Washington must accept it as a nuclear weapons state, with all the rights and benefits that that implies under the NPT?
 

China bluntly tells North Korea to enter nuclear talks.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lasting peace on the peninsula is what the people want and also the trend of the times," China's president Xi Jinping said in a meeting at the Great Hall of the People with Choi Ryong-hae, a personal envoy of the Kim Jong-un, the China News Service reported.
 

China is the almost exclusive supplier of North Korea's energy and food. Xi placed denuclearization ahead of stability as China's top policy priority toward North Korea.

The goal of the United States policy has not been to secure talks for the sake of talks.
 

It has been to induce North Korea to understand that it can only have a normal relationship with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f it credibly undertakes a fundamental change in policy: regarding nuclear weapons, its relation with ROK, its role in the region, and its domestic system.
 

North Korea's latest and predictable shift to diplomacy does not in any way guarantee that change in policy.
 
北의 출구전략
 

봄이 가면 여름이 오듯, 北정권의 그 모진 전쟁 협박도 이젠 외교적 행색으로 바뀌는 이른바 출구전략 (Exit strategy)음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北은 살기등등한 독설로 서울뿐만 아니라, 미국본토까지 핵무기 타격을 가하겠다고 호언장담 했었다.
 

그런 무리가 갑자기 대화를 거론하며 6자 회담도 언급하기 시작하였으니 참으로 항당무계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北의 각본이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온 세상에 다시 알려준 것이며, 세계인은 이와 같은 상투적인 수법으로 내세우는 그들의 평화공세를 처음 대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北이 원하는 협상이 무엇인가 하는 데 있다. 
 

김 정은 체제 출범 이후에도 北은 무조건적으로 핵과 유도탄 프로그램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양립할 수 없는 두 목표를 공언하며 이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김 정은 자신은 국내의 정치적 상황으로 군의 강경파의 선택에 동조하고 있지만, 이들 프로그램으로부터 방향을 틀어 경제 개혁을 위한 투자를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北의 협상 의제가 한반도 비핵화라면 이것은 6자 회담의 본질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도 바라는 바이다.


그렇지 않고 北이 최근 협상의 시발점을 지적 발표한 것처럼, 미국이 자신 (北)을 핵 확산방지조약 (NPT)에 따른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핵보유국으로 인정 하라는 것이라면 문제는 전혀 다르다.
 

중국의 관영 중국신문사 (中國新聞社)는 시 진핑 (習近平)이 김정은의 특사 최 룡해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며, 또한 시대의 대세.”라고 쌀쌀하게 말하며 北의 6자 회담 복귀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미국의 대북정책 목표는 회담을 위한 회담은 하지 않는다는 것임을 일관되게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北의 미국에 대한 고위급 회담 제의는 6자 회담에서 이미 합의된 비핵화 공약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말보다 실천적으로 준수하는 진실한 행동을 먼저 보이라고 백악관은 압박하고 있다.
 

따라서 北이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통해서만이 국제사회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근본적인 정책 변화는 핵무기를 비롯하여 한국과의 관계, 동북아 지역 내에서의 北의 역할 그리고 北 자체의 국내제도를 망라하는 것이다.
 

지금 北이 외교로 전환한다는 것은 그 어떤 정책의 변화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北의 이 움직임은 오히려 지금 일관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국제제재가 효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확실한 반증이다.
 

北이 제의를 통한 협상에서 노리는 것은 미, 중 정상회담에서 보인 북 핵 불용의 의지와 한, 미, 중 3국의 한반도 비핵화의 정치적 입지를 탐색하면서, 특히 최근의 미, 중 관계를 시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의 대북 접근은 대화에 앞서 진정성 있는 행동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는 미국에 반해, 중국은 비핵화 수용을 안 해도 먼저 대화에 복귀하는 것을 중시해 온 차이를 보여 왔다.
 

중국은 이제까지 北정권에 대한 유일한 원조국으로서 에너지와 식량을 독점 지원해 오고 있다. 
 

北의 중국의 해외개발원조 몫은 이제 1/3에서 절반을 넘는 수준으로 확대되었으며, 北과의 관계는 더욱 더 부담스럽게 되어가고 있다.
 

또한 중국이 고집하고 있는 北의 전략적 완충지 (Strategic buffer)로서의 사고는 중국 내에서도 시대에 뒤진 사고방식이라는 비난도 거세게 받고 있다.
 

시 진핑도 안정보다 北의 비핵화를 더 중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北의 이번 대화제의는 현행 긴장 상황에서 처음 출구전략 (Exit strategy)을 공인하고 있다는 점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北의 잔인한 호전성 뒤의 이 협상의 성사 여부는 오직 北 지도부의 책임 있는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北의 행동을 투시하면서 그 의도를 간파하고, 단합된 동맹국들의 일치된 대응과 한반도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한 역량을 발휘 하는 것이다.

MUSIC
Hungarian Dance No.5
Johannes Brahms






 
 


2013년 6월 26일 수요일

박 대통령의 중국 도전 (President Park's China Challenge)


President Park's China Challenge
Abstract:
Whether President Park's "Trust politik"is merely a slogan or a solid policy strategy will be revealed in the summit between President Park and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on June 27, 2013.
 
On June 13, 2013, the North Korean National Defense Commission issued a statement that declared that North Korea remains committed to a non-nuclear future, but only when "the whole Korean Peninsula is denuclearized and the nuclear threats from outside are put to a final end."
 
The China proved unable to change the United States precondition that the North Korea must demonstrate its sincerity before returning to talks by enacting its previous commitments according to the September 2007 principles issued by the Six Party Talk negotiations.
 
Is it possible for President Park to get more from China than a symbolic statement? The answer is clearly yes.
 
Park can propose three party talk at the Summit that is based on Park's "Northeast Asia Peace Initiative."
 
Republic of Korea may lack the great power needed to impose a new order in the region. But it does have the geopolitical location, and moral power, and ideational capacity to delineate a new strategic framework.
 
This may shape the geostrategic environment rather than trying to manage North Korea's bad behavior at the margin.
 
 
박 대통령의 중국 도전
박 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신뢰 정치”가 6월 27일 중국 방문에서 확실한 정책 전략인지 아니면 단지 슬로건인지 판가름 난다.
 
지난 3월과 4월에 거친 北의 단골 핵 위협 책동은 결과적으로 미, 중의 대북 핵 견제 합의 접근을 보게 했다.
 
이 기회에 중국이 北의 대미 대화를 성사 시키지 못하면 앞으로 北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룰 것은 확실하다.
 
지난 6월 13일 北의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은 北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존중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와 외부의 핵 위협도 동시에 없어야 한다는 전제를 제시하면서, 변함없는 핵 야망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중국은 6월 9일 오바마~시 진핑 정상회담에서 北의 핵 보유의 불용을 선언함으로써, 미국이 주장해 오고 있는 2007년 9월 공약의 성실한 이행의 대북 접근의 전제조건을 바꾸지 못했다.
 
또한 北이 기습적으로 제안한 미, 北 고위급 회담 제의도 미국은 경험이 없고, 무모한 김 정은의 작금의 도발적 작태를 고려하여 무시해 버렸다.
 
미국은 北이 말만 앞서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비핵화 제안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일관되게 정책적 추구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표면적으로, 미국과 北의 강경파 간의 서로의 입지로, 이번 방중에서 박 대통령이 성취할 몫은 오바마~ 시진핑 성과보다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상징적인 성명보다 더 성과를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가능성을 주목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긍정적이다.
 
박 대통령은 “동북아 평화 구상”의 소신을 피력하면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3자 회담을 제의할 수 있다.
 
이것은 6자 회담과도 연계하면서, 北이 선 핵 폐기 조처를 취하면 동북아 핵무기 자유지대에서 北이 핵무기에 의한 외부의 공격을 받지 않을 이점이 강조될 수 있다.
 
이 개념의 핵심, 즉 동북아 핵무기 자유지대는 北이 6월 13일 요구했던 바로 그 내용이다.
 
한국이 제안할 수 있는 이 3자 회담은 北이 외부의 핵무기 공격을 받지 않을 법적 구속력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번 한, 중 회담에서 지역의 새로운 질서 형성을 유도할 힘은 적을지라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입지와 한국의 도덕적 힘, 그리고 관념적인 능력은 이런 새로운 전략적 틀의 구성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다.
 
6월 27일 박 대통령과 시 진핑 정상회담의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한다.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일본을 알자 (The State of Japan)





The State of Japan
Abstract:
The election of the hawkish Shinzo Abe as Japan's prime minister has the world worrying that Tokyo is about to part with its pacifist strategy of the last 70 years.
 
But Japan's new leaders are pragmatic, and so long as the United States does not waver in its commitment to the country's defense, they are unlikely chart a new course.
 
With a special structure of consciousness like the Japan, there are not so much such people in the world.
 
In the Japanese structure of consciousness, ostensibly claiming morally duty and sincerity are naturally divided and maintained.
 
There have been disputes between Korea and Japan on many issues over the years. and also have a complex history of cultural exchange, trade, and war, underlying relations today.
 
 
Japanese history textbook controversies refers to controversial content in government-approved history textbooks used in middle schools and high schools of Japan.


The controversies primarily concern what some international observers perceive to be Japanese nationalist efforts to whitewash the actions of the Empire of Japan during World War II.
 
Also at issue is the constitutionality of the governmentally-approved textbook depiction of World War II, Japanese war crimes, and Japanese imperialism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century.
 
The history textbook controversies have been an issue of deep concern both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particularly in countries which were victims of Imperial Japan during the war.
 
Despite the efforts of the nationalist textbook reformers, by the late 1990s the most common Japanese schoolbooks contained references to, for instance, the Nanjing Massacre, Unit 731, and the comfort women (sex slaves)of World War II, all historical issues which have faced challenges from ultranationalists in the past.
 
The Japanese government has waged critical challenges to history textbooks in attempt to tone down or delete descriptions of Japan's wartime aggression, especially atrocities such as the Nanjing Massacre.
 
The first challenge occurred in 1955, and the second took place in the early 1980s. The third began in 1997 and continues unsolved to this day.
 
Although the textbook in question was already selected by local education boards in Japan, the government and organizations are asking that it be amended when it will go into use in schools.
 
However, the government has in the past made similar requests for changes to textbooks, but it is unknown whether the Japanese government may make changes to only certain mistakes.
 
 
일본국
 
요즈음 일본의 정치는 거세게 파동치고 있다. 2012년 12월 26일 새로 출범한 제2차 아베신조 (安倍晋三)내각은 일본이 지난 70년 동안 지켜오던 평화주의전략을 탈피하는 초국수주의 (超國粹主義, Ultra-nationalism)우경화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고로 구미에서는 극동의 한반도와 섬나라 일본을 문명과 문화 역사적으로 “쌍둥이 나라 (Twin states)"라고 즐겨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 사람들의 극진한 친절과 예의에 빠져 그 겉치레와 본질의 차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인과 같이 특수한 의식 구조를 가진 국민도 흔치 않다.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 속에는 표면상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본심이 자연스럽게 구별되어 유지되고 있다.
 
일제 (日帝)가 물러간 지 40년도 안 되어 일본의 역사교과서 개정에서 일본이 이제껏 내세워 온 명분 뒤에 숨어 있던 본심이 노출되었다.
 
일본의 교과서 서술에서 드러나는 과거사 인식은 한국과 중국 등의 입장이 무시되었으며, 특히 고대사 및 근대사에서는 한, 일 관계의 서술과 제국주의 일본을 미화, 왜곡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기네 역사 교과서에서 침략 등 수치스러운 표현은 완화 시킨 것이다.
 
일본이 주로 왜곡한 사실은 중국대륙과 한국에 관한 것이며, 침략적 가해자로서의 죄책감의 원천이 되는 범죄 사실들이다.
 
따라서 일본은 이런 식으로 명치유신 (明治維新)이래 백년간의 아시아 침략의 실체를 감추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개정 작업 속에 숨어 있는 무서운 독소는 30여 년 간 간직했던 군국주의적 국가악 (國家惡)의 야망이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죄과에 대한 반성도 없이 경제적 부강으로 오만해진 일본의 위험한 본색이 노출된 것이다.
 
일본의 100년 과거사는 교과서 서술이 변하면 그 자구나 표현이 문제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술의 기본이 되는 역사관이 달라지면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 침략의 마수를 뻗치는 전조가 되었다.
 
비참한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의 염원을 담은 유네스코 헌장 (UNESCO Charter)에는 “전쟁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의 성채 (城砦)를 구축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아시아의 평화에 관한 한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은 교과서 속에서 준비된 것이므로 교과서 속에 전쟁 방지의 장치를 해 놓아야 한다.


이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는 패전 후 일본의 정신세계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패전 후 일본은 많은 것을 잃었다. 한국, 대만, 만주 등 식민지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천황제 (天皇制)국권주의 (國權主義)와 신국 (神國)운운하던 과대망상적인 국체관이 붕괴된 것이다.
 
일본은 깊은 가치규범의 갈등 속에서, 표면상으로는 민주주의 일본을 표방하면서도 건전한 국제 감각도, 아시아 침략에 대한 깊은 죄책감에 대한 반성도 없이, 삽시간에 경제 거인으로 비대해저 버렸다.
 
2001년 4월과 2005년 4월, “새로운 역사교과서 만드는 모임” 주도로 중학교 역사교과서 다수가 수정된 후, 검정 합격하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끈질긴 시정 요구를 했으며, 일본정부는 교과서 서술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제도상 정정할 수 없다는 입장만 고집해 왔다.
 
2001년에는 “한, 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결성하여 2010년에 그 결과를 발표하는 등 양국의 시각차를 줄이는 노력이 있었으나 논란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 교과서 개악으로 일본은 침략 시기를 올바르게 해석할 역사관도, 세계평화를 위한 새로운 세계관도 마련하지 못한 채 비속한 정신적 초국수주의 (超國粹主義, Ultra-Nationalism)로 퇴행하고 있는 딱한 나라 (Sorry state)로 폭로되었다.
 
흔히 일본인은 개인적으로는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집단의식에는 무서운 데가 있다. 
 
군국주의 국권 의식으로 순치 (馴致)된 일본인의 집단의식 속에는 놀라운 도덕적 불감증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국가적 범죄에 대한 죄책감은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죄책감을 감추기 위한 병적인 우월감으로 자신을 기만하면서 명분과 본심의 분리로 어물쩍 넘겨 버린다.
 
근대 일본의 심층의식 속에 남아있는 “탈아 입구(脫亞 入歐)” 발상도 교과서 개악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전통적 문화권에서 소외되었던 일본의 은폐된 열등의식은 그것이 겉으로 표현될 때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가학적 (加虐的)병증 (病症)으로 발작하여 왔다.
일본이 교과서 검정을 강화한데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관 (史觀)의 영향을 제거하고, 반공에 목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우경화가 반공주의라는 등식이 일제의 식민주의적 망상과 상통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된다.
 
일본의 우익 반공주의가 군국주의 미화를 의미한다면 우경적 일본의 본심의 정체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더욱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은 이런 교과서 우경화를 뒷받침하는 여론의 지지는 주로 한국을 잘 안다는 지한파 (知韓派)나 친한파 (親韓派)가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본 군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에 대해 솔직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일본 지성 층에는 좌익 지성인도 상당수 있으나, 지한파 중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은 한국의 대일관계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역사 교과서 개악으로 일본이 꾀하고 있는 우경화의 의미를 주시하면서, 재 군국화의 일본의 본심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MUSIC
Franz von Suppé's


 

2013년 6월 11일 화요일

北이 보는 한, 미 군사연습 (North Korea's Views at US-ROK War games)



North Korea's Views at US-ROK War games
Abstract:
The names of US-ROK war games staged over the years don't sound all that threatening: Team Spirit, Ulchi Focus Lens, Key Resolve, Foal Eagle.
 
But whatever they're called, the annual show of force is guaranteed to get a rise out of North Korea.
 
Two decades ago, Kim Il-Sung, reportedly shook with rage while talking about drills with a visiting US congressman.
 
This year's drills, however, are unusual in the level of fury they've inspired from the North-it has threatened nuclear war-and in the tougher than -usual US response that some call a case of the U. S. overplaying its hand.
 
In late March, two nuclear-capable B-2s stealth bombers took off from their Missouri base and flew more than 10,461km to drop dummy munitions on an uninhabited Korean peninsula island before returning home.
 
For North Korea, that has long been spooked by its bloody history with the world's premier nuclear superpower, these week-long springtime assembles of thousands of allied troops and their jets, ships and submarines are clear proof that the U. S. and ROK have Pyongyang in its crosshairs.
 
Year after year, the allies call the exercises defensive and routine. And year after year, North Korea predicts they're preparations for an invasion aimed at overthrowing its leadership.
 
 
Washington made the unusual announcement that the drills would include appearances by both the B-2s and B-52s, the nuclear-capable bombers that have a long and-from the North's perspective-menacing history on the Korean peninsula.
 
The US-ROK drills are meant to deter North Korea from an attack like the one that started the Korean War in 1950.
 
And both sides conduct military drills because they're the best way to prepare for war, short of actual fighting.
 
Also, skillfully done drills can serve as a show of force to extract concessions from adversaries without having to resort to direct military intervention.
 
North Korea knows that its threats won't make the allies end their drills. Instead, it's largely an excuse to build tensions, mostly for an aid-maximizing strategy aimed at scaring donors into providing food and money.
 
 
 
 
한, 미 양국이 수년간 실시해 오고 있는 군사연습에는 Team Spirit, Ulchi Focus Lens, Key Resolve, Foal Eagle 등이 있다.
 
그러나 군사연습을 무어라 부르든, 이 연례의 무력시위는 틀림없이 北의 약을 올리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20년 전 김일성은 방북 중인 미국 하원 의원과 군사연습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크게 분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올해의 연습은 北의 핵전쟁 위협으로 미국의 대응이 지나칠 정도로 평소와는 다른 특이한 면을 보였다.
 
3월 하순에는 세계의 불가사의 전력으로 불리는 핵능력의 두 대의 B-2폭격기가 미주리 주 본토기지에서 출격하여 10,461km를 날아와 한반도 남쪽의 한 무인도에 모의탄을 투하하고 돌아갔다.
 
이에 대하여 北은 어김없이 악랄한 전쟁연습이라는 험한 반응을 보였다. 北의 독재정권은 세계의 핵 최강국인 미국과의 오랜 피 묻은 역사 때문에 항상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번 봄철 연습에 동원된 수천 명의 한, 미연합군 부대와 위용을 들어낸 전폭기, 선박 그리고 잠수함 등 막강한 핵전력은 누가 보아도 미국과 한국이 北정권을 정조준 하고 있는 명확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한반도 내 미군의 화력의 상징과 같은 오산공군기지에서는 최신 장비의 행진 전시가 있었으며, 여기에는 High-low전술에 의한 다목적 전투기인 파이팅 팰콘 (Fighting Falcon)F-16과 지상군 근접지원 제트기 A-10, 헬기, C-130수송기도 나왔다.
 
 
해마다, 한, 미 양국은 이 연습을 방어적인 정기적 훈련이라고 강조하지만, 평양은 정권 전복을 겨냥한 침공 준비라고 맞선다.
 
특히 금년의 Foal Eagle연습에는 유난히 적개심을 보였다.
 
미국은 이 연습에 이례적으로 B-2와 B-52 핵 폭격기도 참가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 핵 폭격기는 北으로서는 한반도에서의 오랜 위협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하여 미국 태평양사령부 (USPACOM)태평양공군 (PACAF)사령관 Herbert J. "Hawk" Carlisle 대장은 B-2를 언급하면서, “이것은 北에 보내는 명확한 메시지.”라고 말 했다.
 
北은 주목할 만한 그들의 일련의 폭력적인 위협을 발표하면서, 태평양의 미국 표적과 미국 본토 그리고 한국에 대한 유도탄 공격을 강도 높게 경고해 왔다.
 
北의 이런 위협을 뒷받침할 핵과 유도탄 능력은 객관적으로 아직 부족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반도에서 자주 발생하는 국지적 분쟁은 불길한 확전 (擴戰)의 위험도 내포할 수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의 이 조용한 합동군사훈련 접근은 北에게 더 이상 “혼돈 (混沌)”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며, 동시에 동맹국 한국에게는 B-2 및 B-52 핵 폭격기 비행으로 대북위협 상징성을 더 높여 안보 공약을 다짐한 것으로 해석한다.
 
미국은 기자들의 군사연습 접근을 차단하고 고조된 긴장 속에서 대륙간탄도탄 (ICBM)시험도 늦췄다.
 
한, 미 양국이 합동 군사연습을 수행하는 것은 실제전투를 하지 않고도 전쟁을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한, 미 양국의 훈련은 1950년 6.25전쟁을 발발시킨 것과 같은 北의 공격을 억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강력한 정치적인 요소도 포함되고 있다. 
 
슬기롭게 수행된 군사연습은 직접적인 무력 사용에 의존하지 않고도 상대방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힘의 과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가장 대규모의 군사연습인 Team Spirit는 1976년부터 1993년까지 실시되었으며, 1980년대 말에 200,000 명 이상의 병력이 동원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北은 이 연습을 싫어했다. 그리고 1976년 미군과의 충돌 전에 긴장을 조성했으며, 그 해 가을, 비무장지대 내 포플러 나무 가지 치는 미군 2명을 도끼로 살해했다.
 
北은 1980년대부터 Team Spirit연습이 실시되면 군인과 주민들에게 전시체제 돌입을 명령했다.
 
이것은 가난한 北이 이 훈련에 대비하여 부대와 장비를 움직이면서 귀중한 자원을 소비하는 비싼 대가를 지불했음을 입증했다.
 
오늘날 김 정은체제하의 北의 의도를 읽기는 더 어려워졌다. 
 
요즘 北의 수사 (修辭)는 외교적으로 원조를 얻어 낼 국면 전환 전에 두려움을 고조시키는 순환패턴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北은 그들의 위협으로 한, 미 양국의 군사연습을 중단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신, 긴장 조성으로 두려움을 줌으로써 식량과 돈을 더 얻어내려는 노림수를 사용한다. 이것이 그들의 “원조 극대화전략”이다.
 
 

 
 
 
 
 
 
 

2013년 6월 1일 토요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전략 (Korean Peninsula Trust Process)



Korean Peninsula Trust Process
Abstract:

President Park Geun-hye's proposal to North Korea for a dialogue was in line with Park administration's "Korean Peninsula trust process," a set of guidelines directing Park's North Korea policies.
 

It appears that President Park has turned around from Park's previous hard-line stance since Park has proposed a dialogue to follow the administration's policy guideline of building the "Korean Peninsula trust process."
 

According to this policy framework, if North Korea makes the right choice, such as abandoning its nuclear ambition, Republic of Korea would reciprocate by giving humanitarian assistance and starting low-level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projects.
 

If the peace process proceeds further, Republic of Korea is even willing to direct large-scale infrastructure projects and provide ample assistance to North Korea.
 

The Korean Peninsula trust process is deemed to be substantially more flexible than that of the previous administration's North Korea policy based on strict reciprocity, and thus gives rise to hope-filled anticipation of renewed inter-Korean exchanges and cooperation, which all but ended during the Lee Myung-bak administration.
 

Despite the grave situation the country faced, Park said thyat she would keep open the possibility of dialogue.
 

It is far to say that Park has maintained stability by keeping the basis of policy toward the North separate from firm responses grounded in national security.
 

Also playing a role in this is the priority Park has placed on working close with China.
 
 

박 근혜 정부가 주창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확고한 대북억지력을 바탕으로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병행하면서 신뢰와 균형을 중심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北정권을 설득할 수 있는 다양한 방책과 대안이 뒷받침되어야한다.
 

특히 김정은 체제는 공식 출범하여 이제 겨우 1년이 지나면서 불완전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北은 2012년 4월 4차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 회의에서 김정은을 당 영도체계 (제1비서)와 국가영도체계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영도자로 옹립함으로써 김정은의 제도적 리더십을 확립했다.
 

김정은의 인격적 핸디캡을 보완하고 제도적 리더십을 강화하기위한 다양한 노력도 기울였다. 동시에 당과 국가체계 복원을 완수하기위한 조처도 취했다.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숙청은 군 내부의 체제위해 요인을 제거하고 군에 대한 당적 통제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김정은 개인의 리더십은 다소 불완전하다.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의 정책조정능력은 문제시 될 수 있다.
 

최근 北이 구사해 온 강경일변도 대외, 대남정책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1993년 초 北이 NPT탈퇴와 준전시 상태 선포와 같은 초강경 조치들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미국과의 대화채널을 가동하는 등 출구전략을 모색하였다.
 

즉 강경드라이브 카드와 출구전략 카드를 모두 갖고 정책조정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北은 특정 외교안보현안이 발생하면 군부와 외교부, 당 국제부가 각각 최고지도자에게 제의서를 올리고 김일성, 김정일은 이를 종합하여 최선의 대책을 강구하는 정책조정능력을 발휘하는 절차를 따랐다.
 

반면, 종합능력이 미약한 김정은은 출구전략을 고려하지 않는 군부의 강경드라이브 일변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난맥상은 단순히 외교안보정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국정 전반에 걸쳐 나타날 수 있다.
 

다행히 김 정은체제는 김경희, 장성택, 최룡해와 같은 핵심 권력엘리트들이 역할을 분담하면서 현재까지는 김정은의 불완전한 리더십을 잘 보완하고 있다.
 

김경희는 이른바 北이 말하는 백두혈통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김정은의 최고 정치적 후견인이다. 김정일이 물려준 통치자금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 전부터 건강이상설이 나돌고 있으며, 오랫동안 맡아오던 당 경공업 부장직에서 물러났다.
 

장성택은 확실한 실세 중의 실세다. 김정은 체제가 당면한 핵심 국가목표들이 장성택의 지휘 하에 추진되고 있다.
 

당 행정부장으로써 국가보위와 사회 안정을 책임지는 공안기구들을 당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또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책임지고 있다.
 

최룡해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명실상부한 군부의 2인자로서 김정은의 군 장악을 지원하고 있다.
 

최룡해는 전통적인 당료출신으로 장성택과 합세하여 리영호 총참모장 숙청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오랜 시간 정체되고 상호불신이 깊어 남북관계의 구조적 개선을 위한 정책 추진 없이 새로운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강경 또는 유연한 조치로는 관계의 진전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남북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쟁점 등이 해소되어야 실질적인 남북관계 정상화 및 진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마련해 일관성과 인내심을 갖고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면서 정책의 진정성이 인지될 때, 핵문제 해결의 시발점으로서도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상호간의 신뢰형성은 과정이 필요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관계의 축이 정상적으로 확고히 서게 되면 미국과 중국도 한반도 상황 개입으로 인한 대립과 갈등도 없어질 수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능동적으로 대화와 협력 공간을 조성하여 한반도 정세를 이끌어 가는 것이 진취성이 중요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효과적인 가동을 위해서는 지난 정부들의 남북 간 대립과 불신의 원인이 되었던 모든 현안들을 회담에 상정하여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향후 남북관계 진전의 방향을 정립하고 신뢰를 조성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상호신뢰를 회복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국가안보는 도발을 저지하고 억지하는 군사적 대비도 중요하지만, 도발을 예방하기 위해 남북 간의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접근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균형을 중시한다고 해도 긴장 고조와 위기 국면에서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MUSIC
Light Cavalry Overture
Franz von Suppe
Herbert von Karajan conducts

http://www.youtube.com/watch?v=7PFcwxzYz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