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ng History of Misjudging North Korea
Abstract
North Korea has befuddled Americans and Asian allies ever since it launched the invasion of ROK in June 1950.
General Douglas MacArthur, after leading a brilliant landing at Inchon in September 1950, chased the communists back north of the 38th parallel.
As MacArthur barreled northward to the Chinese border during the fall of 1950, the battle field landscape widened.
American supply lines lengthened. Conventional wisdom had been that the Chinese would not invade, given America's near nuclear monopoly and likely air superiority.
But in November 1950, what eventually would become nearly a million-man Chinese army did just that, pouring southward into the Korean peninsula.
In January 1951, the communists retook Seoul after forcing the longest American military retreat in U.S. history.
What followed the 1953 armistice that ended the Korean War a tense Cold War standoff between two antithetical Korean countries for the next 65 years.
North Korean assassinations, kidnappings, and continual provocations continued throughout the "peace."
In 1994, the Bill Clinton administration gave massive aid to North Korea under the "Agreed Framework" deal, including heavy fuel oil. In exchange, North Korea promised to cease its ongoing nuclear proliferation.
Predictably, North Korea lied. It eagerly took the aid only to further fast-track its nuclear weapons program.
The George W. Bush administration in 2003 arranged for "six-party talks" to discourage North Korean nuclear proliferation.
America and its allies once more provided aid and promised not to attack Kim Jong-il regime. In exchange, Pyongyang agreed in writing to dismantle "all nuclear weapons and existing nuclear program."
Once more, North Korea outsmarted Western naive. It interpreted American concessions as weakness to be exploited rather than magnanimity to be reciprocated.
In 2006, North Korea detonated a nuclear device.
The Obama administration learned nothing from the failures of the Clinton and Bush administrations.
Obama's policy was called "strategic patience".
He misjudged North Korea as every other president had since the end of the Korean War. North Korea only further expanded its nuclear arsenal.
Soon after Donald Trump was elected, North Korea announced that it was now capable of using its nuclear weaponry to take out cities on America's West Coast.
Trump administration also lined up an international boycott of North Korea that is slowly squeezing the regime.
Now, Kim Jong-un suddenly wants to talk. A collapsing North Korea once again claims it will denuclearize, but it wants a historic photo-op with a U.S. president.
What have we learned about North Korea in the past 65 years?
North Korea's cunning usually trumps mankind's ideals of fair play and self-confidence.
It is now time to break up forever with a long history of misjudgment of the North Korean regime.
北정권을 오판한 오랜 역사
北정권 김 일성은 1950년 6월 남침 이후 미국과 아시아 동맹국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남침에 앞서, 미국은 예기치 않은 北으로부터의 침공이 있을 경우 한국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주의한 신호를 보냈다.
놀랄 것도 없이, 곧 전쟁이 뒤따랐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 화려한 인천 상륙작전을 주도한 후 北정권 공산군을 38선 이북으로 쫓아냈다.
집요한 추격으로, 맥아더는 北정권을 정복하고 한반도를 통일하려고 하기 때문에 중국의 침공은 없을 것이라는 도박을 한 것이다.
맥아더가 1950년 가을에 북쪽 중국 국경으로 질주할 때, 전장의 경관은 크게 달라졌다.
미국 병참선이 늘어나면서, 북진 (北進)하던 유엔군의 군세가 약해졌다. 날씨가 악화되면서, 해는 더욱 더 짧아졌다.
전통적인 통념은 미국이 독점적인 핵보유국에 가깝고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의 개입은 없을 것으로 통했다.
그러나 1950년 11월, 백만에 가까운 중공군이 한반도를 향해 남쪽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됐다.
중공군과 北정권 인민군은 북위 38도선을 지나쳐 미군과 유엔군을 남쪽으로 밀어냈다.
1951년 1월, 공산군은 장진호 전투를 시작으로, 미국의 역사상 가장 긴 미군의 퇴각을 강요하면서 서울을 재탈환했다.
미국의 군사 천재 매튜 리지웨이 장군의 부임 (赴任)으로 미군은 재편성되었다.
1951년 초, 유엔군은 서울을 다시 탈환하고 공산군을 38선 이북으로 되몰아냈다.
그러나 계속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유엔군은 북쪽을 재침공하지 않고 한반도의 재통합도 하지 않기로 했다.
1953년 6·25전쟁을 종식시킨 휴전 이후의 한반도는 향후 65년 간 두 개의 적대적인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체제 간의 냉전 교착 상태의 영속 (永續)이다.
평화를 통틀어 지금까지, 北정권은 혈육도 마다하지 않는 살육과 암살, 납치, 그리고 온갖 불법행위와 끊임없는 도발을 일삼는 악의 화신 그 자체이다.
1994년,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北정권에 중유를 포함한 막대한 원조를 했다. 그 대가로, 北정권은 핵 확산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예상대로, 北정권 지도부는 거짓말을 했다. 그것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더 빨리 서둘러 추진하기 위한 원조 구걸이었을 뿐이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3년 北정권 핵 확산을 막기 위한 다자간 노력의 일환으로 6자 회담을 마련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또 다시 원조 제공을 하고 김 정일 정권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기를 약속했다.
그 대가로, 北정권은 모든 핵무기와 기존 핵 프로그램을 해체하기로 서면으로 동의했다.
다시 한 번 北정권은 서구 (西歐)의 순진함을 속였다. 미국의 양보를 보답 받을 아량보다는 착취될 약점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2006년, 北정권은 핵 장치를 폭파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의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오바마는 北정권에 국제법 위반을 강의하는 똑 같은 낡은 피곤한 대본만을 따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오바마는 北정권에 더 많은 원조를 해 주면서 구두선 (口頭禪)에 지나지 않는 北정권의 행동의 변화와 비핵화를 주장했을 뿐이다.
오바마의 정책은 “전략적 인내”로 불렸다. 北정권이 타협하지 않으면 적어도 부패와 불법행위로 결국 붕괴될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오바마도 6·25 전쟁 이후 다른 미국 대통령이 모두 그랬듯이 北정권을 잘못 판단했다. 北정권은 핵무기를 더 확장했다.
北정권은 항상 중국이 웃고 무시하는 동안 자신의 미친 기분 중 하나를 가장 (假裝)하고 더 많은 돈 때문에 서구의 공감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 北정권은 이제 미국 서부 해안의 도시들을 제거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자신은 김 정은을 “작은 로켓맨”이고, “짜리몽땅한 뚱보”라고 경멸적으로 비난하면서 김 씨 일가들이 항상 해오던 무모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역시 北정권에 대한 국제적 배척 운동을 전개하여 정권을 서서히 압박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이제 김 정은은 갑자기 미국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붕괴하고 있는 北정권이 다시 한 번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우선 미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사진 촬영을 바라고 있다.
세계는 지난 65년 동안 北정권에 관해 무엇을 배웠는가?
北정권의 교활함은 보통 페어플레이와 자신감을 신조로 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이상 (理想)을 뛰어 넘는다.
공허한 위협은 통하지 않는다. 식량과 현금, 그리고 연료 지원 등 온갖 유화정책 (宥和政策)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중국은 北정권의 고객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 좌파 정부는 미국의 약점을 감지할 때 北정권을 달래기에만 급급 (汲汲)해하고 있는 처지다.
이제 北정권을 오판한 오랜 역사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아야한다.
과거를 잊어버린 자는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게 된다.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MUSIC
Pietro Mascagni -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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