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c of Evil
Abstract:
The Holocaust was the mass murder or genocide of approximately six million Jews during World War II, a programme of systematic state-sponsored murder by Nazi Germany, led by Adolf Hitler and the Nazi Party, throughout the German Reich and German-occupied territories.
Of the nine million Jews who had resided in Europe before the Holocaust, approximately two-thirds were killed.
Over one million Jewish children were killed in the Holocaust, as were approximately two million Jewish women and three million Jewish men.
A network of over 40,000 facilities in Germany and German-occupied territory were used to concentrate, hold, and kill Jews and other victims.
Recent estimates, based on figures obtained since the fall of the Soviet Union in 1989, indicate some ten to eleven million civilians (mostly Slavs) and prisoners of war were intentionally murdered by the Nazi regime.
Eichmann did more than follow orders he brought his full abilities to bear on the project.
For that is how he saw all of this. It was his job and he was a pro. As a bureaucrat, he had absolved himself from the human reality of what he did.
He represents the great flaw in us-when we lose ourselves in
the project, we became in effect sociopaths.
Eichmann's inability to think for himself was exemplified by his consistent use of stock phrases and self-invented cliche̍s, demonstrating his unrealistic world view and crippling lack of communication skills through reliance on officialese and the euphemistic convention of speech that made implementation of Hitler's policies somehow palatable.
Banality of evil is a philosophical term meaning that evil occurs mundane of individuals whose evil acts were driven by the requirement of the state and orders from above. when ordinary individuals are put into corrupt situations that encourage their conformity.
The phrase the "banality of evil" was coined by philosopher Hannah Arendt after witnessing the trial of high-ranking Nazi Adolf Eichmann who seemed, at least to Arendt.
惡 (악)의 논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히틀러의 나치스가 학살한 유태인은 어린이 100만 명을 포함하여 600만 명에 이르렀다.
당시 유럽 거주 900만 명의 유태인 가운데 3분의 2의 남녀가 독일과 독일 점령지 4만 여 시설에서 참혹하게 살해된 것이다.
역사는 이것을 “홀로코스트 (Holocaust, 유태인 학살)”라고 기록하고 있다.
워낙 대규모로 저질러진 학살이라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계속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1989년 소련 붕괴 후 밝혀진 자료에는 나치스가 1,000만 내지 1,100만 명의 민간인과 포로 (대부분 슬라브민족)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9월에 밝혀진 극비문서에 따르면 나치스는 2차 대전 이듬해인 1940년 1월부터 1941년 8월까지 독일 내 각 병원에 수용돼 있던 지체장애인과 정신장애인 27만 5천 명을 학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반인륜적 범죄와 관련하여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아돌프 아이히만 (Adolf Eichmann, 1906~1962)이다.
독일의 나치스 친위대 중령인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혐의의 전범이었다.
그는 독일 패망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약 15년 간 숨어 지내다가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 비밀조직에 체포돼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미국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1975)는 “뉴요커”잡지에 아이히만 공판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서 아이히만이 유태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의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대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사고력의 결여 (Thoughtlessness)"에 기인한다는 ”악의 평범성 (The banality of evil)"의 결론을 내렸다.
이 평범성은 보통사람들이 그들의 활동이나 비 활동이 낳을 결과에 대한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다수의견에 따르려 하는 경향이다.
아렌트의 이 주장은 곧 미국 전역에 걸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악의 화신 (化身)으로 여겨졌던 인물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악의 근원이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히틀러의 병사들에게 명예는 곧 충성이고, 충성은 곧 명예였다. 또 히틀러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세뇌시켰다.
그리하여 병사들이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을 갖기보다는 자기의 역사적 책무를 갖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은 학살을 저지를 당시 히틀러의 법적 효력이 있는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것이었다.
아이히만은 평소엔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평범한 가장이었고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고 하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착한 사람이 저지른 악독한 범죄라는 사실에서 연유되는 곤혹스러움은 인간의 사유 (思惟, Thinking)란 무엇이며, 그것이 지능과는 어떻게 다른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기했다.
이런 학살은 정교한 분리 시스템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는데 일조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명령을 내리는 자, 세뇌를 독려하는 자, 집행을 하는 자 모두는 각기 다른 위치에 있으며, 직접 살인을 하는 병사들도 그 순간에는 충성과 역사적 책무라는 주문 (呪文)을 외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적 과정은 말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다.
학살의 하수인들은 자신들이 잔혹행위에 개입해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떤 형태로든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지만, 그들은 그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환상으로 메우려고 “가짜의 세계 (Counterfeit universe)”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하나의 예가 베트남전쟁의 경우 군인들이 애용한 헤로인과 마리화나 등의 마약복용 (Pot-smoking)이었다.
독일군은 유태인 수용소에서 술과 클래식 (고전 음악)을 즐겼으며, 수용된 여성들에 대한 변태적인 성적 학대를 즐겼다.
이런 수단과 방법을 통해 하수인들은 스스로 정신적 무감각 (Psychic numbing)상태를 불러일으키며 정신적 공황 (恐惶)을 메우려 애썼다.
나치스의 경우, 이 “새로운 독일의 냉혹성 (New spirit of German coldness)"을 영웅시하는 이데올로기도 한몫을 했다.
클래식을 즐기는 것과 같은 심미적 행위도 죄의식을 초월해 보다 효과적이고 냉혹한 행위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데 중요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조리 행위에 개입된 것을 정당화하고 자신을 용서하려 하는 자기합리화의 메커니즘도 활용한다고 한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 병사가 베트콩의 시체 수를 확인하기 위해 시체마다 귀를 잘라 모으는 행위를 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베트남전쟁에서도 수많은 아이히만들이 존재했음을 말해 준다.
1968년 3월 16일 노인, 여자, 어린이 등 민간인 347명을 학살한 미라이 학살 사건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아이히만과 관련, 세계적 사회심리학자이며 인문주의철학자인 에리히 프롬 (Erich Pinchas Fromm, 1900.3~1980.3)은 아이히만의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관료주의적 인간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프롬이 관료주의적 인간의 전형으로 내세운 인물이 바로 아이히만이다. 아이히만은 조직화된 인간의 상징이며 우리 모두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프롬은 “조직화된 인간은 불복종의 능력을 잃게 되고 심지어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역사적으로 이 시점에서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유태인 학살에 가담한 독일인들의 심리 상태에 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동료 간의 알력, 출세주의, 무조건적 복종”이 많은 보통 사람들을 홀로코스트에 동참하게 만든 요인이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면 독일의 병리 현상인 “제거주의”적 반유태주의에서 원인을 찾으며 모든 독일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목사 마르틴 라젤라는 히틀러에게 전쟁이 없는 평화의 추구를 설득 했는가 반문하면서 독일의 종교계와 국민의 책임을 거론했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그런 특성을 잘 읽은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지배가 독일인들을 타락시킨 것이지 독일인들이 원래 그런 건 아니라는 반론도 무게를 더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독일의 신화와 역사가 사악한 유태인이라는 “집단 환상”을 키워 관료주의에 대한 경고를 울렸다.
그러나 “진실을 인식하는 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성품의 문제”라는 프롬의 말을 상기한다면, 우리가 자꾸 강조하는 “현실”의 굴레가 우리를 관료주의적 삶의 체제에 묶어 놓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겠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사랑하고 존중하되 조직의 부정과 불의조차 묵인하는 조직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MUSIC
E lucevan le stelle (from Puccini's opera Tosca)
Luciano Pavaro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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