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ongyang’s Sorry Politics
Abstract
In the tearjerker “Love Story”, a young girl dying of cancer tells her boyfriend that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Pyongyang has generally adopted the same attitude toward Republic of Korea, with a small twist: Juch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North Korea has never been very good about apologizing for its conduct.
Recently, it expressed “regret” over a landmine explosion, but it has been careful to point out that “regret” is not “sorry.”
In other words, Pyongyang regrets that the incident took place but refuses to take responsibility for it or apologize.
It’s not that Pyongyang never apologizes. In 2002, Kin Jong-il officially acknowledged and apologized for the abduction of Japanese citizens in the 1970s and 1980s.
But instead of heralding a new era in Japan-North Korean relations, the official revelation merely deepened Japan’s distrust of North Korea.
North Korea has even apologized, more or less, to the United States. Kim Il-sung offered his regrets after the infamous ax incident.
Pyongyang has also been apologetic to Seoul. It took four years, but Pyongyang eventually apologized in 1972 for the assassination unit that tried and failed to breach Blue House in 1968.
But there are many incidents that Seoul still awaits some official acknowledgment and apology from the North, including the sinking of the Cheonan, which Pyongyang continues to insist that it had nothing to do with.
In general, Pyongyang doesn’t want to appear to be kowtowing to the Seoul.
North Korea’s leadership also feels a pressing need to demonstrate that it is not weak.
Seoul can manage to wring more apologies or deep regrets from Pyongyang in the future. But it just doesn’t make sense for Seoul to build a policy around such an expectation.
Ultimately, North-South relations will only improve through very concrete exchanges of action, not exchanges of words.
It can be understandable the importance of apologies. But insisting on apologies from North Korea is as knocking on the wrong door.
So, let’s just take their regrets and move on to the business of inter-Korean cooperation. Maybe when there’s a little more love between North and South, there won’t be as much of a need for apologies.
평양의 딱한 정치
눈물을 짜게 하는 영화 “사랑 이야기 (Love Story)” 가운데, 암으로 죽어가는 한 젊은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평양은 한국에 대하여 대개 이와 같이 주체 (主體)는 미안하다는 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뒤틀린 태도를 취하고 있다.
평양은 그의 행위에 대하여 좋게 사과한 일이 없었다. 최근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하여서는 한국에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北정권은 “유감”이 “사과”가 아니라고 신중하게 언급했다. 바꾸어 말하면, 北은 사건 발생을 유감으로 여기지만 책임이나 사과는 거부한 것이다.
이 말은 평양이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2002년, 김 정일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일본인 납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때 김 정일은 “특수부대는 영광을 위한 무모한 모험에 넋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감이다. 나는 솔직히 사과한다. 나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조처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것이 일-北 관계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대신, 그 공식적인 폭로는 단지 北에 대한 일본의 불신만 심화시켰다.
北의 주 (駐)방글라데시대사는 지난 봄 대사관직원이 금괴를 밀반출 하려다 적발된데 대하여 방글라데시 정부에 사과했다.
작년, 北정권은 평양의 건물 붕괴로 수백 명의 주민이 희생된데 대하여도 자신의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北정권은 심지어 미국에 대하여도 대체로 사과했다. 김 일성은 평판이 몹시 나쁜 DMZ 내 도끼 사건 후 그의 유감을 표명했다.
北은 마찬가지로 한국에 대하여 미안해했다.
1968년 北의 124부대 소속 특공대 31명이 청와대 침투를 시도한 1,21사태의 실패에 대하여, 4년이 걸렸지만, 1972년 결국 사과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이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건에 대한 일부 공식적 인정과 사과가 남아있으며, 여기에는 北이 잡아떼고 있는 천안 함 폭침 사건도 포함된다.
대체로, 北정권은 한국에 굽실거리려 하지 않는다.
주체 (主體)의 일반적인 관념을 넘어선 주체를 정의 (定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반대의 정의는 쉽게 사대주의를 말한다.
한국이나 일본의 미국과의 사대주의적 관계는 평양이 어떤 나라와도 회피하려는 분명한 종속성의 종류라는 것이다 (현행 중국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례).
또 사과란 아첨꾼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에 평양은 보통 사과를 회피한다는 논리이다.
北정권의 리더십은 또한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한국은 앞으로 평양의 “깊은 유감”이나 사과를 억지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 때문이라면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北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수많은 경우처럼, 유감 표명이 그들의 이런 행위를 다시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남북 관계는 언어의 교환이 아닌 매우 구체적인 행동의 교환을 통해서만 개선된다.
최근 DMZ 사건으로 촉발된 남북 간 긴장 속에서도 양측은 실용적인 교환에 의한 접촉을 계속했다는 것이 이를 말하고 있다.
北정권은 준 전쟁 상태를 선포했지만, DMZ 바로 북쪽의 개성공단에서는 북한 근로자와 한국의 관리자들은 계속 다양한 상품을 제조해 냈다.
개성에 있는 고려 궁성인 만월대에서도 남북이 함께 발굴 복원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평양 국제 청소년축구대회엔 한국의 축구팀도 참가했다.
서구에 알려진 北정권의 평판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역 사람들은 아주 실용적이다.
그들은 실리적인 면에서 가장 헌신적인 자본주의자들보다 종종 더 관심을 보인다. 그들은 미사여구가 아닌 결과를 중시한다.
확실히 평양은 선전의 정당한 몫을 한다. 北의 협상대표들은 특정 이념의 제약 내에서 협상해야한다.
일반적으로 북한 지역 사람들은 일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매우 실무적인 접근을 한다.
그것은 최근 합의된, 특히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남북 간 교류의 추진 등 특정 항목에 대한 후속 조처를 위해서이다.
사과의 중요성도 이해할 수 있지만, 평양의 사과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내륙국가로부터 고급 초밥을 수입하려는 것에 비유될 수 있으며,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평양은 그냥 사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양의 유감 표명은 그냥 받아두고, 남북 협력 사업에 집중함이 현명한 처사이다.
남북 간 사랑이 깊어지면 그만큼 사과의 욕구는 저 멀리 간다.
MUSIC
Mozart-Requ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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