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 of Excess
Abstract
The feeling sentiments of those Korean national back to Korea, who lived abroad are filled with the widespread practice problems of excess seen in many places in Korean society.
Excess definition, the fact of exceeding something else in amount or degree, also that is considered wrong because it goes beyond what is usual, normal, or proper.
That visible and felt in the body, there is excess only while it is hard to find out any adequacy of the true meaning.
Hubris (also hybris, from ancient Greek)means extreme pride or self-confidence. When it offends the Gods of ancient Greece, it is usually punished.
Hubris is usually perceived as a characteristic of an individual rather than a group, although the group the offender belongs to may suffer consequences from the wrongful act.
Hubris often indicates a loss of contact with reality and an overestimation of one's own competence, accomplishments or capabilities, especially when the person exhibiting it is in a position of power.
In Greek mythology, Nemesis at her sanctuary at Rhamnous, north of Marathon, was the spirit of divine retribution against those who succumb to hubris (arrogance before the gods).
Another name was Adrasteia, meaning "the inescapable." The Greeks personified vengeful fate as a remorseless goddess: the goddess of revenge.
The word Nemesis originally meant the distributer of fortune, neither good nor bad, simply in 엳 proportion to each according to what was deserved.
Later, nemesis came to suggest the resentment caused by any disturbance of this right proportion, the sense of justice that could not allow it to pass unpunished.
In the Greek tragedies Nemesis appears chiefly as the avenger of crime and the punisher of hubris.
So once upon a time, we Koreans said the moderation, Greek philosopher Aristotle also said the moderation.
지나침의 허상
외국에 살다 한국에 돌아와서 느끼는 동포들의 공통된 소감은 “지나침”의 문제다.
왜 그런지 너무나 많은 것이 지나친 것 같다는 것이다. 지나침에 부딪쳤을 때의 압박감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고 몸에 느껴지는 것은 지나침 뿐이고 참뜻으로의 적당함이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말 가운데 “Hubris"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침, 분에 넘치는 자존심이라든지 자랑이라든가 긍지를 갖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과잉긍지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과잉자만이 되겠다.
그리고 이 Hubris와 인과관계가 있는 말에 “Nemesis"라는 것이 있다.
이 Nemesis는 복수 (復讎)의 여신으로, 천벌, 인과응보 (因果應報) 같은 뜻의 말이다.
그러니까 “Hubris"와 ”Nemesis"는 끊을 수 없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이 된다.
사람이 자신에 대해 과잉의 자만을 가질 때에는 틀림없이 천벌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사람의 행동에 대해 끔찍할 정도로 두려움이 가는 냉정한 관찰인 것이다.
이러한 말 속에서 그 근본은 물론 “과잉 (過剩)”이라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긍지나 자존심을 갖지 말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지나치도록 행동하거나, 지나치도록 자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곧 “지나침”의 문제일 것이다.
무엇이 많다든가. 적다든가 하는 것도 적당히 많다거나, 적당히 적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고 지나치게 많든가 지나치게 적다.
그러니까 균형이 안 잡혀서 무질서와 혼란이 생기고 어딘가 딱 들어맞는 느낌의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유 (悠悠)함조차 없는 판에 아름다운 말인 “우아 (優雅)함”은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나치게 좁은 땅에 지나치게 사람이 많고, 지나치게 복잡한 서울에 많은 차들이 시커먼 연기를 뿜으면서 지나치게 빠르게, 그리고 무질서하게 달린다.
상점에 가 보면 불친절할 때는 지나치게 불친절하고, 사치하면 이것 또한 지나치게 사치한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교육열이란 것도 지나친 목적으로 지나치게 치열하다.
어린이에게 피아노를 지나치게 가르쳐 새벽 6~7 시만 되면 시끄러운 소리로 이웃 사람들은 제대로 잠도 못 잘 지경이다.
또 길 건너 예배당은 새벽 4시에 지나치게 큰 소리로 녹음된 가짜 종소리를 지나치게 울리고 있다.
이런 것들로 견딜 수 없어 시내로 나오면 온갖 간판이 지나치게 어지럽다. 페인트로 씌어 있는 서울의 수많은 간판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상점뿐이 아니다. 예배당을 보면 지저분한 네온 물, 번쩍이는 알루미늄 십자가를 매달아 지나친 장식을 하고 있다.
교회당 건축이나 자기 교회 선전도 지나치게 하는 데가 많다. 교회뿐만 아니다. 학계, 문화, 예술, 언론계 등 어디서나 지나침을 볼 수 있다.
무슨 세미나니 심포지엄이 그리도 지나치도록 많고, 지나치게 파벌이나 단체가 많고, 지나치게 지저분한 잡지도 많고, 끝이 없다.
이런 모든 지나침이 무엇을 뜻하는지, 실속이 없어서 그런지 무엇이 불안하고 모자라서 그런 것인지 궁금하다.
신문들은 지난날의 정치 이야기를 지나치게 극적으로, 경쟁적으로 싣고 있고, 현란할 정도로 외래어 표기의 무한경쟁을 일삼는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이 나라 이 사회에는 지난 날 정치적인 지나침이 너무 많고, 심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과잉 충성이니, 과잉 축재니, 과잉 부패니 하는 문제일 것이다.
지난날의 정부나 여당이 모두 지나친 정치, 지나친 탄압 위주였고, 야당이나 반정부운동 역시 지나친 반대만으로 일관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화사첨족 (畵蛇添足)의 준말 사족 (蛇足)을 잊어 버렸는가 싶다. 정치나 사회생활 등 여러 면에서 사족 과잉이 너무나 많다.
어딘가 유유한 맛과 멋이 없는 삶이며, 우리 삶 속에는 지나침을 과감하게 잘라 버리는 미학 (美學)도 없다.
화장을 지나치게 하고 차림을 지나치게 하면 도깨비처럼 되어 버리기 쉽다.
지나침이란 결국 자기 자신 속에 참된 자부심과 자신 (自信)이 없어서 나오는 불안감의 표출일 것이다.
"Small is beautiful (적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과잉을 없애라는 말이다.
사족 (蛇足)이 없는 데서 본연의 미 (美)가 보이게 되고, 삶 속에 어느 정도의 유유한 맛과 멋이 나오게 된다.
한국 고유의 멋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가지각색의 지저분한 지나침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지나침에서 오는 아름다움의 허상처럼 취약하고 초라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지나침은 우리의 Hubris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 Hubris가 만나게 될 Nemesis는 살벌한 삶과 정신적인 가난일 것이다.
그래서 옛날 우리는 중용 (中庸, Moderation)을 말했고,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 (中庸)을 말했다.
MUSIC
Beethoven, Piano Concerto No.5-1 (Emperor) Allegro
Piano, Zimerman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