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h's Request for OPCON
Abstract:
Mr. Roh, during the 2002 Korean presidential campaign, capitalized on prevalent anti-American public sentiment due, in part, to the tragic deaths of two schoolgirls by a U. S. military vehicle.
As a candidate, Roh declared, "What's wrong with being anti-American?"
As president, Roh told Secretary of Defense Donald Rumsfeld that the U. S. and Japan, not North Korea, were the largest security threats to Asia.
Roh requested in 2007, that the United States return war time OPCON. The U. S. accepted Roh's appeal, and both nations agreed on a transition plan.
The plan would dissolve the CFC and replace it with two separate, parallel commands.
Dissolving the Combined Forces Command (CFC)is dangerously ill-advised because it violates the key military precept of unity of command in preparation for and during hostilities.
Replacing a single integrated command with two parallel independent commands risks seriously degrading U. S. and Korean deterrent and warfighting capabilities.
After transition of wartime OPCON, the Chairman of ROK JCS would command all ROK forces and be responsible for the country's defense during both peace and war.
The United States would replace the USFK with the Korea Command (KORCOM), which would become the supporting command to the KORCOM.
The UNC's role and responsibilities would not change greatly after the OPCON transition.
Following the 1950 invasion by North Korean forces, ROK President Syungman Rhee handed operational control of the ROK military to the United Nations Command.
Although the 1953 armistice ended the Korean War, the UNC retained OPCON until 1978, when it was transferred to the newly established Combined Forces Command (CFC).
The CFC returned peacetime OPCON of ROK forces to Seoul in 1994.
Roh's decision triggered widespread and harsh criticism by all former ministers of national defense and hundreds of retired generals who accused the president of sacrificing the country's security.
Korean critics of the original decision assert that it was driven by Roh's ideological agenda to fundamentally alter Korea's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and was not based on security considerations.
The Lee Myung-bak government characterized Roh's demand as a naive, ideologically driven political decision that ignored military realities.
The transition plan exacerbated Korean fears of abandonment, particularly in light of the increasing North Korean threat and the U. S. policy of strategic flexibility in which USFK units could be redeployed off-peninsula.
The transition plan included an integrated assessment and certification process to ensure Korean security was not jeopardized.
Washington pledged that its military capabilities, including air combat and strategic intelligence assets, would remain after the OPCON transition.
노 무현의 작전통제권 요구
2002년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노 무현은 당시 널리 퍼진 반미 감정을 이용했다.
이 반미 감정은 당시 얼마간 미군 트럭에 의한 두 여중생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이었다.
노 무현은 “반미가 뭐가 어때서?”라고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노 무현은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에게 “北 정권이 아닌, 미국과 일본이 아시아의 가장 큰 안보 위협”이라고 말했다.
2007년, 노 무현은 미국에 대한 심리적 의존을 극복함으로써 한국의 국가주권과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노의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한, 미 양국은 한미연합군사령부 (CFC)를 해체 하고 두 별도의 사령부 설치로 이를 대체하는 전환계획에 합의했다.
그런데 단일통합사령부를 해체하고 유사한 두 사령부로 이를 대체하게 되면 한, 미 양국의 억지력과 전시 전투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자초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은 한, 미 양국의 군사교리인 군사작전원칙 (Military precept, 종전의 전쟁원칙)의 “지휘통일 (Unity of Command)"을 위배하는 무모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후에는, 한국의 합동참모본부의장이 한국군을 지휘하며, 전시와 평시의 국가방위를 책임진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한국사령부 (KORCOM)로 교체하며, 지원부대가 된다.
KORCOM은 한, 미 양국이 합의한 전쟁계획과 작전을 통하여 한국을 지원하는 미군의 작전통제를 행사한다.
유엔사령부의 역할은 작전통제권 전환 후에도 큰 변동은 없을 것이다.
한국군의 작전통제는 1950년 北 정권의 남침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 군사령부 (UNC)에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이양했다.
1953년 휴전 후에도 UNC는 계속 작전통제권을 행사했으며,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CFC)의 창립과 함께 UNC는 이를 CFC에 이양했다.
그리고 1994년, CFC는 한국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을 한국에 이양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일은 원래 2012년 4월로 계획 됐다.
노 무현의 이 결정은 “국가안보를 희생하는 대통령”이라고 한국의 모든 전직 국방장관들과 군 원로 및 예비역 장성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 내 비난은 노 무현이 근본적으로 한, 미 관계를 바꾸려고 이데올로기로 몰고 간 것이지 안보를 고려한 것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 작전통제권 전환의 연기나 번복은 한국의 보수 국회의원과 전 군 관계인사 뿐만 아니라, 이 명박 정부와 박 근혜 정부 모두의 과제가 되었다.
이 명박 정부는 노의 이 요구는 순진하고, 군사적 현실을 무시한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정치적 결정이라고 규정했다.
대다수의 한국국민은 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미국의 동맹국 방위 공약의 약화와 궁극적인 동맹의 무력화로 이어져, 北 도발을 더 대담하게 만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환계획은 특히 北의 위협 증가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정책에 따른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재배치 가능성으로 한국국민의 “포기의 두려움”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28,500명의 미군의 존재는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한국에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방위 능력과 결의가 줄어드는 현상에 대한 인식은 이런 우려를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향후 10년에 걸쳐서 오바마 행정부의 군사 예산 4,800억 달러 삭감과 추가적인 5,000억 달러 예산 자동삭감조치의 경고는 미국군대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목격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예산 자동삭감조치를 당해도 미국의 안보 공약은 “또 다른 수용 가능한 위험”이지만 여전히 틀림없이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일본은 시리아의 아사드가 1년 전 민간인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미국이 설정한 레드 라인을 넘었을 때 오바마가 군사대응 공약 이행을 거부한 것에 당황했다.
한국과 일본 관리들은 사석 (私席)에서 北 정권이나 중국이 자국을 침공한다면 미국이 마찬가지로 방위공약을 포기하지 않겠는가 말한다.
전환계획은 통합 평가와 인증 절차를 갖추고 있어 한국의 안보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공중전과 전략정보자산을 포함한 군사능력을 작전통제권 전환 후에도 계속 유지한다고 다짐했다.
MUSIC
Sancta Maria from Cavalleria Rusticana
Soprano Sissel Kyrkje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