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ung-un's Skinship Politcs
Abstract:
In Japan and Korea the term "skinship" is used, and originated as a pseudo-English Japanese word, which was coined to describe the intimacy, or closeness, between a mother and a child.
Today, the word is generally used for bonding through physical contact, such as holding hands, hugging, or parents washing their child at a bath.
The earliest citation of this word appears in Nihon Kokugo Daijiten in 1971. According to Scott Clark, author of a study of Japanese bathing culture, the word is a portmanteau combining "skin" with the last syllable of "friendship".
The similarity with the English word "kinship" suggests a further explanation. The term has also been adopted in Korea.
Kim Jung-un's skinship is never an act of a new leadership of the young leader.
It may only beg the apotheosis that appears to appeal to loyalty of the hierarchy of power, and the population in North Korea from the fatigue for three generations of the hereditary power transfer.
김 정은의 스킨십 정치
北정권은 1인 지배체제이기 때문에 지도자의 작은 변화라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온다.
최근 北 노동신문은 김 정은의 신격화를 위해 김 정은의 현지시찰 소식을 연이어 소개하고 있으며, 김 정은의 스킨십 장면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신격화 정치로 권위적이었던 과거 김일성‧김 정일과 달리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서려는 김 정은의 행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 정은의 스킨십은 많은 함의를 시사하고 있으며, 北은 지도자로부터 모든 변화가 시작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과거 北정권은 김일성‧김 정일의 절대적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반인들과의 스킨십 장면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가끔 지도자의 인간성을 보여주기 위한 차원에서 김일성‧김 정일이 주민들의 손을 만지거나 안아주는 장면을 연출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우선 김 부자의 신적 존재감을 유지하면서도 단 한 번의 스킨십만으로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사실상 김일성‧김 정일의 존재는 北정권의 절대적 개념으로 신격화되어 있어 굳이 스킨십 없이 가까이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주민사랑이 설명되었다.
北은 김 부자를 가까이 만났던 사람들을 “접견자”라고 부른다.
이 접견자는 김일성‧김 정일과 20분 이상 단독대화를 하거나 함께 자리를 같이 했던 부류의 사람들이다.
北정권은 신격화 연장선상에서 접견자들에게 공민 특혜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당 조직지도부가 특별 관리한다.
접견자들의 경우 현행범으로 범죄증거가 확실해도 김일성‧김 정일에게 비준을 받아야만 사법처리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당 간부 등용과 표창에서 반드시 먼저 혜택을 받으며, 김 부자 명의로 전국충성계층에게만 보내는 선물 명단에도 제일 앞자리에 이름이 오르게 된다.
北정권은 접견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특혜와 특권이 될 수 있도록 완벽한 충성위계질서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김 부자가 가까이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만 했던 北주민들이었다.
그리고 지도자와 주민과의 분리는 경호 목적도 있었다.
이를 위해 김일성‧김 정일이 먼저 손을 내밀기 전에는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 없도록 경호군관들이 사전에 접견 원칙을 강조하기도 했다.
심지어 악수를 청할 때를 대비하여 먼저 손 소독을 하는 것도 일종의 접견 절차의 하나이다.
또 다른 접견 원칙으로 지도자와 마주서서 이야기 할 때 절대 마주보지 말고 지도자의 두 번째 단추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는 요구까지 받는다.
이처럼 시각적 평등도 허용치 않는 절대자, 누구도 감히 쳐다볼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존재가 바로 김일성‧김 정일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신격화 정권이었던 北의 땅에서 김 정은이 스킨십 정치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北정권 스스로가 신격화 공백을 심각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김 정은에게 스킨십마저 없다면 업적도 인간성도 조작할 근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도자라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가능했었는데 이제는 몸으로까지 강조해야 할 판국이 된 것이다.
한편으로 김 정은의 스킨십 정치는 北사회의 변화도 보여주고 있다.
주민들을 이끌어가는 거룩한 지도자가 아니라 지도자가 일부러 주민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의식할 만큼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김 정은의 스킨십은 결코 젊은 지도자의 새로운 행동의 리더십이 아니라 北의 권력층이나 주민들의 3대 세습의 피로감에 충성을 호소하는 김 정은의 신격화 구걸일 뿐이다.
註: 스킨십(Skinship)
껴안거나 접촉 기타 신체 접촉 행위로 두 사람 특히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관계와 애정의 감정.
MUSIC
The Emperor Waltz
Johann Strause II
Andre R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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