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남북 경협의 실패(Failures of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Failures of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Abstract:

Under two successive leftist governments from early 1998 through early 2008, Seoul supported an initiative it called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meaning, in practice, unconditional economic and plus subsidize trade for Pyongyang.
 

The phrase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had, of course, been in circulation since the advent of North-South trade in the late 1980s, but the term took on a different coloration and a very specific connotation. 
 

The results of that experiment are now in; and judged by practically every objective initially presented by its proponents to justify it, this policy has proved to be a failure.
 

If the Park Gun-hye government wishes to achieve a more creditable record in its economic interactions with Pyongyang, it must begin by identifying and learning from the errors of its predecessors on their efforts at economic engagement of North Korea.
 

Defenders and apologists of the Sunshine approach may counter that Pyongyang's nuclear gambits were aimed at the United States, not the Republic of Korea. 
 

But any impartial analysts will have to recognize that the decade of Sunshine-style economic diplomacy has resulted in a changes of North Korea's hostile posture toward ROK of approximately-well, zero.
 

The flagship of Sunshine economic initiatives in the North is, of course, the Gaeseong Industrial Complex, the heavily subsidized joint-venture area. 
 

Yet as we now know, North Korea will not hesitate again to threaten the future of that venture when reasons of state so dictate.
 

Unfortunately, the scope and scale for mutually beneficial inter-Korean economic relations today is determined in Pyongyang, not Seoul, and these possibilities pivot on the intentions and decisions of North Korean leadership.
 

Here are three feasible suggestions for pointing North-South economic relations toward a better path;
 

First, Bring transparency to Seoul's economic interactions with the North.
 

Second, Separate business from politics-for real, this time.
 

Third, Insist on international quality standards for humanitarian aid to the North.
 
 
남북 경협의 실패
 

앞으로 이뤄질 남북 간의 경제교류와 협력 (경협)은 지난 두 좌파정권 (1998년~2008년)이 펼친 대북경제외교의 실패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 서울이 추진한 이른바 햇볕시대의 남북 경제협력구상은 北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제 및 무역보조금 원조를 의미했다.
 

이 남북 경제협력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 말의 남북 간 거래 로 유통된 관용구였으나, 두 좌파정권 시대에는 달리 착색되어 아주 특별한 의미를 함축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 경제협력의 실험 결과는 그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최초 제안된 실질적인 여러 가지 목적에 의거 판단하면, 정책의 실패가 분명히 입증되고 있다.
 

10년 동안, 청와대의 햇볕 론 자들은 “경제적 유인”은 안보의 특별한 덤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변형으로 저절로 생긴다고 즐겨 주장했으나 실제 어느 쪽도 얻지 못했다.
 

안보문제만 해도, 지금까지 北과의 햇볕 방식의 경제협력이 北의 핵무기 야망을 전혀 바꿔 놓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온 세상이 알고 있듯, 北은 그 기간 대남 적대정책과 군사력의 전지배치 등 호전성을 그냥 유지했으며, 핵 프로그램을 남 몰래 추진하고, 그 후 핵무기를 비밀리에 생산해 냈다.
 

이 대북 햇볕 경제 구상 가운데도 그 백미는 대규모 정부 보조와 합작투자로 이루어진 개성공단이다.
 

김 대중은 이것을 통해 北의 경제 개혁을 유발하고, 자립 경제의 성장으로 이행 (移行)하는데 자극제가 된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이 모든 희망 사항이 백일몽에 지나지 않았음이 입증되었다.
 

北정권의 경제에 관해서는, 경제적 개혁 (Economic reform)과 경제적 변화 (Economic change)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양은 그 때부터 오늘 날까지, 상당한 경제적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수십 년 동안의 경제적 쇠퇴를 포함하여 변화의 특수 변형이 뚜렷해졌다.
 

또한 공식적인 경제정책의 변화 징후도 있었으며, 그 좋은 예가 2002년 7월 발표한 “7ㆍ1경제관리 개선조치”다. 
 

이와 동시에 학생과 관리들을 선발하여 서방의 법률, 경제 그리고 비즈니스 관행을 위한 해외연수도 시도했다.
 

이 조치는 경제체계의 한계 수익에서의 신중한 실용주의 실험과 민감한 비사회주의적 경제의 사고를 다룬 조사를 공식 경제지에 발표하는 것도 허용했다.
 

이런 것들은 이전 세대들의 주체 경제의 요구에 의한 공급 보다는 진보적인이긴 하지만, 정확히 시장 관계를 지향하는 변화의 조짐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예를 들면, 스탈린 치하의 소련도 소비자 거래용 국내 통화를 사용했음을 알아야 한다.
 

햇볕 시대의 경제외교가 시작된 직후, 평양은 정권의 중심인 “선군정치”의 정체를 드러냈다.
 

이 주의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처럼, 경제 주도 분야로서의 군수산업이 농업 부흥과 인민의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받침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기간 선군정치와 함께 “이데올로기와 문화적 침투”에 대항하는 운동도 계속되었다.
 

평양의 해석으로는 이데올로기와 문화적 침투가 가져오는 불건전성은 과거 소련을 붕괴시켰으며, 북한 지역에 유입이 확인된 것만도 문화교류, 합작투자, 외국투자 등이라는 것이다.
 

지난 10년, 평양은 계획적으로 일부 시장지향 학습을 도입했다. 개성공단에서의 기술훈련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것 또한 매우 작은 규모였다.
 

그리고 햇볕 방식의 경제 10년은 자급자족 경제 성장의 이행은커녕, 평양을 원조 의존 원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北은 남의 호의에 의존하여 주민들 입에 풀칠하고, 정권의 우두머리는 위협과 불안을 국제사회에 수출하는 멋대로 버는 방식을 발동한다.
 

불행하게도 남북 경제관계에서 상호 혜택이 될 범위와 규모의 결정은 서울이 아닌, 평양에 달려 있으며, 이 가능성은 北의 의도와 결심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지난 10년의 남북 경제협력이 평양에게 많은 나쁜 버릇을 가르쳐주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고려할 수 있는 남북 경제관계의 건전한 실행 덕목은,
 

첫째, 한국은 남북 경제의 상호 교류에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OECD회원국으로서의 한국의 국제적 경제 원조의 자료는 무조건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 (DAC)의 정확성과 공개성 기준에 의해 측정된다.
 

그러나 기간 중 대북 경제 거래에 관련된 한국의 자체발간 공식통계는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장되고 종종 의도적으로 속이고 있었다고 지적되었다.
 

그 예는, 국제사회가 다 알고 있는 2000년 김 대중이 김 정일에게 정상회담을 위해 비밀 송금한 거액의 돈을 남북 경제협력의 공식 통계로 잡은 것이다.
 

대북 원조와 거래에 관한 이 공식 자료의 질이 나쁜 버릇은 남북 간 상업거래가 국제거래라기보다는 국내 용 때문이라는 구실이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이제 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정보가 풍부한 사회라면, 국민들과 납세자들은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 이런 비속한 정보는 저질의 정책만을 부추길 뿐이다.
 

둘째, 진짜 정경 (政經) 분리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햇볕시대의 정경 분리는 굉장한 슬로건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지침은 실제로 실행되지 않았다. 오로지 그 반대였다.
 

한국의 공식적 보조는 건전한 통상 (通商)기준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대북 벤처의 비용 부담을 떠맡는데 일정하게 사용되어 왔다.
 

공정하게 평할 때, 대북 사업에 대하여 한국의 재벌들이 보이는 무표정은 수 십 년 동안의 경제적 호황기의 “이익 독점과 손실의 사회화”기질을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시사점이다.
 

활력이 넘치고 영속화할 수 있는 남북 간 통상의 길을 여는 데는 보조금은 없어야 한다. 중국과 타이완 간의 보조금이 전혀 없는 양안 무역 (兩岸 貿易, Cross-Strait trade)은 좋은 사례다.
 

한국은 북한 주민들이 자본주의를 “행실로 배우기”를 원한다면, 해외 북한 학생들에게 기술 원조를 해야 한다고 세계의 경제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이런 일은 막연하고 유동적이며 경제적 발전 가능성이 없는 개성공단 사업보다 훨씬 값싼 투자라는 이유 때문이다.
 

셋째, 대북 인도주의 원조는 국제적 특성 표준을 강요해야 한다.
 

대북 인도주의 원조를 제안할 때, 한국이 제공하는 자원이 주민을 괴롭히는 정권을 살지게 하기보다 구호가 필요한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는지 최대한 확인해야 한다.
 

좌파정권의 대북 인도주의 원조에서는 때때로, 실제 구호의 정신과 특성의 상도 (常道)에서 벗어난 위험하고 불온한 역할을 해 왔다는 충고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정부는 오늘날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북한 지역에 유입되는 인도주의 원조의 특성을 감시하며, 절망적인 동포를 위한 고품질 인도주의 원조를 주장할 특별한 책무도 지니고 있다.

MUSIC
Moonlight Sonata
Beethoven

https://www.youtube.com/watch?v=vQVeaIHWW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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