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4일 월요일

민주시민의 길 (Way of Democratic Citizenship)



Way of Democratic Citizenship
Abstract
 
 
Once, the world was embroiled with a zeitgeist that its achieving of industrialization brings a maturity of democracy, thus combined with a prospect of democracy in the economy.
 
 
But the reality demonstrated that as industrialization progresses, democracy was found to go further away.
 
 
What is Democracy? Many people are mistaken about Democracy and sometimes, politicians have deliberately misinterpreted Democracy to justify their dictatorial system as “Democratic”.
 
 
Democracy is a system of government in which all the people of a state or polity are involved in making decisions about its affairs, typically by voting to elect representatives to a parliament of similar assembly.
 
 
Several variants of democracy exist, but there are two basic form, both of which concern how the whole body of all eligible citizens executes its will.
 
 
One form of democracy is direct democracy, in which all eligible citizens have direct and active participation in the political decision making.
 
 
In most modern democracies, the whole body of eligible citizens remain the sovereign power but political power is exercised indirectly through elected representatives; this is called a
representative democracy.
 
 
An analogous system, that fuses elements of democracy with sharia law has been termed islamocracy.
 
 
Democracy cannot succeed unless those who express their choice are prepared to choose wisely. The real safeguard of democracy, therefore, is education.
 
 
Democracy means police. Democracy does not just mean public participation in making decisions.
 
 
It presumes that all power and legitimacy is vested in one decision-making structure, and it requires a way to impose those decision.
 
 
As long as anyone might defy them, there have to be armed personnel to regulate, to discipline, to control.
 
 
 
민주시민의 길
 
 
한 때 세계는 산업화가 되면 민주주의도 함께 성숙해 진다고 민주주의의 향방을 경제와 결부시킨 사조 (思潮)에 휩싸인 경험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민주주의는 더욱 멀어져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되 정치를 결정하지는 못하며, 경제수준이 어떠하든 정치형태는 여러 가지 모습을 띨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선진국이며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드골 대통령은 “360 여종의 치즈를 가진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의회민주주의의 경험에서 프랑스를 파멸로 이끄는 개인주의의 극복 없이는 질서 유지가 어렵다는 우회적인 경고의 선포였다.
 
 
18세기, 계몽주의를 혁명으로 이끌어 올리는데 성공한 프랑스 국민이 그 혁명의 영속성 (永續性)유지에 실패한 것도 개인주의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전후의 이와 같은 자멸적인 개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드골은 권위주의적 지도체제를 구상하고, 인민투표 민주주의라는 독재체제를 채택했다.
 
 
또 하나의 예는 독일에서 볼 수 있다. 1931년 무솔리니는 어떤 독일 정치가에게 나치스는 결코 독일에서 집권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독일인은 너무 현명하고 교양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2년 후, 정치적 테러를 저지하는 데에는 지혜나 교양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입증됐다.
 
 
선진국인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의 이 예에만 한정시켜 보면, 민주주의는 결국 인간의 민주주의적 정치 훈련 여하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것은 자유스러운 개인이 조직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자동적으로 오는 것도 또한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국민 전체의 민주주의적 정치교육에서 확보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우선 공동생활의 경험을 통한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하며, 그 태도를 통해 행동의 안정성과 필요한 지식을 겸비해야만 한다.
 
 
이것을 우리 사회면에 비쳐보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과제가 한 둘이 아님을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툭하면 삭발하고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집단행동에 나선다. 어떻게 보면 다분히 모방 심리적 무감각적 해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과 질서는 안중에 없고, 자신과 집단의 이익에만 집착하면서 남을 생각하지 않는 개인주의적인 무법적 행동거지의 그 추악상이 사회적 한 단면이다.
 
 
정치인들의 집합인 국회나 정당들보다 어린 학생들의 모임을 본 사람이면, 아마도 후자가 훨씬 민주적이라는 인상을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마을의 반상회 (班常會)에나 여러 동아리 모임에 나가 보면 그 공동체 생활의 운영이 정치권의 모양새보다 훨씬 민주적인 모습들임을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의 모임에는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한다는 듣기 거북한 수식어가 판을 치는데 반해, 이들 보통사람들의 모임에서는 현실적인 문제가 논의, 결정되곤 한다.
 
 
환언하면, 후자의 경우, 민주주의가 이상 (理想)으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으로 부각되어 해결에로 연결되는 것이다.
 
 
수사적 (修辭的)인 이상 (理想)으로부터의 해방이 여기에선 엿보이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정치권은 사회의 민주적 역량을 효과적으로 조성, 흡수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특히 오늘날의 정당은 그 기능을 어디서 찾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제 정치는 점점 전문적 지식이나 과학에 의존해 가는 도가 증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치가 정치적 결정의 필요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 지식이나 과학은 정치적 결정을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따라서 결정을 위한 민주의 마당은 언제나 남아있는 것이고, 여기에는 모두가 민주시민으로서 참여해야 한다.
 
 
결국 민주적인 안정과 발전은 민주주의적인 훈련을 통할 수밖에 없으며, 참된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의 민주주의 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MUSIC
Kreisler-Liebesleid (Love's Sorrow) & Liebesfreud (Love's Joy)
Joshua Bell plays
 
 
 
 
 
 
 
 
 

2015년 9월 7일 월요일

텐안먼 (天安門) 외교 (Tiananmen Diplomacy)



Tiananmen Diplomacy
Abstract
 
 
President Park Geun-hye traveled to Beijing last week to attend events commemorating the 7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World War II.
 
 
President Park met with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to discuss North Korea-both the regime’s recent provocations and the nascent effort at inter-Korean reconciliation.
 
 
Both leaders warned North Korea against committing further provocations.
 
 
President Park was standing alongside Xi Jinping and Putin on the reviewing stand at Tiananmen Square to mark China’s newly established holiday commemorating the end of World War II.
 
 
As China’s next-door neighbor and a military ally of the United States, President Park may seem to be a big catch for Beijing.
 
 
Some critics have already suggested that President Park’s visit is evidence that Republic of Korea cannot resist the growing centripetal pull of Beijing’s orbit.
 
 
But Park’s presence alongside Xi is about Park pressing to consolidate China’s support for Korean unification in the context of unprecedently weak ties between Beijing and Pyongyang.
 
 
But one striking outcome of the inter-Korean talks is that Pyongyang under Kim Jong-un has now logged far more intensive high-level interaction with Seoul than with Beijing.
 
 
This marks a major change from North Korea’s diplomatic strategy under Kim Jong-il, who assiduously cultivated relations with Beijing as a counter-weight to dependency on Seoul.
 
 
Xi Jinping has made his displeasure with Kim Jong-un known by visiting Seoul but not yet Pyongyang, but he has not yet embraced strategic coordination with Seoul at the expense of Pyongyang, at least not at the level that Seoul has always sought to achieve.
 
 
One of Seoul’s main strategic rationales for pursuing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with Beijing in 1992 was that a stronger relationship with Beijing would complement Seoul’s efforts to improve relations with Pyongyang.
 
 
This is a polish formulated by Park’s predecessor Roh Tae-woo known as Nordpolitik, and provides a clear precedent for many elements of Park’s Trustpolitik.
 
 
From this perspective, Beijing’s wooing of Park appears to have been tailor-made opportunity for Seoul to pursue its longstanding objectives.
 
 
ROK-Sino normalization has brought enormous economic and trade benefits to both countries, but over two decades of ever-closer partnership between Beijing and Seoul, Korea has never gained the level of strategic support from China that it has desired as leverage in dealing with North Korea.
 
 
To fill the space left by Kim Jong-un’s absence is, for Seoul, an important step toward gaining Beijing’s blessing for the holy grail of Korean unification that Seoul has sought for over two decades.
 
 
텐안먼 (天安門) 외교
 
 
많은 서방 전문가들은 2015년 9월 3일, 박 근혜 대통령이 텐안먼 (天安門)광장에서 시 진핑 및 블라디미르 뿌띤과 나란히 중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중국의 이웃이며 미국의 군사동맹으로서, 또 중국의 간청으로 이뤄진 박 대통령의 텐안먼 행사 참석은 베이징의 큰 수확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박 대통령의 방중 (訪中)은 커지는 중국 세력권의 구심력에서 한국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시 진핑과 함께 한 참석은 베이징과 평양 간의 보기 드문 유대의 약화라는 맥락에서 박 대통령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중국의 지지를 공고히 하려는 압력의 측면이 강하다.
 
 
지난번 DMZ 지뢰 사건에 따른 남북 간 군사적 긴장 해소를 위한 협상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신뢰외교 (Trustpolitik)”정책은 남북 관계의 신뢰 형성에는 미흡했다.
 
 
남북회담에서 나타난 하나의 놀라운 결과는 김 정은 정권이 베이징보다 서울에 대하여 보다 강도 높은 고위급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난 김 정일 정권이 서울에 대한 의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베이징과의 관계를 꾸준히 가꿔 온 北의 외교 전략에 주요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심지어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김 정일은 베이징을 순례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시 진핑은 서울 방문을 통해 김 정은에 대한 그의 언짢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아직 시 진핑은 적어도 서울이 추구하고 있는 수준으로까지 평양을 희생하면서 서울과 유대를 다지는 전략적 협력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국이 1992년 베이징과의 외교관계의 정상화를 추구한 주요 전략적 근거의 하나는 베이징과의 강력한 관계가 평양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보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전 노 태우 대통령에 의해 공식화된 “북방외교 (Nordpolitik)”이며, 박 대통령의 “신뢰외교 (Trustpolitik)”의 많은 요소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베이징의 박 대통령에 대한 간청은 한국으로서는 오랜 목표를 추구할 맞춤형 기회인 것이며, 호화찬란한 환영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열병식 전야, 시 진핑과의 연회에서, “최근 한반도의 긴장 해소를 위한 베이징의 건설적인 역할”에 감사를 표명했다.
 
 
그리고 두 정상은 핵과 유도탄을 통한 도발의 재개를 반대하는 경고와 北의 6자 비핵화 회담에 복귀할 것을 표명했다.
 
 
한, 중 관계의 정상화는 양국에 엄청난 경제 및 통상 이익을 가져왔다.
 
 
그러나 서울과 베이징의 20년 넘는 더 가까워진 동반자 관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 베이징으로부터 北정권을 다루는데 필요한 영향력으로서의 전략적 지지는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김 정은이 없는 공간을 채우는 것은 지난 20년 넘게 추구해 온 통일의 성배 (聖杯)를 위한 베이징의 축복을 얻는 중요한 단계이다.
 
 
이 점에서, 박 대통령의 텐안먼 참석을 통한 통일 외교는 한국이 결국 베이징을 낚을 큰 매혹이며, 시 진핑이 얻은 월척 (越尺)은 크지 않은 것으로 비교, 인식되고 있다.
 
MUSIC
Toselli's Seren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