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1일 일요일

한반도 정전 60년의 의미 (The Korean Armistice Sixty Year's Meaning)



The Korean Armistice Sixty Year's Meaning
Abstract:
 
The Korean War has not ended despite dramatic changes in both the international context and local conditions on the Korean peninsula.
 

The unfinished Korean War are that there are four major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context that no one would have anticipated when the treaty was signed.
 

First, the U.S.-ROK Mutual Defense Treaty of 1953 was a product of American mistrust of President Rhee Syngman and an instrument that restrained Rhee from breaking the armistice while committing a U.S. military presence to keep the peace.
 

Now the defense treaty is the foundation of a strong military alliance.
 

Second, the normalization of China-ROK relations marked a dramatic turning point in 1992, yet Seoul has still not gained Beijing's strategic backing in its pursuit of a ROK-led Korean reunification.
 

Third, Stalin's death was a primary factor enabling the armistice to finally be signed.
 

Fourth, the normalization of the Sino-U.S. relationship ended fighting between two main protagonists of the Korean War.
 

China remains geo-strategically concerned about U.S. influence on the Korean peninsula.
 

China still prefers sustaining a North Korean buffer state and divided Korea over the prospect of a reunified democratic Korea allied with the United States.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have become a source of domestic legitimization for Kim family rule.
 

Despite North Korea's calls on the United States to end a hostile U.S. policy, it is North's need for conflict that perpetuates the war.
 
 
한반도 정전 60년의 의미
 

금년은 한반도에서 전쟁 싸움이 끝나고 60년을 맞는 해가 된다.
 

하지만 6.25전쟁은 국제정세와 한반도의 지역 조건 모두의 극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미완성의 6.25전쟁에는 조약 체결 당시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네 가지 국제적 상황이 발생했다.
 

첫째, 1953년의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이 승만 대통령을 불신한 산물이며, 이 승만 대통령이 휴전을 깨는 것을 억제하는 도구가 되어 주한미군의 평화 유지에 기여했다.
 

지금 이 방위조약은 강력한 군사동맹의 기반이며 목적과 가치를 공유하는 두 나라 사이의 포괄적 파트너십의 유일한 구성요소다.
 

둘째, 한·중 관계의 정상화는 1992년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그런데도 한·중 관계의 엄청난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 한국주도의 한반도 통일 추구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스탈린은 꼭두각시의 조종사로서 6.25전쟁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죽음은 정전협정 체결의 주요 요인이었으나 오늘날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은 크게 쇠퇴했다.
 

넷째, 미·중관계의 정상화는 6.25전쟁의 두 주역 간의 싸움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남북 간의 정통성의 승패는 가르지 못했다.
 

이 변환은 한반도 분단을 미국과 중국의 직접대결의 근원에서 분단 상태에 주한미군이 지역안정의 근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바꿔놓았다.
 
 
불행하게도, 상존하는 이 영속성은 6.25전쟁 종식의 장애물로 남아 있다. 중국은 전략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도 北정권을 완충국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동맹국인 한반도의 민주주의 통일한국보다 분단을 선호한다.
 

오늘날의 상황의 극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정통성의 경쟁은 변하지 않고 있다.
 

北정권을 지배하고 있는 김 씨 일가는 자신들의 생존의 위험 없이는 6.25전쟁을 허용할 여유가 없는 처지다.
 

北정권은 한국과의 경제적 경쟁에서 이미 오래전에 분명히 패배했지만 한국과의 정통성 (正統性)경쟁을 영구화시키고 있다.
 

北의 3대 세습 독재와는 달리, 공산주의 종주국이던 구소련의 스탈린이나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세습적 독재전제는 하지 않았다.
 

北정권은 핵무기를 추구함으로써 세계와 미국 그리고 한국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北의 핵무기는 김 씨 통치의 합법성의 근원이 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핵무기는 그들의 통치의 영속화에 필요한 정권의 싸움을 확대하는 도구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北이 미국의 적대정책의 종식을 요구하지만, 北정권은 전쟁을 영속화시키는 싸움을 필요로 한다.
 

이 필요가 바로 6.25전쟁을 종식시키는 노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인 것이다.
 
 
MUSIC
The Battle Hymn of The Republic

https://www.youtube.com/watch?v=p5mmFPyDK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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