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새로운 스타일의 변함 없는 北 정권

New Style, Same old North Korea
Abstract:
Pyongyang once again disappointed those predicting it was about to change its ways.

For months, experts and major media have proclaimed imminent economic reform.

An unprecedented second Supreme People's Assembly this year could only mean codification of free market principles.

After Kim Jong-il failed to materialize as a reformer, a new theory arose that Pyongyang was riven with factions competing for influence over the malleable dictator.

North Korean soft-liners was reportedly hiding within the regime bureaucracy, furtively sending signals to the outside world for help.

If only the United states or Korea would provide concessions, it would strengthen the nascent reform movement and thus move North Korea onto the path to righteousness.

But, in reality the regime was using a classic good cop, bad cop strategy.

The evidence for economic reform to date is scant and based on purported private statements rather than government pronouncements.

Kim Jong-un has shown a change in style but not policies from his predecessors.

It would be naive to think that Jong-un's embrace of some western cultural icons or even economic reforms supersedes long-standing North Korean resistance to capitalism, democracy, and a non-threatening foreign policy.


北 정권이 변화하리라는 예측은 또 어긋났다. 요 몇 달 동안, 주요 언론기관과 전문가들은 심지어 北이 실제로 계획경제를 포기했다고 하면서 당장 경제개혁을 하리라는 주장을 해 왔다.

금년 들어 전례가 없는 두 번의 회의를 가졌던 최고인민회의는 겨우 자유 시장 원칙을 성문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최고인민회의는 9월 하순 경제개혁의 언급 없이 지나갔다. 北 정권은 그 조짐을 파악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미국정부를 포함하여 많은 전문가들이 후계자 김 정일이 실천의 최첨단에서 과감한 대규모 경제개혁을 단행하리라 예측했다.

김 정일이 개혁가로서 실패한 이후, 새로운 이론이 제기되었다. 그것은 평양이 유순한 독재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파벌 싸움으로 찢어졌다는 것이다.

온건파는 소문에 의하면 정권관료 속에 숨어서 은밀히 외부세계에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미국이나 한국이 양보만 하면, 그들의 초기 개혁운동은 힘을 얻어 北이 정의의 길로 들게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北 정권은 전형적인 “좋은 경찰, 나쁜 경찰” 전략을 쓰고 있다.

많은 선처에도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하면, 그 실패는 워싱턴과 서울의 아량부족이나 신보수주의적 영향 때문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김 정일의 사망과 서방교육을 받은 김 정은의 등장은 또 다시 정책의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무대 위에서 떠들며 다니는 디즈니 캐릭터를 즐기고, 록키 IV를 보면서 세련된 젊은 처와 함께 있는 김 정은의 모습은 세계인에게 평양의 새벽을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경제개혁의 징후는 없고 정부 발표라기보다 김 정은의 사적인 견해만 개진되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평양은 널리 퍼진 추측에 어떤 개혁도 거부한다고 응수하면서, 4월 김 정은은 사회주의 경제원칙을 지킨다고 발표했다.

7월 들어, 평양은 개혁을 한다는 것은 환상이며,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과거 자본주의와의 작은 충돌에서 물러나기만 했던 것처럼, 北은 언젠가는 어떤 경제개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층 엘리트들은 갑작스런 정권의 불안정이나 붕괴를 의식하여 통제를 내주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단 광범위한 경제개혁을 해도 北 정권이 주민들을 덜 억압하거나 이웃나라를 덜 위험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정은은 2009년의 핵 및 유도탄시험과 2010년 한국에 대한 두 건의 전쟁행위를 평양에서 조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정은이 등장 후 北은 수백 명의 관리들을 숙청했으며, 한국 대통령의 암살과 한국의 매스 미디어 말살을 위협하고, 유엔 결의안을 위배했다.

9월, 北 외무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핵무기 확대를 단언했다.

김 정은은 스타일의 변화는 보였지만 선임자의 정책은 바꾸지 않았다.

김 정은이 일부 서구문화의 아이콘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경제개혁이 北의 오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비 위협적 외교정책을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이처럼, 미국과 동맹국들은 평양의 상호작용이 없는데도 똑 같은 양보제공만을 되풀이하려는 낡은 사고방식과 요구를 경계해야한다.

北의 본질을 잘 알고, 돈만 대주는 얼간이 행동은 삼가야한다.


2012년 10월 1일 월요일

21세기의 핵무기

                                           Nuclear Bunker Buster

The Nuclear Weapons in the 21st Century

he current U.S. nuclear arsenal was designed and developed in the Cold War era to fight with the Soviet Union.

The environment of today's world differs from that of Cold War, that requires emphasizing to fit in the new environment.

World". Obama's Global Abolition policy, based on conventional deterrence is not a political- symbolic stunt.

Rather he intends it to become the new framework for reconstructing American hegemonic power.

The fact also is backed by a three men's interview on June 4, 2010.

George Shultz, William Perry, and James Goodby explained in an interview with Helsingin Sanomat why they should seek a nuclear free world.

The very men who turned the United States into a nuclear power during the Cold War are now working to eliminate these weapons of mass destruction from the face of the earth.

In the wake of U.S. Congress's decision to cut funding, there has been considerable debate over nuclear weapons research programs, such as the Modern Pit facility (MPF), Robust Nuclear Earth Penetrator (RNEP) or Nuclear Bunker Buster, Enhanced Test Readiness (ETR), and Advanced Concepts (AC).

With increasing proliferation worldwide, four main concepts described in the Nuclear Posture Review (NPR) are important:

Asurre: Friends and allies not confident in U.S. deterrence may arm themselves with their own capability.

Dissuade: This involves staying ahead of the curve on modernization of forces and force posture and using that position of strength to ensure that no other power wants to compete.

Deter: Deterrence is still an essential concept in the post-Cold War environment.
Defeat: In order to defeat an adversary, the right capabilities must be on hand when required.

현재 미국의 핵 군비는 냉전 시기 소련과 싸우기 위해 설계되고 개발된 핵 체제이다.

오늘 날의 세게 환경은 그 때와는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맞는 핵 군비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더욱이,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핵 없는 상” (Nuclear Free World"을 표명하며 21세기 국제질서에서의 미국의 지배 권력의 재건에 도전하고 있다.

더욱이, 냉전 시기 미국을 핵 강대국으로 이끌었던 3인방, George Shultz, William Perry, 그리고 James Goodby는 2010년 6월 4일, 핀란드의 최대 일간지 Helsingin Sanomat와의 인터뷰에서 비핵 운동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 움직임은 미 의회의 예산 삭감 추세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새로운 핵 연구 프로그램에 관한 논쟁이 미국에서 활발히 일고 있다.

그 대상프로그램은 현대 핏시설(MPF, Modern Pit facility), 지하 핵 관통탄(RNEP, Robust Nuclear Earth Penetrator, or Nuclear Bunker Buster), 향상된 테스트준비(ETR, Enhanced Test Readiness), 그리고 고급 개념(AC, Advanced Consepts) 등이다.

그리고 핵무기 전문가들은 21세기의 핵무기의 역할과 투발계통, 탄두디자인, 그리고 과학기술 등 여러 필요조건을 검토하고 있다.

오늘 날 핵무기의 역할은 분명 냉전시기와는 다르다. 냉전시기의 핵무기의 역할은 상대방의 성질에 따라 정해졌다.

소련은 핵무기의 초강대국이었고,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에서 미국과의 양자 간 의존관계를 이뤘다.

게다가, 도시와 산업, 사회의 표적, 그리고 군사적 위험이 없는 표적 등을 안정적으로 잡아 둘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냉전시기의 확실하고 효과적인 궁극적 억지 장치는 이 “공포의 균형”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오늘날 탈냉전 세계에서 러시아는 미국의 적이 아니다. 오늘 날의 위협은 대량살상무기(WMD)와 장거리 투발수단으로 무장된 지역 강국이다.

지금은 오히려 약소군사국이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군사표적이나 민간표적을 위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억지력은 불확실성의 도구이며, 종전에는 안정의 구실을 했던 능력이 이제 불안정효과를 조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새로운 환경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것은 첫째, 핵무기는 여전히 억지력 역할을 하는지. 둘째, 무기의 수와 형태의 관점에서 본 역할 변화의 의미는 무엇인지. 셋째, 미국과 같은 핵 강국이 위협의 극적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탈냉전 환경에서도 억지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새롭고 역동적인 상황에서 억지력 제공을 위해서 냉전군비는 무기의 수와 형태가 조정이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세계적으로 핵 확산이 증대되는 가운데, 미국의 핵 태세 검토보고서(NPR)가 설명하고 있는 확신시키고, 단념케 하며, 저지하고, 쳐부수는 4개의 주요개념은 매우 중요한 명제가 되었다.

미국의 억지력을 확신하지 않는 우방과 동맹국들은 자체 능력으로 무장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변함없는 능력과 억지력이 허세가 아님을 확신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돌리게 한다는 것은 미국이 군과 군의 전투태세의 현대화에 앞장서며, 어떤 강대국도 미국에 맞서 겨루지 못하게 힘을 사용한다는 입장도 포함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탈냉전에서도 억지력은 중요한 개념이지만, 핵 확산이 증대되는 가운데, 오늘 날의 상황은 무기가 더 융통성이 있어야 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안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능력의 정확한 결합은 순전한 무기의 수보다 더 중요하다.

적을 격파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확한 능력(예를 들면, 높은 정확도, 저출력 핵, 고유의 맞춤형 무기와 같은)은 곧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손아귀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 날과 같이 전략적 환경이 역동적일 때, 어떠한 선택도 배제하지 않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핵전략 지침서인 미국의 핵 태세 검토보고서(NPR)는 유연성 있는 핵무기 정책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냉전의 양자 모델을 대체한 오늘 날의 상이한 전력(戰力)의 다자 간 환경에서는 아주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 현대화는 무기뿐만 아니라, 투발계통 또한 함께 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조목이다.

그런데 이 필요한 기초구조와 이를 뒷받침할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거개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새로운 군사 요구사항은 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개발되어야 하며, 현대화된 전략군은 여러 가지 상이한 임무수행이 가능한 능력을 갖춰야한다.

이 상이한 임무에는 견고하게 요새화된 지하 지휘소에서 운용될 수 있는 리더십과 지휘 및 표적통제가 필요하다. 또한 적대적 핵 연합 상황도 상정해야 한다.

이것은 불량국가와 테러리스트 집단 그리고 성역(聖域)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테러리스트 집단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의 억지능력을 반신반의하는 나라들로 이뤄질 수 있는 신생 핵무장 동맹국과 적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효과적인 억지력인 전자 펄스 무기(EMP, Electromagnetic pulse weapons) 등 도 있다.

이렇듯 탈냉전 21세기의 핵무기는 이 모든 가능성에 대한 핵 능력을 준비하고, 알맞은 공세적 방어적 결합을 통한 튼튼한 방위태세가 중요함은 분명해 졌다.

이에 덧붙여,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핵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추세와 어울리는 주체로서의 재래식 무기체계와 통상전력의 현대화 과제에 대한 인식의 업그레이드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유엔 대북무역제재의 평가



-- 유엔 안보리 전문가 위원회의 대북 제재 평가보고서는 현행 제재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카네기 기금의 핵 정책프로그램의 마크 힙스 연구원은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한국 및 일본을 포함한 제재국의 제재 강화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

Assessing UN Trade Sanctions on North Korea"

Abstract:
The United Nations recently published a report that evaluates the implementation of the UN Security Council sanctions that were leveled against North Korea.

This report makes clear that in cases where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cts with resolution and unity, some efforts to contain North Korea's weapons-related trade may succeed.

The UNSC report provides evidence that sanctions have made it more difficult on margin for North Korea to export weapons and to import the items it needs to continue development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That's in part because UN member states have increased their surveillance of North Korea's shipping fleet.

Today, more than ever before, the number and whereabouts of North Korean vessels is understood and tracked in real time, assisting efforts to interdict suspicious cargo.



최근 유엔은 전문가 위원회가 작성한 평양의 2006년과 2009년 핵폭발 시험에 대한 대북 유엔안보리제재의 이행 평가 보고서를 내 놓았다.

이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결의와 단합된 행동을 보였으며, 北 정권의 무기와 관련된 거래에서는 성공을 거둔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북 거래 당사국들의 굳은 약속이 없으면 제재의 실효성은 제한받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유엔안보리 보고서는 대북 제재로 北 정권이 무기 수출과 대량살상무기(WMC) 개발에 필요한 부품 수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유엔회원국들이 北의 해운 선박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北 선박의 수와 소재가 실시간에 파악되고 추적되고 있어 의심스러운 화물의 차단에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北 정권은 그들의 군사중심 조달프로그램에 다른 방법을 써 가면서 해상 선박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금 항공 화물수송, 외국 국적기를 이용한 상품의 환적, 제3국에서의 브로커 운영 그리고 사악한 거래를 감추기 위한 합리적 상거래 등에 의존하고 있다.

동시에, 마치 이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 것처럼, 유엔 회원국들은 각 나라들의 외국 무역량이 상승함에 따라北 정권에 대한 제재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0년 유엔안보리 전문가 위원회 보고는 北의 수출은 지난 10년 말 10억 달러를 시작으로 2008년에는 28억 달러로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입 또한 같은 기간에 두 배를 넘는 18억 달러로부터 41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 보고서는 이에 병행하여, 北은 항만 시설의 확장과 새로운 합작투자와 자유무역지대를 설정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양국무역개발이니셔티브에도 착수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평양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제재가 가해지기전의 경우처럼, 중국은 훨씬 큰 北의 거래 파트너이다.

중국의 대북 무역은 1990년대 초기의 3억 달러로부터 오늘날 20억 달러를 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대북제재의 성패는 크게 중국에게 달려 있다.

중국은 北의 핵과 탄도탄 프로그램에 대한 상당한 수출은 중단했지만, 제재 접근은 최소화하고 동북아에서 정치적 현상(現狀)과 같은 중국의 이익을 지키고 있다.

그러므로 국제사회가 중국과의 거래에서 北이 불법 거래를 하지 않도록 중국에게 바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제재 준수의 개선에 필요한 조처는 중국뿐만 아니라, 특히 北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다른 운송 및 무역파트너인 유엔회원국이 이행해야 한다.

이 조처에는 제3국의 중계무역의 대대적 심사와 상품의 저지를 위한 향상된 정보협력, 미국과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의 北과의 거래의 감시가 포함되며, 특히 무역금융과 돈 세탁 그리고 외국인 모집과 훈련, 항공화물의 감시와 차단을 위한 협력이 중요하다.

이 조처는 또한 유엔의 광범위한 회원과 유엔 안보리 간의 폭 넓은 직접적 협력도 포함해야 한다.

안보리 결의는 유엔 회원국이 위반사항을 유엔 안보리에 보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회원국의 평양의 대량살상무기 조달에 관한보고는 없다.

많은 유엔 회원국들은 자국의 대북거래에서 취한 통제의 보고 의무조차 준수하지 않고 있다.

2009년 이후, 안보리 회원국들은 유엔 안보리가 회원국들에게 확대 적용한 北 인사와 기관들의 제재는 실제 적절치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중국의 영토에 관한 유엔 안보리 전문위원들과의 회동을 주최하는데 동의한 일은 없었다.

모든 北과의 거래 파트너의 거래 통제에 대한 엄격하고, 말단까지 조직화된 국가정부의 노력이 평양의 무기 거래를 중단시키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경험은 보여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최고 수준인 독일정부에 앞서, 모든 독일 수출업자들은 20년 전 법에 의한 새로운 엄격한 요구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리고 잘 연결된 회사들은 유익하지만 민감한 계약을 할 때 종종 다른 방법 모색에서 무역 관료에 의존하게 되었다.

금년 봄, 중국군에 이동식 유도탄발사차량을 공급하는 업체가 이것을 평양에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은 아무런 수출통제규칙의 위반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 말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영향력 있는 국유기업이 이런 품목을 자체적으로 수출 여부를 결정하도록 방치한 것은 문제다.

유엔 안보리 보고서는 5년 전 처음 제재 후 北의 대규모우라늄 농축시설 설치의 명백한 성공을 입증했다.

北의 이 성공은 핵 수출통제의 큰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되돌리기에는 제재가 너무 늦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제 이 프로젝트를 지연 또는 중단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한국 및 일본의 제재국의 합의로 이 분야의 적극적인 연구에 자금지원을 하고, 더욱더 유엔 안보리 제재의 효율성을 연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12년 9월 1일 토요일

統一論議 (59) 北의 식량난과 대북 식량지원 딜레마


Column 59
North Korea's food problems and food aid dilemma"
Abstract:
North Korea introduced Juche Farming in the mid-1970s and the food shortages have started since the mid-1980s.

UN agencies demand a minimum of food per day per person as 458gram.

According to this criterion, the North suffers each year from six hundred thousand tons of food shortages.

The Obama administration has not made a decision on resuming food-aid suspended in 2009.

U.S. senators see that North Korea had cut spending on food imports by 40 percent but not cut spending on ballistic missile programs or imports of luxury items.

North Korea would not lack food if its leadership wanted to purchase it.

While there are ninety-nine reasons not to give food aid to the North, there is only one reason to do so.

"The right to food is a human right."



北의 식량난은 1970년대 중반 도입되었던 이른바 “주체 농법”이라는 사회주의적 집단영농 생산방식에 따른 농업생산력의 침체 등으로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진행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도 식량 생산량은 평균 415만 톤 수준에 불과하여 정량배급 기준으로 이미 평균 200만 톤 정도의 부족 현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지원과 일부 자체 수입의 유지 등으로 식량기근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1990년대 들어와 외부 지원과 우호무역의 감소 그리고 연속된 자연재해 등으로 식량생산은 400만 톤 이하로 떨어지면서 심각한 기근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근이 가장 심각하게 진행된 1995년~1997년 간 식량 생산량은 평균 354만 톤에 불과하여 감량 배급 (1인당 546g) 기준으로 식량 부족량이 평균 164만 톤에 이를 정도였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양호한 기상조건과 한국의 지속적인 비료지원 그리고 국제사회의 지원 등으로 2003년~2010년 간 평균 424만 톤의 생산량 수준을 나타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와 세계식량계획 (WFP)은 2011년도 식량 생산량을 2010년 대비 약 8.5%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매년 평균 425만 톤의 식량 생산은 감량 배급 기준 (1인당 546g)으로는 매년 120만 톤 내외의 식량 부족을 겪게 하는 수준이다.

유엔 기구는 北의 식량 최소 수요량을 1일 최소 기준량 (1인당 458g)으로 계산하고 있는데 이렇게 볼 때. 北은 매년 평균 60만 톤의 식량부족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북 접경지역을 통해 상당한 식량이 유입되고 식량 밀무역과 전국적 규모로 발달된 장마당은 2008년 이후 국제사회 및 한국의 지원이 거의 중단된 상태에서도 두드러지게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요인이 되고 있다.

2010년 이후 일부 지방과 계층이 심지어 하급 군인들까지 식량애로 현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北이 2009년 11월30일 화폐개혁을 통해 시장을 철폐하려던 정책의 영향이 주요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화폐개혁은 주민들의 보유 화폐 축소와 급격한 물가 상승을 초래케 했다.

北은 1990년대 이후 이렇게 만성적으로 진행되던 식량문제에 대해 몇 가지 정책을 시행했었다.

20만 정보에 이르는 토지정리사업(1999년~2005년), 식량작물 위주 및 밀식(密植)재배로 대표되는 “주체 농정”의 수정 등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7.1조치를 후퇴시키는 2005년 10월 이후 폐지하고, 개인 밭 경작물마저 식량수매에 포함시키는 과거 전통적 방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실험조차 北 체제 유지에 위험이 된다고 본 것이다.

식량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北이 취한 농업정책들은 여전히 집단적 영농방식 및 계획적 생산방식을 유지하는 가운데 농업기술적 측면 내지 생산의 효율성 향상에 집중된 정책으로서, 식량난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北은 2012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식량문제를 푸는 것이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라고 거론했지만, 北은 중국이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농가생산 책임제를 도입함으로써 1980년대 중반에 비로서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였음을 유년할 필요가 있다.

北의 식량문제 해결 역시 농가에게 생산 및 판매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소유제 개혁”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2009년에 중단했던 대북 식량지원의 재개를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다.

의회는 北이 식량수입 지출을 40% 삭감하면서도 탄도탄 프로그램이나 사치품 수입은 삭감하지 않고 있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또한 北의 지도부가 식량수입을 원하면 식량 부족은 없을 것이라고 말 한다.

하지만 北에 식량 원조를 제공해서는 안 되는 99개의 이유가 있지만, 원조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먹을 권리는 인권 (The right to food is a human right)" 이라는 논리 때문이다.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우리 애국가

" National Anthem of the Republic of Korea "
Abstract:
Aegukga is the national anthem of Korea.  The title literally means " The Patriotic Song " or
" The Song of Love for the Country ".

It is believed  that the lyrics were written for the cornerstone-laying ceremony of the Independence
Gate in Seoul in 1896 by Yun chiho, a politician, or by An Chang-ho, a pro-independence leader
and educator.

Initially, Aegukga was sung  to the tune of the Scottish folk song " Auld Lang Syne ", introduced
to Korea by Western missionaries.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1919~1945) in Shanghai, China, adopted
it as their national anthem.

At a ceremony celebrating the founding of Korea on 15th August 1948, the Scottish tune was
finally replaced by the Finale of Korea Fantasia that An Eak-tai had composed in 1935.

The new Aegukga was later adopted by the President Decree of 1948 by then-President
Syngman Rhee (or Lee Seungman).

Since the composer An Eak-tai died in 1965, the copyright for the music will not expire at least
until 2015.

The composer's widow Lolita An and her family then relinquished all rights to the Korean government
on 16 March 2005.


애국가는 나라사랑하는 노래를 말하며, 일제하에서 자연스럽게 불러오던 20여 종의
애국가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의 국가로 쓰이게 된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1910년에 이르는 한국적인 특소 현상과 한계상황 속에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울분과 민족주의, 그리고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움직임은 종교적인 성향
으로 창가(唱歌)로 표출되었다.

이 창가는 재래의 전통적인 시가(詩歌)나 잡가(雜歌) 또는 향가(鄕歌)가 아닌 새로운
풍조, 즉 개신교의 창가를 이용해 불렀으며, 창가로 발전시켜 사회참여의 기세를 높였다.

이 무렵, 독립협회를 비롯한 많은 선각자들은 앞을 다투어 독립의 노래와 애국가 등의
창가 가사를 지어냈다.

찬송가의 곡과 분절(分節) 및 가락(音律)의 형식을 모방한 애국가 부르기 국민가창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 요원의 불길처럼 퍼졌다.

개신교의 찬송가는 창가를 낳는 모체였지만, 창가는 이처럼 한국에서 서양음악의 시발이
되었다.

1896년 11월21일, 독립문 건립 정초식(定礎式)에서 당시 배재학당  학생들이 부룬 애국가
가사에 선교사 벙커목사가 스코틀랜드 민요 Auld Lang Syne 곡을 붙인 것이 최초의 애국가
이다 (작사자는 윤 치호 또는 안 창호로 추정).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1919~1945)는 이 애국가를 국가로 채택하였다.

작곡가 안 익태는 미국 등지에서 수많은 해외동포들의 열절한 조국사랑에 감동되어
1935년 "한국 환상곡 (Symphonic Fantasia KOREA "를 작곡했다.

그 후 8.15 광복의 기쁨과 6.25전쟁의 민족적 수난도 추가하여, 4부로 된 한민족의 역사적
대서사시의 합창과 관현악으로 구성된 작품을 완성했다.


이 승만 대통령은 1948년, 스코틀랜드 민요곡 대신 이 교향적 환상곡의 제3부 애국가
선율을 우리 애국가로 지정하였다.

이로써, 민족의 상징이며 온 국민의 표상인 대한민국의 공식 국가(國歌)가 결정되었다.

이 안 익태의 애국가의 저작권은 그동안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안 익태의 유족이 보유
하고 있었으나, 2005년 3월16일, 이 저작권을 정부에 기증했다.





w/file  Symphonic Fantasia KOREA

http://www.youtube.com/watch?v=H_q2LAm7cwM










2012년 8월 1일 수요일

평양의 권력 싸움



-- 이번 北의 고위 실세의 숙청은 유례없는 권력의 3대 세습 승계의 내부파열이다.

정보의 블랙홀인 北의 장막에 가려진 내막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숙청 사건이 정적(靜的)이 아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을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헤리티지재단 동북아문제 선임 연구원 브루스 클링너는 최근 발표한 Issue Brief
에서 北 지도부의 불안정성과 권력 투쟁의 내용을 분석 평가했다. --

" Power Struggle in Pyongyang "
Abstract :
North Korea's dismissal of Vice Marshal Ri Yong-ho, chief of the Korea People's Army
Genneral Staff, suggests there has been more turmoil behind the curtain of power than observers
had previously thought.

Yet it is unclear whether Ri's removal was due to a more secure Kim Jong-un feeling confident
enough to purge even from the innermost circle to further consolidate his power or instead a
pushback by older elites challenging a second North Korean dynastic succession.

In either case, additional senior-level purges are likely, potentially even including an attempt to
overthrow Kim Jong-un.

North Korean leadership instability is worrisome to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Since it increases the potential for volatility, additional provocative acts, or implosion of a
regime possessing nuclear weapons.

As such, the U.S., Korea, and Japan should implement all necessary steps to defend against
the spectrum of potential North Korean threats.


평양의 인민군 총참모장 리 용호의 숙청은 세상이 알고 있는 것 보다 北의 권력
내막이 더 심각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리의 제거가 김 정은의 기반을 더 강화하기 위해 최측근을 제거하여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인지 원로들에 의한 제2의 왕조 승계에 도전하는 반발인지 분명치 않다.

두 경우 모두에서, 추가적인 고위급의 숙청, 어쩌면 김 정은을 뒤엎는 시도도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北 정권의 불안정은 그 변동성과 추가적인 도발 행위 또는 핵무기를 가진 정권의
파열 등 이유 때문에 미국과 동맹국들의 큰 걱정거리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은 北의 잠재적 위협 양상을 대비하는 필요한 조처를
강구해야 한다.

또 하나의 분명한 유엔 결의의 위반인 4 월 장거리 유도탄 발사시도와 한국에 대한
무자비하고 주도면밀한 위협은 北 정권이 김 정은 체제에서도 변함없는 위협임을
보여주고 있다.

리는 김 정일 밑에서 김 정일 호위사령관, 인민군 총참모장 그리고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하는 등 급부상한 군부 실세였다.

지난 2년 동안, 김 정은의 권력 승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당 정치국상무위원,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그리고 정치국위원으로 임명되었다.

北 정권의 당과 정부 그리고 군의 맞물린 구조적 특성은 마주 겹치고 충성 경쟁을
유발한다.

고위 엘리트들은 공식 직책보다 최고 지도자 측근에 더 치중한다.  지난 날, 정권의
권력 중심의 영향력에 변화가 있었다.

김 정일밑에서는 당으로부터 군에, 그리고 국방위원회에 권력의 이동이 있었다.

최근 김 정은은 당이 군으로부터 권력을 끌어 들여 위상을 높이고 있다.

김 정은 체제에서는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출중한 정부 권력의 중심인 국방위원회를
능가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리는 김 정일과 김 정은 때부터 이들 경쟁적인 캠푸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직함은 김 정은과 함께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군과 당 양쪽에서
권위를 반영했다.

이런 맥락에서, 리의 제거가 김 정은에 의한 권력 강화를 나타내는 것인지 또는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직접 도전인지 해석하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라면, 이 사건은 집단지도체제를 강요하여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려는
원로들의 시도나 당에 권력을 빼앗긴 군부의 반항일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수백 명의 고위직 관리들이 쫓겨났으며, 제 2 왕조 승계 반항을 빌미로 
숙청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2010년 60명의 공개처형을 포함하여, 새 정권에 대한 잠재적 반항을 억제하기 위해
관리들의 처형과 구금이 잇따랐다.

北 정권은 정보의 블랙홀의 성격 때문에, 장막 뒤에서 무슨 정치적 승강이가 일어
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미국 정보기관도 급속한 리더십의 변화를 예측하거나 식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北 정권은 지난 15년 넘게 부득이한 정권 붕괴를 가져 올 내외 압력을 놀라운 탄력으로
극복했다.

北 정권의 갑작스런 정권교체는 어디에나 뻗쳐 있고 야만적인 국가보안기관 때문에
어렵다.

보안기관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권력의 상급제대까지 사찰한다.   평양은 또 다시,
임박한 죽음의 반복 예측을 속일 수 있다.

거꾸로, 갑작스런 리더십교체는 측근의 안정성 위험 때문에 실제 가능성은 남아 있다.

처음에는 효험이 있었던 승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로들 사이의 분열로 일어나는
권력투쟁으로 악화될 수 있다.

김 정은 지배에 대한 엘리트의 저항은 그 자체가 어김없는 반대 선언이거나 그의
권력의 강탈로 그를 명목상의 우두머리로 만드는 것이다.

리더십의 연속성이 지역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김 정은이나 다른 지배자에 의한
호전적 행위는 미국의 국익을 해친다.

이런 행위는 北 정권이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위협, 도발,
그리고 군사공격을 에상해야 한다.

미국은 누가 北 정권을 통제하든 호전적인 北의 위협을 물리칠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첫째,  효과적인 위기 대응을 위한 다각적인 긴급사태계획을 개발한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은 北 정권 시나리오에 맞춘 각자의 긴급사태계획을 조정하고
합동 연습을 통해 계획을 보완한다.

둘째,  통상전력과 유도탄 방어 그리고 핵우산으로 구성된 확장 억지력의 약속으로
한국과 일본의 방위를 명백히 천명한다.

셋째,  한국과 일본에 튼튼한 전진배치 군사력을 유지하고 미국방위요구에 완전히 자금을
제공한다.

미국 군사능력 감축은 동맹국 방위와 안보 위협의 억지 그리고 공세 행위의 신속 대응
이나 아시아의 자연재해 대응 능력을 약화시킨다.

北 정권 상황은 정적이지 않다.  갑작스러운 변화의 위험이 높다.

리더십 승계는 제 궤도 위에 안주할 수 있겠지만, 미국은 일련의 안보와 경제적 도전을 유발할 北의 갑작스런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
























2012년 7월 17일 화요일

北사회와 정보


-- 초점이 있는 외교정책의 존 페퍼의 정보에 관한 논평이다. --


" The Information and North Korea "
Abstract :
If North Koreans simply know more about the world outside, or received more accurate information
about their own society, they would transform their country.

This is an operating assumption behind much of the policy thinking in Washington and Seoul.

Both governments pour money into North Korea.   Civil society activists, perhaps impatient with the
incremental pace of government policy, try to get information into the notoriously isolated country
by any means possible, from floating balloons over the border to crossing into the country to proselytize
in person.

北에서 처음 탈출한 탈북자들은 외부 세계에 접하면서 크게 놀란다.  

1990년대 중반의 기근의 해에 중국에 간 탈북자들은 경제적으로 낙후 되었으리라 생각했던 중국의 첨단기술과 북적거리는 시장 그리고 풍요로운 소비자들을 보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처음 한국을 찾은 탈북자들은 그들의 눈앞의 서울의 자유롭고 풍요로움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데 놀랐다.

그러나 20년 전 은밀히  北주민들을 가르쳤던 " 소프트 파워 (Soft power)" 전략 이후 상황은 많이 변했다.

北 주민들은 이제 완전히 암흑 속에 있지 않다.  北에 유입된 정보가 얼마나 되는지 北에서 여론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량화할 수 없다.

하지만 간접적인 평가는 할 수 있다.  수십만 명의 北주민들은  1990년대 국경을 드나들면서 중국의 경제적 발전상을 직접 보았다.

오늘날, 2012년 1분기에만 작년 동기보다 40% 늘어 난 4만 명 이상의 北 주민들이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상품은 北의 장마당에서 매매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활기찬 중국 경제와 맞닿고 있다.  개성공단에는 5만 명이 넘는 北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선진기술과 깨끗한 시설 그리고 풍부한 음식의 식당 등 한국의 풍요와 얼굴을 맞대고 있다.

개성공단 내에서만 北 근로자들이 한국을 접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 장마당의 확산으로 北 주민들은 DVD플레이어, MP3플레이어,USB스틱 등을 갖게 되었다.

한국영화와 멜로드라마는 인기가 좋다.   많은 北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K-팝을 듣고 있다.

이집트의 오라콤 회사 덕분에 100만 명 이상의 北 주민들이 휴대전화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北의 정보의 흐름이 더 빠르고 쉽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는 이전엔 단지 수직으로 정부의 통제를 통해 알고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제 수평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런 정보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北 정권은 어떤 정치적 변화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 파워 전략 옹호자들은 변화는 이제 시간문제일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모든 정보의 흐름은 흰 개미떼가 北 정권의 사회 토대를 파먹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정권의 체제가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하루만에 붕괴될 수 있다.    소프트 파워 전략의 전제는 단지 희망적인 관측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량이 아니라, 정보의 유형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동유럽 주민들은 외부 세계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서유럽에 수십년 동안 왕래 했었다.  동독인들은 서독의 TV 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비교적 고립되어 있던 러시아에서도 의견을 달리하는 자비출판 원고가 나돌고 있었다.

1989년의 정보의 흐름의 특이한 점은 동독인들은 폴란드의 변화 가능성을 알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은 베르린 장벽의 붕괴를 알았으며, 알바니아 사람들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대통령 (1918~1989)의 몰락을 알았다.

이것은 마구잡이 정보가 아니었다.   이것은 정치구조와 문화의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정치에 대한 욕구가 갑자기 터져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의 정보였다.

사람들은 "아랍의 봄" 을 말 할 수 있다.   튀니지 사람들, 이집트 사람들, 그리고 바레인 사람들은 외부 세계의 정보와 자국의 사회 정보에 어둡지 않다.

이런 나라의 주민들에게 전기가 통하게 한 것은 아랍 세계에서 무엇이 갑자기 정치적으로 가능케 했는가 하는 정보였다.

그들은 독재자에 맞서 들고 일어 설수  있었으며 외부 세계는 독재자 지지를 위한 개입은 하지않았다.

정보의 증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포의 감소는 문제가 된다.  北 주민들은 지금 이런 사례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의 부 (富)의 정보는 비통함이나 분노 또는 부러움을 낳게 할 수 있겠으나 정치적 행동을 일으키게 할 것 같지는 않다.

대중음악과 멜로드라마 그리고 종교는 개인을 완전히 바꿀 수는 있겠으나, 北 주민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향해 봉기하게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北 정권이 단지 한 줌의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北 정권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현행 체체의 득을 보고 있는 상당한 엘리트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나라를 돌아 다닌다.  그리고 당연히 세계를 잘 알고 있으며, 대체로 실리적이지만 공식정치노선을 신봉한다.

이 부류의 엘리트들이 오늘 날 北 정권의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외국 방송을 듣거나 암시장의 DVD 를 보았다고 충성을 바꾸지 않는다.

이 엘리트들은 그들의 핵심 이익이 위협을 받거나 편들기를 요구 받을 상층의 심각한 권력투쟁, 또는 갑자기 더 이상 공포 속에 살지 않게 될 때는 현상 (現狀)의 집단 파괴도 불사한다.

아는 것은  힘이고  정보의 자류로운 흐름 그 자체는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보다 더 혁명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그것은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