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우리 애국가

" National Anthem of the Republic of Korea "
Abstract:
Aegukga is the national anthem of Korea.  The title literally means " The Patriotic Song " or
" The Song of Love for the Country ".

It is believed  that the lyrics were written for the cornerstone-laying ceremony of the Independence
Gate in Seoul in 1896 by Yun chiho, a politician, or by An Chang-ho, a pro-independence leader
and educator.

Initially, Aegukga was sung  to the tune of the Scottish folk song " Auld Lang Syne ", introduced
to Korea by Western missionaries.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1919~1945) in Shanghai, China, adopted
it as their national anthem.

At a ceremony celebrating the founding of Korea on 15th August 1948, the Scottish tune was
finally replaced by the Finale of Korea Fantasia that An Eak-tai had composed in 1935.

The new Aegukga was later adopted by the President Decree of 1948 by then-President
Syngman Rhee (or Lee Seungman).

Since the composer An Eak-tai died in 1965, the copyright for the music will not expire at least
until 2015.

The composer's widow Lolita An and her family then relinquished all rights to the Korean government
on 16 March 2005.


애국가는 나라사랑하는 노래를 말하며, 일제하에서 자연스럽게 불러오던 20여 종의
애국가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의 국가로 쓰이게 된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1910년에 이르는 한국적인 특소 현상과 한계상황 속에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울분과 민족주의, 그리고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움직임은 종교적인 성향
으로 창가(唱歌)로 표출되었다.

이 창가는 재래의 전통적인 시가(詩歌)나 잡가(雜歌) 또는 향가(鄕歌)가 아닌 새로운
풍조, 즉 개신교의 창가를 이용해 불렀으며, 창가로 발전시켜 사회참여의 기세를 높였다.

이 무렵, 독립협회를 비롯한 많은 선각자들은 앞을 다투어 독립의 노래와 애국가 등의
창가 가사를 지어냈다.

찬송가의 곡과 분절(分節) 및 가락(音律)의 형식을 모방한 애국가 부르기 국민가창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 요원의 불길처럼 퍼졌다.

개신교의 찬송가는 창가를 낳는 모체였지만, 창가는 이처럼 한국에서 서양음악의 시발이
되었다.

1896년 11월21일, 독립문 건립 정초식(定礎式)에서 당시 배재학당  학생들이 부룬 애국가
가사에 선교사 벙커목사가 스코틀랜드 민요 Auld Lang Syne 곡을 붙인 것이 최초의 애국가
이다 (작사자는 윤 치호 또는 안 창호로 추정).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1919~1945)는 이 애국가를 국가로 채택하였다.

작곡가 안 익태는 미국 등지에서 수많은 해외동포들의 열절한 조국사랑에 감동되어
1935년 "한국 환상곡 (Symphonic Fantasia KOREA "를 작곡했다.

그 후 8.15 광복의 기쁨과 6.25전쟁의 민족적 수난도 추가하여, 4부로 된 한민족의 역사적
대서사시의 합창과 관현악으로 구성된 작품을 완성했다.


이 승만 대통령은 1948년, 스코틀랜드 민요곡 대신 이 교향적 환상곡의 제3부 애국가
선율을 우리 애국가로 지정하였다.

이로써, 민족의 상징이며 온 국민의 표상인 대한민국의 공식 국가(國歌)가 결정되었다.

이 안 익태의 애국가의 저작권은 그동안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안 익태의 유족이 보유
하고 있었으나, 2005년 3월16일, 이 저작권을 정부에 기증했다.





w/file  Symphonic Fantasia KOREA

http://www.youtube.com/watch?v=H_q2LAm7cwM










2012년 8월 1일 수요일

평양의 권력 싸움



-- 이번 北의 고위 실세의 숙청은 유례없는 권력의 3대 세습 승계의 내부파열이다.

정보의 블랙홀인 北의 장막에 가려진 내막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숙청 사건이 정적(靜的)이 아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을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헤리티지재단 동북아문제 선임 연구원 브루스 클링너는 최근 발표한 Issue Brief
에서 北 지도부의 불안정성과 권력 투쟁의 내용을 분석 평가했다. --

" Power Struggle in Pyongyang "
Abstract :
North Korea's dismissal of Vice Marshal Ri Yong-ho, chief of the Korea People's Army
Genneral Staff, suggests there has been more turmoil behind the curtain of power than observers
had previously thought.

Yet it is unclear whether Ri's removal was due to a more secure Kim Jong-un feeling confident
enough to purge even from the innermost circle to further consolidate his power or instead a
pushback by older elites challenging a second North Korean dynastic succession.

In either case, additional senior-level purges are likely, potentially even including an attempt to
overthrow Kim Jong-un.

North Korean leadership instability is worrisome to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Since it increases the potential for volatility, additional provocative acts, or implosion of a
regime possessing nuclear weapons.

As such, the U.S., Korea, and Japan should implement all necessary steps to defend against
the spectrum of potential North Korean threats.


평양의 인민군 총참모장 리 용호의 숙청은 세상이 알고 있는 것 보다 北의 권력
내막이 더 심각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리의 제거가 김 정은의 기반을 더 강화하기 위해 최측근을 제거하여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인지 원로들에 의한 제2의 왕조 승계에 도전하는 반발인지 분명치 않다.

두 경우 모두에서, 추가적인 고위급의 숙청, 어쩌면 김 정은을 뒤엎는 시도도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北 정권의 불안정은 그 변동성과 추가적인 도발 행위 또는 핵무기를 가진 정권의
파열 등 이유 때문에 미국과 동맹국들의 큰 걱정거리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은 北의 잠재적 위협 양상을 대비하는 필요한 조처를
강구해야 한다.

또 하나의 분명한 유엔 결의의 위반인 4 월 장거리 유도탄 발사시도와 한국에 대한
무자비하고 주도면밀한 위협은 北 정권이 김 정은 체제에서도 변함없는 위협임을
보여주고 있다.

리는 김 정일 밑에서 김 정일 호위사령관, 인민군 총참모장 그리고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하는 등 급부상한 군부 실세였다.

지난 2년 동안, 김 정은의 권력 승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당 정치국상무위원,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그리고 정치국위원으로 임명되었다.

北 정권의 당과 정부 그리고 군의 맞물린 구조적 특성은 마주 겹치고 충성 경쟁을
유발한다.

고위 엘리트들은 공식 직책보다 최고 지도자 측근에 더 치중한다.  지난 날, 정권의
권력 중심의 영향력에 변화가 있었다.

김 정일밑에서는 당으로부터 군에, 그리고 국방위원회에 권력의 이동이 있었다.

최근 김 정은은 당이 군으로부터 권력을 끌어 들여 위상을 높이고 있다.

김 정은 체제에서는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출중한 정부 권력의 중심인 국방위원회를
능가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리는 김 정일과 김 정은 때부터 이들 경쟁적인 캠푸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직함은 김 정은과 함께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군과 당 양쪽에서
권위를 반영했다.

이런 맥락에서, 리의 제거가 김 정은에 의한 권력 강화를 나타내는 것인지 또는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직접 도전인지 해석하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라면, 이 사건은 집단지도체제를 강요하여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려는
원로들의 시도나 당에 권력을 빼앗긴 군부의 반항일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수백 명의 고위직 관리들이 쫓겨났으며, 제 2 왕조 승계 반항을 빌미로 
숙청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2010년 60명의 공개처형을 포함하여, 새 정권에 대한 잠재적 반항을 억제하기 위해
관리들의 처형과 구금이 잇따랐다.

北 정권은 정보의 블랙홀의 성격 때문에, 장막 뒤에서 무슨 정치적 승강이가 일어
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미국 정보기관도 급속한 리더십의 변화를 예측하거나 식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北 정권은 지난 15년 넘게 부득이한 정권 붕괴를 가져 올 내외 압력을 놀라운 탄력으로
극복했다.

北 정권의 갑작스런 정권교체는 어디에나 뻗쳐 있고 야만적인 국가보안기관 때문에
어렵다.

보안기관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권력의 상급제대까지 사찰한다.   평양은 또 다시,
임박한 죽음의 반복 예측을 속일 수 있다.

거꾸로, 갑작스런 리더십교체는 측근의 안정성 위험 때문에 실제 가능성은 남아 있다.

처음에는 효험이 있었던 승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로들 사이의 분열로 일어나는
권력투쟁으로 악화될 수 있다.

김 정은 지배에 대한 엘리트의 저항은 그 자체가 어김없는 반대 선언이거나 그의
권력의 강탈로 그를 명목상의 우두머리로 만드는 것이다.

리더십의 연속성이 지역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김 정은이나 다른 지배자에 의한
호전적 행위는 미국의 국익을 해친다.

이런 행위는 北 정권이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위협, 도발,
그리고 군사공격을 에상해야 한다.

미국은 누가 北 정권을 통제하든 호전적인 北의 위협을 물리칠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첫째,  효과적인 위기 대응을 위한 다각적인 긴급사태계획을 개발한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은 北 정권 시나리오에 맞춘 각자의 긴급사태계획을 조정하고
합동 연습을 통해 계획을 보완한다.

둘째,  통상전력과 유도탄 방어 그리고 핵우산으로 구성된 확장 억지력의 약속으로
한국과 일본의 방위를 명백히 천명한다.

셋째,  한국과 일본에 튼튼한 전진배치 군사력을 유지하고 미국방위요구에 완전히 자금을
제공한다.

미국 군사능력 감축은 동맹국 방위와 안보 위협의 억지 그리고 공세 행위의 신속 대응
이나 아시아의 자연재해 대응 능력을 약화시킨다.

北 정권 상황은 정적이지 않다.  갑작스러운 변화의 위험이 높다.

리더십 승계는 제 궤도 위에 안주할 수 있겠지만, 미국은 일련의 안보와 경제적 도전을 유발할 北의 갑작스런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
























2012년 7월 17일 화요일

北사회와 정보


-- 초점이 있는 외교정책의 존 페퍼의 정보에 관한 논평이다. --


" The Information and North Korea "
Abstract :
If North Koreans simply know more about the world outside, or received more accurate information
about their own society, they would transform their country.

This is an operating assumption behind much of the policy thinking in Washington and Seoul.

Both governments pour money into North Korea.   Civil society activists, perhaps impatient with the
incremental pace of government policy, try to get information into the notoriously isolated country
by any means possible, from floating balloons over the border to crossing into the country to proselytize
in person.

北에서 처음 탈출한 탈북자들은 외부 세계에 접하면서 크게 놀란다.  

1990년대 중반의 기근의 해에 중국에 간 탈북자들은 경제적으로 낙후 되었으리라 생각했던 중국의 첨단기술과 북적거리는 시장 그리고 풍요로운 소비자들을 보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처음 한국을 찾은 탈북자들은 그들의 눈앞의 서울의 자유롭고 풍요로움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데 놀랐다.

그러나 20년 전 은밀히  北주민들을 가르쳤던 " 소프트 파워 (Soft power)" 전략 이후 상황은 많이 변했다.

北 주민들은 이제 완전히 암흑 속에 있지 않다.  北에 유입된 정보가 얼마나 되는지 北에서 여론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량화할 수 없다.

하지만 간접적인 평가는 할 수 있다.  수십만 명의 北주민들은  1990년대 국경을 드나들면서 중국의 경제적 발전상을 직접 보았다.

오늘날, 2012년 1분기에만 작년 동기보다 40% 늘어 난 4만 명 이상의 北 주민들이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상품은 北의 장마당에서 매매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활기찬 중국 경제와 맞닿고 있다.  개성공단에는 5만 명이 넘는 北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선진기술과 깨끗한 시설 그리고 풍부한 음식의 식당 등 한국의 풍요와 얼굴을 맞대고 있다.

개성공단 내에서만 北 근로자들이 한국을 접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 장마당의 확산으로 北 주민들은 DVD플레이어, MP3플레이어,USB스틱 등을 갖게 되었다.

한국영화와 멜로드라마는 인기가 좋다.   많은 北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K-팝을 듣고 있다.

이집트의 오라콤 회사 덕분에 100만 명 이상의 北 주민들이 휴대전화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北의 정보의 흐름이 더 빠르고 쉽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는 이전엔 단지 수직으로 정부의 통제를 통해 알고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제 수평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런 정보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北 정권은 어떤 정치적 변화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 파워 전략 옹호자들은 변화는 이제 시간문제일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모든 정보의 흐름은 흰 개미떼가 北 정권의 사회 토대를 파먹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정권의 체제가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하루만에 붕괴될 수 있다.    소프트 파워 전략의 전제는 단지 희망적인 관측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량이 아니라, 정보의 유형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동유럽 주민들은 외부 세계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서유럽에 수십년 동안 왕래 했었다.  동독인들은 서독의 TV 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비교적 고립되어 있던 러시아에서도 의견을 달리하는 자비출판 원고가 나돌고 있었다.

1989년의 정보의 흐름의 특이한 점은 동독인들은 폴란드의 변화 가능성을 알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은 베르린 장벽의 붕괴를 알았으며, 알바니아 사람들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대통령 (1918~1989)의 몰락을 알았다.

이것은 마구잡이 정보가 아니었다.   이것은 정치구조와 문화의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정치에 대한 욕구가 갑자기 터져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의 정보였다.

사람들은 "아랍의 봄" 을 말 할 수 있다.   튀니지 사람들, 이집트 사람들, 그리고 바레인 사람들은 외부 세계의 정보와 자국의 사회 정보에 어둡지 않다.

이런 나라의 주민들에게 전기가 통하게 한 것은 아랍 세계에서 무엇이 갑자기 정치적으로 가능케 했는가 하는 정보였다.

그들은 독재자에 맞서 들고 일어 설수  있었으며 외부 세계는 독재자 지지를 위한 개입은 하지않았다.

정보의 증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포의 감소는 문제가 된다.  北 주민들은 지금 이런 사례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의 부 (富)의 정보는 비통함이나 분노 또는 부러움을 낳게 할 수 있겠으나 정치적 행동을 일으키게 할 것 같지는 않다.

대중음악과 멜로드라마 그리고 종교는 개인을 완전히 바꿀 수는 있겠으나, 北 주민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향해 봉기하게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北 정권이 단지 한 줌의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北 정권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현행 체체의 득을 보고 있는 상당한 엘리트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나라를 돌아 다닌다.  그리고 당연히 세계를 잘 알고 있으며, 대체로 실리적이지만 공식정치노선을 신봉한다.

이 부류의 엘리트들이 오늘 날 北 정권의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외국 방송을 듣거나 암시장의 DVD 를 보았다고 충성을 바꾸지 않는다.

이 엘리트들은 그들의 핵심 이익이 위협을 받거나 편들기를 요구 받을 상층의 심각한 권력투쟁, 또는 갑자기 더 이상 공포 속에 살지 않게 될 때는 현상 (現狀)의 집단 파괴도 불사한다.

아는 것은  힘이고  정보의 자류로운 흐름 그 자체는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보다 더 혁명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그것은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1일 일요일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의 함의(含意)


"The Implication of Jeju Naval Base construction"
Abstract:
The Jeju Naval Base is a planned military base on Jeju Island, Republic of Korea.

The plan was first announced in 2007 and is continued by the Lee Myong-bak
government.

The base was chosen for its strategic forward location that could provide rapid
response to any type of activity in the neighboring  sea shared with China and
Japan.

Along with protecting the vital Korean shipping lanes in which 99% of Korean
exports, and all oil imports flow through.

However, there is controversy that the enforced construction of a naval base in
Jeju-do, which could potentially be at odds with China.

The protesters have staged rallies that were ruled illegal by the Jeju courts, and
have broken numerous laws, including assaulting police officials, and navy soldiers.

And it is now reported that the majority of demonstrators are far left activist,
and anti-American group.

The construction work planned initiating the early 2000s and is expected to be
completed by 2015 with total budget of 1,031 trillion won.

Keep the way of the sea is the 21st century's national security strategy.  Jeju
Island sea naval base, which the core of national security is the element essential
for the security.


지금 불순 반대세력들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다.  국가가 군시기지
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법적 요건을 준수 이행하고 추진 중에 있는 이 건설 현장에 이들은
드러누워 버렸다.

우선 대한민국의 온갖 국사를 끈질기게 앞장서 반대하고 있는 이들 불순 반대세력의 실체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국내 반대세력의 대부분은 좌파 종북 세력들이다.  이들이 법석을 부리는 것은 北의
"통일전선전략"에 따른 대남적화혁명공작 활동 지령 때문이다.

北의 노동당 대남 공작기구인 대외연락부(현재 명칭 225국)의 직접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국내 35개 노동 농민 재야 민중연대라는 운동단체 (민주노청, 전국연합, 전농, 민노당 등)가
바로 좌파 종북 세력이다.

北은 통일전선전략과 정치심리전을 묶어 "반 대한민국"정서와 세력의 조직화를 통한 사상
전을 펴면서, 반미, 미군철수, 반 FTA 등 반국가 활동을 격렬하게 전개할 뿐 아니라, 최근엔
종북 세력의 국회 및 정당 등 정치제도권 진입도 이뤘다.

"우리 민족끼리" 와 "민족 공조" 등 민족을 내세운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적화 공작은  온 라인에서도 정치, 종교, 학술계에 깊이 침투한 종북 세력들의 사이버공간 내 반국가
및 반미 사이버공간 작전(Cyberspace operation) 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 모든 것은 지난 10년 좌파정권 시절의 정치가 뿌리 내리게 한 것이다.

김 대중은 6.15 공동선언에서 北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드려, 제1항의 통일문제를 "우리민족
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  고 하였다.

그의 국민정부는 5년 동안 13억 3105만 달러(상업교역 4억 5600만, 관광대금 4억 1361만,
사회문화교류 4억 6144만, 단위 달러) 를 北에 현금 제공하면서, 남북 관계가 평화를 유지
했다고 했다.

노 무현은 "반미며 어떠냐", "남북관계만 잘 되면 다른 것은 깽판 쳐도 좋다" 고 대통령으로서
차마 말 못할 상식이하의 언변으로 우리 국민의 국가관과 대북관 그리고 안보관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온 것이다.

이런 것들은 지금 정치인 행세하는 불순한 무리들이나 사이비 지식인들이 北 정권에 대한
경계 의식을 "냉전적이고 후진 사고" 라고 매도하는 작태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반대를 주장하는 무리들은 대한민국을 비방하고 北 정권을 찬양하고 있다.   이들은 면접
여론조사에서 北이 좋으면 북한 지역에 가서 살겠는가의 질문에 가겠다고 대답한 자는
없었다.   이 얼마나 우스광스러운 작태인가 ?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2000년대 초반부터 추진, 2015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총예산
1조 310억 원 (국토부 투자 534억 원 포함) 울 투자, 제주 강정항에 기동전단 (機動戰團) 을
수용할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반대세력의 견해를 수용, 순수 군사목적만이 아니라, 크루즈 선 (Cruise ship, 유람선) 이
정박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美港)으로 개발되고 있다.

제주도민의 의견을 존중하여, 2009년 4월 27일, 국방부장관, 국토해양부장관, 제주특별
도지사 3자 합의 기본협약서도 체결되었다.

< 21세기 한국의 국가안보 기지 >

한국은 장 보고(張 保皐, ? ~ 846), 이 순신(李 舜臣, 1545~1598) 을 자랑하며 바다 흥성의
역사를 가졌으나 바다를 경시하는 민족국가였다.  오늘날까지 바다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은 것은 미국이 전적으로 보장해 주었던 해로(海路) 의 안보 덕분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수출 주도형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바다의 중요성이 최고의
가치로 등장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강원도,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의 최전선이었지만, 이제는 제주도가
국가안보의 최전선이 되어야 할 시대로 바뀐 것이다.

석유항로가 단 2주일만 끊어져도 나라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세계 무역국가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의 관념이 희박하다고 비판을 받은 노 무현도 "국가안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고 말 하며 제주기지 건설을 결정했던 것이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세력의 주장 논리의 하나는 제주도 해군기지는 미국 해군이
사용하는 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더욱 절박한 현실은 미국 해군이 한국의 바다와 해로를 더 이상 지켜주지
않을지도 모르는 시대가 점차 도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해군은 이제 항공모함까지 보유한 대양해군으로 매진하고 있다.  한, 중, 일 해군력
을 비교하면, 한국: 함정 30척 병력 41,000  총 18.1만 톤,  중국: 함정 149척 병력 255,000
총 134.1만 톤,  일본: 함정 64척 병력 45,518  총 44.8만 톤이다.
 *자료 Military Balance 2010

대한민국의 생명선인 해로를 지키는 것이 21세기 국가안보 전략이며, 제주도 해군기지는
국가안보의 요체인 해로안보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요소인 것이다.

< 해양국가인 대한민국 >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형 경제 발전 정책으로 성공했고, 전형적인 무역국가 (Trading
state) 이며, 무역국가는 해양에 의존하는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국민들은 1970년대 초반부터 좋은 물건은 "그거 물 건너 온 것이구나" 라고 말 하곤
했다.   이 말은 우리나라가 해양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의 열악한 상품 제조 능력을 뜻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해양 물동량은 세계 총 물동량의 14% 수준이다.  세계 총 인구의
0.75% 인 대한민국 국민이 바다를 건너 온  물건 세계 총량의 14%를 쓰고 있으며, 이는
세계 평균보다 18.7배나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해양의 의존 비율은 계속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 해로안보는 한국의 국가안보 >

바다가 우리의 안보에 대해 갖는 중요성은 정치, 군사안보의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 그리고
"교역의 통로" 라는 측면에서 바다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한국에게 해로는 생명선(Life Line) 과 같다.  해로가 차단되면 우리나라는 죽는다.  제주도
해군기지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 있다.

현재 한국은 국내 총생산 (GDP) 의 100% 가 넘는 액수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싱가포르
같은 무역 중개국은 GDP 대비 해외 의존도가 300% 도 넘는다.  의존도는 수출액과 수입액
을 합친 금액을 GDP 총액으로 나눈 비율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해로가 전혀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며, 지금까지 안전했던 것은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해군력에 의존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제주도 남방 항로의 중요성 >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제주도 남방을 지나는 항로는 매일 수백 척의 상선과 어선, 그리고
유조선이 통항 (通航)하는 항로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주도 남방해로는 대한민국의 핏방울과 같은 석유가 100% 통과
하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매일 약 40만 톤의 석유가 부어져야만 움직일 수 있는  공업국가인 우리나라는 남방항로를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유조선의 안전에 국가 운명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 세력은 "질긴 놈이 승리 한다" 는 험악한 구호 아래,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가 웬 말이냐고 주장한다.   평화의 섬 제주도는 우리가 제주도를 지킬 충분한
능력이 있는 한에서 진정한 섬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하와이는 세계적인 해군기지가 있는 섬이다.  오키나와 (沖繩), 괌
(Guam) 섬에는 미군기지가 있지만, 이 섬들은  모두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대규모 군사
기지는 오히려 이들 섬들을 더 유명한 관광지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캐나다 태평양 함대사령부가 있는 빅토리아 (Victoria) 는 인구 33만의 아름다운 작은
도시다.  이 도시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요 평화의 도시이지만, 캐나다 서부 최대의 군항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 맺음 말 >

제주도 해군기지는 국제평화를 위한 기지이며,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한 시설이다.

또한 제주도 해군기지는 국제적 위협은 물론, 北 정권의 위협에도 잘 대처하기 위해 만드는
군사기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국민의 재산권을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설득과 보상이
필요한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대사이기에 정부는 사업 내용의 충실한 홍보로
악의적 반대를 극복하고 전체 국민의 동참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2012년 6월 16일 토요일

北의 유도탄 도전


-- 北 정권은 전략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핵, 탄도탄, 화생무기 등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는 비대칭 무기 개발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군사력 우위를 확보하고, 이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체제의 결속을 꾀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미국 국가정보국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2008.3.3)에서 탄도탄 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부품은 거의 자급자족하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 민간단체 국제위기감시기구 (ICG)는 고급 기술과 중요부품은 여전히 외부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5월 30일, 영국 전략문제연구소(IISS) 의 RUSI유도탄방어 회의에서 논의된 北 유도탄 도전에 관해 핵확산방지 및 군축프로그램소장 마크 피츠패트리크는 北 정권의 유도탄 위협을 평가하면서도 그 프로그램 내면을 예리하게 분석 평가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
“North Korean missile challenge"
Abstract:
North Korea presents a wide range of security challenges. North Korea's Hwasong-5 and Hwasong-6 missiles or just call them Scud B's and C's can reach almost everywhere in South Korea.
North Korea has about 600 0f them. Nodong missiles can target much of Japan.
Armed with a 1tonne warhead they can't reach Tokyo, but it can only obliterate all of Western Japan, including the Kyoto, Osaka metropolis.
The succession to Kim Jung-Un appears to be going smoothly so far. But Kim's massive miscalculation in the foreign policy field earlier this year shown an uncertain hand at the helm.
It's a mystery why North Korea on February 29 agreed to a moratorium on nuclear and missile tests and 16 days later announced it would conduct a satellite launch that it was told would break the deal.
Kim was probably told he could have it both ways. But he ended up with neither when the rocket broke up after launch.
For years North Korea had been saying that April 2012 would mark the arrival of North Korea as a powerful and prosperous state. Prosperity is nowhere to be seen, so there is all the more reason to appear powerful. But let's not give them more credit than they deserve.
北 정권의 유도탄은 지역 내 모든 인접 국가들에게 광범한 위협으로 다가서고 있다. 화성5및 화성6으로 불리는 Scud B 및 Scud C는 한국의 모든 지역을 강타할 수 있으며, 600기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노동 유도탄은 일본도 타격할 수 있다. 1톤의 탄두를 장착한 이 유도탄은 도쿄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서 일본 지역인 교토와 오사카를 포함한 모든 지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2010년 퍼레이드에 나타났던 신형 노동호는 1,600km 의 사거리로 일본 전역과 오키나와 미군기지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
노동호는 베이징을 타격할 수 있으며, 화성5는 블라디보스토크도 타격할 수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 눈치다.
그러나 중, 러 두 나라는 北의 유도탄 도발에 대한 대응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한층 더 탄탄한 유도탄 방어체제와 한국의 장거리 유도탄무기체계 획득의 노력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계산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베이징과 모스크바의 정책 결정자들은 北의 도발 억제를 위한 강력한 조처에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평양을 압박하여 정권이 붕괴되면, 중국은 완충국을 상실하고 대규모 난민의 중국유입을 걱정한다.
어쨌든 北 정권은 언젠가는 멸망 한다. 현재 3대 김 정은의 권력 세습이 순탄한 것처럼 보이지만, 금년 초 나타났던 그의 엄청난 계산 착오는 지도능력의 불확실성을 드러내고 있다.
2월 29일 핵 및 유도탄 시험 중단을 합의하고 16일 뒤, 위성 발사를 발표하면서 미국과의 거래를 깬 것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北의 유도탄 도전은 어떤 탄두를 장착하느냐에 따라 그 정도가 증폭된다. 아마도 재래식 무기를 장착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의 부정확성은 비능률이고 군사적으로도 무력함을 입증한 것이다. Scud 유도탄의 원형공산오차 (CEP)는 1~1.5km, 노동호는 2.5km 이상으로 판단된다.
北 정권은 세계 제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이다. 그들의 유도탄은 폭탄을 소형화할 수 있으면 화학, 생물학 탄두는 물론, 핵무기도 장착 가능하다.
영국정부는 평양이 핵무장 국이라고 인식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말 하지 않는다. 北이 오늘날 노동호의 원추형두부에 핵무기를 장착 했는지 입증할 수 없으나 머지않아 그것은 가능하다.
北이 그들의 이 전략적 시스템의 판매에 안달복달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유도탄시장은 말라붙었다. 미국의 압박으로 파키스탄, 이집트, 아랍 에미리트국 연합국 (UAE),예멘, 리비아는 北의 유도탄 구입을 하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北은 수출할 수 있는 유도탄 보유량도 넉넉하지 않다. 北은 역사적으로 엔진과 같은 유도탄 핵심체와 부품은 외주 구입에 의존 해 왔다. 외국소스는 주로 러시아인데, 이제 대부분은 사라졌다.
이제 北 정권의 유도탄 거래 상대국은 이란, 시리아 그리고 미얀마뿐이다. 미얀마는 냉전체제를 벗어나면서, 北과의 군사관계도 청산하고 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면, 北의 믿을만한 파트너는 이란만 남게 되며 이란도 얼마나 구입할지 알 수 없다.
평양이 퍼레이드에서 Ghad-1 원추형두부를 보인 것은 유도탄 기술의 흐름이 거꾸로 가고 있으며, 적어도 양방향임을 나타냈다.
중요한 의문점은 北의 유도탄이 일본보다 더 먼 나라에도 위협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2011년1월, 당시 미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트는 5년 내에 평양은 대륙간탄도탄을 개발하여 미국을 위협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게이트 장관이 어떻게 이런 경고를 내 놓았는지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北이 사거리 1,600km 이상의 유도탄을 시험 성공한 일은 없다
2010년 10월 퍼레이드에 등장한 무수단 유도탄의 사거리는 2,400km 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종류는 북한 지역이나 이란에서도 시험한 적이 없다. 이것은 옛 소련 해군의 잠수함발사 유도탄 R-27의 연장형으로 보인다. 北은 시험 없이 시스템 가동을 위해서 많은 변형을 시도 한다
김일성 생일 4월 15일에 나타난 신형 유도탄 KN-08 은 정밀검사에서 모크업 (실물크기 모형)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개발 중인 신형 유도탄의 원형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시험하고 볼 수 있을 때까지는 北이 대륙간탄도탄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 없다.
모크업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유도탄을 수송한 16륜 차량이다. 이 대형트럭탑재발사체는 중국항공우주과학 산업회사의 한 자회사의 섀시(차대)를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北은 목적을 우주발사 운반체로 위장하면서 다른 장거리탄도탄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제까지 4개의 이런 로켓을 시험하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
* 첫 장거리 유도탄 대포동1은 3단계 우주발사체로 1998년 한번만 시험했다. 北이 위성을 우주에 올려놓았다는 주장과는 달리, 2단계는 일본 상공을 비행 후 태평양에 떨어졌으나 3단계는 분리된 후 실패했다. 대포동1은 기술과시용으로 정권수립 50주년을 맞춰 계획된 것이다
.
* 대포동2는 2006년 7월에 발사됐다. 일출 전 발사 후 42초 만에 폭발했다. 어둠 속 시험이란 이상한 일이다. 발사체는 신형이고 카메라와 영상 추적을 원했기 때문이다. 北의 유도탄 조종과 원격측정 데이터 획득 능력은 미지수이나, 최소의 가능성이 높다.
* 3년 후, 2009년 4월, 두 번째 우주발사체 은하2를 시험 발사했다. 처음 두 단계는 예상대로 순항했으나, 3단계의 오작동으로 진입은 실패했다.
* 은하3은 은하2와 비슷하게 4월 13일, 비참하게 실패했다.
.
이 모든 상황을 볼 때, 北은 전혀 진지한 비행시험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았다. 이것은 장차 변화할 수 있다. 위성 발사의 연속적인 시도는 北 정권이 위성 발사체나 장거리탄도탄 개발을 위한 구조적 연속시험을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北의 유도탄은 정치적 목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고 체제의 정통성을 강화하기위해 이용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2012년 4월 13일의 유도탄 발사는 체제의 힘을 과시하고, 강성대국을 축하하는 의도였다. 그런데 북한 지역 어느 구석에도 번영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강력해 져야겠다는 것이 그 이유다.

2012년 6월 1일 금요일

北 정권과 인권



-- 오늘날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유엔인권선언(1948년)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고 규정했다.

北 정권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고 시민적. 정치적 권리는 물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도 자의적으로 침해하는 인권 후진국이다.

인권침해의 원인은 北 체제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수령중심의 정치적 일당독재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조직화된 통제사회, 그리고 주체사상의 유일적 사상중심의 전체주의 사회문화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기본권은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北은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해 크게 문화상대주의에 따른 인권의 상대성과 국가 주권의 원칙에 따른 배타성 등 두 가지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첫째, 그들이 주장하는 “우리식 사회주의는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서구식 인권관으로 北의 인권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인권의 배타성은 인권은 내부 문제로 北의 인권에 다른 나라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며, 인권 문제에 대한 외부의 관심에는 체제안보의 관점과 현실적 필요 등 기준을 활용하는 인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원 북한 인권전문가 로벨타 코헨은 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첸 광청(陳 光誠)의 탈출에 즈음하여 발표한 북한의 인권에 대하여 세계는 그 내용을 주목하고 있다. --



"North Korea and Human Rights" 
Abstract:
The bold escape from house arrest of Chinese human rights dissident Chen Guangchen captured world attention and became a principal item on the U.S.-China agenda.  

Is there anything to be learned from this experience for dealing with human rights in North Korea ?

To begin with, it would be a step forward if North Koreans were able to become dissidents in their own country.   Anyone who so much as questions government policies is hauled off for interrogation, back breaking labor, and extensive imprisonment.

Containing North Korea's nuclear ambitions has been the overriding priority and all other issues have taken a back seat.

The linkage of issues to nuclear progress, understandable to be sure given North Korea's provocative behavior, still has the effect of holding all other issues hostage.

The Six Party talks which ended in 2008 failed to morph into a multilateral process for Northeast Asia that could have formalized discussion of political, strategic, economic and human rights issues in the way the Helsinki Final Act did for the U.S. and former Soviet Union,





가택 연금에서 과감하게 탈출한 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첸 광청(陳 光誠)은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급기야 미. 중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北 정권의 인권을 다루는데 이 경험이 어떤 교훈을 줄 것인가 ?

북한 지역에서 북한주민이 반체제 인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위대한 도약임에 틀림없다.  
北 정권의 정책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사람은 조사받고, 가혹한 중노동과 광범위한 징역형에 처해진다. 전직 죄수는 북한 지역을 탈출해야만 인권옹호자가 될 수 있다.

北 정권과의 논의의 주제에는 인권이 합법화된 일은 없다.  미. 중의 의제는 정치, 경제 그리고 전략적 현안들과 함께 인권도 포함된다.

미국과 중국은 사실상 그들의 인권 논의에 외부 전문가들도 초청한다.  어떤 미국 전문가들은 미국 관리들이 회피하려고 하는 까다로운 현안들도 제기한다.

중국에 대하여 이 점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언젠가는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인권 논의의 토대는 존재한다.  그리고 첸과 같은 경우는 전체적인 미, 중 관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한 사례가 된다.

北 정권에 관한 한, 역동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北의 핵 야망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어 왔으며, 다른 현안들은 눈에 띄지 않는 입장이 되었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핵 프로그램의 동결을 위해 미국이 대량의 식량과 연료를 北 정권에 제공할 때부터 인권은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식량이 굶주린 주민들에게 배달되었는지 확인하기위한 모니터링계획도 주장하지 않았다.  

미 의회는 이에 대한 반응으로, 사실상 “2004 북한 인권법안”을 채택함으로써 행정부에 대하여 대북협상 시 인권을 포함한 식량 모니터링도 함께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이 법안은 北 정권 특별인권대사의 임명도 규정했다.

그때부터, 인권은 온당하지만 명확한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과 北 정권 간에는 이런 현안들을 논의할 틈새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로버트 킹 특사는 자기 이름을 걸고 北 관리들에 인권을 제기 할 것을 다짐했으며, 유엔에서도 공개적으로 인권을 논하며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비핵화의 윤달 합의 무산으로 킹 특사의 인권 논의 노력도 무너졌다.  미국이 北의 굶주린 90만 명의 주민들에게 제공하려했던 식량원조계획도 붕괴되었다.  北 정권의 폐쇄사회를 개방하는데 도움이 될 인적교류의 증대도 중도에서 포기 되었다.

핵 진전에 현안들을 연계하는 것은, 北 정권의 도발 행위와 기타 문제를 인질로 잡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2008년에 중단된 6자 회담을 동북아의 다자간 협의체로 바꾸려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이 다자간 협의체는 헬싱키최종법안(the Helsinki Final Act)으로 미국과 옛 소련 간에 한 것처럼, 정치적, 잔략적, 경제적 그리고 인권 현안들의 논의를 형식화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헬싱키 기간의 한 교훈은 오직 넓은 맥락의 안보와 정치 그리고 경제적 현안들을 통해서만이 인권이 논의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권에 관한 중요 사안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핵 문제는 이제 北 정권의 성격으로 보아 주의가 부족하면 훨씬 풀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할 때가 되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안드레이 사카로브(러시아 핵물리학자 및 인권운동가,1921~1989)는 냉전의 절정시기에 국제적 신뢰와 군비축소는 개방사회와 근본적인 인권이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보았다.  

인권에 대한 주의(注意)는 핵 합의 도달을 가로막는다는 말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둘째,  미국은 양자 및 다자 회담에서 현안의 범위를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쪽 분야 협상에 진전이 없을 때, 다른 모든 분야의 접근이 필요 없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10년 이상의 헬싱키 프로세스의 경험이며, 동북아에 적응케 할 가능성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北 정권의 인권 제기는 식량원조의 논의와 엄격한 모니터링조건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사안들은 예를 들면 지금도 14수용소에 살고 있는 신 덕현 씨나 오 길남 씨의 처와 딸이 서방에의 탈출을 시도했다고 감옥에 투옥한 것과 같은 정치범의 경우도 포함해야 한다.

적십자 국제위원회와 세계식량계획(WFP)의 北 수용소 접근 문제도 회담에서 다루어야 한다.  15만 명에서 20만 명 이상이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으며, 구금자의 높은 사망률도 보도 되고 있다.

이런 수용소에 구금된 어린이를 석방할 필요성을 의제에 올려야 한다.  어린이의 자유는 北 정권의 국가안보에 전혀 위험이 되지 않는다.

1981년, 北 정권은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권리에 관한 두 국제조약에 가입했으며, 감시와 책임의 문호를 열어 놓은 상태이다.  미국으로서는 지금 그들의 말을 실천해 볼 때이다.

넷째,  北 정권을 둘러쌓고 있는 정보의 벽을 뚫을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라디오 방송, DVD 보내기 그리고 모바일 미디어 기기 그리고 기자, 변호사, 노동전문가 인권운동가, 기타 핵 진전에 관계없는 인사들의 인적교류를 추진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北 정권에 의해 강요되고 있는 북한 지역 주민들의 고립 탈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統一論議 (58) 北의 권력재편과 3대 세습


Column 58
"North Korea's restructuring of power and Succession
of three generations"
Abstract:
The power base of the North Korean regime depends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Party led power systems and concentrated into those apparatuses of the party that is, Party Central Committee, Politburo, Secretariat, Central Military Commission and National Defence commission.

The newly reorganized existing core elite members are almost all of Kim Jongil's entourages.  They acquainted with the university since Kim was young and motivated colleagues or leaders of party organizations that composed of many of the elite, those 50~60 age groups are to help the succession process.

On April 13, 2012,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finally bestowed Kim Jong-eun a title of the first chairman of the National Defense Commission, thus the succession process seems to be complete. 

North Korea is attempting  to ensure the legitimacy of succession in successive three generations from Kim Il-sung to Kim Jongeun, placing emphasis on Kim Ilsung, because there are neither verification of qualifications nor achievements for Kim Jong-eun himself.



北 정권의 권력 기반은 당 주도 권력체제의 특성에 따라, 당 중앙위원회와 당 정치국과 비서국, 당 중앙군사위원회 및 국방위원회에 집중되어 있다.

세대별로 보면 항일 빨치산 세대, 혁명 2세대(6.25전쟁 참전 및 3대혁명소조 지도세대), 그리고 혁명 3세대(3대혁명소조 지도세대, 1940~50년대 출생)로 나뉜다.

현재, 80대인 혁명 1세대는 권력 요직에서 물러나고 있으며, 고등교육을 받은 60대 혁명 3세대들이 김 정은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엘리트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새롭게 재편된 현행 핵심 권력층은 전문성을 가진 김 정일의 측근세력으로서, 김 정일과 젊은 시절부터 친분을 가진 대학 동기나 당 조직지도부 동료들 그리고 후계체제 구축을 도와줄 50~60대 연령층의 다수의 엘리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김 정일을 보좌해 온 측근들로 당 정치국과 비서국 그리고 국방위원회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현재 김 정은 체제의 핵심인물은 김 씨 가계의 김 경희(고모, 당 정치국위원)와 장 성택(고모부, 국방위 부위원장, 당 정치국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을 비롯하여 최 룡해(국방위원, 총정치국장, 당 정치국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차수)와 리 영호(국방위원, 당 중앙군사위원, 총참모장), 김 원흥(안전보위부장,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대장) 그리고 리 명수(인민보안부장, 대장) 등이다.

北 권력계층의 평가 지표로 볼 수 있는 것은 주석단 서열, 직책, 현지지도 수행(隨行) 빈도 그리고 김 정일 부자와의 관계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주석단 서열이다.

선군정치를 표방한 이후, 주요 행사의 주석단 사열 모습에서는 군부인사의 상위권 진출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당 간부들의 주석단 서열은 상대적으로 침체된 경향이다. 

이것은 1993년 이래 당 정치국의 인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위상 약화를 초래한 탓도 있지만, 김 정일 체제의 선군정치에 따른 군부의 지위 상승으로 당 정치국이 상대적 하락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44년 만에 열린 제3차 당 대표자회 개최(2010.9) 결과, 당 중앙위원, 정치국과 비서국, 당 중앙군사위원회 재편을 통해 당 정치국의 위상은 1980년 수준으로 복원되고 당 지도기구가 정상화 되었다고 평가된다.

이번 권력의 정비 결과 당 정치국 정 위원들과 후보위원들이 주석단의 20위권 안팎의 서열을 차지한 사실이 이것을 말해 준다.

특히 김 정은에게 대장 직위를 부여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3차 당 대표자회 결과 구성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는 당과 군의 핵심 인물들이 모두 포함된 것을 보면 향후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위상 강화가 예상된다.

2010년 초부터 본격화된 김 정은의 3대 세습 후계체제 구축 작업에는 예외 없이 우상화 작업도 잇따랐다.  김 정은 찬양가로 알려져 있는 “발걸음”을 대대적으로 보급하는 한편, 구호 “당 중앙위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도 등장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0년 9월 28일 당 대표자회에서는 김 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하여 당과 군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 후, 김 정은은 2010년 9월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데 이어, 10월 5일 인민군 협동훈련 참관과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군 열병식 등장을 통해 이미지 부각과 군부의 충성 유도 및 수많은 공개 활동 등 후계체제 구축작업을 서둘렀다.

그리고 2012년 4월 13일, 급기야 최고인민회의는 이미 노동당 제1비서인 김 정은을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함으로써 김 정은 체제는 김 정일 사망 이후 5개월 사이에 빠르게 안착되고 있다.

김 정일이 20여년에 걸쳐 권력 승계 작업을 해오면서 권력을 확실히 장악했던 것과는 달리, 김 정은은 당.정.군의 1인자 자리를 차지했다고 하나 이것은 단지 “주어진 권력”일뿐, 그의 능력과는 무관한 위험한 불확실성이다. 

北 정권의 이 3대 세습 작업은 그간에 어떤 독재정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정치 실험이다.  그만큼 이것은 北 내부의 정치상황이 가변적이라는 의미가 된다.

앞으로 3대 세습 기반의 정착은 北 내부 경제여건의 개선 여부와 국제적인 환경의 조성 여부 등 요인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北 정권은 김 정은에 이르는 3대 세습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김일성을 강조하는 정치 게임을 구사하고 있다.  김 정은은 김일성의 손자라는 것 외에는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업적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을 강조하고 김일성과의 관련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김일성의 젊은 시절을 연상할 수 있도록 김일성을 닮은 “자애로운 지도자”로, 김 정일 유훈을 이어받은 “효자 지도자”로 그리고 선군정치를 이어가는 “군사 지도자” 의 이미지 제조에 주력하고 있다.

2010년 9월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김 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김일성 민족”을 언급한 이후, 이 말머리 “김일성 민족”은 현재 北 정권 보도매체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김일성 조선”이니 “김일성 당”이니 하는 표현도 등장하였으며, 이를 통해 북한 지역 주민들에게 김 정은과 김일성과의 관계를 부각시키고, 김일성에게 충성했듯이 김 정은에게도 충성할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오늘 날 김 정은체제 北 정권의 실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