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점이 있는 외교정책의 존 페퍼의 정보에 관한 논평이다. --
" The Information and North Korea "
Abstract :
If North Koreans simply know more about the world outside, or received more accurate information
about their own society, they would transform their country.
This is an operating assumption behind much of the policy thinking in Washington and Seoul.
Both governments pour money into North Korea. Civil society activists, perhaps impatient with the
incremental pace of government policy, try to get information into the notoriously isolated country
by any means possible, from floating balloons over the border to crossing into the country to proselytize
in person.
北에서 처음 탈출한 탈북자들은 외부 세계에 접하면서 크게 놀란다.
1990년대 중반의 기근의 해에 중국에 간 탈북자들은 경제적으로 낙후 되었으리라 생각했던 중국의 첨단기술과 북적거리는 시장 그리고 풍요로운 소비자들을 보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처음 한국을 찾은 탈북자들은 그들의 눈앞의 서울의 자유롭고 풍요로움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데 놀랐다.
그러나 20년 전 은밀히 北주민들을 가르쳤던 " 소프트 파워 (Soft power)" 전략 이후 상황은 많이 변했다.
北 주민들은 이제 완전히 암흑 속에 있지 않다. 北에 유입된 정보가 얼마나 되는지 北에서 여론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량화할 수 없다.
하지만 간접적인 평가는 할 수 있다. 수십만 명의 北주민들은 1990년대 국경을 드나들면서 중국의 경제적 발전상을 직접 보았다.
오늘날, 2012년 1분기에만 작년 동기보다 40% 늘어 난 4만 명 이상의 北 주민들이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상품은 北의 장마당에서 매매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활기찬 중국 경제와 맞닿고 있다. 개성공단에는 5만 명이 넘는 北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선진기술과 깨끗한 시설 그리고 풍부한 음식의 식당 등 한국의 풍요와 얼굴을 맞대고 있다.
개성공단 내에서만 北 근로자들이 한국을 접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 장마당의 확산으로 北 주민들은 DVD플레이어, MP3플레이어,USB스틱 등을 갖게 되었다.
한국영화와 멜로드라마는 인기가 좋다. 많은 北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K-팝을 듣고 있다.
이집트의 오라콤 회사 덕분에 100만 명 이상의 北 주민들이 휴대전화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北의 정보의 흐름이 더 빠르고 쉽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는 이전엔 단지 수직으로 정부의 통제를 통해 알고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제 수평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런 정보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北 정권은 어떤 정치적 변화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 파워 전략 옹호자들은 변화는 이제 시간문제일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모든 정보의 흐름은 흰 개미떼가 北 정권의 사회 토대를 파먹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정권의 체제가 단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하루만에 붕괴될 수 있다. 소프트 파워 전략의 전제는 단지 희망적인 관측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량이 아니라, 정보의 유형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동유럽 주민들은 외부 세계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서유럽에 수십년 동안 왕래 했었다. 동독인들은 서독의 TV 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비교적 고립되어 있던 러시아에서도 의견을 달리하는 자비출판 원고가 나돌고 있었다.
1989년의 정보의 흐름의 특이한 점은 동독인들은 폴란드의 변화 가능성을 알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은 베르린 장벽의 붕괴를 알았으며, 알바니아 사람들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대통령 (1918~1989)의 몰락을 알았다.
이것은 마구잡이 정보가 아니었다. 이것은 정치구조와 문화의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정치에 대한 욕구가 갑자기 터져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의 정보였다.
사람들은 "아랍의 봄" 을 말 할 수 있다. 튀니지 사람들, 이집트 사람들, 그리고 바레인 사람들은 외부 세계의 정보와 자국의 사회 정보에 어둡지 않다.
이런 나라의 주민들에게 전기가 통하게 한 것은 아랍 세계에서 무엇이 갑자기 정치적으로 가능케 했는가 하는 정보였다.
그들은 독재자에 맞서 들고 일어 설수 있었으며 외부 세계는 독재자 지지를 위한 개입은 하지않았다.
정보의 증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포의 감소는 문제가 된다. 北 주민들은 지금 이런 사례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의 부 (富)의 정보는 비통함이나 분노 또는 부러움을 낳게 할 수 있겠으나 정치적 행동을 일으키게 할 것 같지는 않다.
대중음악과 멜로드라마 그리고 종교는 개인을 완전히 바꿀 수는 있겠으나, 北 주민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향해 봉기하게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北 정권이 단지 한 줌의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北 정권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현행 체체의 득을 보고 있는 상당한 엘리트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나라를 돌아 다닌다. 그리고 당연히 세계를 잘 알고 있으며, 대체로 실리적이지만 공식정치노선을 신봉한다.
이 부류의 엘리트들이 오늘 날 北 정권의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외국 방송을 듣거나 암시장의 DVD 를 보았다고 충성을 바꾸지 않는다.
이 엘리트들은 그들의 핵심 이익이 위협을 받거나 편들기를 요구 받을 상층의 심각한 권력투쟁, 또는 갑자기 더 이상 공포 속에 살지 않게 될 때는 현상 (現狀)의 집단 파괴도 불사한다.
아는 것은 힘이고 정보의 자류로운 흐름 그 자체는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보다 더 혁명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그것은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