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0일 금요일

統一論議 (14) 대북 협상

     - 대북 협상의 특수성과 그 평가의 시시비비 -


한반도의 남과 북의 두 정치적 실체는 1971년, 분단 이후 처음 공식 대화를 시작하면서 30여 년의 긴 협상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협상은 본질적으로 갈등 관계를 대화로 해결하려는  “주고받는 것” (give and take) 의 행위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완전한 승자나 완전한 패자는 있을 수 없으며, 50%의 성과를 쌓아 간다는 관점에서 협상 결과를 평가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일부는 북측의 실체를 여전히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완전한 승리를 바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오해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문제 해결을 포기하지 않는 한, 협상을 통한 합의의 도출과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큰 기대가 만족할 만한 성과로 나타나지 않으면 대북 협상에 대한 비난도 그 만큼 크게 비등하여 왔다.   그리고 지금 까지 대북 협상의 역사가  보여 온 “기대의 극대화” 와 “실천의 미흡” 의 괴리 현상 또한 이런 추세를 심화시킨 면도 있다.

이것은 비밀 협상을 통해 발표된 “7.4 남북 공동 성명” 과 1992년의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 그리고 2000년 “남북 공동성명” 등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 수준을 높여 놓았지만, 북측의 무성의와 핵 문제 등 장애의 돌출로 국민들의 실망도 반사적으로 증폭되었다는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북 협상 목표에는 최대 목표치도 있지만, 최소 목표치도 있음으로 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최소 목표치를 달성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평가하는 자세도 바람직하다 하겠다.   협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인 “너무 많이 양보 한다”, “우리가 주는 것에 비해 얻는 것은 적다” 의 견해는 대북 협상을  단기적, 가시적 측면에서만 평가하며, 장기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을 간과하는 현상이다.

더욱이, 서해 교전과 휴전선 총격 사건에서도 북측을 응징하지 못하고, 해외에서 “포템킨 빌리지 (Potemkin Village)"라고 비웃는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남북 교류. 협력 사업을 중단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각에 대해 그 문제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응징과 보복에 따르는 기회비용 (opportunity cost) 이다.   우리는 북측을 응징하고, 독재자를 제거하는 강제 수단을 동원할 때, 남과 북 사이의 긴장 고조에 따르는 비용과 희생은 결국 우리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둘째,  지난 국민의 정부 때부터 생긴 “퍼 주기”라는 경멸이 섞인 시각의 대북 지원은 대화를 통한 설득이나 경제 지원에도 결코 북측은 변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북측이 쉽게 변하기 어렵고, 우리의 기대만큼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북 정책이 타도나 대결, 봉쇄로 일관할 경우 지불해야 할 엄청난 기회비용을 생각해서도 대북 협상과 교류. 협력은 계속하는 것이 현명하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계속적인 대북 지원으로 북측의 우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남북 관계에서 우리는 보다 많은 선택의 자유를 갖게 되며, 정책의 효율성을 또한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우리는 대북 협상의 계속적인 추진과 안보 역량의 강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북측과의 교류. 협력을 계속해 나가면서 우리의 안보 태세를 강화하는 이원적 대북 정책은 한 가지 정책만을 고집하는 것 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장기적으로 유익하고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셋째,  대북 협상에서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보편적 상호주의 (diffused reciprocity) 보다 특수 상호주의 (specific reciprocity)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남과 북의 적대적 당사자간의 협상에서 이 특수 상호주의를 고집할 경우,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은 일반적인 정평이다.   대북 협상에서 보편적 상호주의는  남북간의 국력의 차이, 상호 불신을 고려할 때, 남북 관계를 반복, 지속되는 게임으로 전환시켜 매번 보상을 받지 못하면 다음에 보상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형성해 나갈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대북 협상을 보는 시각에는 북측의 협상력을 과장해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 기습 제안,  합의 사항 불이행을 통한 새로운 양보 얻기 등 사례를 보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인상적인 관찰은 남북의 체제를 고려하지 않은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여기서 남북의 협상 입지의 차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측은 국제 사회와의 정치, 경제적 관계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벼랑 끝 전술을 쓰더라도 국가적으로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개방적이며, 다원화 된 우리는 이런 극단적 선택을 추구할 수 없다.

둘째,  북측은 여론의 향배에 관계없이 협상 전략과 전술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으나  우리는 여론의지지 없는 대북 협상은 생각 조차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폐쇄적인 북측의 입장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제한적이지만,  북측은 우리의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한 전문가들의 분석 등 우리의 협상 전략과 전술 등을 사전에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넷째,  독제 체제는 일사불란한 정권적 뒷받침을 받지만, 우리는 정부 내 의견 조정을 거치면서 대북 협상 전락과 전술을 구상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대북 협상에 대한 바른 이해와 건전한 판단을 위해서는 남북 협상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환경과 구조를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적대와 협상의 관계이다.

냉전 시대의 남북간의 협상에는 제로 섬 (zero sum)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이런 관계에서는 협상은 싸움의 연장으로만 볼 뿐이며, 합의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적대 관계에서는 협상 자체가 하나의 전쟁 (심리전) 이다.   상대방의 제안은 그 의도에 대한 불신뿐 만 아니라 상대방이 제안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제안에 대한 거절의 직접적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 북측이 협상에서 경직성을 보이는 것도 과거의 관성에 따른 불신감과 두려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특수 관계는 안정과 불안정의 딜레마이다.

우리는 한반도 남북 지역에 두개의 국가는 아니지만 두개의 정치적 실체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두개의 실체론”의 입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북측은 “하나의 조선” 논리에 따라 국제법적으로는 두개의 국가를 인정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실체의 인정은 “반민족적” 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측은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과 우리의 지속적인 경제 지원 등으로 한국의 존재와 능력을 재평가 하게 되었고, 대남 인식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셋째,  남북 관계의 이중성은 단절과 협상의 딜레마이다.

협상의 상대인 북측은 우리의 “적” 인 동시에 우리의 “반쪽” 이라는 이중적 존재이다.   남북의 협상의 어려움은 이런 이중성에서도 비롯되고 있다.   북측의 독재와 지도층의 반민주적, 반인권 행위를 직설적으로 비난하면서 협상을 성립시킬 수는 없다.

이렇게 되면 정부와 기업, 민간단체가 북측의 주민들을 상대로 대화와 설득을 하고, 도와줄 수 있는 여지마저 차단될 수밖에 없다는데 대북 협상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에서는 화해와 협력을 위한 대화를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북측의 도발에 대비하여 국가 안보를 더욱 철저히 다지는 모순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화해. 협력과 튼튼한 안보라는 두 가지 정책을 균형 있게 추진해 나가면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북측을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함으로써  이러한 대북 협상의 딜레마를 해소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규범에 공공연히 역행하는 처사에는 동포애 적, 전략적 차원에서 쓴 소리로 충고하는 열린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넷째,  남북의 협상은 복잡한 국제적 측면의 “3면의 게임” 이다.

대북 협상의 주요 의제는 한반도 주변 관련국들의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남북의 양자간의 게임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3면의 게임” 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미국 하버드 대학의 퍼트남 교수 (Robert D. Putnam) 의 국내 정치와 대외 협상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한 “양면 게임 (Two-level game)" 의 이론이다.

이 이론은 협상에서 국내 정치적인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독재 체제 (평양) 에 비해 한국의 협상 대표는 더욱 복잡하고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   즉 대북 문제를 둘러싼 국내 집단간의 이해와 갈등이 첨예화 하면 협상은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교착 상태” 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거 북측은 남북의 협상에서 매우 공세적이고 비타협적이며, 원칙과 명분을 내세우는 성향이 강했다.   특히 대남 협상을 체제 선전이나 한국 내 혁명 역량의 강화의 수단으로 여기는 “가짜 협상 (pseudo negotiation)" 의 성향을 강하게 노출하였다.

그러나 냉전 종식 후 대남 협상에서는 매우 수세적이고, 타협적이며, 구체적인 합의를 추구하는 “진의 협상” 의 자세를 꾸준히 드러내고 있다.

대화의 의제도 과거에는 정치, 군사적인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들어 경제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명분이나 원칙을 고집하지 않고 이산가족 상봉과 면회소 설치,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 개성 공단 사업 추진, 금강산 사업 활성화 등 교류. 협력 사업의 구체화에 응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은 남북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실리를 얻으려는 변화된 전략과 전술이다.

또한 북측 인사들이 우리 주민들과 접촉하는 경우에도 과거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고, 솔직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는데,  이와 같은 변화는  남북의 협상이 “접촉을 통한 변화” 와 “나눔을 통한 분단의 극복” 의 통로라는 측면에서도  큰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남북의 주민간의 접촉 증대, 남북 교류. 협력의 질적 변화, 대북 지원 등을 통한 북측의 대남 인식이 점차 현실적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향후 남북 관계의 긍정적 발전을 보여 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북측 회담 대표의 “말” 과 “태도” 의 변화 사례를 잠시 살펴보자.

북측은 아직 공식적, 공개적으로는 우리 측에 적대적이고, 대결적인 태도를 보이는 측면이 있으나, 회담 대표들의 말과 행태를 보면 많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 이산가족 생사, 주소의 확인, 서신 교환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은  북측 내부의 법 문제로 시기상조이다.”    (남북 적십자 회담 북측 수행원)

“ 생사 확인만 해도 남측은 TV, 컴퓨터 등의 발달로 확인 사업이 원활하나, 북측은  사람이 일일이 찾아 다녀야 한다.”   (남북 적십자 회담 북측 수행원)

“ 평양에 있는 유선 전화기 공장을 여기다 옮겨 놓으면 초라할 것 같다.”    (경추위 삼성 전자 참관 북측 대표)

“ 산의 8, 9부 능선 까지 나무가 없는 것은 고난의 시기에 주민들이 땔 감으로 다 베어 썼기 때문이다.”   (임남댐 공동 조사 실무 접촉 시 북측 대표)

“ 북의 전기 사정이 좋지 않다.  남측이 식량에 이어 전기도 주면 인민들이 더욱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남북 장관급 회담 시 북측 대표)

지난 30여 년간의 남북의 협상을 종합 분석해 보면 최근 들어 의제가 다양해 졌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남북간의 협상 의제는 군사, 정치 외에 경제, 사회, 문화, 관광, 해운 등 광범위하고 엄청나다.

이러한 협상 의제의 변화는 냉전 종식 후 국제 정세의 변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경제적 우위, 북측의 식량난을 포함한 내부 사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측의 대표단 구성에서도 부문별 전문가와 실무자 참여가 늘어나고 있으며, 향후 보다 실질적인 대화를 예감케 한다.   또한 1992년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 이후, 남북 양자간 협상외에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국제 사회의 다자 협상이 증가하고, 그 속에서 남북간의 접촉이 빈번해 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다자 틀 속에서의 문제 논의는 국제 사회의 설득과 압력을 통해 북측이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그 외에 북측이 평양 외 지역도 회담 장소로 개방하였으며, 합의 사항 이행 정도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과 경제 지원에 대한 북측의 이해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 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우리의 협상 주도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우리 측은 70여 개의 의제 중 75~80% 정도의 의제를 주도적으로 제의하고 합의를 도출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북 협상은 남과 북이 반세기의 적대적인 관계를 넘어 전쟁과 분단의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의 터를 닦아 나가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과정” 이다.

따라서 한 두 차례의 회담과 합의에 대한 단편적이고 성급한 재단보다는 한반도의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면서 평화의 기초를 다져간다는 측면에서 남북의 협상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註 : 포템킨 빌리지 (Potemkin Village)
   
    1.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나, 상태를 감추기 위한 번지르르한 겉치레를 뜻함.
    2. 이 표현은 2003년 5월 20일, 헤리티지 재단의 Larry M. Wortzel 박사가 상원 정부 업무 소위원회에서 행한 평양 정권의 국제 밀수 증언 시 한국의 금강산 관광 프로그램을 표현한 경멸적 영어 표현임.
3. Potemkin, Gregory Aleksandravich 는 제정 러시아의 군인, 정치가 (1739~1791).  Catherin 2세 여왕의 애인으로 17년 동안 제국의 실력자로 행세하였으나, 말년에 우크라이나 지방의 치적을 위장, 선전하면서 결국 몰락한 고사를 인용, “Potemkin Village” 라는 표현이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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